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8/12 22:08:33
Name aura
Subject [일반] <단편> 카페, 그녀 -1 (연애하고 싶으시죠?)
안녕하세요. aura입니다. 디링디링을 마치고, 다른 신작으로 찾아뵙게 되었네요.
이번에도 조금 모자랄 수 있는 글이겠지만, 전 작과 마찬가지로 한 분이라도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 - -

##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 기분은 최악이다. 왜 최악이냐고? 차였으니까! 아주 뻥!


“미안해.”


차라리 변명이라도 해줘. 그럼 그냥 그렇구나, 그래서 헤어지자는 거구나 하고 스스로 받아들였을 텐데. 하지만 나의 소박한 바람들은 언제나 반대로 어긋난다. 야속하게도 여자친구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 변명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헤어지자, 미안하다 그것뿐이다. 깔끔하다 못해 결벽적인 이별이 나를 더 비참하고 괴롭게 만든다. 헤어지는 데 그 어떤 이유도, 변명도
없다는 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어떻게 해도 그녀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뜻이니까.


왜? 내가 뭘 잘못했어? 말해봐.


“괜찮아. 이걸로 마지막이네. 잘 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대답한다. 붙잡아도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아버려서일까. 미련 없이 작별인사를 하고 뒤돌아선다. 지금 그녀 눈에 비치는 내 뒷모습은 어떨까?


한 번도 붙잡지 않고 돌아서는 모습이 쿨해 보일까? 안쓰러워 보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반대로 돌아서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생각이야 어찌되었건, 지금 내 기분은 최악이다.


이 일이 어느새 9개월 전이다.


##


“선배!”
“응?”


갑자기 어깨를 치며, 주의를 깨우는 하이톤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제 말 안 듣고 또 다른 생각하고 있었죠?”
“아 뭐 말했어?”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능청스럽게 상황을 모면하려 시도한다.


“요새 왜 이리 생각이 많아요? 아 진짜! 안 그래도 지금 과제 때문에 머리 아픈데.”


그러나, 지연주, 그러니까 내 앞에 있는 이 당찬 여자 후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녀는 어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가려고 하냐는 듯, 이마에 손을 얹고 도리질하며 퇴로를 봉쇄한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안 먹히겠지?


“예? 옛날 생각이요? 하필 지금 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요?”


역시! 얘는 진짜 어디 갔다 놔도 억울해서 죽을 일은 없겠다.


“미안! 다시 집중할게.”


“예? 맨 입으로요 선배? 제가 한 두 번이면 넘어가는데, 아아 이번이 몇 번째더라.”


세 번째야 임마!


연주는 동그란 눈을 가늘게 바꿔 뜨고서 내 지갑을 툭툭 압박해온다. 허허 녀석. 어디 가도 굶어 죽진 않겠어.


“알았어! 내가 미안하니까, 커피 산다.”


결국 백기를 들어버린다. 지연주 진짜 치사한 녀석. 후배가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겠냐. 하지만 잘못의 원인은 나에게 있는 바, 어쩔 수 없다.


“그래요? 그럼 다시 한 번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요?”


커피 산다는 말에 연주의 도끼눈이 금세 동그랗게 돌아온다. 참 저 둥그런 눈만 보면 귀여운데 말이야. 속은 아주 오래 묵은 능구렁이 같단 말이지.


“넵.”


꿍시렁대는 내 속과 달리 입은 능구렁이님의 하해와 같은 은총에 굴복한다.


“그러니까, ABC(activity based cost)에 대한 사례를 조사해야하는 데...”


연주는 똑 부러진 입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당해준다. 하긴, 선배랍시고 다른 과목 때문에 후배한테 이런 도움을 받고 있으니 커피쯤 사는 거야 당연하지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속이 덜 쓰린 느낌이다. 사실은 정신승리일 뿐이겠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다 들었죠?”


어째 저 능글능글한 눈을 보니 못 들었길 바라는 느낌이다. 설마, 밥이라도 뜯어낼 참이냐.


“응. 확실히 다 들었어.”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정신 팔지 않고 다 들었다. 이 이상의 타격은 허락할 수 없지.


“그럼 다행이네요.”


저거 분명 아쉬워하고 있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읽으며,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녀석. 분명히 이번에도 정신 팔았으면, 커피 이상의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휴 어쨌든 이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대충 과제 할당이 끝난 것 같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었다.


“뭐 수업이에요?”
“응. 교양과목.”
“어디서 듣는데요?”


그러니까 어디더라?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시간표 어플을 살폈다.


“공대 2건물. 304호네.”
“에이. 선배! 벌써 학기 시작한지 한 달 되어가는데 어디서 수업 듣는지도 못 외웠어요?”
“그야 시간표 어플께서 은혜를 베푸시니까.”


귀찮게 외울 필요도 없고, 어차피 어디 건물 몇 호인지는 몰라도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내 말에 연주는 피식 웃더니 자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헐, 설마 이거 지금 수업인데도 커피 사달라는 거? 야이 매정한 후배야!


“그렇게 기억력이 안 좋아서야... 선배 길 잃어버릴까봐 안되겠는데요? 어차피 저 지금 학교 내려 갈 건데 같이 가요.”


미안하다. 이 못난 선배가 오해를 했구나. 나는 밀려드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무슨 치매도 아니고, 길 잃어버리겠냐.”


“에이 언제라도 치매가 와도 이상한 나이가 아니죠! 벌써 25살이라고요. 선배.”


“네네.”


우리는 서로의 장난에 킥킥대며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선배.”
“응?”
“선배는 여자 친구 안 사귀어요?”


뭐? 나는 녀석의 기습 공격에 하마터면 다리가 꼬여 넘어질 뻔했다. 아니 얘가 또 뭘 하려고 갑자기 이러지?


“헤어진 지 꽤 오래된 걸로 아는데, 벌써 1년 가까이 됐죠?”
“뭐 그런 것 같네. 근데 그건 왜?”


정확히 1년은 아니고 9개월 쯤 이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이 소리를 들으니 속이 쓰리다. 애써 생각해봐야 좋을 게 없다. 나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달라붙는 기분 나쁜 것들을 떨쳐냈다.


“그냥요. 나 모르는 사이에 또 여자 친구 생겼나 해서요. 요새 들어 자주 멍 때리는 게 여자 문젠가 싶기도 하고.”
“미안. 앞으로는 진짜 안 멍 때릴게. 뭐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내 대답에 연주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갑자기 멈춰서는 녀석을 따라 내 발걸음도 멈춘다.


“왜?”


무슨 문제가 있나?


“아뇨. 그냥요. 이러다가 선배 총각 귀신 될 까봐서요! 빨리 예쁜 여자 친구 사귀시라고요. 전 가볼게요!”


제 할만 해버리고 녀석은 자리를 쏙 내빼버린다.


“야!”


아무리 그래도 총각 귀신은 아니다.


“나 총각 아니거든?”


그러니까 총각 귀신이 될 염려는 없단 말씀.
나는 멀어지는 연주의 모습을 보며, 외치려던 말을 목구멍으로 꾹 삼키며,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터뜨린다.


“아... 벌써 도착했었구나?”


난 또 왜 갑자기 멈춰서나 했네. 나는 어느새 도착한 공대 2건물로 몸을 돌렸다.


2에 계속...

-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8/12 22:17
수정 아이콘
하 현기증납니다 얼른 2편으로..
13/08/12 22:49
수정 아이콘
잠시사이에 많은 댓글이 달렸네요. ^^ 감사합니다. 2편으로 빠르게 찾아뵐게요!
클레멘티아
13/08/12 22:35
수정 아이콘
25살에 선배 챙겨 주는 여자 후배가 있다니...부럽.........하.... 흑...
적당히해라
13/08/12 22:41
수정 아이콘
제가 스물다섯까지 대학 다녀봐서 아는데 저런후배 꽤 되요.

아 물론 인문대라는게 함정. 글은 공대네요???????
Love&Hate
13/08/12 22:46
수정 아이콘
교양이 공대건물인건데.. 사실 공대는 교양개설을 잘 안하기도한데 흠
여튼 공대에서 듣는 교양이니 공대생은.아닐수있
13/08/12 22:51
수정 아이콘
ABC라는 건 회계쪽 관련 용어죠. 주인공은 경영경제쪽 과입니다^^ 공대로 간 이유는 공과건물에서 교양수업이랄까요.
많진 않지만, 종종 있기도하죠.
낭만랜덤
13/08/12 23:18
수정 아이콘
새로 연재하는 판타지 물인가보죠??
13/08/12 23:27
수정 아이콘
판타지물도 쓰긴했지만...이작품은 드라마 연애소설이라도 봐도 무방합니다. 전작 디링디링은 청춘소설이구요
공무원
13/08/12 23:25
수정 아이콘
나...나쁜 글이다..
13/08/12 23:27
수정 아이콘
왜죠??^^
있어요399원
13/08/13 00:28
수정 아이콘
배경이 왠지 신촌의 모 학교 같은데요 크크?
13/08/13 00:51
수정 아이콘
배경은 딱히없네요^^
망디망디
13/08/13 00:30
수정 아이콘
소설인가요?!
13/08/13 00:51
수정 아이콘
네 제목에 있다시피 단편 소설이랍니다. ^^
고민많은밤
13/08/13 02:44
수정 아이콘
로맨스 좋아합니다!
새 연재 시작하셨네요! 감사히 잘 읽을게요
13/08/13 08:5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걱정이앞서기도 하네요
우랴챠아
13/08/13 08:10
수정 아이콘
왜 25살이 치매위험이 있는거죠.. 슬프네요 ㅠㅠ
13/08/13 08:51
수정 아이콘
글쎄요!? 고학번이기때문에??
13/08/13 08:28
수정 아이콘
캬 좋습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13/08/13 08:5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잘부탁드립니다
천진희
13/08/13 09:06
수정 아이콘
그럼요. 경영경제라도 물리학이라던지 그런거 들을 수 있잖아요. 전 기계과인데 법학입문을 들었...하아.
그러나 저러나 새로운 연재물은 판타지군요?! 기대하겠습니다!
13/08/13 09:19
수정 아이콘
판타지물은 아니에요~~ 이번에도 반갑고 감사합니다 천진희님!
살만합니다
13/08/13 09:08
수정 아이콘
전작보다 뭔가 흐름이 좋네요 전작이 나빳다는건 아닙니다!
중간중간에 웃음소리가 거슬렸....크 잘보겠습니다~
13/08/13 09:20
수정 아이콘
칭찬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시면 많이고쳐서 더 좋은글 쓰겠습니다.
13/08/13 18:23
수정 아이콘
벌써부터 해로운 기운이 풍기는 글이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게 운영위 현황 및 정치카테고리 관련 안내 드립니다. + 선거게시판 오픈 안내 [29] jjohny=쿠마 25/03/16 24539 18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305634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59362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62696 4
104360 [일반] 취향저격 시티팝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한 충격 [13] 똥꼬쪼으기1127 25/06/22 1127 2
104359 [일반] 美, 이란 직접 타격 단행…트럼프 "3개 핵시설 성공적 공격" [91] 전기쥐4547 25/06/22 4547 1
104358 [일반] 고려양, 대륙에 유행했던 원조한류 [3] 어강됴리2082 25/06/22 2082 1
104357 [일반] 자본주의 의사이야기 [9] TheGirl1843 25/06/22 1843 21
104356 [일반] [웹소설] 회귀수선전 완결 [13] VictoryFood2340 25/06/22 2340 2
104355 [일반] 근거를 대지 말라 [10] 번개맞은씨앗3683 25/06/21 3683 7
104354 [일반] 영화 두 편, <엘리오>와 <퀴어> [4] aDayInTheLife2047 25/06/21 2047 2
104353 [정치] 지금 민주당발 검찰개혁안은 심각한 위험이 있다는 장애인권변호사의 지적. [171] 구경남b8921 25/06/21 8921 0
104352 [일반] 비가 오는 날에는 고양이죠. [8] 대단하다대단해2534 25/06/21 2534 1
104351 [일반] 28년 후...감상(스포) [22] 로각좁3434 25/06/21 3434 3
104350 [일반] 동화 슈렉의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 [2] 오디세우스2782 25/06/20 2782 7
104349 [일반] [약하디 약한 스포일러] '케이팝 데몬 헌터스' 를 봤습니다. 재미있네요. [17] 카페알파5180 25/06/20 5180 5
104348 [일반]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16 [7] Poe3089 25/06/20 3089 30
104347 [일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정강이뼈 무릎 통증, 희안한 수면장애, 치질 증세... [70] 모데나8719 25/06/20 8719 7
104346 [정치] 검찰, 김건희 육성 4년만에 ‘우연히’ 발견 [122] 전기쥐11353 25/06/20 11353 0
104345 [정치]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언제 합쳐질까요? [56] 베라히6293 25/06/20 6293 0
104344 [일반]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했습니다. [87] 물러나라Y6528 25/06/20 6528 6
104343 [일반] 경매에 대한 이론의 모든 것 [7] 오디세우스2919 25/06/20 2919 15
104342 [정치] 여러분의 눈에는 어떻게 보입니까? (feat. G7, 삿대질, 이준석) [136] 덴드로븀13456 25/06/19 1345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