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상암 하늘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선선한 날씨와 저녁 시간을 맞춰 찾아가면 황금빛 노을로 불타는 억새밭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6년 전 기억임에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다시 갈 날을 손꼽다 이번에 기회를 잡았습니다.
6년의 시간이 지나 유부남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습니다. 사람도 적고, 풍광이 끝내주는 곳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좋은 날씨 덕분인지 첫눈에 들어온 것은 장사진을 이룬 맹꽁이열차의 대기줄이었습니다.
맹꽁이 열차는 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공원 입구를 향해 걸어올라가야만 했어요.
하늘공원 입구로 가는 길은 크게 3코스가 있는데, 2코스는 쉬운 평지길을 아가는 길이고 하나는 계단을 통해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저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직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선택했습니다.
내려오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폭이 좁은 계단이었지만
계단 입구, 중간, 끝나는 곳에 안전 요원이 상황을 통제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멈추는 사람, 숨이 가빠 한쪽에서 쉬는 사람, 애견을 동반해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발견하면 간격을 조율하면서 사고를 방지하고 있었습니다.
15분 정도 올라갔을까, 하늘 공원의 입구가 보입니다. 커다란 네모형 들판에 사이사이 길이 뻗어 있었지만
어느 길목 하나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들판 전경을 보여주기 위해 2층짜리 전망대인 하늘전망대 부근으로 갔지만
안전등급에서 좋지 않은 평가가 나왔다는 이유로 임시폐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깔끔한 데이트를 약속했는데 인파는 많지, 전망대는 못 올라가지 조금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한강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야경을 보여주마. 아내의 손을 잡고 공원 끝 난간으로 갔지만 나무 바운더리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대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보고 아내에게 기대지는 말라고 얘기를 하려던 차에 안전 요원이 다가와
한 명씩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투덜댔지만 한 걸음 뒤에서 찍어도 여전히 잘 나왔을 겁니다.
억새는 충분히 봤다 싶어 다시 계단을 통해 외부로 내려가려니 수백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안전 요원에게 물어보니, 날씨가 어두워져 계단 하행이 위험할 수 있어 통제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내려가는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 10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30분을 서서 기다렸으니 꾀나 천천히 내려보낸 셈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야식을 먹으며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태원의 사고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가본 길이고 살면서 익히 해본 경험인데 누군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하늘공원에서의 일을 되돌아보니
떠오르는 것은 억새와 노을이 아니라 안내 요원들이 보여준 모습이었습니다.
계단에서 안내를 맡아주던 요원들, 맹꽁이 열차의 승하차가 있을 때 앞뒤로 시민이 있는지 여부를 살피던 요원들
난간에 수십 명의 사람이 기대자 떨어지라고 안내해주던 요원들, 사고를 대비해 폐쇄해 놓았던 전망대의 조치까지.
사고는 어디서나 생길 수 있지만 예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잊고 지나쳐 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일상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도움이 떠받치고 있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습니다. 저 사고를 두고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요.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지만, 안전한 행사를 위해 힘써 주신 요원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적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사소하게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