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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일찍 찾아뵙게 되었네요. 저번 편에서 조금은 폭발적인 댓글 반응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쓰고 퇴고했습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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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녀의 답을 기다린다. 제발 선물을 주시길, 선물을 안주면 어떡하지 싶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교차했다.
“아...”
그녀는 당황해서 인지 아니면 망설이고 있어서 인지 작게 탄식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는 것이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넋 놓고 있다가는 상황이 좋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란 걸 직감하고,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크게 부담 주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시간되실 때 밥이라도 한번 같이 먹어요.”
이럴 때 일수록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대놓고 번호를 물어보러 와서 여자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고 움츠러드는 건 최악의 대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좋다고 번호를 단번에 알려주는 여자라면 남자 쪽에서 사양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언젠가 주찬이에게서 주워들은 내용이었다.
“아. 네. 여기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건네받은 내 스마트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조심히 돌려받아 행여나 뭘 잘못 누를까 싶어 먼저 부랴부랴 전화번호부에 등록부터 했다.
“감사합니다.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최대한 태연하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억눌려있던 긴장이 탁 풀려버렸다.
“하아.”
밀려드는 안도감에 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한편으로는 지금 내가 뭘 한 건지 얼떨떨하기도 했다. 전호번호부를 열어 방금 저장된 번호를 괜히 몇 번이고 확인했다. 아마 만감이 교차한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그러나 그 미묘한 감정들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기쁨. 저 안에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인해 주먹이 꽉 쥐어 쥐고, 괜히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얼굴에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연주와 은성이가 기다리고 있는 찜닭 집으로 들어섰다.
“여기에요 선배!”
연주가 창가 쪽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자리에는 센스 있게 가득 채워진 물 잔과 수저가 놓여있었다.
“미안 좀 늦었지?”
“아뇨. 괜찮아요.”
이 와중에도 내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나 보다. 연주가 그걸 캐치하고 물었다.
“근데 화장실에서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뜨끔.
“응? 기분 좋은 일은 무슨 그냥 시원해서 그래 시원해서. 허허.”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 다는 옛말이 있는 게 아니구나.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상황을 넘겼다.
“그래요?”
매번 느끼지만 연주는 참 촉이 좋다. 가끔은 얘가 대한민국 형사가 됐다면 꽤 유명한 여형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직감만으로 따지면 명탐정 뺨을 후려칠 정도다. 다행히 바로 찜닭이 나온 덕분에 연주의 직감은 발동되지 않았다. 치느님!
“와 맛있겠다!”
은성이는 그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자마자 젓가락을 들고 군침을 삼켰다.
“선배 조금 늦어서 먼저 그냥 시켰어요. 달콤한 맛으로. 괜찮죠?”
사실 매콤한 맛을 더 좋아하지만 딴 짓(?)하다온 나로서는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응. 좋지.”
음식이 상에 놓인 뒤부터 우리의 대화는 단절됐다. 새로 생긴 지 얼마 안됐는데도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더니 정말이었다. 달짝지근한 간장양념 맛이 일품이었고, 찰진 당면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순식간에 찜닭을 해치웠다.
“현우 오빠.”
은성이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응?”
“저희 시킨 건 언제 나오죠?”
“음.”
은성이의 말에 나는 작게 침음을 흘렸다.
“언제 나오냐구요!”
“곧 나오겠지. 크흠.”
우리는 뻔뻔하리만치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연주가 은성이에게 딱밤을 날리면서 우리에게 다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벌써 다 먹었잖아. 은성아. 이 잔해들을 보라고.”
연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연주의 말대로 우리의 앞에는 잔혹하리만치 무수히 많은 닭의 잔재들이 쌓여있었다. 정말 우리가 뭔가 먹긴 먹은 거구나 실감이 들었다.
“큭! 연주야. 여기 맛있다. 우리 내일 또 오자.”
은성이는 이 찜닭의 맛에 감동한 것 같았다. 확실히 이전에 맛봤던 찜닭과는 차별되는, 입맛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다. 여기서 그녀와 밥 약속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그렇고 기회 되면!”
그러다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처럼 또 운 나쁘게 연주나 은성이를 마주치면? 하다못해 학교에서 꽤 친분이 있는 사람 중 아무나 마주쳐도 껄끄러울 것이다.
“선배 이제 어디가요?”
연주는 졸라대는 은성이를 아이 달래 듯 어른 뒤 내게 물었다. 오늘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고, 학교에 남은 볼일도 없으니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다.
“집에 가야지.”
“도서관에서 공부 안 할래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한바탕 진을 빼서 그런지 공부할 여력이 없을 것 같아 정중히 거절한다.
“오늘은 일찍 가보려고 피곤해서.”
“그래요. 다음에는 같이 해요. 요즘 수학과목 듣는데 선배 잘하잖아요. 기회 되면 좀 물어보면서 하게요. 괜찮죠?”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괜찮다. 사실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오히려 연주가 내게 베푸는 호의가 훨씬 클 테니까.
“얼마든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나와 인사를 하고 각자 갈 길로 흩어졌다. 연주와 은성이는 함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고 나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로 몸을 싣는다.
빈자리 없이 빽빽한 지하철에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 안녕하세요. 아까 번호 물어봤던 사람이에요. 이름은 이현우고 번호 등록 좀 부탁드릴게요.
몇 번이나 지우고 썼다가 마침내 메시지를 전송한다. 답장은 잘 올까? 혹시 다른 번호를 알려준 거라면 어떡하나 걱정도 들었다.
-- ...
지하철역을 몇 번 지나칠 동안 그녀에게 답장은 없었다. 나는 마치 습관이라도 된 듯 지하철역 하나를 지날 때마다 메시지 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역에 이르러서 그녀에게 답장이 도착했다.
-- 죄송해요. 일이 지금 끝나서 이제 봤어요.
처음으로 받은 답장에 마치 첫사랑에게 문자를 받고 설레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 아니에요. 괜찮아요.
-- 저는 한수영이라고 해요.
이름은 대충 수영이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매번 주문할 때마다 카운터 알바가 그녀를 그렇게 불렀으니까. 한수영이라... 이름도 참 예쁘다. 나는 이어서 자연스럽게 카카오톡에 그녀를 추가하고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 많이 당황하셨을 것 같은데 고마워요. 시간 언제가 괜찮으세요?
번호를 알아냈다면 어차피 만나야 한다. 어차피 만나야 한다면 굳이 질질 끌 필요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빠르게 약속 날짜를 잡는 게 좋다. 여러 번 주찬이가 내게 말하곤 하던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여자 친구도 있었으며 누군가에게 번호를 물어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주찬이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음. 이번 주 금요일 저녁 괜찮으세요?
예스! 안 괜찮을 리 있나. 당연히 무조건 오케이다.
- 네 괜찮아요. 그럼 그 날 몇 시쯤 괜찮아요?
-- 7시 반쯤 봬요. 학교 앞에서.
- 네 그럼 그날 만나기로 해요.
약속을 잡아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크게 소리칠 뻔 했다. 주변의 사람들을 의식하여 간신히 터져 나오는 함성을 꾹꾹 눌렀다. 때마침 내릴 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에서 내린다.
그제야 참았던 웃음이 한 번에 터져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쿡쿡 웃어댔다.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몇몇은 나를 미친놈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 좀 어떠리. 내 기분은 최고였다.
15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