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모든 존칭은 생략합니다.)

0-1. PGR에서 종종 이야기한 적 있지만,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즉, 개신교인입니다.
특별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하 '합동')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교단에 소속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친한 선배(PGR러)의 제안으로, 최근 줄지어 나오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열에 동참해볼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신교인 청년으로서 다른 개신교인 동년배, 어르신들께 '예수님의 제자를 자청하시는 여러분. 마냥 안녕하시면 안된다'라고 외쳐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 나라의 시국과는 별개로 개신교계에 또 다른 '안녕하지 못한' 소식이 뻥 하나 터졌습니다.

0-2. (밑밥 한 개만 더 깔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동대학교의 차기 총장이 결정되었습니다. (총장 교체는 19년만의 일입니다. 현 김영길 총장.)
새로 총장이 된 것은 예전 KAIST 부총장으로 재직했던 장순흥 교수입니다. (올초, 대통령 인수위에 들어가셨던 그 분입니다.)
이에 관해 한동대 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이렇든 저렇든 한동대학교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던 저도 반가움보다는 씁쓸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꼭 장순흥 교수가 신임총장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고, 총장 선임 과정과 한동대 역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듣고 난 종합적인 감상입니다.)

그런데 어제, 이 씁쓸함은 애들 장난처럼 느끼게 할, 어떤 학교의 차기 총장 결정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 [어제, 총신대학교의 차기 총장이 길자연 목사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한 줄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얼마나 참담한 심정을 느끼게 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해보겠습니다.

2. 총신대학교. 비개신교인분들께는 지하철 4/7호선 환승역 이름으로 더 친숙하실 이름이지만, 개신교계에서는 무게감이 있는 이름입니다.
총신대학교는 위에서 말한 개신교 최대 교단인 합동 교단의 대표 신학교로서, 매년 수백명의 목사/전도사/선교사 지망생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학교 쪽의 서울대학교'이며, 좋든 싫든 대한민국 신학교육의 상징이라고 보시면 비슷합니다.

3. 길자연. 왕성교회라는 대형교회의 전 담임목사입니다. 현재는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고 원로목사 추대되었습니다.
명실공히 한국 개신교계에서 가장 해악이 큰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조용기 목사를 떠올리시겠지만,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 그는 무려 3차례나 한기총 회장을 역임했고 합동교단 총회장도 지낸, 교계 정치, 교계 권력쟁취의 상징입니다.
이번에 총신대학교 총장까지 지내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일종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목사로서 가질 수 있는 권력은 다 가져봤죠. 담임목사, 원로목사, 교단 총회장, 교단 대표 신학교 총장, 한기총 회장)

2) 제가 PGR에서 가끔 '한기총 이제 나가리됐다. 주요교단들 거의 모두가 이미 탈퇴했거나 탈퇴 수순을 밟고 있다'라고 했었는데,
그 '한기총 해체 운동'의 계기가 되신 분입니다. 세 번째(2011년) 한기총 회장이 되실 때 금권선거를 하신 게 폭로됐거든요.
치부가 드러났으면 좀 곱게 물러날 것이지, 뻐팅기다가 법원으로부터 직무정지까지 당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뭐 그리 욕심이 많은지...)

3) 이런 저런 일들로 수세에 몰린 한기총은 급기야 최악수를 두는데, 그게 뭐냐면
돈을 받고 몇몇 이단 교단들에게 '이단 아님' 인증을 해주거나 아예 한기총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회원교단들이 한기총에게 부여한 권한을 한참 넘어서는 일이며, 당연히 회원교단들은 격분하였고, 이로써 한기총 해체운동이 정점을 찍게 됩니다.
(참고로 오늘, 주요교단 중 거의 마지막으로 탈퇴를 미루고 있던 합동교단이 최종 탈퇴를 결의했습니다.)

4) 2012년, 한기총 회장 임기를 마친 길자연 목사는 또 한 가지 소식으로 교계에 똥을 투척했는데,
바로 자기 아들에게 자신이 담임했던 왕성교회를 세습한 일이었습니다. http://tinyurl.com/9xdaxra
이 세습이 더 볼썽사나웠던 것은, 불과 5년 전에 자신이 했던 '세습 안함' 선언을 뒤집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http://tinyurl.com/9ygzatz
이는 감리교를 필두로 '세습방지법' 바람이 불고 있던 개신교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5) 이번 총신대 총장선거 과정에서 그는 유체이탈 화법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합동교단 내에서 한기총과 자신의 이미지가 좋지 않음을 모르지 않는 그는, 총장선거일 아침에 모든 한기총 관련 공직에서 사임할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현 한기총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내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8957
"작금에 이르러 석연치 않은 한기총의 행보에 심심한 우려를 표하는 바" // "물론 한기총 내에 이단대책위원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이단으로부터 한국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구이지 이단의 해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은 아니다" // "한기총 소속 교단의 동의가 없이 한기총 단독으로 이단성이 없다 하여 이단을 해제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입지를 뒤흔드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 와서 이런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우습지만,
회원교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월권으로/돈 받고 이단 교단들에게 '이단 아님' 인증을 남발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 한기총 회장을 하고 있을 때 시작한 일인데 말이죠.

뭐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만, 이 정도만 해도 이 인간이 얼마나 노답노답한 인간인지를 잘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대통령을 무릎꿇린 조찬기도회' 기사가 뜨고 많은 분들이 노하셨던 일이 있죠?
그 조찬기도회를 인도했던 것은 바로 길자연 당시(2011년) 한기총 회장입니다.)

4. 길자연 목사가 총신대학교 차기 총장 후보로 들어오고, 심지어 최종 2인의 후보까지 올라가자
대부분의 총신대학교 학생/교수들, 그리고 수많은 교인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 총신대학교는 상당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데,
총장 하겠다고 나선 사람 중에 이 자금난을 해결해줄(=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줄) 만한 사람이 길자연 목사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더욱 길자연 당선을 막기 어려울 거라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최종 2인 중 다른 분은 특별한 이력이랄 게 없는 분이었고,
이사회 측에서 길자연 목사를 당선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런 사람을 최종후보로 올렸을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5. 결국 길자연 목사는 이사진 2/3 이상의 득표를 얻고 차기 총장에 당선되었습니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857302&cp=nv
합동교단의 결의('정년 은퇴한 이는 총신대 총장과 이사장, 이사 등을 비롯한 공직을 맡을 수 없다')도 위반한, 이래저래 억지에 가까운 결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돈에 총장직을 팔아넘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어제 대한민국 개신교 최대의 신학 교육/목사 양성기관은, 대한민국 개신교 최악의 인물을 총장으로 맞이했습니다.
어쩌면, 의외로 별로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길자연 목사가 총장질은 잘 해낼지도 모르죠.
어쩌면 조만간 벌어질(이미 결의된) 총신대학교 학생들의 집단 행동에 이사회가 총장선임을 원점으로 돌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제 있었던 그 총장선임은, 한국 개신교 역사에 비가역적인 오점을 또 하나 남겼습니다.
저는 한국 개신교인의 한사람으로서, 합동교단 교인으로서, 국가 시국과는 별개로 전혀 안녕하지 못합니다.

p.s 1주일 뒤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네요. 한국 개신교회에 예수님이 뭐라고 책망하고 계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