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7년, 사실 전립선에 이상이 하나쯤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하지만 비혼인데다가 연애하고는 담쌓고 살아온 내 특성상
전립선염 판정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고 현실감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떠돌던 비뇨기과 후기들을 낄낄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실제로 내 눈 앞에 닥치니 눈 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사실 징조는 생긴지 오래되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도 잘 안느껴지는 쾌감.
드물게 느껴지던 허벅지 사이에서 올라오는 뻐어근함.
잠자리에 들 때면 자꾸 왔다갔다하던 화장실.
사실 증상만 보면 급식말로 빼박칸트였지만
왠지 비뇨기과라는 단어의 거부감과 그리고 전립선 치료 만화 후기들을 보며
느꼈던 것들은 나를 공포에 질리게 하기 충분했고 미루고 미르코 마루코 미루다
여유가 생긴 이번 여름에 드디어 비뇨기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병원에 사람이 많다.
연령대도 20대(추정)에서부터 80대(추정)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여성과 같이 온 커플도 있었다.
여기서까지 커플을 봐야한다니 솔로몬이 지하에서 통탄할 노릇이다.
그래도 나말고도 아랫몸의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한참을 기다려 진찰 시간이 되고
드디어 두려움에 떨게했던 전립선 물리마사지를...할 줄 알았더니
내 손에 주어진건 뜻 밖에 작은 용기이다.
"다음 주에 오실 때 신선한 걸로(?) 담아오세요"
감사...압도적 감사.
신은 아직 내게 인간..아니 남자로써의 자존심을 지켜줄 모양이다.
뭐, 직접 체취하는 병원이 좋은 곳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었으나
어쨌든 내가 비뇨기과를 방문을 가장 꺼리게 한 요소가 하나 사라졌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것도 한 때, 시간이 지나 일주일 후.
표본을 정성스럽게 담고 혹시나 용기 밖으로 새어나갈까 조심스럽게 비닐봉지로 감싼 후
잘 세워 가방에 넣고 병원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왠지 모를 자괴감이 몸을 애웠다.
그리고 진찰을 받으며 상태가 호전되었단 말이 나오길 빌었다.
"지금 보니까, 염증이 상당히 많아요"
내가 기대한 말이 아니다.
"아, 네..."
"이런 경우 여러가지 원인을 볼 수 있는데, 본인은 저번에 부정하셨지만 성병 검사를 가능성에 넣어야..."
"저..."
"예, 말씀하세요"
"20년 동안 관계를 해본 적 없는데"
"예? 본인 나이가..."
의사는 미간을 살짝 찌뿌리더니 차트를 훑는다.
잠깐 뒤적거리며 문서를 보더니 잠깐의 침묵 후 말했다.
"구우..구러면 성경험이 없으신건가요"
이보시오. 의사양반. 17살에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 분께서는 그런 선택지따윈 전혀 넣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집 안의 장남으로써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질문에 열렬하게 호응하기로 하였다.
"(끄덕)"
"에..뭐, 험...그렇다면 일단 성병은 배제를 하고
항생제를 강한 걸로 넣을테니 다음 주에 다시 검사하도록 하죠."
비뇨기과 검사비는 일반 병원비보다 비싸다.
이 것을 한번 더 해야한다니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손실이 크다.
그래도 아직 항문이 물리적으로 관통되지 않았다는 것에 아직 인류애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나는 자손이 없을 것이다.
통계적 흐름 상 번식탈락의 조건에 완벽히 부합한다.
그저그런 얼굴에 평균을 왔다갔다하는 키.
결혼은 꿈도 못꾸고 연애도 전무하다.
서른에 시작하여 6년 남짓한 시간동안 몰두한 사업은 이제 잿더미만 남았다.
빚이 별로 없다는 것이 다행일려나.
아, 하양세일때 때려쳐야했는데.
뭐 이런 생각은 주갤러나 코인러들 모두 같았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내 손의 구겨진 복권은 황금으로, 은행 빚은 투자금으로 변하고
2077년 쯤에는 안드로이드 신부가 생길 수도 있을지도?
이렇게 전립선염으로 끙끙되는 유전자는 별로 자손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아.
까지 생각했을 때 버스가 내 앞에 도착하고 나는 의식의 흐름에서 깨어났다.
방금 전까지 생각은 모두 잊은 채로 그저 전립선염이 하루빨리 완치되길 기원하며 귀가 차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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