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조지 3세 배역을 제외한 모든 배역을 유색인종으로 캐스팅’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역사적인 고증과는 거리가 있죠. 그 시대의 주역들은 모조리 백인들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과감한 ‘화이트워싱’은 오히려 해밀턴의 주제의식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자칫 고루할 수 있는 역사이야기에 ‘현대의 미국’을 대입시킴으로써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 거지요. 무엇보다도, 극 내내 강조되는 ‘이민자 출신 해밀턴’(물론, 현대적인 이민자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쨌건 해밀턴은 미국 본토가 아닌 서인도제도 출신입니다.)을 필두로 한 ‘이민자’에 대한 내러티브는 미국이란 나라는 결국 근본적으로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것을, 현재 미국의 주류 세력인 백인들 역시 사실은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과 가치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뮤지컬의 최대 인기 넘버인 ‘Yorktown’에서 서인도 제도 출신 해밀턴과, 프랑스 출신 라파예트가 손바닥을 짝 맞부딪히며 ‘우리 이민자들은 뭐든 해내지!’라고 외칠 때 환호가 터져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죠.
-Yorktown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마침내 미국 독립 전쟁의 승패를 가를 요크타운 전투가 시작되고, 해밀턴은 워싱턴의 명을 받아 기습작전을 펼친다. 한편, 해밀턴의 친구들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분투하기 시작하는데, 로렌스는 사우스 케롤라이나에서 자신의 흑인 기병대를 이끌고 싸우고, 라파예트는 프랑스의 지원을 얻어낸 뒤 체시피크 만에서 영국군의 퇴로를 막았다. 그리고 멀리건은 제단사라는 점을 이용해 영국군에 침투, 스파이 노릇을 하며 영국군의 내부 정보를 미국 독립군에게 누설한다. 일주일 후, 영국군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고, 해밀턴 일행은 독립의 기쁨을 누린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The World Turned Upside Down’라고 기뻐하는 앙상블과 함께 곡이 끝난다. 이 넘버는 해밀턴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곡으로, 특히 멀리건이 등장하는 파트는 엄청난 존재감 때문에 곡의 킬링 파트로 꼽힌다.
그렇다고 해밀턴의 역사적 고증이 엉망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되려 연기하는 배우들이 유색인일 뿐이지 해밀턴의 역사적 고증은 꽤 충실한 편입니다. 1막에서는 해밀턴의 일대기에 약간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지만,(해밀턴과 안젤리카의 관계라던지) 2막에서 해밀턴의 행보는 사실상 역사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심지어 워싱턴이 퇴임하는 장면에서 나온 ‘One Last Time’에서는 실제 워싱턴의 퇴임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죠.
-One Last Time. 워싱턴의 부름을 받은 해밀턴은 제퍼슨이 사임한 뒤 대통령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를 듣고 해밀턴은 ‘어차피 당신(워싱턴)이 대통령이 될 텐데 쓸데없는 헛짓거릴 하네염 ’ 하며 비웃지만 사실 이미 워싱턴은 퇴임할 결심을 굳히고, 자신의 퇴임사를 작성해 달라고 해밀턴을 부른 것. 이에 해밀턴은 멘붕하면서 반대하지만, 후대를 위해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라고 역설하는 워싱턴을 막지 못하고 결국 퇴임사를 작성하게 된다. 그리고 워싱턴의 실제 퇴임사가 해밀턴의 입에서 구술되고, ‘조지 워싱턴이 집으로 돌아가네!’라고 말하는 앙상블들과 함께 해밀턴 뿐만 아니라 버, 제퍼슨, 메디슨이 모두 지켜보는 상황에서 워싱턴은 명예롭게 퇴임한다. 워싱턴이 왜 실제 역사에서 미국의 위대한 국부로 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 곡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굉장히 좋아한 곡. 실제로 이 곡은 나중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할 무렵 백악관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해밀턴의 캐스팅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1인 2역이 많다는 점입니다. 물론, 뮤지컬에서 한 배우가 여러 역을 맡는 것 자체는 그렇게 특별할 일은 아니지만, 이 뮤지컬에서는 꽤 중요한 배역인 ‘라파예트’-‘제퍼슨’, ‘멀리건’-‘메디슨’과 같은 역들에게도 1인 2역이 적용된다는 거죠. 게다가 이 두 역은, 1막에서는 해밀턴의 친구이지만 2막에서는 해밀턴의 가장 강력한 정적으로 등장해 결국 해밀턴을 파멸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 재밌는 점이죠. 반대로, 1막에서도, 2막에서도 해밀턴을 위해 죽게 되는 ‘로렌스’와 ‘필립 해밀턴’이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배역이라는 점 역시 재밌는 점입니다.
-우린 그와 싸웠지(라파예트/제퍼슨, 멀리건/메디슨), 그를 위해 죽었지(로렌스/필립) : 첫 넘버 alexander hamilton에 등장하는 중의적인 펀치라인. 라파예트와 멀리건은 해밀턴과 ‘함께’ 싸웠지만, 제퍼슨과 멀리건은 해밀턴과 ‘맞서’ 싸웠고, 로렌스와 필립은 둘 다 해밀턴을 위해 죽었다.
-Hurricane. 버가 주도한 정치공작으로 인해 해밀턴의 횡령 혐의에 대한 소문은 커져가고, 이에 해밀턴은 정치적인 궁지에 몰린다. 그리고 해밀턴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상하기 시작하며, 자신이 ‘쓰는 것’으로 언제나 위기를 돌파해 왔다는 것을 상기한다. 태풍이 모든 걸 앗아간 서인도 제도에서 글 하나로 모금을 받고 뉴욕 시에 갈 수 있었으며, 혁명을 향한 길을, 일라이자가 반할 때까지 연애편지를, 헌법의 변호문을 써냈다며, 자신은 이대로 죽을 수 없으며 살 길을 찾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해밀턴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자신의 글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버와 앙상블들은 ‘두고 보자’고 되뇌이며, 워싱턴, 일라이자, 안젤리카, 마리아는 해밀턴에게 ‘역사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해밀턴은 자기확신에 가득차 훗날 역사에 ‘레이놀즈 펨플릿’이라 불리는, 스스로의 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끝장낸 문건을 써내고야 마는데.... 해밀턴이 스스로의 파멸을 써내는, 본인 스스로 몰락하는 전주곡과 같은 곡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밀턴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천재성과, 그에 비례하는 무모함과 나르시즘적인 성급함을 잘 설명해 주는 곡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그러나 오만하고 성급하며, 멈출 줄 몰랐던 천재 알렉산더 해밀턴
-초연 배우 : 린 마누엘 미란다
극 내내 모티프로써 반복되는 I’m not throwing away my shot!이란 구절만큼 해밀턴이라는 캐릭터를 잘 나타내는 단어는 없을 겁니다. 극 중에서 해밀턴은 거의 언제나 자기확신에 가득 차 있고,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오만하지만 천재적이고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뮤지컬의 모든 것을 설계했고, 그 자신이 해밀턴 역을 맡은 린 마누엘 미란다는 해밀턴의 전기를 처음 읽었을 때 투팍(2pac)의 삶을 떠올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걸맞게, 해밀턴은 언제나 시적이고, 수많은 적을 만들면서도 자신이 믿는 대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거기에 종극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까지. 극을 끝까지 보다보면 왜 미란다가 해밀턴의 삶을 투팍에 비유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캐스트 음원 버전) (웨스트앤드 캐스트 올리버 어워드 공연 버전)
-Alexander Hamilton. ‘어떻게 사생아이자 고아에, 창녀이자 스코틀렌드 인의 아들이며, 카리브 해의 빈곤한 곳에서 태어난 그가 영웅이자 학자가 될 수 있었나?’라고 관객들에게 묻는 버의 질문으로 곡이 시작하고, 이어 해밀턴과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 로렌스/필립, 제퍼슨/라파예트, 메디슨/멀리건, 버, 일라이자, 워싱턴이 등장해 해밀턴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그리고 그가 그런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자신의 천재성으로 극복했는지 말한다. 그는 열 살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2년 후 어머니와 함께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다가 본인만 살아남고 어머니를 잃었으며, 그 후 자신을 맡은 사촌은 결국 자살했다. 그러나 해밀턴은 좌절하는 것 대신 죽은 어머니의 지주를 위해 일을 하고, 수많은 물건들을 거래하며, 손에 잡힌 모든 책들을 사기쳐서라도 얻어내고, 태풍이 닥쳐 모든 것이 파괴되었음에도 자신에 대한 글을 기고해 서인도 제도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마침내 뉴욕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버는 이 모습을 보며 앙상블들과 함께 ‘뉴욕에선 누구나 새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외친다. 이어 앙상블들은 뉴욕으로 가는 배에 올라선 해밀턴에게 ‘당신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고, 시간을 들이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동시에 ‘미국이 당신을 위해 노래한다, 당신이 극복한 것을, 당신이 이 ’게임‘을 고쳐 썼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라고 물으며, 세상은 달라질 거라고 말한다. 이윽고 버가 나타나 저기 밑바닥을 치고 온 또 한명의 이민자가 있다며, 적들은 그를 파괴했고, 미국은 그를 잊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라파예트/제퍼슨, 멀리건/메디슨은 ‘우린 그와(함께/맞서) 싸웠다.’고 말하고, 로렌스/필립은 ‘그를 위해 죽었다.’고 말하며, 워싱턴은 ‘난 그를 믿었다.’고 말한다. 안젤리카, 일라이자, 페기/마리아는 ‘우린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버가, ‘그래, 내가 바로 그를 쏴 죽인 멍청이다!’라고 말하며 총성이 울린다. 그후 앙상블들은 ‘내겐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많지만 두고 보라’고 말하며 버는 해밀턴의 이름을 다시 한번 더 묻고, 앙상블들이 ‘알렉산더 해밀턴!’이라고 화답한다. 특이한 점은, 해밀턴에 대해 말하는 넘버임에도 정작 주연인 해밀턴의 비중은 이 곡에서 매우 적으며, 오히려 곡을 주도해서 이끌어 나가는 것은 해밀턴의 적대자인 에런 버라는 것. 이는 ‘에비타’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오마주이며, 또한 다른 주연 인물들이 주인공에 대해 소개하는 형식은 ‘스위니 토드’에서 따온 것. 또한, 이 곡은 해밀턴의 모든 넘버들 중 가장 먼저 쓰여진 곡이며,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마지막 후렴은 극 내내 모티프로써 반복되어 사용된다. 실제로 린 마누엘 미란다는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 굉장히 음악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글자수 관계로 3편에서 계속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