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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28 11:12
전시과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과전과 시전이죠.
하지만 과전과 시전은 시정->개정->경정 전시과제도를 거치면서 받는 폭이 축소됨(산관포함->산관미포함)과 동시에 각각 대상에게 주는 전시과의 양 자체가 줄어들게 됩니다. 또, '문벌'이 되기 위해선 아들대대로 세습을 해 주어야 그게 다시 '문벌'이 되는건데, 그러자니 과전의 경우엔 세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문벌'이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한편 5품 이상의 관리는 아들이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게 되고, 또 5품 이상의 관리의 경우 공음전을 '따로' 받기 때문에 '문벌'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교과서 문장인 ''관리에게 보수로 주던 과전과 달리, 문벌 귀족의 세습적인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것은 공음전이었다.'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티티님께서 말씀하신 질문에 요약하여 답하자면 1. 과전은 전시과의 일종이다.(전시과 = 과전<전지>+시전<시지>) 2. 5품이상의 관리는 과전도 받고 공음전도 받는다. 왜냐하면 과전과 공음전은 별개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09/01/28 11:34
추가하자면요,(추가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지는 모르지만)
왜 느닷없이 '문벌'양성에 국가가 나섰는지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리면,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은 송나라입니다.송나라(북송)는 여러면에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제국주의였는데요, 군사적 수단보다는 문화적 (그리고 돈으로 평화를 사는) 수단을 통해 주변국을 압도해나갔습니다. 송나라는 말그대로 '지식경제'를 통해 이 모든 부강함을 누렸지요. 그런 지식경영의 핵심이 '관료'입니다. 그것도 유학을 통해 세련된 관료.그 관료들이 송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힘이었지요. 고려도 이것을 지향하였는데,매일 손이 바뀌는 관리들로는 안정된 문화를 재생산해낼 수 없다고 보고,'문벌'을 양성하기 위해 '공음전'과 '음서'제도를 도입합니다. 즉 세습되는 까닭에 안정적으로 당장 돈이 되지는 않지만 국가적 자산이 될 문화역량을 개발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후원이 고려시대 어는 임금때 시작되었는지를 보신다면,고려사를 보기에 훨씬 좋을 것입니다.이 결과로 고려의 문화적 지식가치가 급상승,불경연구의 경우는 오히려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고,유학연구도 진전이 있었습니다.김부식처럼 학자권력가들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다만,아시다시피 이런 문벌위주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곧 드러나지요. 소외된 무신들의 반란을 촉발시킬수 밖에 없었는데요,바로 문벌들의 지나친 '송나라중심의 사대주의'에 대한 무신들의 민족주의가 대립하는 양상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09/01/28 15:47
起秀님// 그러면 아래와 같이 이해하면 되는거겠네요.
전시과 : 전지(과전) + 시전(시지) 그 외에 별도의 제도로 공음전, 군인전, 한인전 등등.. 전 지금까지 전시과라는 제도 아래에서 5품 이상에게는 '공음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지, 시지를 주고, 군인들에게는 '군인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지, 시지를 주는 줄 알았는데 잘못 이해하고 있었네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happyend님//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저도 많이 배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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