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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7 13:52:14
Name aur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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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도서]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



"과연 세계는 중국을 믿을 수 있을까?" 

본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던지는 화두입니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급속히 성장한 중국은 오늘날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최근 한 연구소의 예측에 따르면 2028년 즈음하여 미국의 GDP를 추월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중국은 과연 믿을 수 있는 대국이 될 것인가? 그 이웃들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패권을 추구할 것인가 혹은 공존을 택할 것인가? 오늘날 국제정치학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이며 이 책 또한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여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가 아닌 [China and her Neighbours: Asian diplomacy from Ancient History to the Present (중국과 그 이웃들: 고대부터 현재까지 아시아의 외교] 입니다. 따라서 본 저서의 의도는 중국이 고대부터 이웃국가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으며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에 대해 밝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 중국과 류큐왕국, 중국과 베트남, 중국과 필리핀, 중국과 말레이시아와의 역사를 축약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나라별로 하나의 챕터를 구성하고 있는데, 솔직한 소감으로는 대단히 피상적며 저자가 과연 이들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디테일의 측면이나 혹은 전체적인 서사(Narrative)의 측면에서도 오히려 나무위키보다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중간중간 [친중국적 프로파간다]를 삽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아 읽기에 다소 거북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예컨대 중국은 류큐왕국을 존중하였는데 반해 일본과 미국은 류큐(오키나와)를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폭행하였다는 식의 [규범적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방식의 서술입니다. 왜냐하면 외교와 역사를 표방하는 책이라면 도덕적 가치판단은 최소화하고 각 사건과 에피소드의 정치,경제 및 사회적 맥락을 보면서 차분히 서술해야 하지만, 본 저서는 미묘하게 특정 국가에 대해 [분노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의 상대적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베트남과 필리핀을 다루는 챕터에서 이러한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해당 챕터에서 저자는 일본의 학살과 미국의 학살을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베트남에서 행했던 만행, 그리고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 하면서 자행했던 학살을 자세히 소개하는데, 그 희생자가 수십만에 달했다고 얘기하면서 이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부각시킵니다. 아울러 특정 국가에 대해 서술할 때 그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중국과 적극적으로 외교하는 주체라기보다 객체처럼 그려지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그려지는 것은 중국인 디아스포라, 이른바 화교에 대해 서술할 때입니다. 특히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서술할 때 그 경향이 더 분명히 나타나는데, 저자는 필리핀 역사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주인공을 화교로 삼고 있고, 또 말레이시아에 대해 서술할 때에도 그 주인공을 화교로 삼고 있습니다. 그가 서술하는 역사에서 필리피노와 말레이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각국에 대한 챕터를 끝낸 후 보론으로 영토분쟁(6장)중국과 세계질서(7장)라는 챕터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여기서 저자의 진짜 의도가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는 현재 남중국해의 영해분쟁 관련, 중국 측의 주장을 비중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각국의 논거도 소개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명분이 중국의 그것에 비해 특별히 더 우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사실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비교적 평화적으로 해당 분쟁을 관리하고 각국이 공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세계질서라는 챕터에서 그는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린 서구권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중국은 역사적으로 패권적 야욕이 없었고 보호해야할 위성국도 없는 나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난 역사에서 중국이 받은 수모, 중국이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으로 싸웠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진 동맹국이 되었고 또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과 국교수립을 희망했으나 퇴짜맞았다는 점 등을 거론하는데 여기서는 정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의 동맹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었고, 중화민국의 동맹국으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불인정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중국 지도자들은 1946년 소련군이 만주에서 철수할 때 공장들을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하면서 외부세력에 손가락질 하고 있는데, 소련의 진군 덕분에 관동군이 두고간 군수물자의 상당수를 중국공산당이 차지했던 점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저자가 과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본 저서는 외교사나 정치사 혹은 일반 역사라기보다 정치적 목적으로 저술된 프로파간다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저자 마이클 타이(Michael Tai)는 비록 영국에서 수학했지만, 현재 베이징과기대에 몸 담고 있는 교수였습니다. 

원제인 China and her Neighbours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얉고 피상적인 책으로, 대단히 실망스러운 책이었습니다. 해당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께서는 다른 책을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며, 지정학적 관점에서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 지역을 서술한 책으로는 CSIS의 Michael R. Auslin이 저술한 [Asia's New Geopolitics: Essays on Reshaping the Indo-Pacific], 혹은 호주의 외교안보전문가 Rory Medcalf의 [The Indo-Pacific Empire: China, America and the Contest for the World's Pivotal Region]을 추천합니다. 

또는 동남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께서는 이미 국내학자 소병국 씨가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동남아시아사]를 참고하거나 혹은 2020년 최근 Yale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한 [In the Dragon's Shadow: Southeast Asia in the Chinese century] 를 추천합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ASEAN 국가들 모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또 중국과 어떤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들의 시각으로 풀어쓰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보는 동남아시아가 아닌 동남아시아가 보는 중국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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