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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1/31 14:41:12
Name 아타락시아1
Subject [일반]  결국 한 사람만 좋으면 되는 이야기
   사회 초년생이라고도 하기 애매한 그저 학교 공익 한 명이 느낀 학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야 말로 결국 한 사람만 좋으면 해피엔딩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교장선생님만 좋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이야기. 사실 사회경험이라는 게 전무한 저로서는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높으신 분만 만족한다면야 다른 분의 노력과 희생이 동반되어도 결국은 희극인 것이 사회생활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면 사과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사소한 사건이었죠.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신입생 등록을 준비하는 과정에 신입생들은 오는 길을 모르니 학교 등록하는 곳 까지 오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이미 학교에서 하는 일에 '내가 났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수정해서 처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낀 저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자는 마인드로 임한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 공사때문에 학교가 아닌 다른 외부건물에서 신입생 등록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죠. 그저 사회복무요원인 저는 주는 원본을 복사 붙여넣기 해서 전지인쇄만 하면 된다던 그 안내문은 놀랍게도 들여쓰기가 안되어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고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이 학교 건물이 아닌 불가피하게 다른 곳에서 등록을 한다는 안내문에 들여쓰기가 안되어있었습니다. 아무리 시키는 것만 한다고 하지만 그 안내문을 보는 순간 북쪽 지도자의 고개를 흔드는 이미지가 저절로 떠올랐고 저도 모르게 들여쓰기를 해놓고 전지인쇄를 했습니다. 그러자 글씨크기와 폰트를 고쳐달라는 피드백을 받았고 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문을 고딕으로 플로터 인쇄를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실무 경험자들이 다 반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텐데요.) 이제는 시키는 것만 해도 안되는 세상이 온 것인가. 심지어 그 바꾼 폰트는 가독성이 안 좋아지는 방향이었고 저는 여쭤봤습니다. 정말로 이 폰트로 하시는 것이 맞냐고 가독성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이죠.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저 네 한마디면 되었는데 말이죠.) 교장선생님 지시사항이라는 한 마디에 저는 시킨대로 인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선생님들이 머리를 쓰고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 정말 갓난아이도 목적지에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들은 교장선생님 입맛에 맞게 바뀌면서 점차 목적을 잃기 시작했고 저를 포함한 많은 교직원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의견이 여러사람의 집단지성을 묵살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반론조차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키는대로 안내 팻말을 붙이고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결국 저는 길을 잃는 학생들이 없도록 남는 팻말을 최대한 학생들이 찾아오기 쉽게 설치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고 마음의 위안을 삼았습니다.

  이 복수가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교장선생님 마음에도 들 뿐더러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길을 잃지 않고 안내대로 학교를 찾아왔거든요. 설령 길을 잃었어도 어쩜 그렇게 제가 있는 곳에서만 길을 잃는지 제가 알려준 덕분에 건물을 몰라서 고생한 학생은 없었죠. 사실 길을 잃어도 의미는 없었을 거에요. 진짜 학교생활 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도 당신이 좋다니 그걸로 좋은거겠죠.' 라는 생각입니다. 합리적인 생각은 방해가됩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XX인데 여기에 맞게 하려면 YY를 해야합니다 라는 의견은 그리 좋은 의견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최고결정권자의 심리상태가 중요하죠. 진짜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너가 좋다면 좋은거겠지. 

  다른 곳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개개인이 가진 합리적인 생각과 해결책들이 다소 비상식적이고 즉흥적인 상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들. 그 사이에서 단순히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내 생각을 고집할 것인가를 조율하면서 본인의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을 신경쓰는 것이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 그리고 여기에도 계신 많은 인생선배님들이 몇 십년동안 이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인생을 사셨다면 저는 그 분들에게 감히 존경한다는 말 밖에는,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는 말 정도만 드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소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고 어찌보면 불평하는 글입니다만 읽어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건만 결국 학교 정문에 들여쓰기가 안된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쓰게 된 글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구정연휴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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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31 14:59
수정 아이콘
들여쓰기가 안되있는 글은 너무나도 무서운 글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도 들여쓰기를 하셨군요.
한동안 들여쓰기의 존재를 잊고있었는데 댓글에도 들여쓰기를 하겠습니다
19/01/31 15:00
수정 아이콘
근데 장문 댓글이 아니라서 티가 안나네요..
맥핑키
19/02/01 04:42
수정 아이콘
보통 들여쓰기를 프로그램적으로 삭제합니다. 필요가 없다고 이과적(?) 으로 생각하거든요. 두개 이상의 공백이 반복되면 날려버리고 한개만 씁니다. 가끔 공백을 의도적으로 nbsp 등을 사용해서 시각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html 언저 자체가 소스에 입력된 공백을 표현하질 않습니다. db에 입력할 때 처음과 끝의 공백은 사실 데이터 낭비긴 해서...
19/01/31 15:04
수정 아이콘
작은 일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대세에 영향이 없는 작은 불합리한 일은 그냥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기는 자세가 이득이긴 합니다.
사회생활 하시다보면 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실 테구요. 이게 올바른 방향성은 아니지만요.
아타락시아1
19/01/31 15:12
수정 아이콘
아 작은일에는 뭐 영향받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이런생활을 해야한다는게 좀 안타까웠어요
괄하이드
19/01/31 15: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 근데 문단별로 공간이 한줄씩 띄워져있는 글(예를들어 본문같은 글)은 들여쓰기 안 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고딕체 본문은 발상이 좀 안습이긴 한데 크크 그래도 뭐 전지인쇄면 애초에 글자 크기가 커서 가독성문제가 심각하지도 않을것 같고요.

저도 직장에서 불합리한 지시를 받으면 고민을 많이 하긴 하는데(군대 행정반시절 이등병때 선임한테 업무 관련해서 개기다가 까이기도 했고요 크크) 본문의 예는 좀 사소한거라서 크게 신경 안쓰시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우실것 같아요..
아타락시아1
19/01/31 15:19
수정 아이콘
픽셀이 깨져서 마치 마인크래프트하는 느낌이 듭니다 크크크크크
괄하이드
19/01/31 15:20
수정 아이콘
아 그런상황이면 진짜 안습이긴하네요 크크크크크
졸린 꿈
19/01/31 15:18
수정 아이콘
크크크 들여쓰기 거슬리기 시작하면 엄청 신경쓰이더라고요.

닉네임이 익숙하다 했더니 예전에 PGR21 스투 채널에서 자주 뵈었던 분이셨네요.
구정 연휴가 다가옵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아타락시아1
19/01/31 15:18
수정 아이콘
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foreign worker
19/01/31 15:23
수정 아이콘
그냥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시는 것이 낫습니다. 슬픈 말이지만 너무 흔한 일이라....
댕댕댕이
19/01/31 15:23
수정 아이콘
요양보호소에서 복무중인데. 최근 흰색 강마루바닥 공사를 해서 마루 깨지고 난리나고 때묻고 안지워지고 지우느라 허리나가고 다들 불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반대했는데 오직 한분이 뜻을 관철하셔서 그렇게 되었구요. 역시 리더가 문제입니다..
아타락시아1
19/01/31 15:25
수정 아이콘
역시..
크림샴푸
19/01/31 15:30
수정 아이콘
어느 유머게시물에서 본건지 기억이 안나는데 빵터진 댓글이

우리 회사는 사장님이 둘이야 어제 말과 오늘말이 달라 였네요
도큐멘토리
19/01/31 15:31
수정 아이콘
뭐 케바케지만 상명하복이라던가, 갑이 시키면 을은 입다물고 해야하는 문화 자체가 국내외 안가리고 광범위하게 퍼져있지요.
그리고 썩 좋지 못한 결말이 되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그렇다고 해서 문화가 개선되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19/01/31 15:38
수정 아이콘
사실 뭐 리더 뜻에 따라 조직원들이 움직이는거야 어디든 마찬가지죠

문제는 잘못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을 안지는게 문제
앙제뉴
19/01/31 15:50
수정 아이콘
자기가 디자인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는 교장님이 계셨었죠.
그분 덕에 수십년은 써야 할지도 모르는 교직원 신규 관사 외장이 떵색이 됐다고..
아타락시아1
19/01/31 15:57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크
큐티섹시 서지수
19/01/31 15:59
수정 아이콘
일선 학교에선 진짜 교장 짱짱맨이죠.. 학교 건물 리모델링할때 바닥을 강화마루? 장판? 같은걸로 했는데
새거라 더러워진다고 실내화를 못 신게 했습니다.. 여름엔 그냥저냥 상관없는데 겨울엔 보일러가 나오는것도 아니고
바닥이 너무 추워서 다들 오들오들 떨고 누구는 동상걸렸다는 얘기도 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타락시아1
19/01/31 16:01
수정 아이콘
왜 교장 짱짱맨인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짱짱맨이더군요
2019LGTwins
19/01/31 16:10
수정 아이콘
들여쓰기 안한게 그렇게 가독성이나 안내문 파악에 어려움을 줄만한 것인가요?
글쓴분이 왜 분노하신건지 공감이 잘 안 가서... 들여쓰거에 제가 잘 모르는 최근의 밈이나 뭐 그런게 있는건지...
아타락시아1
19/01/31 16:14
수정 아이콘
기초적인거니까요. 애초에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걸 고등학교 안내문에서 안지키면 어떤생각이 들까요.

물론 지키든 안지키든 큰 상관 없습니다. 주변의 의견을 참고하지 않는 그 뚝심이 저를 분노케한거죠
2019LGTwins
19/01/31 16:18
수정 아이콘
들여쓰기 안 하는 경우를 훨씬 더 많이 보고 그래도 기본이 안 돼 있네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드니 글쓴분 분노에 공감이 안 갔던 것이네요
아, 원본 받으시기 전에 들여쓰기 하자는 의견을 내신건데 그걸 무시한 건가요? 본문 내용엔 그런 얘기가 없어서요
아타락시아1
19/01/31 16:23
수정 아이콘
들여쓰기를 해서 인쇄를 했는데 어느샌가 들여쓰기가 안된 안내문이 붙어있더라고요. 확실히 공감 이 안 갈 수는 있겠네요.
2019LGTwins
19/01/31 16:28
수정 아이콘
아하... 이제 이해했습니다.
19/01/31 16:14
수정 아이콘
몇 년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참 격하게 아끼던 사회복무요원이 생각나네요..

꿈이 영화작가였던 친군데, 사회복무요원 수기 작성대회가 있다는 공문이 와서 그 친구에게 출품을 권했더랬죠.
제가 사회복무요원 담당직원인지라 평소 그 친구 작문실력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어서 가능성이 있어 보였거든요.
예상대로 그 친구는 훌륭한 수기를 작성해서 직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조금 거칠긴 했지만, 21살 청년의 불같은 감성과 현장에서 느낀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며 감동까지 있는..
우리가 한일이라곤 그저 읽고, (끄덕끄덕, 엄지척) 그리고 오탈자 한개 수정 후. 해당 수기를 첨부파일로 하여 공문을 작성한 후 병무청장에게 전송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선탈락.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뭐가 문젠지 다시 한번 제출했던 수필을 읽어보니 글쎄..

글이 엉망이 되어있는 겁니다.

뭐 어떻게 보면 엉망이 아닐 수 있겠으나, 비문이 수정되어 있고.. 거친 필체는 가다듬어져 있었으며, 분노는 사라져 감사와 은혜만이 남아있는..

전자결재 시스템에 결재라인 수정내역을 살펴보니 최종 결재권자께서.. 결재 직전에 첨부파일을 수정하셨다는 히스토리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한마디 상의 없이..

누가봐도 나이 지긋한 GD가 쓴 글로 변해있었고.
누구라도 탈락시킬만한 글이었습니다.

제일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친구가 본인이 쓴 글이 떨어진것이라면 후회가 없었겠지만,
이따위 글이 자기 이름으로 올라갔다는게 너무 서럽고 억울하다고 하더군요.

부디, 남은 복무기간 무사히(속병 나지 말고) 마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타락시아1
19/01/31 16:15
수정 아이콘
이걸...?
명란이
19/01/31 16:20
수정 아이콘
와우..
세츠나
19/01/31 16:51
수정 아이콘
말만 들어도 정말 마음에 안드네요...
19/01/31 17:03
수정 아이콘
으으 미친꼰대 진짜 싫다..
스핔스핔
19/01/31 18:10
수정 아이콘
헐... 너무나 비상식적이어서 어떻게 지적해야될지 감도 안잡히네요...
19/02/01 09:02
수정 아이콘
딱 저희 직원들 반응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이 상식 밖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왜 이따위 행동을 하셨냐고 물어봐봐야 그분께서는

'내가 아주 훌륭하게 손좀 봐줬어'
라는 태도로 응답하셨겠죠..

솔직히 제 사수 아니었으면 저도 감정적으로 그 분 방에 노크를 생략하고(강한 어조) 들어갔을거 같네요.

분노를 꾹참고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친구가 매우 좋아하는 수제햄버거를 사주며 다독이는 것 뿐이었죠.
19/01/31 18:13
수정 아이콘
와.. 진짜 속 터지네요
수지느
19/01/31 19:16
수정 아이콘
와 듣기만해도 욕나온다 크크크
19/01/31 23:37
수정 아이콘
다른데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윗분들 원하는대로 결정하는 겁니다.
signature
19/02/01 07:59
수정 아이콘
중간만하시다 얼른 소집해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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