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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17 12:32
http://redtea.kr/?b=3&n=3170&c=45307
여기 기아트윈스님 댓글 중간에 그 이유에 대한 한 학설이 나오네요. 전기공학도라는 닉네임이 바로 저인데, 좀 심하게 무식한 댓글을 달아서 부끄럽긴 합니다만..;; 양해해주세요.
16/10/17 12:40
아, 오랜만에 이 글에 제가 달았었던 댓글들 읽어보니까, 무례하고 무식하고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네요. 읽으시면 상당히 개연적으로 불쾌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ㅠㅠ
16/10/17 12:41
유교 때문에 중국의 통일이 가능했다면 유럽도 기독교 때문에 통일이 됐을 겁니다.
중국사에 등장하는 민족은 크게는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족과 만리장성 이남의 한족으로 구분됩니다. 만리장성 이남에 다른 민족도 존재하는 상태이긴 하지만 인구에서 한족이 절대 다수죠. 거기에 유목민족은 서로 혈통을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반면에 유럽은 북유럽의 바이킹과 스페인의 라틴족, 아일랜드의 켈트족 사이에 유사성이 없고 어느 한쪽이 넓은 지역에서 장기간동안 우위를 점한적이 없습니다. 민족 간에 언어, 문화의 차이가 매우 컸죠.
16/10/17 12:54
기독교와 유교가 각각 그쪽 지역을 지배했던 종교, 학문이지만 제 생각에는 유교쪽이 좀더 통치학? 같은것에 가깝지 않았나 해서 생각해 본거였습니다.
동아시아쪽보다 유럽쪽이 민족간의 언어와 문화차이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16/10/17 12:59
물론 동아시아의 종교들은 기독교 보다 통치이념으로써의 경향이 강하죠.
근데 중국사에는 유교 못지않게 도교,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진, 당 시대에는 도교가 지배층에 큰 영향을 줬고 (당나라 황실이 노자의 후손을 자처할 정도) 원나라는 불교(특히 티베트 불교)가 중심이었죠. 오히려 종교만 놓고 본다면 종교로 인한 분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6/10/17 13:04
유교가 생각하는 것 만큼-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군요. 그러고보면 동아시아쪽은 종교전쟁이 없었던것도 신기한것 같습니다.
16/10/17 12:43
총균쇠에서 그 이유를 분석해놓은 게 있는데,
유럽은 중국에 비해 해안선과 지형이 좀 더 복잡하고, 그레이트브리튼 섬이 일본열도보다 더 가깝게 본토에 위치해 있어서 중국보다 통일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16/10/17 12:56
지형적인 영향도 클수 있었겠군요.
유럽이 중국보다 해안선과 지형이 복잡하다는건 이해가 가는데 브리튼섬이 일본보다 가까이 있다는것은 섬의 세력이 대륙에 영향을 주기 더 쉬워서 그런걸까요? 일본처럼 떨어져 있으면 따로 놀게 되고요?
16/10/17 13:00
네, 영국의 경우 지속적으로 대륙에 대한 견제를 해왔죠.
실제로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본토를 거의 통일시켰어도 결국 영국이 지속적으로 방해공작을 했고, 끝내 정복시키지 못했으니깐요. 일본이야 뭐, 근대 이전까지는 중국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했죠.
16/10/17 12:44
봉건제의 유무와 이민족 문제가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진나라의 통일 이후에 얼마 못가 다시 분열했던건 진시황의 폭정도 있지만 봉건제에서 각 나라의 권력집단이던 자들의 반발이 컸을겁니다. 실제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봉건제를 실시해 춘추전국시대랑 비슷한 상태로 돌아갔는데 이걸 다시 한이 통일을 시키고 공신들을 철저하게 숙청해서 나라내에 황권 위협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죠.. 그 이후에 이민족이라할 수 있는 흉노족의 중원진출도 막아내고 군국제를 거치면서 각 지역을 독립된 나라가 아닌 한나라의 관할 지역으로 다스려 나가기 시작하죠.. 이민족 문제에 대해서도 중원에 사는 사람들 이외엔 오랑캐라고 하면서 섞이지 않는 것을 우선시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중원 사람끼리는 하나의 민족이란 개념이 생겼을듯 합니다. 실제로 이민족이 대거 중원에 등장한 오호십육국시대에는 수백년간 중원이 각 민족벼롤 세운 여러나라로 찢어진채로 살았으니까요.. 뭐 나중엔 그 이민족까지 한족으로 흡수시키긴 합니다만.. 로마의 경우 영토면에서 후계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 왕국이 상속문제로 인해 3개의 국가로 쪼개지면서 각자 사는게 자연스러웠던듯 합니다 거기다 봉건제로 인해 큰 규모의 나라라는 개념도 희박했고 왕도 영주의 지원없이는 전쟁을 치룰 수 없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정복전쟁을 하기 어려웠던듯 합니다
16/10/17 12:47
고대 로마 제국 전성기의 영토를 쪼개보면, 결국 로마화되지 않았던 게르만족에 의해 성립한 프랑크 왕국- 이후의 샤를마뉴 제국과 로마 그 자체인 비잔티움 제국, 이베리아-북아프리카-중근동 등 이슬람에게 정복된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을텐데, 이 셋은 통일전쟁 운운하기에는 너무 다른데다 덩치마저 크죠.
그리고 샤를마뉴의 제국은 (이전 메로빙거 시대에도 그랬지만) 게르만족 특유의 분할 상속제 덕분에 나라가 쪼개지게 되죠. 그리고 본격적인 중세 이전 시대 서유럽에야 국가나 국민의 개념이 없었다고 봐야죠. 왕가가 세습해서 소유하는 재산 비슷한 개념이고, 합법적인 분할상속에 의해 나눠지게 된 것이니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명분도 없었죠. (샤를마뉴에게 그랬던 것처럼) 교황 같은 존재가 로마 황제 명분을 부여해주면 그나마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샤를마뉴의 후계자 드립을 칠 만했고,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칭했던 오토 1세가 서프랑크 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게 그 때만 해도 여전히 카롤링거 왕가가 유지되고 있었죠), 베르됭 조약 이후 분할된 프랑크 제국은 결국 10세기 후반에 이르면 카롤링거 왕조의 혈통이 모두 단절되면서, 옛 서프랑크 땅의 주인과 옛 동프랑크 땅의 주인이 아예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선출됨에 따라 누군가가 이제 거기 내 땅이라고 주장할 합법적인 명분도 없어지게 되죠. 중국의 유교적 국가관과는 달리, 중세 이전 서유럽의 정황은 그러한 국가관이 성립되지 않았고 (로마 제국 시대에 서유럽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게르만족의 침입 때 싹 포맷되었을 것이고), 국가를 왕가의 세습사유재산 비슷하게 보고 분할 상속을 시행했던 것과 이어 나타난 봉건제가 쐐기를 박지 않았나 싶습니다.
16/10/17 13:15
긴 답글 갑사합니다!
로마의 영역이 하나의 문화권이 아니었다는 거군요. 하나의 문화권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갈라졌다고 봐야할까요? 아니면 완전 다른 문화권이라고 봐야할까요. 게르만족이 동아시아처럼 장자상속이 아니라 분할상속제 였던것이 영향이 클수밖에 없겠군요. 내려갈 수록 갈라지는데 똑 적법한 상속이니 통합의 명분도 없고요.
16/10/17 13:53
저는 속주민의 '로마화'가 상당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각지에 로마식 도시를 세우고, 속주민이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고, 오늘날 유럽 각국의 언어에까지 공통된 흔적이 남아 있을 만큼 라틴어가 널리 쓰였죠. 그리고 속주민들을 로마화시키는 훌륭한 도구로써 로마 시민권 부여가 기여한 측면이 상당히 있는데 (제한된 권리만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해 주었는데, 물론 공짜로 한 게 아니라 로마에 대한 충성-공헌이나 재산의 출재, 군단병 복무 경력 등이 있다면 시민권을 줬죠.)
212년에 이르면 (카리칼라 황제의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내 자유민이라면 모두 로마 시민권을 부여해주는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아집니다. (혹자는 이에 관해서 세수, 병력 감소는 물론 거저 로마 시민권을 퍼준 탓에 속주민들이 로마화할 동기가 상실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반면 오히려 세수 증대와 로마의 일체화에 기여했다고 높이 평가하는 주장 역시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여튼, 굳이 로마의 내적 통일성을 따져보지 않아도 게르만족이라는 외부에 의한 포맷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동로마 제국은 여전히 보편 제국으로서 (로마 제국 특유의 권력계승과 관련한 정치불안이 여전했지만) 오랜 맞수이던 페르시아 제국을 결정적으로 물리치기도 했고, 비록 그 절정의 순간에 이슬람 크리를 맞아서 마구마구 털리긴 했지만 결국 천 년을 더 살아남았으니까요.
16/10/17 14:30
제 생각보다 "로마화"가 많이 되어있었군요.
하지만 게르만족이라는 외부 요인과... 그리고 로마가 동로마 제국이라는 로마제국이 남아있다보니 다른 세력이 유럽을 통합할만힌 명분도 없었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16/10/17 20:53
문화 자체가 잡아죽이고 씨를 말리고 하는것에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동시기 문화권에 비해 은주문화권의 잔혹도는 상상을 초월했다고들 하죠. 이민족들은 교화와 교류의 대상이 아닌 싸그리 목베 죽여야하는 존재로 여겼으니말이죠. 진대의 파촉 정벌이라던가 초 정벌등 이민족 문화권에 있어 유난히 잔혹했습니다.
16/10/18 12:30
그러고보니 중국이 타문화권에 비해서 학살에 좀 관대한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은나라때부터 묘족의 대학살이 있었을 거라는 것도 본것 같고... 초한지를 보니 학살을 엄청나게 한 항우를 영웅으로 보는것보면;; 유독 대규모 학살이 많고, 거기에 관대했던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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