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절대로 이런 류의 질문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린 것 같습니다.
글이 좀 길고 두서가 없더라도 읽어주시고 조언을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
그녀를 처음 본 건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막 복학한 저는 너무도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할 때였습니다.
같은 과라 수업도 같이 듣고, 이름과 학번 정도는 알았지만 특별히 이야기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지나치며 인사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학기가 시작하고 몇주 후, 교수님 한 분의 연구실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정말로 우연히 그녀 역시 그 연구실 멤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런가 보네, 조금 신기한데 이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 수록 점점 그녀가 생각날 때가 많아졌습니다.
사실 참 예쁘장하고 차분해 보이는 스타일이라 호감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제 마음이 자꾸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수년 전에 만났었던 다른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던 때라
'예뻐보인다고 관심을 갖다니 너도 어쩔수 없는 놈이구나' 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마음을 감추려고 애를 썼습니다.
수업시간에 아무 핑계나 만들어서 말이나 걸어봐야지,
혼자서 요리조리 동선을 생각해보며 여기쯤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 볼까,
모임 자리에서 만나면 친한 척 해야지 이런 생각들은 수도 없었지만
제가 적극적이지 못한 탓도 있었고, 제 감정이 너무 복잡할 때라 흐지부지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월말이 되었습니다.
마침 연구실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직 세션이 시작하기 전이고 다른 사람들도 없어서 몇 마디 해봤는데
말 몇 번 하는 그 순간이 그렇게 들뜰 수가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대화는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어색함 없이 서로 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그녀를 많이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학을 하고, 이번학기는 수업 하나가 겹친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연히 제 옆에 빈자리가 있어 그녀와 같이 앉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저는 책을 안 샀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같이 앉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번주 일요일에는 용기를 내어 밤중에 그녀에게 전화했습니다.
연구실 일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수업끝나면 한번 보자고,
예상외로 그녀는 별 생각없이 알았다고 하고는 이번주 월요일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세시간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며, 왜 그렇게 그녀에게 빠져들었는지 알듯 했습니다.
눈빛이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사람과 쏙 빼닮았거든요.
약간은 느릿하면서도 또박또박한 착한 말투, 어조, 목소리 톤
표정이나 분위기 등등 모든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첫인상은 참 차분해 보였지만, 이야기를 해보니
이렇게 솔직하고 말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그러면서도 착하고 가녀린 듯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한번 용기를 내어 수요일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해서 점심도 같이 먹었구요.
하지만 왠지 그녀와 가까히 있었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사흘간을 생각해 보면
무언가 자꾸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우선 직접 묻질 못해서 그녀에게 이미 좋은 사람이 있는지조차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원래 핸드폰하고 친하지 않은것인지 몰라도 답장을 잘 안해줍니다.
아까도 밥먹고 잘 먹었다고 수업 잘 들으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도 없구요.
첫날 만났을 때 오늘 나와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나와줘서 고맙다 이런말 안해도 되요' 하는 걸 보면
제가 어느사이에 그녀를 부담스럽게 해버린게 아닌가 합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만약 그녀가 저를 부담스러워 한다면 참 마음이 아플 것 같네요.
너무 오랜만에 마음을 가다듬고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것이라
정말 신중해지고 싶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정말로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저는 세학번 차이나는 같은과 선후배 인데다가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사람도 같은과 였으니 사이가 틀어진 후에 서로에게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어서
거절당해서 어색해지고 부담스러워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너무 큽니다.
같은 수업도 있는데 말이죠.
그녀에게도 미안하고 저에게도 힘든 일이 될 테니까요.
한마디로 지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포기하기도 힘든 제 마음입니다.
적극적으로 나가서 그녀가 부담을 느껴 거절당하고 서로 어색해져 틀어져 버릴까봐,
포기하다가 제 마음이 타버릴까봐,
아니면 애초에 그녀에게 이미 좋은 인연이 있을까봐,
가벼운 나이도 아닌 제가 봄날 쌀쌀히 내리는 눈처럼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억제할 수 없는 격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여기 계시는 많은 분들께 여쭤보고자 긴 글을 남깁니다.
좋은 밤 되시길..
----------------------------------------------------------------
ps)예전에 모진종님이 자게에 올리셨던 글이 기억납니다.
대체 질게에 연애상담글을 올리는 이유를 알수없다, 그런 글이었는데
맞아맞아 끄덕끄덕 하면서 그 글을 읽었던 제가 오늘에 와서 이런 글을 올리려니
참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