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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6 18:05
태종 이방원도 1차 왕자의 난 이후 국왕으로 즉위하기까지 딱 2년이 걸렸습니다.
결국 명분과 사전에 다지기가 필요했던 거죠.
18/06/26 18:16
준비기간이 그만큼 걸렸던 거죠.
쿠데타 성공 후에 일단 군 내부부터 장악해야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전이니까요. 그리고 북한을 경계하면서, 미국과 일본도 신경써야했어요. 쿠데타의 성공과 정권장악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시간문제'이지만, '시간이 필요한 문제'기도 하죠. 할 일들이 많으니까. 그러면서 개헌을 준비하는데, 개헌은 국민투표로 이뤄지기 때문에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그러면서도 박정희가 당선될만한 개헌안을 만들어야했습니다. 그리고 쿠데타 이전까지 듣보잡이었던 박정희의 이름이 대통령에 당선될만큼 알려질 시간도 필요했고요. 대통령당선도 되어야하고, 총선에서도 승리해야합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18/06/26 18:17
(수정됨)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계엄령을 해제하고 국회와 정치가들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은 다음 투표를 통해 당선이 되어야 하는데 쿠데타 직후의 군인이 투표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높지가 않겠죠..
전두환은 유신헌법하에 체육관 투표를 했으니 바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박정희때는 그렇지가 않기도 했고 내각제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돼도 크게 의미가 없죠.. 일단 개헌해서 대통령제로 돌려놓고 자기가 투표해서 당선될만큼 인지도를 쌓아놓는 시간을 번거로 보입니다.. 그리고 계엄상태여야 방해없이 탈법적인 행위들을 할 수 있지 정상적인 정치상태에서 대통령으로는 운신의 폭이 오히려 좁아지죠
18/06/26 18:20
전두환도 마찬가지죠. 12.12로 사실상 최고 실세가 되었지만 좀 기간을 두고 대통령 선거(그것도 체육관 선거였지만) 나선것처럼요.
18/06/26 18:57
516이 다른 나라 군사 쿠데타와 달랐던게 군사 쿠데타 불과 일년 전에 315 부정선거 했다가 정권이 뒤집힌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선거 없이 대통령 직에 올랐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선택지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박정희는 남로당 고위직 이력 떄문에 미국으로부터 계속 의심을 사고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 초기부터 미국의 승인&지원을 받는 남미쪽 쿠데타 지도자들과 입장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혁명위 하면서 일단 눈에 보이는 치적을 쌓고 미국 방문해서 승인 받고(일본쪽 커넥션 강조하면서 한일 재수교와 한미일 동북아 방어체제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을거라고 봅니다만) 선거라는 제도적인 과정을 거쳐 대통령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18/06/26 19:02
민주주의국가인 이상 내가 지금부터 대통령할거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선거를 치뤄야하지요. 그런데, 시대가 시대이며 인물이 인물이니 당연히 부정선거를 저질렀을텐데도 2위와 1%차이로 겨우 당선될 정도였으니, 만약 쿠데타 이후 바로 투표를 진행했으면 떨어졌을 겁니다.
18/06/26 21:06
(수정됨) 쿠데타전에 대통령은 형식상 국가원수고 실제 권력은 장면 총리가 쥐고 있었습니다.
군정상태에서 아무 실권없는 대통령으로 자리로 간다는건 스스로 권력을 내팽개치는 일이니 대통령이 되기전에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게 더 먼저할 일이죠,. 장면총리나 훗날의 최규하대통령이 쿠데타가 일어나자 매우 겁에 질린것과 다르게 윤보선 대통령이 쿨하게있을수 있던 이유죠. 실권을 쥔적이 없으니 심한일을 당하거나 뭔가를 잃을까봐 걱정할거리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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