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하루죙일 게임하다가 몸이 너무 찌뿌둥 한 거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뒷골이 띵~~ 하며 현기증이 와서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아… 이렇게 게임만 하다가는 골로 가겠구나. 싶어 앞으로도 건강하게 게임을 즐겨야 하기에 잠깐 패드를 내려놓고 산책할 결심을 했다.
아직 해는 뒷산을 넘어가기 직전이어서 날은 밝았지만 또 그렇다고 햇살이 피부를 마구 쏘아대는 그런 따사로운 시간대는 아니었기에 산책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동네 뒷산 산책로를 걸으며 아까 잡지 못한 보스 공략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보스의 터무니없는 칼질은 내 칼에 의해 완벽히 튕겨졌고 보스는 내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늘 그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쑤시고 자르고 베고… 칼춤 추는 내 캐릭터에 보스가 괴로워 하며 쓰러지는 그림이 그려졌다.
계획은 완벽했다.
머리속 시뮬레이션으로 보스를 원트에 잡아 기분 좋아진 내 앞에 갈림길이 나왔다. 평소대로라면 평소 다니던 큰 길을 향했을 터인데, 하필 그날은 내가 엘든링을 하고 온 날이었다.
갈림길 표지판에는 ‘@@쉼터 200미터’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래에는
‘이 길 너머 무언가 있다.’
라고 적힌게 보였다.
그냥 무시하고 가려 했지만 호기심이 날 멈춰 세웠다. 엘든링으로 내 모험심이 충전된 이 날은 날 쉼터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그래. 이 동네 산지도 오래 되었는데 저쪽 길로 한번도 안 가봤다는게 말이 안돼. 이백미터 니까는 얼마 가지 않아서 나올거야. 어떻게 생겼는지만 보고 오자.’
계획은 완벽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도통 쉼터라고 할 만한게 보이질 않았다. 오분 정도 걸었을 때는 아직 멀었나 싶었고 십분 정도 걸었을 때는 다시 빽 할까 싶다가도 기왕 왔으니 고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전진하였다. 하지만 삼십분이 지나고 해도 뒷산 너머로 저물게 되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밤중에 산에서 길 잃어버리면 큰일 이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내려가야 겠다 싶어 몸을 돌려 내려 가려는데… 올라올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내려 가는 길목에 거미가 날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매사에 냉철하고 상황 판단 잘하는 내 눈에는 그 거미가 손바닥만해 보였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 두려움이 식은 땀이 되어 다시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주변에 막대기가 없나 찾아 보다가 적당한 것을 찾았다. 그것을 손에 쥐고 다시 거미를 올려다 보았다.
아니. 이럴수가. 손바닥 만했던 거미가 수박만해져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뒷걸음질 치다 나뭇가지를 밟았다.
‘뚜둑’
고요했던 그 산길에서 유난히 크게 울려퍼졌다. 거미 어그로가 끌렸나 싶어 바라보았지만 다행히도 그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쩌지. 안절부절 못한 내가 머리속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1. 당당하게 걸어가서 한번 물려보자. 저 거미는 연구실에서 탈출한 거미여서 물리면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
- 아냐아냐. 그건 너구리가 말을 하는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거야.
2. 거미가 날 기습하려고 할 때 횡으로 피한 후 막대기로 후려치자.
- 아냐아냐. 저새퀴는 팔이 여덟개야. 막대기 가볍게 한 손으로 막고 나머지 일곱개로 날 잡아 먹을거야.
이리저리 머리 굴려 보아도 도통 답이 나오질 않았다. 어디 땅바닥에 묘수라도 적혀 있을까봐 둘러 보았지만 그런 것은 보이질 않았다.
쉬바. 이게 다 그 표지판 때문이야. 쉼터도 없음시롱 있다고 구라쳐놓은거 때문에… 내려가면 구청에 신고 할거야.
결국 나는 정면 돌파 하기로 했다. 보통 몬스터는 캐릭터보다 달리기가 느리기에 후다닥 뛰어 내려가면 조금 쫓아오다가 말 것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쉼호흡을 한 번 한 뒤 죽기살기로 뛰어내려 갔다.
머리에 뭔가가 들러 붙은것 같아 손으로 머리를 타닥타닥 내려치고, 두려움을 이겨보고자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다리가 꼬여 나 혼자 넘어질뻔 하기도 하고… 온갖 지랄발광을 하며 내려왔다.
한참을 뛰어내려 온 나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때 내 앞에 불 켜진 비닐 하우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 쉼터라고 적혀 있었다. 비닐 하우스안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쉼터라고 되어 있는데 화투쳐도 되는 거야? 하긴 수박만한 거미도 봤는데…
집에 와서 엘든링을 켰다. 그 보스와의 일전은 완벽한 계획처럼 매끄럽게 되진 않았다. 이번에도 줄행랑을 쳤다. 어디 쉬운놈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집채만한 거미와 맞닥뜨렸다. 조용히 게임을 종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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