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가 독립 스코틀랜드의 지도자가 되는 모습은 향후 50년 안에 보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아무튼 윌리엄 웰레스와 앤드류 머레이(Andrew Moray)는 모두 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영웅들이다.
스코틀랜드를 사실상 '점령' 한 에드워드의 군사적 원정은 성공적으로 끝난듯 보였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었을 뿐이고, "딱히 잉글랜드 왕을 섬기건 스코틀랜드 왕을 섬기건 무슨 차이가 있냐? po봉건wer주의!" 라고 외칠법한 사람들마저도 곧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통치' 에 모두들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번째, 돈이었다. 1297년 에드워드 1세는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귀족들의 조세 저항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 글쎄, 나라 살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니까? 돈 내놔 이 자식들아!"
"안 내! 아니 못 내! 차라리 배를 째고 말지!"
"군사 원정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 얼른 돈 내!"
에드워드는 필사적으로 조세를 걷으려 했지만, 성직자, 귀족, 상인 들의 유력 집단들은 전부 왕의 명령에 개기고 나섰다. 잉글랜드 내부에서 돈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는데,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스코틀랜드 였으렸다.
"잉글랜드 안의 사람들 족치는 건 좀 그래도, 이 촌놈들 돈 좀 뜯어낸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나. 재무장관은 가서 팍팍 돈 좀 만들어와라."
"네."
당시 스코틀랜드에 파견된 재무관 휴 크레싱험은 이 에드워드가 요구한 '돈 만들어내기' 를 아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너무나 이 업무를 잘 수행해낸 탓에, 스코트인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주머니가 텅텅 비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아니, 뭔 세금을 또 걷어? 무슨 일이 있나?"
"잉글랜드가 프랑스와 전쟁을 해야 하니, 물품들을 더 걷어가겠소."
"뭐야? 아랫놈들이 프랑스와 전쟁하는 돈을 왜 우리가 대야 하는데."
"글쎄, 내라면 낼 것이지 무슨 잔말이 많나."
두번째는, 당시 에드워드가 계획하던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 원정 때문이었다. 전쟁을 하려면 병사들이 필요한 바, 하지만 역시 잉글랜드에서는 더 뽑아내기 어려운 병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의 중간층 모두를 강제 징집하려고 했다.'
혹자는 안가려고 고환도 떼는판인데 군대 가라고 하니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에, 전쟁으로 포로가 된 스코틀랜드 인들은 뺴도박도 못하고 이 대상에 포함되었다.
"야, 석방 시켜줄까?"
"진짜요? 아싸!"
"근데 너 석방 대신 군역 납부 해야함. 깜빵에서 썩을래? 아님 군대 갈래?"
"...."
마지막으로, 전쟁 이후 잉글랜드의 사제들이 스코틀랜드 교회의 주요 성직을 차지하게 된 것 역시 문제였다. 밥그릇을 빼았긴 스코틀랜드 성직자들은 분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중세 시대 지방 사회에서 최고의 조직력과 입김을 가진 교회가 적대적인 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막강한 힘을 가진 지방 토호들을 모조리 적으로 만든것과 진배 없었다. 과연 이들 성직자들은 훗날 잉글랜드에 대항하는 봉기자들의 열렬한 지원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 봉기의 신호탄은, 그 해 5월 라나르크 성의 성주이자 에어주의 잉글랜드 출신 장관인 해즐리(Haselrigg)가 일단의 봉기자들에게 살해당하면서 불이 붙었다.
그 첫번째 봉기자들의 지도자가, 바로 윌리엄 웰레스였다.
윌리엄 웰레스 동상
비단 『브레이브 하트』의 영향력을 제외한다쳐도, 오랜시간 동안 윌리엄 웰레스는 온갖 민간신화와 전설이 뒤섞여 복잡해진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 윌리엄 웰레스에 대한 기록은, 특히 초기 기록은 상당히 적어 베일에 쌓여 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윌리엄 웰레스는 부유한지 안한지는 몰라도 딱히 부족할 게 없었을 귀족 가문에서 잘 살고 지냈을 사람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아쉬울 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 어째서 이후에 열렬한 반 잉글랜드 세력의 대표자가 되어, 고난에 찬 행보를 걸으려 했을까? 이후에 증명이 되지만, 웰레스는 딱히 에드워드를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확신하긴 어렵지만, 가능성 있는 전승 중에 하나는, 웰레스의 아내가 잉글랜드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다. 잉글랜드 출신 장관인 헤즐리에게 부인이 성추행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되었건, 에드워드는 '감히' 잉글랜드 출신의 장관을 살해하는 대담무쌍한 짓을 해버렸다.
"감히 내 마누라를... 죽어라!"
"크하아악... 이 불충한 반역자 놈, 에드워드 전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반역은 무슨, 난 그 사람에게 충성 서약 따윈 한 적도 없었다!"
윌리엄 웰레스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분명히 멀쩡한 세력이 있는 지주 가문이었음에도, 스코틀랜드를 장악한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한 귀족들의 명단 중에서 윌리엄 웰레스의 이름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나중에 스스로도 언급하는 말이지만, 웰레스는 '평생 단 한번도, 거짓으로라도, 강압에 의해서라도 에드워드를 주군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다른 대표적 저항가인 로버트 브루스의 가문은 이때 에드워드에 대한 충성서약을 했다. 나중에 '거짓으로 한 거다' 라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윌리엄 웰레스는 첫 봉기를 성공하자마자 홍길동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음 목표는 누구로 할까요?"
"우리의 땅에서 감히 저들의 법을 강요하는 자들의 가증스런 앞잡이, 잉글랜드의 대법관 놈이다!"
웰레스는 대담무쌍하게도 잉글랜드의 대법관들이 법정을 열었던 스콘(Scone) 지역을 공격하고, 그곳에서 재판을 열던 대법관 윌리엄 옴스비(William Omsby)을 목표로 노렸다.
"죽어라! 이 더러운 앞잡이 놈!"
"아이고 나 죽네!"
"도망치는 재주 하난 좋구나.... 그보다 여기 있는 물건들은 쓸모가 있겠군."
목표로 삼았던 옴즈비는 겨우겨우 도주에 성공했으나, 대신 윌리엄 웰레스는 저항 자금으로 쓰일만한 가치 있는 물건들과, 특히 말들을 대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앞으로 필요가 있을 물건들이니 잘 챙기도록 하자."
"그것보다 이젠 어떡해야 합니까? 바로 전면전인가요?"
"그러기엔 아직 우리가 너무 약해. 저번에 남서부 쪽에서 봉기한 귀족들도 잉글랜드 군에 속절없이 깨졌어. 우린 일단 은신하면서 추종자들을 모으도록 하자. 같이 싸울만한 동지들이 분명 있을 거다."
웰레스는 이 숲으로 숨어들어갔다
지주 가문의 아들이었던 윌리엄 웰레스는 이제 레지스탕스 조직의 리더가 되어,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이끌고 셀커크 숲으로 숨어들어갔고, 그 명성에 이끌려 찾아온 사람들을 병사로 만들며 조금씩 세력을 일구어 갔다.
그리고, 이윽고 이들은 스코틀랜드 내부의 여러 불만 세력 - 저항 세력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을 통해 여기저기에 피해를 입혔고, 손실을 입은 사람들이 아우성 치며 잉글랜드의 재무장관 휴 크레싱험에게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또 웰레스가 우릴 털어갔단 말이오! 잉글랜드 군은 뭐하고 있는게요? 이러려고 충성 서약 한게 아니란 말이오!"
"우릴 지켜주지 못하면 충성 서약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이오?"
"저, 그게... 좀 기다려 보십시오."
현장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살펴 볼 수 있었던 크레싱험은, 잉글랜드에 머물고 있던 에드워드에게 경고 했다.
"윌리엄 웰레스라는 작자의 세력이 무시할 수 없을만큼 커졌습니다. 두고보고만 있다간 큰일난 판입니다."
웰레스의 세력을 경고한 크레싱험의 조언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지만, 에드워드는 이 보고에 큰 신경을 쓰진 않았다. 당시의 그는, '일개 스코틀랜드의 도적집단' 따위에 신경을 쏟을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정치도 복잡한데 무슨 그런 한가한 보고를... 그것보다도, 이제 이 몸의 대업인 플랑드르 원정이 코 앞인 상황이다. 그 쪽은 알아서 해!"
당시 에드워드는 프랑스 원정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사업을 실시하기 직전이었다. 여기에 1297년 8월 22일, 아예 잉글랜드를 떠나 플랑드르로 이동함으로써 스코틀랜드 문제에는 관심을 꺼버렸다.
만일 이 시점에서 에드워드가 양면전선을 만들지 않았다면 윌레스의 이름이 훗날 그렇게 크게 울려퍼질 일은 없었겠지만, 당시로서는 누가보더라도 프랑스 원정>>>>>>>>>>>>>>>>>>>스코틀랜드 도적집단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세는 웰레스의 세력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전하가 프랑스 원정으로 떠나셨으면 나라도 어떻게 해봐야지."
비록 많은 주력이 플랑드르 쪽으로 빠지긴 했지만, 휴 크레싱험은 남은 전력을 규합하여 '불충한 반역자' 들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였고, 이 병력은 북부 스코틀랜드로 항하는 뱡항에 있는 스털링(Stirling) 방면의 퍼스 강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모든 스코틀랜드 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는 전투가 펼쳐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