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유행에 탑승...하고 평범하지 않은 학부모 이야기를 풀어놨다간 댓글 분위기가 충격과 공포로 흘러가고 기자님들한테 연락이 올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어린이집 근무하면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씁니다.
1. 선생님은 역할영역에서 일일드라마를 본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모두 반마다 한 교실 안에 여러 영역을 두고 있습니다. 놀잇감을 넣는 두칸이나 세칸짜리 책장 같은 걸 '교구장'이라고 부르고 교구장 2개 정도로 하나의 영역을 만드는 게 일반적입니다. 여러 영역 중 가장 재미있는 건 '역할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소꿉놀이 하는 곳으로 보시면 좋습니다. 이 곳은 전공서적에서 보통 '시끄러운(진짜 이 단어 그대로 씁니다) 영역'이라고 분류 되며 보통 여자아이들이 자주 갑니다. 역할영역에 남자 아이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하는... 아무튼.
교사 입장에서 매일 보고 있으면 정말 스펙타클한 일이 많습니다.
* 그 전 날의 부부싸움(아이가 밥상을 뒤엎는 걸 직접 하기도 합니다...만 이 부분은 교사 입장에서 전혀 재미있지 않죠)
* 엄마의 분노(오빠? 니가 무슨 오빠야? 어? 우리 오빠야? 어? / 여보는 왜 만날 늦게 들어와? / 오늘도 술 마셨지! 너는 이제 개지?/ 술 좀 그만 좀 먹어! 술 돼지야! 선생님 oo이가 저 돼지래요!)
* 술문화(너도 마셔야지! 내가 마시면 너도 마셔야지! 선생님 oo이가 안마셔요! / 다 같이 모여서 짠하자! 위하여! / 여기다 이거하고 이거하고 섞어야 돼)
* 아이가 부모님과 자주 시청하는 드라마(나는 이제 언니고 oo이 너는 내 동생인데 우리 엄마는 엄마라고 부르면 안돼. 알겠지?)
* 엄마의 전화통화(어, 언니! 아니야 언니! 어!- 보통 아이가 흉내낼 때 용건은 없고 '언니'라는 단어를 많이 씀)
* 부모가 혼내는 말투(엄마가 ~하라고 했어 안했어! / 너 ~하면 엄마가 내일 어린이집가서 선생님한테 다 말한다! / 아빠가 oo이만 했을때는 안그랬거든? / 어휴 oo이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니? / 형이랑 그만 안 싸워? 엄마한테 진짜 한대 맞을래?)
* 선생님 흉내(보통 책을 거꾸로 들고 앞에서 읽어주는 선생님 흉내를 내거나, 선생님 말투를 따라 하거나, 율동을 따라함)
가장 인상 깊었던건 역시 술마시면 개가 된다고 약속 하신 아버님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웃음을 꾹 참았는데, 그 다음날 개가 된 아버님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입술 깨물면서 웃음을 참았던 이야기입니다.
2. 선생님은 판사다
보통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입고 오는 옷, 머리핀, 신발, 가방에 붙은 스티커 등등에 집중해서 칭찬을 합니다. 가끔 못알아보면 그 다음날 수첩에 써 있죠 <선생님 oo이가 오늘 입고 간 옷을 칭찬받고 싶었는데 못 받아서 ~블라블라 칭찬 부탁드려요>
그런데 가끔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나면 아이들은 교사에게 판사 겸 평론가 역할을 부탁합니다. 보통 둘 중 하나 고르라고 합니다.
* 선생님은 안나가 좋아요? 엘사가 좋아요?
* 선생님은 분홍색이 좋아요? 파란 색이 좋아요? / 야 선생님은 여잔데 당연히 분홍색이 좋지! / 우리 엄마는 검은 색도 좋아하거든!
* 우리 엄마는 아빠가 여자 사진(...)보는거 싫대요. 선생님이 혼내 주세요(아버님이 어릴 때부터 가수 김완선 팬이셨다고...)
* 엄마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마음이 아파요. 선생님이 혼내 주세요.
* 동생이가 자꾸 깨물었어요. 선생님이가 혼내주세요.
3. 내 숟가락 점수는?
식사지도 할 때 어린이집은 전쟁같은 사랑..이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그에 대한 고충을 풀어놓으면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본론만 말하자면 선생님은 2번에서 약간 확장 된 미식 평론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정~~~말 편식이 심한편으로 고기는 닭, 돼지, 소를 제외한 모든 고기를 못 먹으며(소고기도 싫어함), 조금만 특이해도 입에도 못댑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니 세상에서 제일 싫은 소고기 볶음밥도 미소 띠며 먹어야 하죠.
아이들은 보통 채소류를 잘 먹지 않고 김치는 울면서 안 먹으려고 하는데 제가 선수쳐서 "어머어~ 꺄아~ 김치봐~ 너~어무~ 맛있다아~ 선생님은~ 김치가 너~~~~~어무 좋아아~~~~"라고 하면 열명중 아홉명은 먹습니다. 그리고 외치죠. "선생님! 저도 김치 좋아해요! 우리 똑같다!"
4. 내가 만약 힘들때면 누가 도와주지?
보통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전화나 수첩으로 부모님(거의 어머님 위주로)과 소통합니다. 특히 수첩의 경우에는 온갖 청탁(^^;)의 현장입니다. 육아에 지친 어머니들이 저에게 격렬한 sos를 외치시는 거죠.
* oo이가 집에서 김치 먹었는데 선생님이 칭찬해준다고 해서 먹은 거니까 칭찬해주세요.
* oo이가 어제 산 신발을 안 신으려고 해서 선생님이 칭찬해주신다고 하니까 신고 갑니다. 칭찬해주세요.
* oo이가 동생이랑 싸워서 선생님한테 이른다고 하니까 참네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 oo이가 자꾸 코를 파서 코파면 선생님이 싫어한다고 하니까 안하네요. 원에서도 계속 얘기 좀 해주세요.
* oo이가 늦잠을 자서 혼냈더니 선생님한테 이른다고 하네요. 집에서 심하게 혼내는게 아니라~ ('오해하지 마세요 ㅠㅠ'의 내용)
* oo이가 집에서는 과일을 안 먹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진짜 과일을 먹나요? 집에서도 과일 먹게 얘기 좀 해주세요 제 얘기는 안들어서요.
더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여기까지 줄입니다^^ 약속이 있어서.. 아무튼 부모님들 화이팅입니다(?)
+ 선생님한테 이른다고 너무 겁주면 아이들이 수첩 쓰는 내내 옆에 붙어서 뭐라고 쓰냐고, 엄마한테 칭찬해주냐고, 예쁜 말만 쓰라고 하는 부작용이 생기니 자제해 주세요. 하하.
+ 가끔 안녕하세요 oo이 아빠입니다~로 시작되는 글은 <1. 인사 못드려서 죄송 2. 못난 자식 잘 부탁드림>로 짧게 마무리 됩니다. 은근히 레어템이라 아버님들이 수첩에 글 써주시면 열심히 답장드리곤 합니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다음 답장은 없었다고 한다...
+ 아버님들은 10명 중 1명은 반갑게 인사도 잘하시는데 7분은 눈도 안마주치시고 수줍은 인사와 함께 사라지십니다. (나머지 2분은 술드시고 데리러 오시는..하하). 선생님에게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아버님들은 웃으면서 인사만 잘해주셔도 어린이집 선생님들 사이에서 레어(...)한 아버님으로 훈훈한 이미지를 가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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