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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2/03 02:33:22
Name 라쇼
Subject [일반] 필살 야마아라시! 전설의 유도가 사이고 시로 -상편- (수정됨)





여느때처럼 유튜브를 보는데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카게무샤 리뷰 영상이 있더군요. 크, 명작이지하면서 알고리즘을 따라 구로사와의 영화 영상들을 보는 도중 초기작인 '스가타 산시로'가 나오는 겁니다. 스가타 산시로 영상을 보다보니 전부터 유술, 유도, 브라질리언 주짓수로 이어지는 유술의 계보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던게 떠올랐습니다. 고류 유술과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강도관 유도, 그리고 가노 지고로의 수제자 마에다 미츠요가 세계를 방랑하며 스트리트 파이트를 벌이다가 브라질에 정착해 그레이시 가문에게 강도관 유도를 전수해줘서 탄생된 그레이시 유술. 거기다 유술이란 뿌리는 같지만 유도와는 다른 계통의 무술로 발전한 합기도까지, 유술의 계보를 주제로 연재 글을 쓰려 했는데 전부 다 다루려면 범위가 너무 방대한 나머지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던 거죠. 그런 연유로 스가타 산시로를 보고 생각난 김에 짧게나마 유도가 창시된 과정과 유도 사상 최강의 유도가로 손꼽히는 사이고 시로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郎)은 1942년 도미타 츠네오가 집필한 소설로 일본 전국에서 열풍적인 인기를 얻고 수 차례 영화나 드라마, 만화로 만들어진 국민 작품인데요. 워낙 인기가 대단한 나머지 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이례적으로 속편까지 영화를 찍을 정도였고, 스가타 산시로가 유행하고 나서부터 일본에선 국민적으로 인기를 얻은 유도 스타가 나타나면 쇼와, 헤이세이의 산시로 같은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바람의 파이터로 유명한 최영의와 친분이 깊었고, 역도산과 쇼와의 간류지마라 불리는 이종 격투 매치를 벌였던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도 산시로의 재림이란 평가를 받았었죠.

스가타 산시로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혈기넘치는 청년 스가타 산시로가 야노 쇼고로에게 유도를 배우고 가라테나, 복싱을 사용하는 사악한 격투가들과 대결을 벌여 필살기 야마아라시(山嵐)로 무패행진을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이 야마아라시는 한국에 들어온 만화에선 태풍메치기, 산바람등으로 번역되는데 직역하면 산폭풍이란 의미이죠. 영어로 번역하면 마운틴 스톰이란 폭풍간지급 기술이 됩니다. 아무튼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 90년대 게임 업계에선 세가 새턴 광고용으로 세가타 산시로란 패러디 CF를 찍기도 했죠. 90년대에 게임을 즐겨 하셨던 분들은 도복 입은 아저씨가 세가 새턴 광고하던게 떠오르실겁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좀 샛는데 스가타 산시로 창작물에선 유도가를 미화하고 공수도가를 악당으로 폄하하는지라 극진가라테 총수인 최영의는 스가타 산시로를 노골적으로 불편해 했다는 후문이 있지요. 그런데 이 스가타 산시로와 필살기 야마아라시는 실존 모델이 있었습니다. 바로 근대 유도의 아버지 가노 지고로의 수제자였던 사이고 시로가 그 주인공이죠. 가노 지고로는 유도를 창시하고 강도관이란 도장을 세웠는데 이 강도관에는 사이고 시로를 포함한 수제자 4천왕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도미타 츠네지로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스가타 산시로의 작가인 도미타 츠네오였죠.

강도관 사천왕이었던 아버지 츠네지로로부터 전해들은 사이고 시로와 야마아라시의 무용담을 바탕으로 도미타 츠네오는 스가타 산시로를 써냈던 겁니다. 주인공 스가타 산시로와 사이고 시로의 이름도 비슷하고 유도를 가르쳐준 야노 쇼고로도 가노 지고로의 이름을 살짝 변형시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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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타 산시로의 모델 사이고 시로(西郷四郎 1866~1922)







1866년 사이고 시로는 아이즈번의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땐 빈곤했는지라 어부 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네요. 그는 태어날 때부터 발가락이 문어발처럼 길었다고 합니다. 체구도 성인이 되었을 때 153cm에 56키로여서 당시 일본인 평균 신장 기준으로 봐도 왜소한 편이었죠. 하지만 천재적인 자질과 훌륭한 스승 아래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유도 사상 최강의 유도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체적 특징인 긴 발가락은 발에도 손이 달린 것 같아서 야마아라시를 사용하면 밭다리를 건 상대의 정강이를 꽉 움켜 잡으면 제 아무리 날고기는 고수여도 기술을 피할 수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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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에서 묘사되는 야마아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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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사이고 시로, 오른쪽은 시로의 양부 사이고 타노모







여튼, 아직 어렸던 사이고 시로가 야마아라시를 완성 하는 건 더 이후의 일이고, 그가 16세가 되던해 아이즈번의 가로였던 사이고 타노모의 양자로 들어가게됩니다. 한미한 하급 무사의 아들에서 높으신 분의 아들로 신분 상승하게 된 셈인데 일설로는 시로가 사이고 타노모의 숨겨둔 아들이란 이야기도 있더군요.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사이고 타노모는 시로를 친아들처럼 극진하게 대해줍니다. 이 또한 일부의 설에 불과한데 아이즈 번에는 후대의 대동류 합기유술의 모체가 되는 오토메 비전 유술이 전해진다고 하는데요. 사이고 타노모가 아이즈 번의 비전 유술을 사이고 시로에게 전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시로의 필살기 야마아라시가 대동류 합기유술의 사방던지기와 흡사하단 이야기가 있는 걸로 봐선, 양부로부터 배운 아이즈 번 비전 유술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게 야마아라시가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연구자도 있죠.

1882년 도쿄로 상경한 사이고 시로는 양부의 후원을 받아 육군사관학교 생도 후보를 길러내는 세이죠 학교란 곳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천신진양류(天神真楊流) 유술가 이노우에 케이타로의 도장에 입문하여 고류 유술을 수련하죠. 마침 이노우에의 도장엔 동문 가노 지고로가 있었는데 사이고 시로의 천재적인 자질을 보자마자 흠뻑 빠져 친구에게 부디 시로를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간청합니다.

가노 지고로는 근대 유도를 창시한 인물로 불과 20세에 도쿄대를 나와서 교수직에 재직하며, 천신진양류에 입문한 지 2년도 안되서 유술계를 꽉잡고 있던 도츠카 양심류의 유술가들을 쓰러뜨린 문무양도에 출중한 천재였습니다. 그런 천재가 시로를 보자마자 체면도 차리지 않고 제발 자기에게 달라고 떼를 썼을 정도니, 사이고 시로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 할 수 있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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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도의 아버지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 186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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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가노 지고로






당시 일본 유술계는 도츠카 양심류가 독식하던 상황이였습니다. 가노 지고로가 몸을 담은 천신진양류도 양심류의 등쌀에 기를 못펴고 눈치만 보던 상황이었죠. 서양 문물을 접하고 진취적인 사상을 보유했던 지고로는 일본 무술계도 폐쇄적인 틀을 깨고 서양의 스포츠처럼 국민과 친숙한 무도로 거듭나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타 유파에선 입문자에게 허드렛일이나 기초 체력 단련만 시키면서 유술 카타를 가르쳐주지 않고 감춰두기만 하는데, 가노 지고로는 강도관을 열어 입문하자마자 누구도 가리지 않고 유도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죠. 유, 즉 야와라는 술에 그쳐서만은 안되고 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신념에서 나온게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유도의 시작이었습니다.

수 년 넘게 도장비를 지불해도 기술 하나 가르쳐주지 않는 양심류 도장과, 입문하자마자 친절하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유도 강도관을 선택하라고하면 결과는 당연히 강도관이었습니다. 이에 수련생들을 뺏어간다고 여긴 양심류는 가노의 강도관을 눈엣 가시로 여겨서 도장깨기 명목으로 유술가들을 파견했는데 그때마다 고작 유술을 2년 수련한 애송이에게 번번히 패배하고 만 것이죠.

내로라하는 양심류의 유술가들을 쓰러뜨리고 유도의 위상을 세운 가노 지고로였지만, 일본 경시청과 전국 유술계를 휘어잡은 양심류의 세력에 비교하면 강도관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고작 도장 수련생 아홉 명에 다다미 열두 칸의 볼품없는 모양새였죠.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만나게된 사이고 시로라는 기린아는 지고로에게 마치 구세주처럼 비춰졌을 겁니다.

천신진양류 도장 사범 이노우에 케이타로는 동문 가노 지고로의 유도만이 양심류의 독주를 저지하고 부패한 유술계를 혁신할 희망이라 믿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사이고 시로를 맡깁니다. 자신의 재능을 뛰어넘는 천재 시로를 제자로 얻게 된 지고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욱 든든한 심정이었겠죠. 이듬해인 1883년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수련생 일곱명을 단 번에 쓰러뜨리고 심사를 통과하여 초단을 획득합니다. 강도관 유도는 지금도 승단 심사가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한데, 그 당시 유도는 아직 유술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가위차기 같은 위험한 금지 기술도 존재했고, 당신기라 불리는 타격기도 남아 있었죠. 그런 위험한 룰에서 소수 정예였던 강도관 수련생 일곱명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쓰러뜨렸을 만큼 사이고 시로의 천재적인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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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관 4천왕 요코야마 사쿠지로(横山作次郎 1864~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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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요코야마 사쿠지로. 전성기 강호동을 방불케하는 모습이 후덜덜 하군요.






사이고 시로가 초단을 획득 할 시기 즈음 강도관에 새로운 원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귀신 유도가라 불리었던 강도관 사천왕 2인자 요코야마 사쿠지로였죠. 그는 키 180cm에 몸무게 80키로 후반대에 육박하는 당시 기준으론 엄청난 거구였습니다. 육중한 신체 뿐만 아니라 유술 실력도 뛰어나서 천신진양류의 비기 텐구던지기를 터득한 고수였죠. 이 텐구 던지기는 노골적으로 말하면 좀 볼품 없지만 kof에 등장하는 랄프와 클라크가 사용하는 아르헨틴 백브레이커와 비슷한 기술입니다. 공중으로 높게 던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상대를 어깨에 쌀가마니를 얹듯이 들어 올려 그대로 매치는 기술이었죠. 설명만 들으면 우스을지도 모르겟지만, 당시 일본인의 평균 신장이 160cm 였던 걸 감안하면 180cm의 거구가 어깨위로 번쩍 들어서 그대로 메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말그대로 낙법도 불가능한 무시무시한 기술이었죠.

텐구 던지기를 터득한 요코야마는 사실 사이고 시로를 탐탁찮게 여겼습니다. 천신진양류의 으뜸인 자기를 제치고 가노 지고로에게 스카웃된 것도 마음에 안드는데 직접 만나고 보니 150cm 밖에 안되는 땅꼬마였으니 혀를 찰만도 했지요. 요코야마는 대뜸 사이고 시로에게 시합을 겁니다. 강도관의 최고수인 시로를 우습게 본다는 사실을 간파한 가노 지고로는 새로운 인재를 영입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요코야마가 질 경우 강도관에 입문 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죠. 자기가 시로에게 질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는 요코야마는 흔쾌히 조건을 수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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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공태랑 나가신다에서 묘사되는 야마아라시. 사이고 시로와 요코야마의 일화를 참고한 듯 합니다. 실제로 작중 시로의 라이벌 대오는 텐구 던지기를 사용하죠.)






시합이 시작되고 불과 몇 초도 안되서 승부는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요코야마는 자기가 어떻게 졌는 지 알 수도 없었죠. 뭔가 다리 쪽을 문어 빨판 같은 것이 빨아들이는 듯 하더니 천지가 뒤바뀌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도장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던 겁니다. 자랑하던 텐구 던지기를 사용해볼 틈도 없이 정체불명의 기술에 당한 요코야마는 당혹한 심정으로 사이고 시로에게 방금 쓴 메치기 기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사이고 시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도복 옷깃을 털며 빙긋 웃고서는 쓰러진 요코야마에게 손을 내밉니다.

"사이고류 유도 오의 야마아라시. 덩치 큰 친구, 강도관에 온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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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주지 마!
21/02/03 03:17
수정 아이콘
오.. 재밌네요.
21/02/03 11:48
수정 아이콘
일본 무술 이야기는 좀 마이너한데 재밌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미키맨틀
21/02/03 04:49
수정 아이콘
역시 라쇼님 최고 !!!!
21/02/03 11:48
수정 아이콘
미키맨틀님도 최고!!!
진샤인스파크
21/02/03 08:02
수정 아이콘
글에서 멋이 넘쳐흘러버리네요
21/02/03 11:45
수정 아이콘
가노 지고로와 강도관 사천왕의 이야기는 회사의 스타트업 같은 느낌이 있어서 낭만이 있더라고요. 스가타 산시로 주제가도 여지 없는 뽕짝이지만 그당시 상황에 몰입해서 듣다보면 구수한게 좋더군요 크크크크.
지금 우리
21/02/03 09:42
수정 아이콘
공태랑 나가신다에서 봤던 그 태풍메치기가 실화였군요. 와 좋은글 감사합니다. 흐흐
21/02/03 11:47
수정 아이콘
저도 나중에 유도관련 정보를 읽어보면서 공태랑의 태풍메치기가 실존하는 거였어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죠 크크.
괴물군
21/02/03 09:58
수정 아이콘
이야 공태랑 나가신다의 만화가 오롯이 작가의 상상인지 알았더니

태풍 메치기 였나?? 이런 나름의 참고 고증이 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21/02/03 11:16
수정 아이콘
공태랑 나가신다 유도편이 유도 고증이 상당히 좋은 만화였죠. 야마아라시 묘사를 가장 실제와 가깝게 고증한게 공태랑일거에요.
21/02/03 10:1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근데 공태랑나가신다에서 신오는 13유도부 주장이고
시로의 라이벌로 나오는 텐구 던지기 쓰는 건 대오입니다
21/02/03 11: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 맞다 대오였죠 크크크; 만화 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만 착각을 했네요 ; 수정하겠습니다.
셀커크랙스
21/02/03 10:23
수정 아이콘
야와라 나오던 만화 생각나네요.
21/02/03 11:18
수정 아이콘
야와라의 할아버지 이노쿠마 지고로의 모델이 가노 지고로일겁니다. 야와라 애니가 그렇게 유도 고증이 잘된 만화라고 하죠.
21/02/03 11:27
수정 아이콘
야와라는 만화부터 고증좋지 않나요? 그 아가씨 라이벌 캐릭터랑 마지막 승부 할때 누운기술 묘사가 상당히 상세했던 기억이...
21/02/03 11:42
수정 아이콘
우라사와 나오키가 자료 조사를 꼼꼼하게 하는 작가이긴 하지만 야와라는 유도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편집부의 독촉을 못이겨 연재했다고 나중에 작가가 밝히기도 했죠. 유도에 금지된 반칙기가 나오고도 그랬다는군요. 야와라 애니는 89년에 만들어진 것치곤 작화도 안정되어있고 유도 고증이 꽤 탁월했던 애니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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