0. 제목은 그냥 별 이유 없고 '이걸 대체 뭘 어떻게 쓰지...'하고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른 표현입니다.
1. 이전 글에서도 몇 번 밝혔듯 저는 ADHD 증상이 있는 성인ADHD 입니다. 물론 이걸 올해 알았으니, 제목에 있는 친구들은 제가 ADHD고 뭐고 그런 거 모를 때부터 친구들이었죠.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벌써 시간 참 이렇게 빨리 흘렀네요.
...이런 표현 쓰면 안되는데, 쩝.
2. 여하튼간, 친구 하나가 코시국도 슬슬 3년차고 거리두기 완화도 되었으니 언제 봐야 하지 않겠냐며 운을 던졌고(놀랍게도 저희는 코시국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7월 말에 잠실야구장과 코엑스, 마지막 코스로 저희 집에 오는 루트를 짰는데 슬금슬금 수도권에서 또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코엑스나 잠실이나 유동인구 많던 상황이라 결국 2주를 앞으로 땡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넷 중 제가 야구잘알이긴 했는데 저도 올스타전 그저께 한 줄 몰랐을 정도로 근 몇년간 야구를 아예 안보던 상황이었습니다. 시기를 땡길 줄 알았으면 잠실에서 여는 마지막 올스타전 가는 것도 괜찮았을텐데요.
그런데 거기서 은원이가 쓰리런을 쳤더라고요? 랜선은원맘 웁니다...
3. 아니, 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하튼 그런 와중에 2주를 땡겼는데 예보는 또 주말에 비소식이라 어디 갈 루트도 짜지 못한 채 저희 집에서 놀다 가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나름 집에 사람이 오는데 집주인으로써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서 게임도 하나 사고, 조이콘도 하나더 질렀죠. 네, 접대용 게임으로 유명한 슈퍼마리오 파티입니다.
4. 이제 서른도 넘었고, 사실 그 친구가 보자고 한 이유도 '어쩌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하는 좀 슬픈... 이유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렇다고 그냥 저희 집에서 내리 6시간만 있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게임도 그래서 산 건데 말 그대로 우정파괴 게임이라는 닉값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크크, 진짜 파괴한 건 아니긴 한데... 일단 소프트 산 사람(본인)도, 겜잘알(친구1, 친구2)도, 겜알못(이자 드라마덕후, 친구3)도 짤없는 운빨망겜에 당해버리고...
5. 아마 제가 이 집에 이사온 이후 제일 시끄럽게 웃어댔던 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고 엄마도 ADHD 성향이 있는(추정) 분이다보니 정리정돈을 잘 못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집에 누굴 초대하는 걸 정말 꺼리셨거든요. 저도 청소는 하긴 했는데 먼저 온 친구들이 더 도와주는 참사(?)가 더해져서 그나마 '평범한 사람'이 사는 집안꼴로 바뀌어서 넷이 재미있게 놀기라도 했지...
6. 심지어 한 친구는 자고 갈 예정이었다가 당일치기로 내려갔는데, ADHD 증상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증상이라는 말로 도피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게 증상도 증상인데 몸에 밴 버릇같이 아예 붙어버린 수준이 되어서 고치는 일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나름 청소란 걸 당연히 하고 불렀을 거 아닙니까. 근데 그게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그것조차 만족못하는 수준이었던 거죠. 평범이라는 기준에 맞춰나가는 게 사소한 것도 많이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덩달아 올해 상반기에, 정말 인간 미만으로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7. 그나저나, 기껏 비온대서 집에서 마리오파티 3시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논 게 다인데 정작 당일엔 비도 안오고 화창해서 좀 킹받네요. 장마 지나고 곧바로 언제 모여서 보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저희 넷은 메신저로는 맨날 얘기하는 사이기도 해서 오래간만이라고 막 방방뛰고 이러는 사이는 아니긴 한데, 글로 왔다갔다 하는 것하고 보는 것하곤 확실히 차이가 크잖습니까.
8. 4에서 친구가 말한 '마지막'도 나이가 한자리 바뀌었고, 누군가 결혼 등으로 '넷이서' 보는 일이 어렵지 않겠냐 하는 의미였는데, 사실 어제만 해도 친구가 개인사정으로 중간에 먼저 가는 일이 있긴 했습니다. 사실 넷 다 결혼과는 거리가 멀긴 해도 결혼은 둘째치고 번듯한 직장 하나만 잡아도 어려운 건 사실이긴 하죠.
9. 이래서 별로 어른같은 거 되고 싶지도 않고 처음 친해졌던 학창시절처럼 지내고 싶은데, 시간이 전혀 도와주지 않는게 조금은 속상합니다.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긴 하니, 좀 더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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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아버지랑 친구 분들 보니 연락만 꾸준히 된다면 은퇴할 나이 쯤 되어서 또 만나게 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연세시니 만큼 안 보이게 된 분들도 좀 계셨지만... 집에 오실 때마다 곧 마흔 되는 친구 딸에게 이거 좋아하지? 하면서 제 돈 주고 사 먹은 지 이십년 쯤 되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내미시는 아버지 친구 분들을 보면 속으로는 밖에서 만나시면 안 되나요 하다가도 걍 웃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