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에 올라와 있는 '자칼의 날' 을 보고 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글을 써봅니다. 사실 리뷰..까지는 아니고, 그냥 다 보고 나서 왠지 억울한 마음에 쓰는 글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사실 영화화도 됐었죠. 73년작 '자칼의 날' 도 있고,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가 출연했던 각색된 '더 자칼' 이 있습니다. 그만큼 첩보 스릴러 물로는 나름 먹어주는 네임밸류를 가지고 있죠. 때문에,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부터 첩보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 기대치가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샤를 드골 시절의 원작과 달리 현대 시점으로 각색된 자칼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호기심도 꽤 컸구요.
일단 주연 '자칼' 역으로는 에디 레드메인이 맡았습니다. 탄탄한 커리어에 뛰어난 연기력으로 빛나는 배우지만 아무래도 흥행 대박이 났던 해리포터의 스핀오프 신비한 동물 사전의 '뉴트 스캐맨더' 가 익숙한 배우죠. 다소 순둥한 이미지에 살짝 어리숙한 캐릭터를 맡았는데 이번 자칼의 날에선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요?
--- 스포일러 ---
모든 훌륭한 배우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지는 않지만,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는 모두 훌륭한 배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에디 레드메인은 이번 드라마에서도 상당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뉴트는 대체 어디에 갔는가...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냉정함을 잃지 않는 킬러 역을 훌륭히 소화합니다. 호리호리한 몸 때문인지,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에 반해 라이벌로 등장하는 비앙카 요원 (러샤나 린치 분) 은 왠지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는데? 어디였더라? 싶습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노미 역을 맡았었고, 이후 마블 영화에도 몇 번 출연했죠. 최근 들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본부터 캐스팅까지 미스에 가까웠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제목부터 킬러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킬러가 하루빨리 죽어버렸으면.. 해서야 드라마가 진행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킬러를 미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해 봐야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사람을 좋게 포장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작가들이 내린 결론은 아마도 동전의 양면 같은 방향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칼과 비앙카 요원은 결국 목적을 위해 살인하는 것은 똑같다는 거죠. (마지막 화에서 이게 특히나 두드러지죠. 이기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는 공통된 대사까지) 단지 한 쪽은 돈이고, 한 쪽은 국가라는 이름의 권력인 거죠. 이는 자칼의 과거 회상에서도 꽤나 직설적으로 표현됩니다. 정의를 위해 살인을 하던 자칼은 그에 회의감을 느끼고 돈을 위해 살인을 하게 된 셈이니깐요. 비앙카는 여전히 과거의 자칼처럼 정의를 위해 살인을 하고 있으니, 둘이 대립하는 그림은 전체적인 방향성에 비추어 봤을 때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문제는 이 둘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비앙카 요원 캐릭터의 문제입니다. 비앙카는 자칼을 잡기 위해 드라마 내내 무리수를 연달아 던집니다. 정보원을 끌어내기 위해 무고한 딸을 가두고 협박하다가, 그 딸이 갇혀 있을 때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그러자 이젠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정보를 얻어내려고 어머니를 협박하죠. 세상에 자식잃은 엄마를 협박한다고? 딸을 빌미로 협박하는 건 정의감 넘치는 형사물의 마지노선인 줄 알았는데 이젠 죽은 딸을 숨기면서 협박합니다. 아니, 아예 어차피 지병이 있어서 죽을 애였어, 그러니까 협조해.....라고 해버리죠. 여기서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이젠 딸과 와이프를 잃은 남편까지 고문하고 정보를 내놓으라고 닥달합니다.
이쯤 되면 누가 악역인가 싶어지는데, 심지어 자기가 가둔 모든 걸 잃은 남편을 감옥까지 찾아가서 '미안하게 됐어' 한마디 하러 갑니다.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는 것 처럼 묘사되는데 이건 티배깅도 아니고.... 확실한 건 이 비앙카 요원은 싸이코패스가 확실하다는 거죠. 대본이 문제거나, 내면의 갈등을 묘사하지 않은 배우의 문제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캐릭터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질 않습니다. 비앙카 요원은 극중에서 일종의 총기 전문가로 묘사됩니다. 저 해상도의 흐릿한 총기 사진만 봐도 모델명이 척척 튀어나오고, 저격 거리 이야기만 들어도 배럴 길이가 얼마는 되야 한다는 것 쯤은 줄줄 꿰고 있죠. 그런데, 이 요원 현장 요원인가요? 아무리 봐도 내근직에 가까워 보입니다. 사실 저런 총기 제원을 꿰고 있는 요원이 현장에서 총질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드물긴 하죠. 심지어 허벅지가 자칼 몸통보다 두꺼워요. 계단 두 개 층도 뛰어올라가기 힘들어 보이는데, 갑자기 현장에서 총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드라마 내내 수백 발을 연사 놓고 긁어대는데,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합니다. 세계 최고의 저격수를 상대할 현장 요원으로 저런 사람을 배치한다니요?
그럼 자칼 캐릭터는 문제가 없었을까요. 비록 에디 레드메인의 빛나는 연기에 다소간 가려졌지만, 이 역시도 문제가 꽤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칼과 비앙카는 동전의 양면 컨셉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가족에 대한 두 캐릭터의 행보도 정 반대입니다. 냉정하고, 마주친 사람을 자비없이 죽여버리는 킬러도 내 가족에겐 따뜻하겠지... 캐릭터고, 반대로 정의를 표방하는 비밀요원 비앙카는 가족에게 그리 따뜻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일 중독 캐릭터랄까요. 공통점이라면 두 캐릭터의 가족은 공통적으로 서로의 발목을 열심히 잡아댄다는 것 정도겠네요.
너무 단점만 지적했는데, 종합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에디 레드메인입니다. 자칼은 훌륭했어요. 이 배우 하나를 보는 목적이고, 첩보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드라마입니다. 전반적으로 늘어지지 않는 연출도 좋고, 저격 장면들도 슬로모션 떡칠이 아니라 더 치명적으로 느껴지고, 현실성 있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점과 인물들의 표현도 과하지 않고 적절히 분배된 느낌입니다. 이 때문에 자칼 vs 비앙카에 더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는 면도 있습니다. 과거 회상도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괜찮았어요. 자칼 캐릭터에 최소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굳이?
아쉬운 점을 정리하자면 난잡한 조연들과 상대 주연 캐릭터의 미흡함, 각본상의 이런 저런 허점들 (세상에 비밀 요원의 집까지 노출됐는데, 아무도 그걸 대수롭게 생각치 않아요!), 필요한가? 싶은 LGBT 묘사 정도 되겠습니다. 왜? 갑자기? 여기서? 싶은 포인트가 있으니깐요. 하기사, 요새 해외 영상물에 LGBT 없으면 허전한 지경이라, 그럼 그렇지...또 안 넣고는 못 배겼구나... 정도로 넘어갈 수는 있겠네요.
자칼의 날은 시즌 2가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미 파이널 에피소드에서 다음 시즌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지, 거의 다 언급이 된 느낌이라 다소 김이 새기는 하지만 어떻게?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네요.
Pros
+ 에디 레드메인의 훌륭한 연기
+ 좋은 OST
+ 절제된 액션씬과 적절한 템포의 연출
+ 파이널 에피소드
Cons
- 매력적이지 않은, 평면적인 캐릭터들
- 각본상 쓰다가 잊어먹은 것 아닌가 싶은 설정들
-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늘어지는 전개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