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회고록 "선택"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몇개 있어서 간추려봅니다. 특히 이 사람 정말 팔불출이네요
"1951년 8월 어느날 저녁 방에서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구인 유라 토필린과 볼로드야 리베르만이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들뜬 표정으로 클롭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 공부나 하고 있을 때가 아냐. 클럽에 새 여학생이 나타났데. 어서 가서 한 번 보자구!"
"세상에 널린 게 여잔데, 뭔 소리야. 난 공부할게 많이 남아서 안돼"
"그런 소리 말고 어서 가자구"
"알아, 알았어 뒤따라갈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나는 한참 더 망설인 끝에 친구들이 가 있는 클럽으로 갔다. 그곳에서 내 운명의 여자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날씬한 몸매에 단정히 빚은 금발의 여학생은 내 친구와는 정말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다른 남학생들이 다가와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하자 얌전하고 말이 없는 여햑생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유라와 출거야. 우리는 동급생이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뭐..." (고르비 지못미 (눈물)
나는댄스가 끄날 때까지 한 쪽으로 비켜서 있었다. 댄스가 끝나자 친구들이 나를 그 여학생 라이사 티타렌코에게 소개해주었다. 솔직히 처음 만남에서 그녀는 내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느라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중략)
"라이사는 친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녀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미인은 아니지만, 대단히 매력있고 붙임성이 있었다. 얼굴과 눈에는 생기가 넘치고 날씬한 몸매였다. 대학생활 초기에 체조용 링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는 체육관에도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매혹적인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고르바초프가 회고록 집필한 시점은 2011년 *라시아는 1999년 사망.
"라이사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마당에 있는 아치 밑에서 만나 모스크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걷다 보면 항상 길 한쪽에 극장이 한 두개 씩 있었고,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처음에는 나란히 걷다가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마주 잡은 손을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교감했다...(순정파)
"결혼식은 11월 7일 스토림카 기숙사의 식당에서 열렸다.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클라스메이트들을 초대했다. 러시아식 샐러드, 훈제 청어, 삶은 감자와 스톨리치나야 보드카를 내놓았다. 그리고 삶은 고기와 커틀렛도 조금 곁들였다. 우리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해 차린 것이었다. 라이사는 가벼운 시폰 웨딩 가운을 입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멋을 부려 보았다. "마음의 들어?" 이렇게 묻고는 "너무 행복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많은 여자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예쁜 옷을 보면 사족을 못썼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아주 먼 시골에서 모스크바로 유학 온 라이사는 그런면서도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랐다. 과장이 아니라 내 눈에는 그녀가 정말 공주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기꺼이 이해했다. 당시 우리가 받는 돈으로는 먹고 살기도 거의 빠듯했지만 그래도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라이사의 옷을 샀다. (아내바보... )스코, 블라우스도 사고, 오버코트 옷감도 샀다. 옅은 녹색 옷감으로 만든, 허리가 잘록하고 스탠드업 모피 깃을 한 코트가 있었는데, 아내는 이 옷을 해져 못입게 될 때까지 8년이나 입었다. 아내는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중략)
"그해 우리는 프리볼노에의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프리볼노에에 도착하자 집으로 가는 도중에 바실리사 외할머니 댁에 먼저 들렀다. 바실리사 외할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라이사가 다가오자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날씬하니. 정말 예쁘구나." 외할머니는 첫눈에 라이사를 좋아했고, 그 후 우리는 프리볼노에로 갈 때마다 항사 외할머니 댁을 찾았다.
그러나 우리 집 분위기는 약간 달랐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라이사를 좋아해서 딸처럼 대해주었다. 아들만 있는데다 천성이 따뜻하고 인정 많은 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들을 뺐긴데 대한 서운함이 컸던 것이다. 고향집에 있는 동안 이런 말을 했다.
"저런 여자를 며느리라고 데려온 거니? 도대체 도움 되는 게 없어"
나는 대학을 나온 여자고, 앞으로 교사가 될 것이니 너그럽게 봐달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누가 도와주니? 왜 시골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거야?"
나도 화가 났다. "어머니가 알아듣기 쉽게 말씀 드릴게요. 나는 저 여자를 사랑하고, 저 여자는 내 아내에요.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들의 패기...)
내 말에 어머니는 울기 시작했고, 그러자 엄마가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분명하게 내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라이사도 물론 시어머니의 냉랭한 태도를 알았고, 그것 때문에 신경을 무척 썼다. 한 번은 어머니가 라이사에게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 뒷마당 텃밭에 물을 주라고 했다. 아버지는 재빨리 상황을 눈치 채고 라이사에게 "나하고 같이 갈까?"하고 말했다. (센스 있는 시아버지!!) 그걸 보고 엄마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가라앉히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라이사에 대해 좀 더 알고 난 다음에야 어머니의 태도는 다소 누그러졌다.
손녀딸이 태어나고 내 일자리도 안정이 되면서 우리는 부모님께 재정적으로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다. 집도 새로 지어드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라이사가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이런 말로 달랬다. "어머니 보고 결혼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 제발 마음 쓰지 마."
Mikhail and Raisa Gorbachev (source).
1999, 라이사 고르바초프는 백혈병으로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고르바초프는 지금도 아내를 회상한다고 함.
소련 붕괴 이후 민간인으로 돌아간 고르바초프는 결핍 아동과 환경보호에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며, 결식아동을 위한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굴욕을 무릎쓰고 Pizza Hut 광고와 Louis Vuitton 광고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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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을 대놓고 비판하는 몇안되는 용자입니다.
그나저나 꽤 오래 사시는듯. 2015년 현재도 살아있어요.
러시아 사람들한테서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