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기사라.....
4월 7일 기사인데 이제야 검색해서 올립니다...
말이 논문이지 인문대 한 학기 레포트보다 못한 퀄리티라... ㅠㅠ)
안 올리면 직무유기 같이 느껴져서 말이죠~~
오늘도 변함없이 발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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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erlebnisse in Tongyeong
통영에서의 꿈의 경험.
Zu Gast bei den Weltmusiktagen in einem der schönsten Konzertsäle überhaupt: Aus dem „Salzburg Koreas“ wurde wundervollerweise etwas ganz Eigenes, mit Stücken von Bach bis Un-suk Chin.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으로 초청되다.
잘쯔부르크 코리아는 그들의 색깔을 환상적으로 드러냈다.
바흐부터 시작해서 진은숙까지.
2016년 4월 7일 엘레오노레 뷔닝 기자.
Meditation in schwebender Bewegung: Der Körpersprachenkünstler Yong Min Cho und der Cellist Mario Brunello mit ihrem Stück „Bridging Colours“
흐르는 움직임 속의 명상: 행위예술가 조영민과 첼리스트 마리오 브루넬로가 그들의 작품 „Bridging Colours“를 공연하고 있다.
Musik ist eine Art Esperanto, sie wird überall verstanden. Musiker sollten also tunlichst das Reisen lieben, auch wenn es mitunter beschwerlich ist. Vivaldi, beispielsweise, starb in Wien. Damals, zur Zeit Händels und Haydns, sprach man französisch oder italienisch miteinander. Heute spricht man im Musikbetrieb in der Regel englisch, manchmal deutsch. Und auch die sesshaften Ensembles in europäischen Konzert- und Opernhäusern sind selbstverständlich international besetzt, mit Amerikanern, Letten, Kanadiern, Russen, Japanern, Kroaten, Chinesen, Brasilianern und, seit etwa einer guten Dekade, mit Koreanern.
음악은 에스페란토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어디서나 이해될 수 있으니.
때로는 힘들다고 할지라도 음악가는 가능하면 여행을 사랑해야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비발디는 빈에서 생을 달리하지 않았는가.(역자주: 비발디는 이탈리아 태생)
헨델과 하이든 시대라면 당시에는 프랑스어나 이태리어가 통용됐었다.
요즘의 음악계에선 보통 영어를 쓰고, 또 독일어를 쓰는 경우도 많다.(역자주: 시즌제로 클래식이 돌아가는 나라가 독일 뿐임)
유럽의 콘서트 홀과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하는 앙상블 팀들에는 당연히 국제적인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미국인, 라트비아인, 캐나다인, 러시아인, 일본인, 크로아티아인, 중국인, 브라질인,
그리고 한 10년 전 쯤 부터는 한국인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역자주: 독일 오페라극장이나 오케스트라단에 한국인 없는 곳을 찾는게 더 빠릅니다.)
Junge Belkantowunder oder Pianistenkinder aus Korea stürmen mit Macht die Wettbewerbe und Hochschulen, jedes zweite deutsche Stadttheater hat heute einen Heldentenor, einen Bassbariton oder eine Sopranistin unter Vertrag, die Kim oder Park oder Soon im Namen tragen. Oft haben wir uns schon gefragt (oder jemand fragte uns): Wo kommen die plötzlich alle her?
한국의 젊은 성악천재(벨칸토 창법의 천재) 혹은 어린이 피아니스트들이 힘있게 콩쿨이나 고등음악원을 장악하고 있다.
독일 극장의 둘 중 하나는 요즘 주인공 테너, 베이스바리톤 혹은 소프라노들이 일하고 있으며,
그들은 김이나 박이나 혹은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역자주: 독일인들이 항상 궁금해 하는 그거 - 왜 한국인들은 글자 몇 개로 이름을 돌려 쓰는거야??
현숙, 숙현, 현선, 희선, 선희, 영선, 선영...... 상당히 헷갈려 함..)
우리가 자주 궁금했었다.(혹은 우리에게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들이 언제 갑자기 나타난것인가?
Zum Beispiel aus Busan, Seoul oder aus Tongyeong. Hier, an der südkoreanischen Küste, am „Hallyeo“-Meeres-Nationalpark, dem „Land der vierhundert Inseln“, lässt sich gut abtauchen in die weiche, melismenreiche, vokalsanfte Landessprache, in der selbst die paar Konsonanten sehr musikalisch zu sein scheinen. Leise Mövenschreie sind in den elektronischen Pausengong eingewebt.
예를 들면 부산, 서울 혹은 통영.
여기, 한국 남부의 해변가, 400개 섬의 한려수도 국립공원에서
매끄럽고, 멜리스마틱하고, 모음이 부드러운 지역언어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언어의 몇몇 자음은 매우 음악적으로 비춰진다.
(역자주: 통영 사투리가 이렇게 아름다웠나요???)
갈매기들의 작은 소리들은 전자음의 휴식 종소리에 빠져든다.
(역자주: 클래식 음악회에서 종소리가 치면 휴식을 끝내고 음악회장 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 입니다.
그걸 실제로 종을 치진 않고 전자음으로 처리하지요.)
Kunstmusik als Sache der Jugend
Der junge, 2014 eröffnete Konzertsaal in Tongyeong mit dem mövenflügelartig gefalteten, weit ausladenden
Doppeldach ist mit seinen 1300 Plätzen der viertgrößte in Korea. Eine verrückte Utopie, über die sich selbst
die Koreaner wundern: Das Haus ist eine Option auf die Zukunft.
젊은이의 소유로써의 예술음악
갈매기의 날개짓처럼 펼쳐나가는 듯한 2014년도에 개장한 어린 콘서트홀은
넓게 돌출된 겹지붕형태로써 1300객석을 보유한 한국에서 4번째로 크다.
이런 미친 유토피아라니.
한국인들은 이런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이 홀은 미래를 위한 옵션이라고.
(역자주: 얘네들 왜 이러지?? 국뽕이라도 들이키라는건가??공연장은 너그들이 더 좋은거 많을텐데....)
Europäische Kunstmusik gilt in Korea, ähnlich wie in Japan oder China, nicht als das Markenzeichen einer alternden, verkalkenden Elitegesellschaft, sondern im Gegenteil als Sache der Jugend, als ein Zeichen für wirtschaftlichen Aufschwung, Prestige, Luxus, Dynamik. Anfang dieses Jahrhunderts, als erstmals ein klassisches Musikfest abgehalten wurde in Tongyeong, schrieb ein enthusiastischer Kritikerkollege, dass dieses 140 000-Seelen-Städtchen, das nach wie vor hauptsächlich vom Austernfang und seinen Schiffswerften lebt, das Zeug habe zu einem „Salzburg Koreas“. Das war etwas übertrieben, aber ernst gemeint. Tongyeong ist, immerhin, Geburtsort des bedeutendsten koreanischen Komponisten, Isang Yun, der die längste Zeit seines Lebens in Deutschland hatte verbringen müssen, auch die deutsche Staatsbürgerschaft annahm, weil er zwischenzeitlich der Spionage verdächtigt, verfolgt und festgesetzt wurde.
유럽의 예술음악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하게 한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
오래됐다는 것의 상징 혹은 경직된 엘리트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반대로 젊은이들의 소유로써
혹은 경제적인 성장, 명성, 고급스러움, 역동적임의 표시로써 말이다.
이번 세기의 초에 클래식 음악축제를 통영에서 개최하였을 때 열광하는 평론가들은 이렇게 썼다.
전이나 후나 기본적으로 굴채취와 조선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 14만명의 소도시,
이런 도시가 잘쯔부르크 코리아를 품는다고...
이건 약간 과장되었지만 진실은 담은 듯 하다.
통영은 어쨌든 한국의 중요한 작곡가인 윤이상의 출생지이다.
그는 가장 긴 시간을 독일에서 보내야만 했다.
역시 독일시민권을 받기도 했고.
왜냐하면 윤이상이 안식년 와중에 간첩혐의를 받게 되었고 쫒겨서 체포되었었기 때문이다.
(역자주: 윤이상 작곡가는 한국 음악 연구를 위해 북한에 다녀갔다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체포되서 사형 선고를 받았죠.
물론 서독에서 난리가 났고,
(당시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였음, 독일 내 모든 예술가들이 성명서 내고 양 정부에 압박 넣고....
암튼 당시 윤이상의 위엄은 후덜덜했음..)
"너... 윤이상 죽이면 우리 경제 협력 없는걸로 하겠음.." 하고 강수를 두는 바람에
박정희가 풀어주긴 했습니다만,,,
(이미 준 차관 당장 갚으라고 하고, 앞으로 차관 없음... 하면 박정희 정부가 버틸 수가 없...)
윤이상 작곡가는 꿈에도 그리는 고향에 이 이후로 못 돌아오죠.
김영삼 때 돌아올 기회가 있긴 했는데 김영삼이 "북한에 간 거 사과하삼.." 그러는 바람에 좌절됨...
잘못한게 없는데 뭔 사과~??
암튼 윤이상의 신분이 복권된 건 작곡가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지난 후인 참여정부 때였죠.
노무현이 미망인 되시는 이수자 여사를 청와대로 초청했는데 여사님이 대화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합니다.
참 의미 있는 장면이지요.)
Mittlerweile ist Yun, der westliche Formideen mit koreanischem Klangdenken virtuos kreuzte und dessen Schülerschaft mittlerweile die Welt der zeitgenössischen Musik produktiv durchwuchert hat, Gerechtigkeit widerfahren, in Nord- wie auch Südkorea. Ein Museum ist ihm in Tongyeong gewidmet, eine Straße. Aber Yuns Musik ist mit der Mozarts nicht vergleichbar, auch hat die Altstadt von Tongyeong mit der Salzburgs nicht die geringste Ähnlichkeit. Das Konzerthaus, ein klassischer Schuhkartonbau aus edlem Holz mit ausgezeichneter Akustik, wirkt mit seiner exponierten Lage am Wasser und der extravaganten Dachkonstruktion eher wie eine Kopie des Konzertsaals von Jean Nouvel in Luzern. Nur in einem Punkt passt der Vergleich mit Salzburg punktgenau: Die Einheimischen gehören nicht zur Laufkundschaft. Für die Konzerte reisen Künstler wie Zuhörer eigens an, aus Seoul, Tokio, Hongkong oder aus Übersee.
윤이상은 서양음악의 형식적인 아이디어를 한국적인 음향에 노련하게 접목시켰으며 그의 제자들은 현대음악의 세계를 잠식해나가고 있고
남한이나 북한이나 그의 위상은 동등하게 취급된다.
통영의 한 박물관과 거리는 그에게 헌정되었다.(의역: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과 거리가 통영에 있다.)
그렇지만 윤이상의 음악은 모차르트와 비교할 수 없고, 또한 통영의 구시가지를 잘츠부르크의 그것과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
이 콘서트홀은 고전적인 네모상자같은 건축으로써 고가의 목재로 만들어졌으며 뛰어난 음향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 홀은 물쪽으로 도출된 자리와 유별난 지붕의 구조는 마치 루체른의 장 노벨 콘서트홀을 복사해온 듯 하다.
이런 점은 잘쯔부르크와 알맞다고 생각할 수 있기는 하다.
토착민은 뜨내기 상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콘서트를 위해 예술가들도 청중들처럼 특별히 여행왔다.
서울, 도쿄, 홍콩 혹은 해외에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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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알게마니에 차이퉁 기사입니다...
참, 길게도 기사를 썼더군요~~~
암튼 다음에 뵈요~
그리고 선거 잘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