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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15 16:51
적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부로 몸을 노출해서 실질적으로 자살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있지만, 예전부터 왜군은 상선의 장루를 집중저격 했었습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께서 적탄에(노량말고) 맞으신 적도 있고요. 예전부터 위험성이 있었죠. 그리고 위험성으로 따지면 명량이 훨씬 높았습니다. 울돌목에서 초기 전투는 김응함과 안위가 오기 전 까지 상선 혼자 나가서 틀어 막았습니다;;
전장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전술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삶과 죽음은 어디까지나 운명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운명이 이순신 장군께 있었기에 그렇게 위험한 전장 속에서도 살아 남으시다가 마지막 전투에 운명을 다하셨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11/04/15 17:52
이렇게 물러가도 언제 또 일본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자기 없으면 수군 또 옛날 꼴 날 수도 있다는걸 아시면서 일부러 죽음을 택하시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장군님 성격이라면 안좋은 일이 닥쳤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다시 올지 모를 위기에 대비하고 계셨을 것 같네요.
11/04/15 18:14
제가 아는 사학과 석사님 말씀에 의하면
마지막 전투에서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는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는게 현재 분위기 라더군요.........;;;;;;;;;;; 그근거로 선조때 왜란에서 공을 세운사람들은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분위기 였고 만약 그 전투에서 이순신이 살아 돌아오면 목숨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선조는 왕이 될 수 없었는데 왕위를 계승받아서 그런지 왕의 자리에 굉장히 집착을 했고 덕분에 자기보다 잘난 사람은 아들이라도 가만두지 않았다고 하더 군요 광해군도 선조 죽기 직전까지 속된말로 개고생을 했다고 전해 지고요) 마지막 전쟁때 돌아가시고 2번 이장을 하셨는데 첫 이장때 장례식때에는 없었던 시체가 갑자기 출현했다는것 이라죠
11/04/15 22:02
사학과 석사님은 좀 심하셨네요. 물론 충무공이 살아계셨으면 모함크리 or 곽재우식 은퇴크리였을겁니다. 그런데 확실히 임란 해전때 장교와 일반병사의 사상자 비율만 봐도 장교쪽 비율이 압도적입니다. 실재로 충무공도 이전에도 피격을 당한 일이 있구요. 왜군들도 당연히 장수들을 노렸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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