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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1 12:01
저도 재미로 읽은 책을 통해 한 번 접했을 뿐이지만, 답변이 없어서 달아봅니다. 멋도 모르고 달아놓으면 PGR의 다른 전문가분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첨삭해주시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
물론 읽으신 진술이 모든 '증상'의 모든 '피분석자'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만, 라캉 철학의 다른 개념들과 엮는 예시로서는 얘기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라캉 철학의 특별한 용어 등은 사용하지 않아볼게요~ 다른 얘기에서 시작해보자면, 아마 책에서 보셨겠지만, 나란 존재는 사실 현실의 언어, 감각적 정보로 온전히 표현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없다면 사실 자신이란 존재도 없습니다. 만약 별도 달도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아기인 상태의 자신이 있다면 자신에 대해 인식하는 게 매우 힘들겠죠. 여기서 현실과 진정한 나 자신의 첫번째 괴리, 갈등이 생깁니다. 스킵하자면, 결과적으로 '현실로 설명이 되는 나'와 '현실로 설명이 되지 않는 나'가 구분됩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여기서 욕망의 원인인 '결여'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보통은 상상의 나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현실의 나 또는 현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걸 부끄럽다고 인식하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고 하구요. 피분석자가 위기를 느끼는 건 타자(주변 지인 등)의 반응을 통해서일 경우가 많을 겁니다. 타자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증상'을 알아차리는 동시에, 그 '증상'에 대해서 스스로 자각하고 자아의 구성요소로서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 순간부터 무의식의 자아는 그 '증상'을 자신만의 진정한 구성요소로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실로 설명이 되지 않던 한 부분 또는 결여'가 밝혀진 것으로 이해하고 그 '과정'을 욕망하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건 무의식의 얘기라 현실의 언어(언어나 기호, 그림을 통한 자신의 상상조차도 사실은 현실의 영역이라고 하네요)로는 표현되지 않습니다. 분석가들은 이걸 미묘한 태도나 억양, 단어선택 등을 통해 유추(라캉의 이론에 따른다면)하겠죠. '무의식적으로 증상이 예전의 만족을 제공해줄 수 있게 되는 것일 뿐'이란 얘기는 정확한 해석은 없겠습니다만, 위의 제가 말한 예시로 보자면 '이제는 나 자신은 증상을 인식하되, 타인이 인식해서 나를 방해하지는 않는 수준으로의 적절한 조치'를 원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실무를 하는 사람도 아니니 뭐라고는 못하겠지만, 철학이라는 게 사고실험에서 비롯된 이론적인 얘기가 많다보니 이론과 완전히 대응하는 사례를 찾는 게 힘들 것 같긴해요. 철학에서 가끔 보이는 쩌는 비유라는 건 근본적으로 그게 몇 개 없어서 더 주목받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17/02/22 03:11
우와! 너무 좋아요ㅜ 정성들여 답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쩌면 좀 재미없는 질문으로 보일수도 있어서 답변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잘 설명해 주신 덕분에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
harutada님이 써주신 다섯번째 문단, 특히 이 구절 "...그 순간부터 무의식의 자아는 그 '증상'을 자신만의 진정한 구성요소로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실로 설명이 되지 않던 한 부분 또는 결여'가 밝혀진 것으로 이해하고 그 '과정'을 욕망하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부분이 제 궁금증을 풀어준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라캉 관련된 글엔 좀 수수께끼같은 부분이 많다고 느껴요. 하지만 그만큼 자극적인 아이디어도 많아 매력적인것 같네요. harutada님은 재미로 단 한 번 접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느끼기엔 달아주신 답변에 뭔가 내공이 느껴지네요 헤헤 이론과 완전히 대응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은 저도 공감해요. 라캉같은 경우는 문학 평론하시는 분들이 많이 인용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논리에 약한 편이라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례나 작품 등으로부터 많이 도움을 얻는 편인데, 라캉은 영화같은 매체에 비해 유난히 문학 쪽에서 사랑받는 것 같다는게 제 느낌입니다 흐흐 다시한번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
17/02/21 12:04
글쓰신 분은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공포'라고 말해주셨는데, 라캉에 관한 이론만은 아니지만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는
죽음은 영원한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고통이고 공포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한 상실로 인해 욕망이 충족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탈출구로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욕망한다. 는 식의 진술도 있더라구요.
17/02/22 00:30
인용하신 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향유(주이상스Jouissance)'입니다. 이 개념은 라캉이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개념과 칸트의 '숭고'개념을 참고하여 발전시킨 것인데요 간단히 말하면 '고통(불쾌)속의 쾌'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운맛은 통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뇌에서는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한다고 하지요. 또 마라톤에서 러너가 러너스하이 상태가 되는 것은 극한의 고통을 겪은 이후입니다. 이처럼 고통 속에서 쾌를 얻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입증 가능한데요 이런 쾌는 또한 중독성이 강하여 한 번 맛보면 끊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17/02/22 03:26
Reppo님 감사합니다! 저는 향유라는 단어를 어떤 자족적인, 타자에 얽매이지 않은 느낌으로 이해하고 있었어요. '고통(불쾌)속의 쾌'로 설명해 주시니 뭔가 잘 맞아 떨어지네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해주신게 아닌가 싶군요. 칸트의 '숭고'개념은 좀 생소한데 알아보도록 할게요! 이해에 도움 주셔서 다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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