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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02 02:48:41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진순신, 그리고 <이야기 중국사>


 중국사에 대한 처음의 인식은 여러모로 단편적으로 그림이 나눠져 있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일반 한국인 입장에서 중국사 보다도 더 거리가 먼 유럽 역사로 비유하면 이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 고대 이집트. 거기서 막 히타이트, 앗시리아 이런거 튀어 나오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소크라테스 플라톤 나오는 고대 그리스. 다시 또 어찌어찌 하니까 알렉산드로스, 로마에 카이사르. 거기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막 네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떠오르고, 지나고보니 교황에 중세 시대 장원과 기사들, 십자군 전쟁 같은거 생각나고, 다시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루이 14세 같은 왕들, 다시 또 어찌하다보니 나폴레옹 생각나고, 그리고 히틀러 떠오르고, 지금 유럽 정도.




 단편적으로 여러가지 그림이 얼기설기 있기는 하고 그런 그림 한 조각 한 조각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책을 통해서 보든, 검색을 해서 적당히 알아보든 약간의 정보는 있는데, 그걸 잇는 뼈대가 없는 겁니다.




 가장 친숙한 삼국지 이야기만 비정상적으로 좀 넒게 정보를 접하는데, 춘추전국 시대 이야기는 토막토막 일화로 한두개씩 알고, 나머지는 대충 "음... 한나라... 음... 대충 이런 느낌... 당나라는 막... 이민족 돌아다니고...송나라..문치주의...요금원... 북방민족들 들어와서 막... 이렇게 저렇게 하고... 명나라는 음... 막 무슨 동창 금위위 이런거 있고..청나라는 변발하고... 뭐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통사(通史) 류의 책을 찾아서 읽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에 읽게 되었던 책이 「진순신의 이야기 중국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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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금은 돌아가신 일본인 작가 진순신(陳舜臣) 씨가 신화의 시대로 불리는 3황 5제의 시대로부터 중국 근현대의 전환점인 신해혁명 직후에 이르기까지 5,000여년에 달하는 역사를 저술한 '중국의 역사(中国の歴史)' 라는 책을 번역한 책입니다.




 진순신 씨는 전문적인 부분에서 따지자면 역사학 비전공자에 해당합니다. 원래 전공했던 영역은 힌두어, 페르시아 어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동기는 아니지만 바로 일학년 아래에 역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시바 료타로' 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흥미롭게도 이런 진순신 씨가 경력의 초반부에 쓰던 글은 다름 아닌 미스테리, 추리 소설 장르였습니다. '그냥 왕년에 좀 썼다.' 정도도 아닌 것이, 작가 경력의 시작이 일본 추리 소설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이자 추리 소설 작가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가 '아쿠타가와 상' 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 중에 하나이자, 아쿠타가와 상이 순수문학 쪽에서 인정 받은 쪽에 무게가 실린다면 통속문학 쪽에서 주로 수상자가 나온다는 '나오키 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원래가 일본의 대중소설, 장르문학 쪽에서 필력과 내공을 인정 받은 글솜씨를 지닌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67년 작인 소설 '아편전쟁' 을 시작으로 역사, 그것도 주로 중국사에 관련된 저술을 왕성하게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서 본래 영역이었던 소설도 굉장히 많이 있지만, 그냥 역사 저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주로 '역사 에세이' 라고 불리는 글 - '로마인 이야기' 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가장 정확 합니다 - 역시 많이 남겼습니다. 



 

 일단 비전공자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 분의 글을 보다보면 정말로 엄청난 내공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어 능력에 있어 굉장히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뛰어난 고전 독해 능력으로 24사(史)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그렇다고 종종 종종 이런 재야의 고수들이 빠지기 쉬운 주화입마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아시아 연구에 있어 선두적인 위치에 있는 일본 쪽 학계의 연구성과는 물론이고, 영어권 연구성과, 중국 쪽 연구성과 등도 풍부하게 섭렵하여 인용 하는 걸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래 전공이었던 힌두어, 페르시아 등에 대한 능력 같은것은 전문 역사 연구자라 할지라도 그 수가 극히 제한적인 부분이다보니, 이런 부분을 활용한 쪽에 있어서는 다른 대중 역사 저술가들이 흉내조차 내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분 글을 살펴보면 둔황, 실크로드에 관련된 저술도 상당히 많은 편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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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나온 진순신의 '소설 제갈공명'





 또한 진순신 씨가 다른 역사 저술가들과 동떨어진 점이 있다고 하면, 바로 '국적' 에 관한 부분입니다. 앞서 진순신을 일본인 작가라고 표현했는데, 진순신 씨의 고향은 일본의 고베였지만 그 집안은 원래가 대만 출신 중국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화교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이때는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지만요.



 진순신 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전통적인 학문에 능한 지식인 계층으로서 한학(漢學)을 집에서 가르침 받는 입장이었고, 때문에 일본 출생이어도 중국어도 능통해지는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동시에 근대화된 일본에 체류하는 입장으로서 현대적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중성, 동시에 식민지 출신으로서 식민지 '본국' 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중성이란 여러모로 본인에게 복잡다단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진순신이 인도어를 전공하게 된 것이, 똑같이 식민지배를 겪은 인도의 관점을 알고 싶었던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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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바로 이 무렵, 제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고 병합되었던 식민지가 독립함에 따라, 진순신 씨는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하게 되었고, 대만 역시 중국의 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 무렵 진순신 씨는 대만으로 가서 학문을 계속했고, 신좡(新莊)에서는 초등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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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렵 장제스의 국민당이 집권하던 중화민국 정부에서는 새로 돌아온 대만을 이전에 식민지배 하던 일본보다도 별다를게 없는 수준으로 통치하였고, 여기에 대만이 되돌아오면서 중국 본토에서 밀려오기 시작한 외성인(外省人)과 본성인(本省人)의 대립 역시 격화되어 사회 전체가 불안정 했습니다.




 그 와중에 외성인 출신의 경찰이 국가가 전매 판매하던 담배를 사적으로 판다는 혐의로 본성인 담배 상인을 조사하다가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에 주위의 사람들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사태가 커졌으며, 숫자가 불어낸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여 사람이 죽기까지 하면서 시위가 대만 전역으로 확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시위를 진입하러 본토에서 온 군대가 학살을 자행하면서 대만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에도 겪어보지 못했던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대만 현대사 최악의 사건이라고 불리는 2.28사건이고, 이때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3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원래가 대만에 머물며, 형제가 중국 본토로 유학을 할 예정이기도 했던 진순신 씨는 이 끔찍한 참상을 보고 다시 고베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미 '본토' 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이 '본국' 의 '식민지' 가 된 1895년의 한참 후인 1920년대에태어나, 중국인으로서의 전통적인 교육과 일본인으로서의 신식 교육을 동시에 받다가, 이제 해방이 되었다고 하여 찾아갔더니, '본토' 의 사람들은 '식민지' 와 '본국' 이상으로 서로를 미워하며 죽이고 학살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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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72년 일본은 기존의 대만 중화민국과의 관계 대신 대륙에 자리 잡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직후인 1973년, 진순신 씨는 신장 위구르 우루무치에 대한 답사를 나서는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취득 합니다. (때문에 70년대 ~ 80년대 무렵에는 잠시 진순신 씨의 저서가 대만에서 금서가 되는 일도 있었다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때 중국을 기행하고 과거 실크로드로 이어지던 서역 부근을 왕래하며 이런 여행기를 담아 많은 저작을 내놓았습니다. '이야기 중국사' 역시 1권을 보면, "지금 이 책은 신장에서 쓰기 시작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2권에서는, 성스러운 산으로 이름 높은 태산에 거한다는 여신의 생일날을 맞아 바삐 산을 올라가는 나이 많은 할머니들, 기념일을 맞아 밀집한 인파, 여기저기서 몰려와 〈천하제일만병통치〉 같은 깃발을 내걸고 물건을 파는 약장수들, 노점상,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섞여 즐기면서 유쾌해졌다는, 보면서 절로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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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중국에서는 그 유명한 '천안문 사태' 가 발생합니다. 무장한 군대가 시위대를 잔혹하게 총과 칼, 그리고 대포로 진압해서 학살했고, 무엇보다 이 참극 매스컴을 타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천안문 사태를 겪으며 진순신 씨는 항의와 더불어 회의감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적을 포기했고, 다시 거주하고 있던 일본의 국적을 회복 합니다.



 이렇게 되어, 일생동안 일본인(식민지인 출신) -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대만인(대만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 중화인민구공화국(자의로 취득하고 포기한) - 일본인(자의로 회복한) 으로써 총 4번을 국적을 바꾸게 됩니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이 아니며, 대만 사람이지만 대만에서 본 것은 피와 유혈극이었습니다. 대륙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지만, 이를 비판해서 스스로 국적을 포기했습니다. 진순신 씨에게 있어 중국의 역사라는 것은, 곧 당사자의 일인 동시에 외부인의 시선이었던 셈입니다. 격동기를 일생을 거쳐 온 몸으로 겪으며 미묘한 입장에서 보여주는 이 시각이야말로, 다른 저술가들과 완벽하게 차별화되는 부분 중에 하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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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역사, 그러니까 이야기 중국사는 1980년대 초반에 나왔으니, 진순신 씨가 중국 국적을 얻었던 시절에 나온 책입니다. 중국인이 중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고, 오랫동안 관계가 끊어진 대륙이 일본과 새로 수교하여 문을 활짝 열던, 그리고 천안문 사태로 '배신 당했다' 고 느끼기전인 희망찬 시대에 나온 책이니,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역사에 대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외지인으로서의 객관적인 면모 역시 느껴집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배웠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그토록 인상깊었느냐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하나만 이야기 한다고 하면, 바로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관해서 입니다. 




 '연구자들' 은 일단 논외로 치고, '저술가들' 에 관해서 보면, 제가 아무것도 기본적으로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뭐라도 알기 위해 읽었던 많은 저술가들은 대체로 이런 태도로 보였습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이 사건이, 이런 인물이, 이런 의미가 진짜 이렇게 엄청난거야. 그러니까 내 글을 봐줘."



 역사를 풀어서 이야기로 다루는 글은 그게 짦은 글이건, 혹은 긴 분량의 책이건 간에, 제가 본 많은 사람들은 그 안의 메세지를 강조하기 위해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메세지라는 것이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이 사람은 정말 구제할 길이 없는 쓰레기이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를 아주 뒤바꾸어버린 일대 대사건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면 '역사 이야기' 가 아니라 '역사를 빙자한 이야기' 가 되기도 합니다. 이른바 강렬한 '국뽕' 일수도 있고, 혹은 매우 자조적인 '국까' 일 수도 있습니다. '짱개는 죽여야 답' 이라는 '혐중' 일 수도 있고, '시진핑의 등장은 중국 인민의 축복' 이라는 '친중' 일 수도 있습니다. 반일, 친일이 있고... 자주 보이는 패턴으로는 '수천년간 서구를 압도한 동아시아' 혹은 '유럽뽕' 같은 일일수도 있습니다. 정말 노골적으로 가자면 "이 역사를 보아하니 요즘 누구 정치인 누구가 생각난다." 같은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이야기하는 모든 글에는 정말 수 많은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저술가들은, 그 안에서 특히 자신의 메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읽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하려고 안간함을 씁니다. 보통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문득 그 맛이 너무 지나치게 느껴져서 기분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이야기 중국사' 를 읽다보면 그런 쓴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역사 이야기에서 메세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진한 메세지가 행간마다 느껴지지만, 결코 그 메세지를 너무나도 강하게 읽는 사람에게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정갈하게 눌러놓아서, 보는 입장에서 음미할 수 있게 해줍니다.




 두번째로, 이 부분은 '메세지를 너무 튀게 강조하지 않는다' 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오천년에 달하는 긴 역사의 수 많은 대사건을 다루면서도 글의 전체적인 어조는 지극히 담담합니다. 많은 글을 보다보면 종종 글쓴이가 더 흥분해서 찬양을 하거나, 혹은 매우 비하하고, 혹은 농담거리로 삼거나, 나중에는 더 나아가 비하하고 농담거리로 삼다못해 우스꽝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이 그렇구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담담한 어조로 이를 이야기 합니다. 훌륭함과 대단함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그의 수완은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했으니, 이건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정도로 풀어냅니다. 실정과 악행을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분명 좋지 못한 일이었다." 정도로 이야기 합니다. 때문에, 오히려 보면서 더 깊게 생각해보면서 성공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실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번째로는, 원래 문학을 하던 사람으로서 진순신 씨가 글에서 보여주는 서정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서정성이 있다 해도, 진순신 씨는 글에서 "자, 분노해라. 화를 내라" 고 요구 하지 않습니다. "울어라" 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박수나 쳐라." 고 하지도 않습니다. 글 자체는 역사라는 미묘한 주제를 다루면서 담백하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글에서는 강한 서정성이 느껴집니다.




 거의 대부분의 역사 저술가들이 묘사하는 '역사' 는 곧 '정치' 와 '전쟁' 의 역사 입니다. 죽이고, 권모술수를 부리고, 발전하고, 세력을 키우고, 규율을 확립하고 등등.... 여기서 말하는 '유물' 과 '문화' 는 여기에 더해가는 곁다리 입니다. 이런 인물이 이렇게 전쟁하고 이렇게 규율을 확립하여 전성기를 맞이해서 이런 문화가 꽃피웠다 등등..




 반면에 진순신의 글을 보다보면, 먼저 '시대' 가 있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 있고, 곧 그 사람들의 '이야기' 가 있습니다.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한참 진순신이 저술 활동을 하던때까지만 하더라도 강하게 영향력을 보였을 법한 학설이 '당송 변혁기론' 입니다. 중국사의 여러 변혁기 중에서도 특히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의 변혁이 아주 결정적이고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이론으로, 당나라에서 송나라로 거치며 귀족 정치가 몰락했고, 서민지위가 상승했으며, 화폐 경제가 일상화 되었고, 서민들의 문화가 발전하여 일종의 서양의 르네상스에 가까운 '근세'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나라는 종종 이민족과의 융합으로 인해 호방하고 개방적인 사회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세 귀족정치의 극한에 다다른 국가로서 귀족들의 지위는 하늘을 찌르고, 수도 장안은 구역간의 이동마저도 철저하게 통제된 계획 도시이며, 중세적 귀족적 규율은 숨을 막힐듯 꽉 조여졌고, 여러 중세적 모순이 내제해 있었으나, 송나라로 접어들어 귀족은 사라지고, 서민들의 지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며, 경제력이 발전하고, 지위가 올라가고 경제적 여건을 가진 서민들에 의해서 활기찬 서민문화가 용솟음치듯 꿈틀거리며 꽃피던, 가히 중화의 황금시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책에서 이를 언급한다면, 송나라의 경제력이 이토록 어마어마했다거나, 송이 이렇게 지상락원이었다거나, 다소 과장되게 이러한 점을 크게 강조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군." 하고 말았을테고. 진순신 씨의 책에서 이 단락에 관한 부분을 보며,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이 순간이었습니다.












'....송나라의 시인을 논할 때, 매요신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구양수, 왕안석, 소식은 대시인이면서 동시에 재상급 고관이었지만, 매요신은 관운이 없었다. 과거의 소시관이 된 뒤 3년 뒤에 59세로 죽었는데, 마지막 관직은 정7품인 상서도관원(尙書都官員) 외랑(外郞)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진사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한 가지 원인일 것이다. 아버지 매순은 정3품인 한림학사였으므로, 앞에서 이야기했듯 그 친족은 채용될 특전이 있었다. 섣불리 그런 특전으로 벼슬길에 오른 것이 매요신의 불행이었다. 세상은 이미 진사 지상주의 시대였다. 당나라 때처럼 부모의 위광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귀족 사회가 아니었다.



 매요신의 재능 정도라면 시문을 주로 한 과거에 급제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관계에서 그는 줄곧 지방으로 돌았다. 현실적으로 구양수는 그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였는데 과거 시험에서 주임을 맡았고, 매요신은 구양수의 추천으로 겨우 소시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官階) 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매요신은 말단 관리로 끝났을 뿐,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고, 좌천의 아픔도 맛보지 않았다. 서쪽으로는 서하와 전쟁을 치렀지만 인종 시대의 송나라 본토는 대체적으로 평온무사했다. 왕안석이 신법을 제창한 것은 매요신이 죽은 뒤다.



 지위는 낮았지만 그의 사명은 세상에 널리 퍼져 고위 고관들도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재상인 왕서는 "200년 동안 이런 작가는 없었다." 고 그를 격찬했다. 그것은 두보가 죽은 지 200년 동안 매요신 이상의 시인은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구양수는 매요신보다 지위는 높았지만 시인으로서는 그를 능가할 수 없었고, 그 점은 구양수 자신도 인정했다. 왕안석, 소식, 황정견 같은 북송의 대시인이 잇달아 나타나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매요신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매요신만큼 축복받은 시인도 없다.



 매요신은 시제를 일상생활 속에서 찾았다. 특히 과장된 표현을 싫어했다. 당나라 말기부터 이어진 '서곤체(西崑體)' 가 송나라 초기 시단의 주류였는데, 그것은 화려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현실과 많이 동떨어졌다. 그에 반해 매요신의 시는 평담(平淡)을 지향했다. 



 그는 그때까지 문인이 제재(題材)로 삼은 적 없는 고양이나 개, 닭 같은 가축에서부터 모기와 파리, 머릿니에 이르기까지 시로 읊었다. 사소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의 작품은 사시(私詩)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매요신은 43세에 아내 사씨를 잃고 2년 뒤에 재혼했는데, 사씨를 추모하는 마음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읊었다. 재혼한 초에 지은 <신혼> 이라는 시에서,



 부르는 데 익숙해져서, 아직도 말이 잘 못 나간다(慣呼猶口誤)



 라는 구절이 있다. 부르는 데 익숙해져서 그만 죽은 아내의 이름을 불러버린다는 뜻이다. 전처인 사씨를 잃은 고우라는 땅을 부부가 함께 지날 때 지은 시에는,



 새 사람(새 아내)의 마음에 상처 줄까 두려워,
 억지로 참고 눈물을 닦다.


 恐傷新人心,強制揩雙眸




 라는 구절이 있다. 




 (....) <생선회를 쳐서 손님에게 내놓다> 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이것은 송대 중국인이 생선회를 먹었다는 증거가 되는 시이기도 하고, 매요신의 평소 생활을 생생하게 나타낸 시라고도 생각할 수 있어 조금 길지만 실어 보겠다.





변하(卞河)는 서쪽으로 흐르는 황하의 지류

누런 흐름은 아직 얼지 않고 잉어는 살찐다.

낚시로 잡아 올려 도시에 내다 파는데.

백전(百錢)을 탐내지 않고 집으로 갖고 돌아온다.

집사람은 보도(寶刀)를 갈아

비늘을 긁고 지느러미를 잘라도 튀려는 것 같다.

하나하나 운엽(雲葉)은 접시에 떨어지고,

속속(粟粟), 상복(霜蔔)은 흰 옷이 된다.

초의 유자로 무침을 만들면 향기는 집 안에 풍기니,

친구들은 앞다투어 방으로 들어온다.

아이를 불러 옥성(沃腥)의 술을 가져오라 하지만,

창자가 꽉 차고 배는 불러 서로 군소리가 없다.

마침내 술병이 비니 말에 올라 돌아가는데,

그 의기는 서산의 고사리를 말할 필요가 없다.


 



 하나하나 접시에 떨어지는 운엽(생선조각)이란 바로 생선회다. 속속(싹둑싹둑) 잘린 서리처럼 하얀 무는 하얀 옷이 되므로, 이는 생선회에 까는 무를 말한다. 삶거나 굽는 것이 아니라 유자를 곁들이고 옥성(비린내를 없앰)의 술을 구하는 것이므로, 여럿이 생선회를 먹으려 한 것이다.



 배가 부르고 술도 다 떨어지자 다들 말을 타고 돌아간다. 이런 시정 생활에 의기양앙하고 있으니, 서산에서 고사리를 먹다 굶어죽은 백이 숙제를 말할 필요가 없다. 천하 국가나 인의 같은 어려운 문제는 집어치우고, 그날그날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면 된다는 내용이다.



 매요신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다. 그가 죽음의 병상에 누웠을 때, 그의 집 주변은 병문안 손님들로 넘쳐나 이웃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곳은 성동의 벽촌으로 지위 높은 사람들의 주택가가 아니었다..'










 송나라 시기, 귀족들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서민들로 무게추가 내려온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서 발달한 서민적 문학, 그리고 이를 매요신이라는 문인을 통해 묘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한림학사라 별 생각없이 특전으로 관직에 나서기는 했지만, 이미 귀족정치가 끝나 진사에 급제하지 않으면 고위직에 오를 수 없으므로 능력에 비해 미관말직을 전전했지만, 그럼에도 시의 재주는 모두가 인정하던 인물. 



 그리고 당나라에서 이어진 화려한 기풍의 시에 비해 가까이 있는 개나 닭을 가지고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시로 표현하며 소박한 일상을 그려내는 시인.



 재혼한 부인이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핏 죽은 옛 부인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에 담고 말고, 옛 부인이 죽은 땅을 지나면서 아직도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치솟을라 하지만, 지금의 부인에게 혹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 애써 참고 눈물을 숨기는 모습.



 미관말직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낚시로 건져서 팔지 않고 가져온 생선회를 부인이 다듬어주고, 소중한 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에게 말해 술을 가져오라 하여 즐겁게 먹고 마시는 일상. 술병이 비어 헤어지는 그들을 배웅하는 나나날들. 그리고 비록 시골의 작은 집이지만, 마지막으로 숨을 거둘때 모든 사람들이 와서 이를 위로하고 나름대로의 행복 속에서 일생을 마치는 모습.







 지극히 높고 거리감이 있는 귀족정치의 세상에서, 따스하고 일상적인 서민문화의 전성기로 변모했다는 것을, 이토록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암시하는것을 보고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이 따스함과 아름다움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비장하고 처절함에 관련된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소 길어지긴 하겠지만, 한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칭기즈칸의 몽골이 파죽지세로 세력을 키워 금나라를 공격하고, 수십년간 버틴 금나라가 무너지던 무렵 금나라는 몽골군의 약탈과 기근 속에서 재앙처럼 무너져내렸습니다. 모든것이 파괴되고, 부서지고, 약탈당하고, 불타버린 채 유실되는 인간세상의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몽골군이 대도시 개봉을 포위했을 때, 개봉은 몽골군을 피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인구가 100만명이 훌쩍 넘는 수준에 이르러 엄청난 인구과밀로 끔찍한 굶주림에 시달렸고, 역병까지 퍼져 지옥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결국 개봉은 항복하고 성문을 열었는데, 책에서는 '원호문' 이라는 시인을 통해 개봉의 함락, 그리고 금나라의 멸망을 묘사합니다.







'....성문을 연 뒤, 금나라의 주요 관료들은 포로가 되었다. 원호문도 그중 하나였다. 가족들과 함께 요성이라는 곳에 유폐되었다. .... 원호문은 <계사 5월 3일 북으로 건너가다>라는 제목으로 칠언절구 세 수를 지었다.



 길가에 쓰러져 엎어진 포로가 즐비하고,
 지나가는 전차는 물이 흘러가는 듯하다.
 여인은 곡하며 회골의 말을 뒤따르고,
 뉘를 위해 걸음마다 뒤돌아보는가.




 몽골족에게 사람은 곧 재산이었다.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다. 개봉에 입성한 몽골군은 대약탈을 자행했다. 재물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끌고갔다. 재물은 전차에 싣고 갔는데, 그 행렬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끝이 없었다. 실로 엄청난 약탈이었다. 납치한 사람은 걷게 했다. 지쳐 쓰러진 포로가 길가에 즐비했다. 납치된 여인네들은 울면서 위구르의 말을 따라 가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인가?



 여기저기 흩어진 백골은 뒤얽힌 삼실과 같고,
 고향땅이 사막으로 변한지 몇 해나 되었을까?
 하북에는 목숨이 다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 부서진 몇 집에서 연기가 오르네.



 길가에는 여기저기 백골이 흩어져 있다.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은 고향이 사막처럼 변한 지 벌써 몇 해나 되었을까. 황하 이북은 몽골군의 말밥굽 아래 주민이 절멸했다고 들었는데, 뜻밖에도 쓰러져 가는 오두막 몇 채에서 밥 짓는 연기가 드문드문 피어오르고 있다.



 이 무렵 원호문은 <속소랑가>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민간 처녀들을 노래한 <소랑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노래에 가사를 바꿔 읊은 것이다. 몽골군에게 끌려가는 부녀자들을 읊은 시다.



 태평시에는 시집을 가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건만,
 단정한 머슴애와 어린 계집아이들
 300년 이래 닦이고 키워져
 이제 사막에 끌려가 소나 양과 바꾸는 물건이 되다니



 태평 시대에는 결혼을 해도 고향 마을을 멀리 떠나는 일은 없었다. 젊은이와 처녀가 나긋나긋하고 귀여운 것은 300년 이래의 문명에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막으로 끌려가 소나 양하고 교환되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앞날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청산 높은 곳에서 남주를 바라보니
 강물은 유유히 성을 돌아.
 원컨대 이 한 몸 물을 따라 떠나,
 해저에 당도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으리



 이제 물 밑바닥까지 곧장 가고 싶다. 결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지옥도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원호문이 요성에 갇혀 있는 동안에 금나라는 멸망했다.



 ....45세의 원호문은 요성에서 아득한 남쪽, 애종이 죽은 채주의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중국 문명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한 금이라는 나라가 120년 동안 존재했다는 사실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야 했다.


 
 우선 그는 문인으로서 금나라에 훌륭한 문학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금나라 당대의 시집을 편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간간히 언급한 <중주집>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시인 약 200명을 수록했다. 더구나 원호문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약전까지 부기했다. 이로써 금 당대의 문화인을 일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사는 상란을 거쳤으나
 천행으로 돌아갈 길이 있구나
 그저 한스러운 것은 10년 뒤,
 지금의 일을 알 사람이 없구나
 흥망은 하늘에 속한 것이니,
 어찌 일이 잘못된 것만 탓하랴.
 소문이 원수에게 전해지면
 욕하고 헐뜯기를 마다하지 않으리.
 노신은 나라와 함께 하고,
 고현은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어거늘,
 몸은 죽고 이름 역시 사라지만,
 의사는 상심하고 슬퍼하리라.
 가련한 회서의 성에서는
 모두가 기꺼이 목숨을 버리리





 개봉 궁전에 수장되어 있던 금나라 당대의 기록과 문헌이 대동란을 거쳤으면서도 다행이 정착할 곳을 얻었다고 첫머리에 읊었다. 이것은 몽골군의 한족 장군인 장유가 금나라 사관에 수장된 실록을 무사히 접수한 사실을 기리킨다. 장유는 기골 있는 무장으로 원나라의 대도 조영에도 참가했다.



 문명에 존경심이 없는 몽골 장군의 손에 들어가면 불살라지든지 산산히 흩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한 것이다. 그 실록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금나라의 장서가 엮일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사관의 기록을 장유에게 넘긴 것은 원호문의 공작이었다고 한다.



 다만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이 시대의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다. 나라의 흥망은 하늘의 뜻이므로 모두 멸망한 쪽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 전해지는 말이 구적(仇敵 원수)에게 전해지면 그들은 욕하고 헐뜯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일이 없도록 올바른 역사를 후세에 전하는 일에 노력하고 싶다. 금나라 원로들은 나라의 존망을 함께했고, 현자들은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었다. 몸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이름마저도 사라져 버린다면 의로운 인사들은 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것이다. 저 가옆은 회서의 거리, 채주에서는 황제를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용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이러한 일들을, 나는 글로 써서 남겨야만 한다.




 조물주가 이 붓대를 남겨 주었으니,
 이 가난 또한 어찌 사양하랴




 이 시는 이렇게 끝맺는다. 조물주인 신은 내게 이 붓을 남겨 주었다. 이 붓만 있으면 그 밖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 가난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서재를 야사정(野史亭)이라 명명하고, 개인의 힘으로 금나라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했다. ..원호문은 많은 비문을 썻는데, 돌에 새겨진 것은 후세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호문이 특히 힘을 쏟은 것은 금나라 말기의 유문일사(遺聞逸事 기록에 빠져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였다. 전란으로 인해 기록되지 못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다행히 그 일을 보고 들은 사람들이 현존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취재했다. 그 자신도 많은 것을 목격했고, 그리고 들었다.



 지금 그것들을 적어 놓아야만 했다.



 '임진잡편', '금원군신언행록', '남관록' 등이 금나라 역사에 관한 그의 저작이라고 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훗날 정사인 <금사>가 편찬될 때, 자료로 쓰였다. 상상 부분 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금사의 문장은 격조가 높다고 일컫는데, 그 골격이 원호문의 글이니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의 집념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야사정유야감흥> 이라는 제목의 시는 그의 놀라운 집념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개인의 기록도 부고(공식 기록)과 관련 있으니,
 향간에서 구하면 혹시 도움이 될 일도 있으리라
 가늘디가는 붓을 들고,
 힘을 다해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노쇠하여 더디어짐을 스스로 아쉬워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을 누구에게 들려줄까?
 뒤척이고 또 뒤척여도 날은 아직 밝지 않았는데,
 컴컴한 창에 간간히 빗소리만 들린다.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도 국가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으므로, 언젠가 정사 편찬이 시도되어 향간에서 자료를 구하게 된다면 채용될지 모른다. 원호문은 그런 기대, 아니 확신을 가지고 주야로 집필했다.



 '추토일촌의 호' 란 아주 가는 붓, 즉 세필을 뜻한다. 아주 가벼운 것인데도 그에게는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고 했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책임감이 짓누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말년 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쇠함을 홀로 위로한다. 걱정과 두려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이런 감정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면 좋을까. 아무도 이해 할 수 없을만큼 깊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하는데, 날은 좀처럼 밝지 않고 어두컴컴한 방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만 간간히 들려온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기운이, 거기서 느껴진다.









-


 보통 몽골의 금나라 정복이라고 하면, 북방에서 발흥한 몽골이 힘을 키워 금나라를 '쓸어버리고' 몽골의 후덜덜한 힘을 과시했다, 그 과정에 사람들이 '갈려나갔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이야기 되곤 합니다. 저도 그런식으로 생각했었구요.



 그런데 (지금도 어리지만) 어릴때 이 글을 보면서, 정말 수도 없이 몇번을 전율 했습니다. 금나라가 멸망한 지 이제 800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몽골군이 북중국을 점령했을때, 수백만명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쉽게 와닿는 느낌이 아닙니다. 몽골의 지도가 확 늘어나서 금나라까지 집어삼키는 것을 보면 몽골군이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흡사 스타크래프트에서 시즈탱크 부대로 저글링 초토화 시키듯이 찍어누르는듯한, 흡사 '게임 기분' 느낌 마저도 듭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한 문인이 있었습니다. 나라는 멸망했지만, 그래서 물에 빠져 다시 몸을 건지기조차 싫지만, 자신에겐 의무가 있습니다. 이 나라가, 멸망한 금나라가, 비록 몽골군에 패배하고 백성들은 도륙 당하고 사람들은 끌려가고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살았던 우리들의 조국이 결코 초라하지는 않았음을,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이야기들이, 지고한 문화가, 의로웠던 마음들이 있었음을. 



 자신에겐 그 모든것을 후세에 남겨 놓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 모든 기억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 조금만 잘못된다면, 이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기록하면 기록할수록, 책임감이 마음을 옮아매고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결코 이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번을 그렇게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눈물이 글썽글썽했던 적도 있었구요. 필요할때마다 부분부분 다시 보기 위해 표지가 다 닮아지게 읽었는데,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도 처음부터 읽게되면 또다시 새롭게 되더군요.



 음.... 뭔가, 이렇게 글을 써보고 싶다,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것 같습니다. 












1. 아주 어렵거나 한 책은 절대 아닌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중국사 입문으로 처음 읽기에는 약간 난이도가 있습니다.

2. 시점이 어지럽게 바꾸는 신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1권은 다소 집중하지 않으면 읽는데 약간 성가실 수 있습니다.

3. 한국판 번역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못 읽겠다, 이 수준은 아닌데 오자가 좀 많구요, 한자 표기도 잘못된 게 자주 눈에 보입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나온 유물을 설명하며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나온..." 이런 부분까지 있는데 설마 중국계 일본인인 진순신 씨가 전남 신안을 보고 "우리나라 신안" 이라고 할 리도 없으니 편집자가 뭔가 전체적으로 이상하게 편집을 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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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30세(무직)
18/11/02 04:10
수정 아이콘
사실 역사쪽에서는 이야기꾼보다는 그래도 학자들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건 또 끌리네요.

라고 하기엔 시오노 나나미도 읽었고 줄리어스 노리치도 읽었네요. 후샏.

언제 시간나면 한번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브리니
18/11/02 04:11
수정 아이콘
언젠가 읽어보려고 모아두었던 메모(지금은 잃어버린)에 아래로부터의 역사 비스무리한 제목이 있었습니다 시대의 가장 밑바닥 혹은 밑받침인 개인에서 시작하는 역사이야기. 영국 어떤 학자엿던거 같은데..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서 읽어볼 목록에 넣고..진순신 이 분도 찾아볼 목록에 넣었습니다. 다만 저 자신의 게으름이 최대의 적인데..햐하. 잘 읽었습니다. 혹시 언젠가 역사 읽어주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사람~ 요런 식의 출판물이 '신불해 저'로 나오진 않을까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어니닷
18/11/02 07:19
수정 아이콘
잘보았습니다.
주문해서 주말에 읽어보아야겠네요.
아재향기
18/11/02 07:34
수정 아이콘
예전에 신불해님 댓글에서 이 책을 추천하셔서 사서 읽고 있는데 아주 꿀잼입니다. 역사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강추~
루크레티아
18/11/02 08:13
수정 아이콘
제가 예전에 친구에게 추천 받은 슈토헬이란 만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 마지막의 금나라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네요. 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삶이 담긴 문자와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아이지스
18/11/02 08:23
수정 아이콘
이걸 표절해서 팔아먹는 모 중국사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18/11/02 09:19
수정 아이콘
초등학생 때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이 분 소설 제갈공명을 사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쓰마이
18/11/02 12:07
수정 아이콘
헉 저도 국딩때 2천원인가주고 그냥 무작정끌려서 샀었는데
한종화
18/11/02 09:42
수정 아이콘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전자수도승
18/11/02 10:05
수정 아이콘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기운이, 거기서 느껴진다.]
쉼표가 이래 커보이는건 참 간만이네
킬리언 머피
18/11/02 10:17
수정 아이콘
선추천 후감상
18/11/02 10:55
수정 아이콘
컴컴한 창에 간간히 빗소리만 들린다.
- 너희가 허접한지 우리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죄송합니다..
18/11/02 11:01
수정 아이콘
부흥에서 좋다하고 아침에 읽으면서 나왔는데 신불해님글이었군요 글쓴이도 안보고 나왔는데..

글이 좋네요. 이야기 중국사가 땡길정도로요.

진순신 명성만듣고 예전에 인물평 모아 놓은책 읽었는데 그 글은 좀 너무 컴팩트해서 맛이 없었는데 이 책은 읽고싶어집니다.
18/11/02 11:58
수정 아이콘
저번에 신불해님 추천을 보고 1권을 샀는데 글에서 말씀하신대로 1권 초반은 잘 안 읽히더군요.
해서 놓아두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야 겠습니다. 그래야 나머지 권들을 볼 수 있으니.
상계동 신선
18/11/02 12:08
수정 아이콘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명작입니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가끔 꿀 정도로요.
及時雨
18/11/02 13:57
수정 아이콘
진순신 책 참 재밌죠.
그야말로 현대의 나관중...
Thursday
18/11/02 16:46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의 내공은 정말이지.. 덜덜.. 많이 배워갑니다. _ _)
young026
18/11/03 05:12
수정 아이콘
원호문이 1190년생이었군요. 안구사가 1205년작이니 15살 때 작품이고, 이막수와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 동시대인이라는 얘기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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