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이전 질문 게시판은 새 글 쓰기를 막았습니다. [질문 게시판]을 이용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1/06/28 22:57
157 던지는 투수가 없었죠. 아무도......
그리고 박찬호만큼 끈기 있게 노력하고 동화되려고 한 선수도 없었구요. 그냥 레전드입니다. 레전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이만한 선수 나오기 힘들죠.
11/06/28 23:06
당시만해도 실력은 임,조>>>>박 이었습니다.
임선동과 조성민은 차이가 많이 없거나 임선동의 우위였지만 이 둘과 박찬호 간의 갭은 매우 컸죠. 임,조는 완성된 투수였습니다. 반면 박찬호는 빠른 공과 짐승 하체를 가진 원석이었습니다. 당시엔 제구고 뭐고 없었죠. 므르브는 잘 가공된 보석보다 원석을 택했고, 박찬호는 임,조에 비해 성실한 운동 선수였고, 자신의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완성단계를 쌓아가며 보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네요.
11/06/28 23:12
박찬호 선수가 지금 한화와도 1선발은 류현진 선수죠.
실력저인 게 문제가 아니라 박찬호 선수 정도의 노장선수에게 1선발이라는 부담감을 주지 않겠죠. 에이스는 실력적인 면도 중요하고 이닝도 많이 먹어줘야하고..
11/06/28 23:16
일단 어깨가 탈아시아급.. 선수 본인의 노력과 성실함 에이전트 스티브 김의 도움. 피터 오말리 구단주의 사랑 등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죠.
11/06/29 02:11
당시에 박찬호 선수는 투수 랭킹 4위급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에 이어서.... 지명을 빙그레가 했었을건데 그때 아마 계약금 문제 때문에 어긋나서 메이저로 방향을 틀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박찬호 선수는 정신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IMF 상황도 있었고.... 또 하나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도 어쩌면 박찬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1/06/29 02:26
근데 박찬호선수가 한창 전성기일때가 약쟁이들의 전성기와 맞물린다고 들었는데...정말 그렇다면 박찬호선수는 레알of레알 인건가요? 설명좀...
11/06/29 03:05
박찬호의 성공요인으로는 "철저한 현지화" 를 첫번째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에반에 김병현의 성공요인은 "자신감 넘치는 자신만의 주장" 이었고요.
철저하게 미국의 방식을 따른 박찬호는 그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흡수, 결국 메이저리그 최고수준의 선발투수의 자리까지 올라서게 됩니다. 이에반해 김병현의 경우 자존심을 세우고 (자긍심을 갖다..라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요?) 내가 최고다! 라는 마인드로 무장하여 MLB 최고의 소방수가 되었고, 선발투수로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메이저리거였던 "투수" 들은(추추는 아니고, 빅초이도 어느정도는 성공했으니) 결국 이도저도 아니었던 거죠. 세월이 흐른 지금 김선우나 서재응에게 김병현 만큼의 깡이나 박찬호 만큼의 현지적응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빈슨감독이 양아들처럼 여긴 오카모토에게 밀린 김선우와 투수코치의 선택에서 밀린 서재응...안타까웠죠. p.s. 박찬호선수의 전성기는 97년~2001년 입니다. 연평균 15승을 거뒀구요, 방어율은 3점대 중반을 마크하던 시절이었지요(99년의 5.23을 제외하면 더내려갑니다!) 98년 전설의 약쟁이 두명이 70홈런을 놓고 경쟁을 했고, 2001년에는 지상에 강림하신 약신이 73홈런을 때려낸 시즌이었지요. 당해시즌 71~72호 홈런이 바로 박사장님에게 뺏어낸 것 이었다는거;;; 그리고, 한만두를 기록했던 세인트루이스의 패르난도 타티스 역시 약물빨 이었다고 하고...어쨌든간에 박사장님의 전성기에 약쟁이들의 전성기가 맞물렸다는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패드로마르티네즈를 더더욱 대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