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팬픽션넷의 ScytheRider님이 쓰신 글의 번역본입니다. 원문은 위의 링크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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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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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
“이건 시간 낭비야.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아니야! 맹세하건대, 분명히 그걸 느꼈다고! 틀림없었어.”
햇빛이 희미해지는 초저녁, 포켓몬 두 마리가 우거진 초목을 베어 넘기며 난잡한 숲 속을 나아가고 있었다. 한 마리는 결의에 굳은 듯이 앞장서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못 마땅한 듯이 뒤따르고 있었다.
“블레이드…”
“진짜야! 이 쪽에서 신호가 왔어. 조사해 봐야 해!”
둘이 덤불과 새싹을 헤쳐 나가는 와중에도, 해는 서서히 지면서 하늘을 다채롭게 붉은 빛깔로 물들였다. 이제 곧 밤이 그들을 닥치게 될 것이었다. 뒤따라가는 포켓몬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동료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면 귀중한 햇빛이 사라지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진짜 또 환청 같은 거 들리는 건 아니지?”
“모르겠어. 그래서 직접 알아봐야 겠고.”
“블레이드… 이 숲에는 멍청한 구구와 버터플 말고는 뭣도 없어.”
둘이 트인 벌판으로 나오자, 이에 놀란 구구 한 무리가 서둘러 근처의 나뭇가지로 숨어들었다. 역시나 그럴 줄 안 듯 실망한 고지는 화를 내며 툴툴댔다.
“블레이드, 이제 곧 밤인 데다가, 아직 기지까지 몇 킬로미터는 더 가야 돼. 이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감시자들이 우리를 잡아 붙들 거야.
진심으로 감시자와 싸우고 싶기라도 한 거야?”
“내가 맞은 거면 어쩔 건데?!” 스라크는 느닷없이 성질을 내며 몸을 돌려 동료를 바라봤다. 고지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진짜로 저 쪽에서 뭔가를 들은 게 맞은 거면 어쩔 거냐고? 설령 틀렸다 한들, 나쁜 일 일어날 게 뭐 있어? 우리는 좀 늦게 귀환하고, 대원들은 우리들 걱정을 몇 시간 더 하는 것 정도? 왠지 모르게 그게 걱정이 되지는 않거든. 하지만 샌드… 이 곳에 소환의 부름을 가진 자가 있다면 어떡할 건데? 생각을 해봐. 이게 그 능력을 적들에게 뺏기기 전에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면 어떡할 거냐고? 이런 가능성을 내버려둘 수는 없어.”
“알아, 안다고,” 고지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 능력자가 태어날 만한 때가 아니야. 진짜 최소한으로 잡아도 아직 3년은 더 있어야 돼…”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 따윈
알고 있다고,” 스라크가 투덜거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게 물론 잘못된 신호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소환의 부름을 탐지할 수 있을 만큼 예민한 몇 안되는 포켓몬인 만큼, 내게는 더 찾아 볼
의무가 있다고 봐.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걸 나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놈들이 없다는 게 참 기분이 더러워.”
고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길 수 없는 대화였기 때문이었다. 둘 사이에 이와 같은 대화가 지난 몇 달 간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오고 갔었고, 항상 똑같은 결론으로 끝났었다. 스라크의 집착은 참으로도 고집스러웠다.
“만약 저 안에 누가 있다면, 우리가 감시자보다 먼저 그 곳에 도착해야 해,” 스라크는 앞길을 가며 말했다. “그 능력이 잘못된 손에 떨어지게 할 수는 없어. 샌드…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홀로 돌아가도 돼. 난 혼자 갈 테니까.”
고지가 그를 떠나 혼자서 돌아갈 만큼의 용기가 없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스라크는, 속으로 씩 웃음을 지었다. 대원들이 2인조 체계를 엄격하게 따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고나 과도한 자신감으로 인해 홀로 떨어져서 던전에서 최후를 맞거나 감시자에게 붙잡힌 포켓몬을 일일이 떠올리는 것은, 참 여러 의미로 어려웠다.
“같이 가 줄게,” 고지가 자포자기한 듯이 말했다. “널 믿는다. 어차피 감시자랑 싸운 지도 좀 오래 됐어. 경험 좀 쌓아야 될 것 같아. 하지만 한 가지만 물어 볼게… 마지막으로 소환의 부름이 들린 지 이제 24년이나 됐어. 진짜로 그게 어떤 소리인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런 건 쉽게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스라크가 말했다.
고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각오하면서, 그의 동료를 숲 속 더 깊이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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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잡한 숲
작은 이상해씨 한 마리가 난잡한 숲을 질주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거의 해질녘이었다.
“싫어!” 그의 울부짖음을 들어주는 이는 딱히 없었다. “싫어!
싫어! 안 가!
안 간다고! 절대로 안 갈 거야!”
이상해씨는 능숙하게 바위와 쓰러진 통나무를 뛰어넘으면서, 잘 알고 있는 길을 따라 숲 속을 달렸다. 달리는 와중에도, 주위에 보이는 모든 나무 하나하나에 분풀이를 하려는 듯 보였다.
“싫어, 싫어,
싫어!” 그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덩굴로 길목에 있던 작고 큰 나뭇가지들을 뿌리쳤다. “견딜 수 없어! 안 갈 거야! 그… 그건 싫다고!
절대로 그렇게 시킬 수 없어!
절대로!”
이 자그마한 포켓몬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된 듯 보였다. 그는 길가를 잽싸게 벗어나 가장 근처에 있던 나무에 있는 힘껏 계속 덩굴로 채찍을 휘둘렀다. 절규와 함께, 그는 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고 또 냈다. 아무런 잘못 없는 나무를 꽤나 상하게 한 뒤, 그는 다른 나무로 뛰어가 나무를 온 힘껏 몸으로 들이박았다. 머리를 울리는 고통의 파동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가 나무 줄기를 덩굴로 휘감고 격렬하게 당기고 쥐어짜는 와중에, 그의 감은 눈 사이로는 눈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왜?! 왜 저한테 이러는 거에요?!” 역시나 그의 울부짖음을 받아 줄 유일한 대상은 지고 있는 태양 밖에 없었다. “디아루가여, 왜?!
아르세우스여, 왜?!”
그는 나무를 아귀에서 풀고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다. 이상해씨는 다시 덩굴을 뽑아 근처의 바위를 잡아서 다른 나무로 던졌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바위, 다음은 나뭇가지, 그 다음에는 근처에 아무거나 잡을 만한 걸 던지면서, 그 때마다 괴성을 냈다.
“뭐라 하든 상관없어,” 그는 피로함이 감도는 와중에도 씩씩댔다. “날 보고 그렇게 시킬 수는 없다고.
절대로 안 갈 거야! 난… 저항할 거고, 만약… 만약 억지로 가게 만든다면, 난… 난 도망 갈거야. 그래! 도망을 갈 거라고! 그리고
절대 안 돌아올 거야!”
이상해씨는 어느 새 진이 거의 다 빠졌고, 점점 어두워지는 숲 속에서 숨을 고르며 방금 전 머리를 들이박은 후유증을 참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날뛴 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던 숲에 온 걸 깨달았다. 오늘 밤은 숲 속이 자신이 있을 만한 유일한 곳인 듯 했다. 이상해씨는 자신이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지금 당장, 그는 전혀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주위의 환경이 이상해씨를 진정시켰다. 가쁘게 뛰던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분노는 천천히 가라앉았고, 그 자리를 참담함이 대체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숲과, 자신이 알고 사랑했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그의
자유 의지 마저도 빼앗기게 될 수 있는지…
그가 하늘로 고개를 돌리자, 별빛이 오늘 처음으로 그를 반겼다.
“아아, 위대한 전설의 포켓몬이시여…” 그는 어릴 때부터 배웠듯이 기도를 속삭였다. “위대하고 영원한 아르세우스여, 제발… 이 땅의 포켓몬 중 하나를 도우실 수 있다면… 제발…
무엇이라도 해 주소서!”
곧 별들이 하나 둘씩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부엉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고, 땅바닥에 있는 작은 씨앗 포켓몬이 대체 이런 밤에 왜 나와 있는지 묻는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밤이야…” 이상해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전한 곳으로 가야 돼! 감시자들이 닥칠 거야!”
이상해씨는, 밤에는 “감시자”라 불리는 유령 포켓몬의 군단이 땅 밑에서부터 기어 올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포켓몬의 기억을 상회하는 옛날부터, 감시자들은 매일 밤 마지막 햇빛이 바래지는 순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문명화된 포켓몬이 가진 지성이나 언어능력 따위는 없는, 야생의 혼령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포켓몬이 이들에 대해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잡힌다면, 형언할 수도 없을 정도의 끔찍한 짓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감시자에게 사로잡힌 포켓몬은 저주를 받거나, 기억 또는 지성을 잃거나, 납치당해 땅 밑으로 끌려 들어가거나,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악몽에 빠지게 되었다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아직 태양빛이 조금은 남아 있었기에, 이상해씨는 지금까지 숲 속 깊이 왔었던 길을 발견하고, 다시 집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는 상황을 파악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제 때 못 돌아갈 지도 몰라… 다른 곳으로 가야 돼. 그래, 동굴로 가는 거야.”
이상해씨가 동굴을 찾는 동안, 보름달은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크레세리아가 감시자들을 한 시간 정도는 잡아 둘 수 있는 달빛을 내려준 것을 감사해 하며, 그는 난잡한 숲의 바깥쪽 경계에 있는 암벽의 정면으로 주의를 돌렸다. 늘 그랬 듯이, 그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무도 없는 지 확인부터 했다. 자신을 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자, 그는 덩굴을 뻗어 중간 크기의 바위를 감쌌다. 이상해씨는 바위를 꽉 움켜쥐면서 옆으로 잡아당겼고, 그 자리에 있던 동굴의 입구가 드러났다.
이 곳은 이상해씨의 비밀 아지트였고, 자신 외에는 몇 명 정도만 이 곳을 알고 있었다. 이상해씨는 홀로 있고 싶을 때 항상 이 곳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밤, 그는 그저 홀로 있고 싶을 뿐이었다.
이상해씨는 주뱃 몇 마리가 동굴에서 나오기를 참을성 없이 기다린 뒤,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누군가 자신을 찾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덩굴로 바위를 원래 자리에 끌어 놓았다.
드디어 혼자 있게 되어 만족한 이상해씨는, 그 동안 화를 내다 지쳤는지 자갈로 뒤덮인 동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밤 사이 실종되었다는 걸 안 가족이 화를 낼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더 이상 그들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말이다.
원한다면 어디 밤 내내 찾아보시던가, 이상해씨가 속으로 말했다.
꼴 좋다.
곧 바람이 바깥에서 불기 시작했고, 바람은 돌로 막아 둔 입구 사이의 금을 통해 들어오며 요상하게 휙휙 울부짖었다. 가벼운 폭풍우가 치고 있는 것이었다. 초봄이었기에, 이때쯤 폭풍은 꽤나 흔했다. 비로부터 피난처를 찾았다는 사실에 이상해씨는 더욱 안도했다 - 어두운 구름이 달을 가렸다면, 감시자들이 전부 나와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상해씨의 생각이 진정되자, 그는 아늑하고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
굉장히 예민한 감각이 있어야 알아차릴 수 있는, 작은 성가심이었다. 사실, 이상해씨는 전에도 이 동굴에서 밤을 보냈던 적이 많았고 (형제들과 자뭉시티에 있겠다고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했다), 그 때문에 동굴의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 밤은 뭔가 달랐다 - 정확히 뭔지는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짜증이 난 이상해씨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동굴의 벽을 잠깐 둘러보더니 자신을 성가시게 하던 게 뭔지를 깨달았다.
볼 수가 있다?
필요에 따라 문을 열어 둘 때를 제외하고는, 동굴은 칠흑과 같이 어두웠었다. 눈을 감았을 때나 떴을 때나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이상해씨는 보통 동굴 안을 돌아다닐 때는 덩굴로 주위를 더듬으면서 길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조금이나마 울퉁불퉁한 동굴 벽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잠깐 눈을 감으면 남는 잔상만큼이나 흐릿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해씨는 동굴 문을 확인해 보았다. 문에서는 그저 폭풍이 숲을 향해 오면서 치는 번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문은 예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그만큼은 분명했다.
빛이 동굴 깊숙이서부터 나고 있나 봐, 이상해씨는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갈 수는 없어. 한 발짝만 잘못하면… 길을 잃게 될 거야. 어쩌면 영원히.
그는 마음 속으로 정해 둔 한계선을 넘기 이전에 광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악물고 조심스럽게 동굴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동굴을 잘 알고 있었던 만큼, 깊숙한 곳에는 홀로 탐험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비밀들이 숨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광원을 찾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자 마자 보였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바위에 기댄 채로 꼬리가 몸 아래에 끼여 있는 파이리 한 마리가 있었다. 꼬리에 켜진 불꽃은 아른거리는 불빛을 주변의 벽에 비추었다.
“세상에!” 이상해씨가 믿을 수 없어하며 소리쳤다. “파이리라니! 미… 믿을 수 없어! 이 주변에 파이리가 서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실제로 이상해씨가 파이리 한 마리를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이상해씨가 살고 있는 곳에서 파이리는 목격하기 꽤나 힘든 광경이었다.
이상해씨가 이 외부인을 접근하는 동안, 셀 수 없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이게 대체 누구지? 야생 포켓몬일까? 아니면 지성이 있을까? 깨워야 될까? 설마… 죽은 건가? 아니야, 죽었을 리가 없어, 꼬리가 아직 불타고 있잖아. 어디서 온 걸까? 나이는 얼마나 될까? 감시자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걸까?
뭔가 이상해씨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파이리는 방금 머리를 크게 다치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었다. 이상해씨는 서서히 덩굴 두 개를 모두 뽑아, 아직도 꼬리의 불꽃을 깔고 있던 파이리를 옆으로 굴리려 했다. 하지만 너무 불안해하더니, 주춤거리다가 실수로 미끄러져서 그의 덩굴 끝이 화염에 닿아버리고 말았다.
“앗! 아야!” 이상해씨는 아픔에 놀라며 불을 끄기 위해 덩굴을 벽에다 휘둘렀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신 뒤, 이상해씨는 또 불꽃에 닿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파이리를 머리로 슬쩍 밀어 보기로 했다.
“저기,” 이상해씨가 속삭였다. “저기, 일어나! 괜찮은 거야? 일어나!”
파이리는 아직 반응이 없었다.
“어서 좀 일어나라고!” 이상해씨는 주황색 도마뱀의 귀에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부탁하듯이 속삭였다.
이상해씨는 다시금 눈길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고 있는 파이리의 배 밑에 깔려 있는, 불붙은 꼬리로 돌렸다. 상상만 해도 꽤나 아플 것 같은 자세였기에, 이상해씨는 이 것 때문에 파이리가 안 좋은 표정을 짓고 있나 궁금해 했다. 이상해씨는 다시금 용기를 모아서 머리를 파이리의 어깨 쪽에 갔다 댄 뒤, 파이리가 옆으로 누워서 꼬리가 안 깔려 있을 때까지 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갑자기…
“으아아아!
으아악!”
크게 숨을 들이쉬며 파이리가 펄쩍 뛰었고, 벽에서 돌출된 기다란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야앗!” 이상해씨 역시 펄쩍 뛰며 반응했다. “미-미안해! 난 그냥… 네가… 너 괜찮은 거야?”
“으으…” 파이리가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철퍼덕하고 앉았다. “아이고… 내 머리야…”
“대체 너
누구니?” 이상해씨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원래 여기 주변에 파이리가 살지는 않아.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내 동굴은 어떻게 찾았고?”
“파-파이리?” 파이리는 말하면서도 통증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듯 했다. “무… 무슨 소리야? 파이리는… 포켓몬이잖아.”
“너… 혹시 머리를
너무 세게 박은 건 아니지?” 이상해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 좀 세게 박기는 한 것 같아,” 파이리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지금 어디 있는 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너…
우와악!”
파이리는 다시 한 번 놀라 펄쩍 뛰었고, 방금 전 부딪혔던 바위에 머리를 또 부딪히고 말았다. 잠깐동안 고통에 움찔했지만, 이내 다시 소름끼치게 놀란 듯이 말없이 자신 앞의 바라보았다.
“
대체 뭐가?!” 이상해씨가 물었다. “뭐가?! 뭐가 그렇게 놀라워?”
“너- 너 포켓몬이잖아!” 파이리가 외쳤다. “방금 전
말을 했고! 너…
말하는 이상해씨잖아!”
“야, 너도 말을 하잖아!” 이상해씨가 말했다. “그리고 너는 파이리고! 말하는 게 뭐가 이상해?”
“난 파이리가 아니야!” 그가 외쳤다. “난… 난 인간이라고!”
“
인간이라니?!” 이상해씨도 외쳤다. “내 눈에는 어딜 봐도 파이리인데? 머리를 좀 심하게 다친 건가… 긴급처치라도 좀 해야 될 것 같아. 잠깐만 기다려, 여기 근처에 오랭열매 몇 개를 숨겨뒀던 것 같아… 뭐, 꼬렛들이 벌써 찾아서 먹지 않았다면 말이야…”
이상해씨가 동굴 곳곳을 덩굴로 더듬으며 걸어가 버리려는 찰나, 파이리가 다시 한 번 외쳤다.
“아니야, 왜 이해를 못 하냐고!“ 파이리가 우겼다. “난 인간이야! 방금 전-“
“네 자신을 한 번 봐봐!” 이상해씨가 고개를 돌려 간청하다시피 말했다. “네 발톱, 네 몸통, 네 꼬리를 보라고! 지금 한밤중이고 여기는 동굴이야. 어떻게 나를 볼 수가 있을까? 네 꼬리가 불타고 있기 때문이야! 너는 지금
파이리라고!”
파이리는 마지 못해서 말을 따르기로 했다. 손도 보고, 다리도 보고, 결국…
“진짜잖아!” 그는 어색하게 팔다리를 휘둘러 보는 중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내-내가 영락없이 파이리가 돼 버렸어!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 이거 먹어,” 이상해씨가 커다란 파란색 열매를 가지고 왔다.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내가 어떻게 파이리가 된 거지?” “나는 인간이었다고! 분명해! 포켓몬으로 변한 거라고! 나-“
이상해씨는 만약 파이리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라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파이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만약 네가 인간이었다면, 인간만이 알 만한 걸 물어 보고 싶어,” 이상해씨가 말했다. “몬스터볼은 어떻게 작동하는 거야? 어떻게 해서 모든 크기의 포켓몬이 그렇게 작은 공에 들어가는 거고? 아직 그걸 알아낸 포켓몬은 없어. 인간이 몬스터볼을 발명해 냈으니까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알 거야. 기술머신은 어떻고? 어떻게 포켓몬에게 기술을 그렇게…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지? 그게 없이는 몇 년 동안 연습을 해야 된다던데…”
“잘 모르겠어,” 파이리가 말했다. “내가 포켓몬 트레이너는 아니었을 거야, 아… 아마.”
“아,” 이상해씨는 실망한 듯 보였다.
잠시 동안, 이상해씨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파이리는 열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난 씨돌이라고 해,” 이상해씨가 말했다. “네 이름은 뭐야?”
“내… 이름…” 파이리는 열매를 들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방금 베어 물은 열매는 달콤쌉싸름했다. “내 이름이 뭔지 모르겠어.”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기억을 못하겠어!” 파이리는 당혹스러운 듯 숨을 들이쉬며 들고 있던 열매를 땅에 떨어뜨렸다. 자신이 방금 말한 것조차 믿기지가 않았다. “내 이름이 기억이 안 나!”
“잠깐만 진정 좀 해봐,” 씨돌이가 말했다. “네가 인간이었을 때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기는 한 거야? 아무거라도?”
“아니,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 파이리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포켓몬으로 변해서… 생전 처음 보는 동굴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여기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진정해, 괜찮을 거야,” 씨돌이가 위로했다. “열매 먹어 봐. 좀 상태가 나아질 거야.”
파이리는 오랭열매의 효과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몸이 잠깐 따끔거린 뒤, 긴장이 풀리고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두통도 어느 정도 나아졌으며, 생각이 점차 질서 있게 정돈되기 시작했다. 꼬리의 화염도 확 타오르며, 맨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굴 안이 조금 더 밝아졌다.
“내 이름…” 파이리는 여전히 애를 태우며 다 먹은 오랭열매 씨앗을 바닥에 던졌다. “분명 원래 이름이 있을 거야. 그럴 수 밖에 없어! 그냥…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괜찮아,” 씨돌이가 말했다. “그럼 널 파이로라고 불러도 될까?”
“파이로?” 파이리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이름이 좀… 유치하지 않을까?”
“그게, 맨 처음 파이리를 만날 때는 보통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라고,” 씨돌이가 설명했다. “포켓몬이 별명이 따로 없으면 보통 포켓몬의 종 이름으로 부르거나, 이름의 부분을 따서 부르는 게 예절이야. 별명은 똑 같은 종류의 포켓몬이 두 마리 이상 있을 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 일종의 에티켓이지. 사실, 별명은 포켓몬 트레이너가 포켓몬을 기르는 방식에서 유래됐다고 해.”
“알겠어, 그럼 일단 파이로라고 불러도 돼,” 파이리가 마지 못한 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이름을 기억하기 전까지만.”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씨돌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래 인간은 너잖아.”
“잠깐만, 지금 믿어 주는 거야? 내가 진짜 포켓몬으로 변한 거라는 걸?” 파이로는 이상해씨가 가진 신뢰가 순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인간인데 돌아다니면서 원래 내가 포켓몬이었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면 다들 내가 미쳤다고 할 것 같은데.”
“포켓몬은 인간과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아,” 씨돌이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널 믿어 줄게. 네가 막 속이고 다니는 성격의 포켓몬처럼 보이지는 않아. 그리고 사실, 네 이야기를 처음부터 믿고 싶기도 했고. 이런 건 막 인간이 쓴 전설 이야기책에서나 나오는 거잖아. 누가 알아? 네가 원래 세게 최고의 포켓몬 트레이너나, 아니면
대통령이었을 수도 있는데, 지금 내가 여기서 너와 그냥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생각만 해도 멋진 것 같아.”
“헤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파이로가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또 다시 짧게 나마 정적이 흘렀다. 씨돌이가 오랭열매를 하나 더 파이로에게 권했지만, 파이로는 거절했다. 씨돌이는 이내 열매를 자신이 먹기 시작했다. 파이로는 꼬리를 잡고 불꽃으로 손장난을 쳐봤는데, 놀랍게도 손이 별 피해 없이 불꽃 사이를 지나갔다. 화상의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따뜻한 물을 만지는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개운함이 느껴졌다. 파이로는 만약 타오르는 화염 속에 들어간다면 따끈한 목욕을 하는 느낌이 들까 궁금해했다.
“그래서, 네 별명이 씨돌이인 거지?” 파이로가 계속 꼬리를 가지고 놀면서 물었다. “그러면… 네가 사는 곳에 다른 이상해씨도 살아?”
“온~ 가족이 이상해씨야,” 씨돌이의 대답에서 뭔가 불쾌함이 묻어나는 듯 했다. “남자 형제가 일곱 명 있고 여자 형제는 두 명. 다 이름이 조금씩 달라… 생각해 보니까, 가장 나이 많은 형이 작년에 이상해풀이 됐고, 도시 쪽으로 이사를 갔네…”
“무슨 일 있어?” 파이로가 기분 나빠하는 듯한 씨돌이에게 물었다. “혹시 너희 가족 관련해서 무슨 문제라도 있니?”
“우리 가족은 죄다 멍텅구리야,” 씨돌이가 투덜거리며 오랭열매 씨앗을 넝쿨로 내던졌다. “글쎄, 나 보고-“
씨돌이가 중간에 말을 끊었고, 바닥에 시선을 두고 있던 파이로는 얘가 왜 그럴까 하며 다시 위쪽을 바라보았다. 씨돌이는 갑자기 걱정에 찬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슨-“
“쉿!” 씨돌이가 경고했다. “뭔가… 들렸어…”
“뭐야? 누가 오고 있어?”
“빨리! 꼬리 좀 숨겨봐!”
파이로는 마지못해 두 손으로 꼬리에 있는 불꽃을 감쌌다. 다시금 이렇게 했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손으로 불꽃을 전부 다 덮을 수는 없었다. 화염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손의 틈 사이로 흘러 나오는 듯 했다.
“이게 최대한으로 덮은 거야!” 파이로가 말했다.
“충분할 것 같아…” 씨돌이가 소곤거렸다. “이제 잘 들어봐… 뭔가 들리는 것 같아…”
파이로의 불꽃이 내는 작은 소리와 바깥에서 조금이나마 불길하게 나는 천둥소리를 빼고는, 동굴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뭐, 잠시 동안은 말이다.
곧 들리는 소리는 분명…
목소리였다.
아직 몇 마디가 부분부분 들리는 것 뿐이었지만, 씨돌이는 두려움 속에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씨돌이의 목은 메여 오고 있었다.
“…여기…” … “여기에…” … “찾아! 여기 있어! 진짜야!”
“안돼!” 씨돌이는 숨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안돼! 파이로, 이 동굴이 비밀인 줄 알았는데… 누가 여기를 찾았나봐!”
“누굴까? 도망쳐야 돼? 숨어야 돼?”
“모르겠어,” 씨돌이가 불안한 듯 가쁘게 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누구든 간에… 만약 감시자를 상대할 수 있었다면, 지금 곁에 있고 싶지는 않아. 저들이…”
“감시자? 그게 뭐야?”
하지만 파이로가 원하는 답은 안 나왔다. 대신, 씨돌이는 두려움에 얼어서, 아르세우스에게 사실이 아니라고 비는 듯한 표정으로 목이 메인 채 이야기했다.
“저들이…
그 놈들일 수도!”
“그 놈들?”
대답할 시간조차 없었다. 경고도 없이, 우르르하는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입구를 막던 돌이 치워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찾았어! 가자! 잡아야 해! 당장!”
“파이로…” 씨돌이가 공포에 극한으로 질린 듯한 속삭임으로 말했다. “지금 도망쳐야 돼. 그 놈들이야… 지배자의 병사들… 우리를 납치하려 할 거야!”
파이로는 대체 뭔 소리인지 묻고 싶었으나, 질문할 시간이 없었다.
“네가 그러지 않은 건 알고 있어!” 목소리 하나가 동굴 입구에서 들렸다. “너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 여기까지 녀석들을 쫓아 왔어. 이제 찾아야 돼! 여기까지 온 이상, 절대 도망치게 두면 안돼!”
“파이로… 일단 날 좀 믿어줘,” 씨돌이가 계속 숨을 죽이며 말했다. “제발… 믿음을 가지고, 따라와 줘. 지금 동굴 깊숙이 들어가야 돼.”
“길은 알고 있니?” 파이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길은 아무도 모르지…” 파이로가 덩굴 한 쪽을 내 주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 누구도 길을 아는 건 불가능해. 덩굴 꽉 잡고, 절대 놓지 말아. 파이로… 지금 터널 쪽으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놈들을 따돌릴 수 있을 지도 몰라…”
파이로는 말한 대로 꼬리를 놓은 뒤 씨돌이의 덩굴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이상해씨의 대답이 뭔가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누구도 길을 아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가 물었다.
“파이로…” 씨돌이가 동굴 뒤의 터널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 곳… 이 동굴은… 바로 불가사의 던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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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의 말:
드디어 챕터 1 번역을 끝냈네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고유명사 번역이 한 번 번역하면 계속 안고 가야 돼서 이걸 직역할까, 발음대로 부를까, 아니면 그냥 적당히 현지화할까 하고 고심을 했는데, 결론은 여기 나온 건 대부분 현지화였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스라크 캐릭터의 원작에서 이름은 Scythe인데, 이 건 발음대로 부르면 "싸이드"여서 원래 뭔 뜻인가 싶고, 그렇다고 직역을 하자니 "낫"은 영 이름이 안 살고... 로컬라이징으로 "서슬", "서스라"라고 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냥 직관적으로 블레이드라는 이름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주인공인 파이리도 원작에서의 이름은 파이리의 영칭 Charmander의 앞글자인 Char였는데, 이 것도 로컬라이징해서 앞에 "파이"가 붙은 화염 관련 단어인 "파이로"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의 파이가 영어로 할 때 파이어의 파이는 아니지만요.)
이 팬픽에서의 중요 개념인 the Call을 번역할 때 그냥 "부름"으로 번역을 해버리면 뭔가 없어보일 수가 있어서 앞에다가 "소환의" 부름으로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어느 정도 스포일러성일 수도 있지만 이 개념의 언급 자체는 이야기 내내 꾸준히 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