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자 열역학의 시조이기도 했던 윌리엄 톰슨 (켈빈 경, William Thomson, Lord Kelvin)은 1858년에 출판된 헤르만 헬름홀쯔 (Hermann von Helmholtz)의 'On Integrals of the Hydrodynamical Equations, which Express Vortex-motion'라는 제목의 논문을 읽고는 큰 감명을 받았다. 19세기 전반, 존 달튼 (John Dalton)의 원자론이 확립된 후, 나머지 후반 세기에는 "도대체 원자 (atom)라는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론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많은 물리학자들, 화학자들이 매몰되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이었음을 고려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헬름홀쯔가 제안한 '유체 속에서 안정한 소용돌이' 모델은 톰슨으로 하여금 "미세하지만 안정한 상태를 이루는 소용돌이가 실은 원자의 모형은 아닐까?" 하고 추측할 수 있게 해 준 강력한 힌트가 되었다. 물 같은 유체 대신, 당시 많은 학자들이 당연시하고 있었던 모종의 유체, 에테르 (Ether)속에 아주 작은 소용돌이가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면,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원자에 관한 여러 특성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직 맥스웰 방정식이 확립되기 전, 전류에 의한 자기장 유도 현상인 비오-샤바르 (Biot-Savart law)의 법칙 (도선을 따라 전류가 흐를 때 주변에 자기장이 고리 형태로 형성되는 현상) 역시 자기장이 소용돌이 형태로 안정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소용돌이 모델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특성 원소가 연소될 때 보이는 빛 (특성 스펙트럼) 역시, 소용돌이가 회전하면서 진동할 때 보이는 진동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1867년, 윌리엄 톰슨은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여, "On Vortex Atoms"라는 제목의, 과학사에서는 매우 유명한, 논문을 세상에 공개한다.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피터 타이트 (Peter G. Tait)와 독일의 물리학자 키르히호프 (Gustav Kirchhoff)는 이 아이디어를 더욱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발전시켜서, 이론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깝고 수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체계로 완성시키게 된다. 첨부한 첫번째 그림은 이러한 수학적 이론에서 주창하는 소용돌이 원자 (Vortex atom)의 모식도를 보여 준다. 각 소용돌이는 마치 매듭 (knot)처럼 보이는데, 이 매듭이 꼬인 방법이나 패턴은 3차원 공간상에서 각기 고유하기 때문에, 타이트와 톰슨은 이들 매듭 형태의 소용돌이 모형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각 원소들에 대응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매듭의 형태에 따라 소용돌이의 회전 운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소 고유의 발광 스펙트럼도 설명할 수 있었고, 개개로 존재할 때는 물론이고, 바로 옆에 똑같은 매듭이 존재해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체 상태의 물질을 형성하는 기초 재료로서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톰슨이 1867년에 이 모델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약 20여 년 간 소용돌이 원자 모형은 19세기 후반, 원자 모형의 주류 모형으로 간주되었다. 이 기간 동안 유럽 각지에서는 소용돌이 원자에 대해 6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이 쏟아져 나왔고, 학자들의 노력을 통해 모형은 수학적으로 점점 더 아름다운 모형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아무도 원자 스케일의 미세한 소용돌이를 직접 보지 못 했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실험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 했지만, 모형 자체가 주는 수학적 아름다움과 일부 실험적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다른 모형이 신통치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소용돌이 원자 모형은 20년 동안 왕좌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소용돌이 원자 모형의 영광의 시대는 곧 저물어 갔다.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 (James C. Maxwell)이, 이른바 맥스웰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완성하여, 1865년에 전기-자기-빛을 하나의 이론 체제에 아름답게 통합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비오-사바르의 법칙은 소용돌이의 존재를 필요로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1887년 마이컬슨-몰리 실험에 의해 가상의 유체 '에테르'의 존재가 부정된 후 소용돌이 원자의 안정성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90년,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톰슨 (J.J. Thomson)이 음극선 실험을 통해 전자(elecetron)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후, 소용돌이 원자 모형은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뉴질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조지프 톰슨의 제자이기도한 어니스트 러더포드 (Earnest Rutherford)가 1909년 가이거-마스텐 금박 산란 실험을 해석하여, 1911년 원자핵 (nucleus)의 존재를 입증함으로써, 소용돌이 원자 모형의 시대는 드디어 20여 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세월이 지난 후, 소용돌이 원자 모형의 창시자 켈빈 경은 (두번째 그림 참조) "The vortex theory [of the atom] is only a dream. Itself unproven, it can prove nothing, and any speculations founded upon it are mere dreams about dreams." 라고 소용돌이 모형을 만든 것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소용돌이 원자 모형이 완전히 쓰레기는 아니었다. 그 유산으로 창안된 매듭이론 (knot theory)은 현대 위상수학 (topology)의 한 분야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최근 절대 0도 (윌리엄 톰슨이 처음 발견한 개념이다.)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에서 특수한 초유체 (superfluid)가 일종의 소용돌이형 진동 운동을 보인다는 현상이 실험적으로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 특히, 매듭이론의 경우, 좁은 공간에서 긴 사슬 형태의 분자가 접히는 방식에 대해 수학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DNA나 단백질의 접합 (protein folding), 조밀화 (aggregation or clustering), 자기조립화 (self-assembly)등의 메커니즘에 대해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준다. 물론 당연히 현대 물리학의 측면에서는 소용돌이 원자 모형은 이미 화석화된지 오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뚜껑에 못질 당한 소용돌이 원자 모형은 거의 100년이 지난 후, 20세기 중후반, 초끈이론 (string theory)라는 물리학 이론의 기반이 되는 핵심 철학으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끈이론은 현대 입자물리학의 주류 모형인 표준 모형 (standard model)의 초대칭 입자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의 기원을 설명하고, 특히 중력을 매개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가상의' 초대칭 입자인 중력자 (graviton)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지난 반 세기에 걸쳐 개발되고 확장되어 온 이론 물리 체계다. 1960년대 처음 그 아이디어가 제시된 후, 여러 형태의 초끈 이론이 존재하다가, IAP의 천재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 (Edward Witten)이 1995년, 이들 모든 초끈 모형을 하나의 수학 체계 (이른바, M 이론)으로 통합함으로써, 이론의 수학적 아름다움이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초끈이론은 물리학자들이 열망해마지 않던 대통일이론 (Theory of everything, TOE)의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했으며, 그 수학적 아름다움, 그리고 표준모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초끈이론을 대체할만한 다른 마땅한 후보가 거의 없다는 점 (예를 들면, 고리양자중력 모형 (loop quantum gravity)이 있지만, 이 모형은 초끈이론과는 달리, 입자의 상호 작용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체계가 없다.), 양자역학부터 특수상대성이론, 그리고 중력을 다루는 일반상대성이론까지 다 한 체계에 넣을 수 있다는 확장성 때문에, 1995년 이래 거의 20년 넘게 많은 총명하고 똑똑한 이론물리학자들의 마음을 빼앗아 왔다.
하지만, 초끈이론의 근본적 한계는 실험적으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즉, 실험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조차 불가능하다는 것 (2006년에 출판된 "Not Even Wrong" 이라는 책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https://www.amazon.com/Not-Even-Wrong-Failure-…/…/0465092764)이 핵심적인 한계다. 예를 들어, 주류 초끈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끈 (String)'의 크기는 대략 10^-33 cm 정도인데, 이는 표준 모형에서 이야기하는 쿼크 (quark)의 크기보다 1/10억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다 (세번째 그림 참조). 이 정도 크기를 실험적으로 구분하려면,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충돌 에너지 (~14 TeV)를 자랑하는 LHC보다 대략 10^16 배 이상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는 다시 말해 대략 태양계 정도되는 크기의 강입자 충돌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당연히, 현재 지구 문명의 수준으로는 이렇게 미칠듯이 거대한 강입자 충돌기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며, 설사 수 천년이 지난다한들, 과연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 이 정도 장비를 설계조차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초끈이론의 근본적 한계 (즉, 실험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초끈이론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였으며, 초끈이론은 이론 물리학계의 한 때 뜨거운 감자의 위치에서, 아예 쉰 감자의 위치로까지 격하되기 일보직전이다.
작년 12월, 독일의 뮌헨에 위치한 Ludwig Maximilian University (LMU)에서는 초끈이론, 그리고 다중우주론 같이, 실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최신 이론물리 천체물리 모형에 대한 심도 있는 다학제 간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가 LMU에서 열린 까닭은 아마도 이 학교 소속 과학철학자인 리차드 다위드 (Richard Dawid, 현재는 스톡홀름대학으로 옮겼음.)이 2013년에 쓴 "String Theory and the Scientific Mind (http://www.cambridge.org/…/string-theory-and-scientific-met…)"라는 책으로 촉발된 갑론을박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이작 뉴턴 (Issac Newton)이래, 근대과학의 주요 원리로 작용해 온 경험주의 (empirical science)에 의거, 칼 포퍼 (Karl Popper)는 과학적 모형이 믿을 수 있는 이론 체계로 확립 (confirmation)될 수 있는 핵심 원리는 그 이론이 실험적 (경험적)으로 입증 혹은 반증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제창하였다. 포퍼의 제창 이래, 20세기에 나왔던 수 많은 물리학 이론들은 그 수학적 아름다움 여부에 상관 없이, 격렬한 실험적 서바이벌 게임을 거쳐, 극소수만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 체계에 편입되었고, 사실상 이론물리학 교과서는 표준모형의 확립 및 실험적 검증 (가장 최근의 실험적 검증은 2013년 하반기 LHC에서 확증된 힉스 보존 입자의 발견이다. 페르미 연구소의 테바트론의 데이타에서도 이후 재확인되었다. 피터 힉스 (Peter Higgs)는 이 발견으로 인해 모형의 제창 이후, 거의 반 세기만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다.)의 역사로 채워지게 되었다. 문제는 더 이상 이론물리학 교과서에 새로운 이론적 모형이 편입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고, 가장 강력한 후보로 여겨지는 초끈이론은 어떠한 실험적 증거도 찾지 못하여, 그저 아직까지 모형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리처드 다윗을 위시로한 과학철학자들과 데이비드 그로스 (David Gross)같은 초끈이론의 거두가 포함된 이론물리학자들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고민은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 대표된다. "수학적으로는 아름답고 정합성이 확실히 보이는데, 실험적으로 증거가 없으면, 과연 그 모형은 과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분류되어야 한다면, 실험적 증거 외에, 그 모형을 뒷받침할만한 '새로운' 종류의 증거가 충분히 나올 수 있겠는가?"
과학철학자 리처드 데이빗은 2013년에 출판된 그의 책에서 21세기의 과학은 더 이상 칼 포퍼의 이분법적인 판단 근거 (즉, 실험적 증거로 입증/반증되느냐 아니냐의 이분법)만으로는 판단되기 어려운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이분법 대신, 일종의 퍼지 이론 같은 상태를 주창한다. 즉, 완벽한 실험적 증거를 100%로 보고, 증거가 없는 것을 0%로 본다면, 10%, 20%, 50% 같은 중간 상태, 즉 확률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상태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특히 경험적 실험적 증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심증적, 정확적 증거, 수학적 정합성 같은 간접적 증거 등이 연이어 쌓이면서, 특정한 모형이 점점 증명 가능한 상태에 도달할 '확률'을 계산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의거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이론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확률론적 과학방법론인 베이즈주의 입증이론 (Bayesian Confirmation)이다. 베이즈주의 입증이론에 따르면, P(h|e)>P(h)일 때, 증거 e가 참으로 확인되면 증거 e는 가설 h를 입증한다. 물론 베이즈주의 입증이론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예를 들어, 가설 h보다 앞선 시점에 확보된 증거 e가 참일 경우, 과연, 그것만으로 가설 h의 참임을 증명할 효력이 있는지 (이를 오래된 증거의 문제라고 한다)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어쨌든, 리처드 데이빗은 베이즈주의 입증이론에 의거하여, 초끈이론이 단순한 물리학 모형의 지위를 넘어, 자체적으로 확증될 수도 있는 몇 가지 '간접적' 혹은 '확률적' 근거를 제시했는데, 첫번째는, 초끈이론의 유일한 수학적 모형만이 현재까지 알려진 자연계의 힘을 하나의 틀 안에서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초끈이론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후보 이론은 없다는 점, 두번째는 초끈이론 자체의 출발점은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나 굳건하게 확립된 표준모형 (standard model)이라는 점 (즉, 표준모형이 잘못되지 않는 한, 그로부터 수학적으로 유도된 (물론 가상의 끈이라는 양자를 가정하여) 끈이론도 잘못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는 뜻), 세번째로, 끈이론은 원래 설명하려고 했던 대상 외에도 다른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 (예를 들어, 블랙홀의 엔트로피, 초전도체 등)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근거들이다. 당연히 이러한 근거들은 모두 실험적으로 '직접' 관측된 근거들은 아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metaphysics로 부를 수 밖에는 없는 영역이다.
문제는, 리처드 데이빗 스스로가 인정하듯, 이러한 간접적 혹은 철학적 근거를 실험적 증거와 동위에 놓는 것은 매우 큰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100% 실험적으로 확증 가능한 이론적 모형과 5% 정도 확증 가능성이 있는 모형은 일견 20배가 가능성이 차이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5%의 가능성은 있기 때문에 0%에 비해서는 무한히 확증 가능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부분이 문제다. 다시 말해, 누구든 수학적으로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고, 그 이론이 다른 표준적 이론과 일맥상통하며, 특정한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그 이론 외에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주장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이론들은 생각보다 쉽게 우후죽순처럼 나올 수 있다. 원하는 현상만 골라내고, 그 현상에 맞는 모델을 만들고, 정확도를 높이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심각하게 믿고 있는 '혈액형 성격 이론'도 그렇게 포장되려면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포장될 수 있다. 그러면서 그것을 베이즈주의에 입각하여 '유의미하게 높은 확률로 확증되었다!' 라고 약을 팔아도 될 것 같은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유사과학과 구분되기 힘든, 이론적 모형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들을 베이즈주의에만 입각하여 기각되지 않을 확률을 1%라도 남겨 두게 된다면, 실험적 증거의 엄밀함을 굳건히 믿는 과학 커뮤니티는 일순간 흔들릴 수 있으며, 사이비 과학과 주류 과학의 경계 역시 모호해질 수 있다. 다만, 리처드 데이빗은 이러한 위험성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베이즈주의 입증이론에 입각하여, 입증 확률만이라도 남겨 두는 것은 어쨌든 필요한 일이라고 설파한다. 아예 무시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입증될 순간까지 버티게 만들어 줄 임시 버팀목이나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 간접적 증거라는 것을 놓고 커뮤니티는 어쨌든 갑론을박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이비 과학은 가타부타 걸러지고, 주류 과학에 편입될 수 있는 이론은 다각도에서 검증을 미리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은 쌍수 벌려 이 이론을 받아 들이기는 커녕, 제대로 이를 이해한 사람은 손 꼽을 정도였다 (물론, 이론 자체가 수학적으로는 어렵지 않으나, 이론이 내포한 물리적 의미는 고전역학의 물리적 관념 체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학계가 어느 정도 이 이론에 익숙해지고 난 후에도, 이 이론의 정당성을 받아 들이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멀쩡해 보이는 공간이 휜다고 하질 않나, 사실 시공간은 같은 물리적 개체라고 하질 않나,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하질 않나 했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의 정당성을 입증할 실험적 증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아인슈타인은 그의 이론이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순전히 수학적 정합성 하나만으로 굳건히 믿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 하기도 했다. “I hold it true that pure thought can grasp reality, as the ancients dreamed,” 매우 운 좋게도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 경 (Sir Arthur Stanley Eddington)이 이끄는 관측팀이 1919년 5월 브라질 북부에서 일식을 관측하면서, 일시적으로 태양광이 달 그림자에 가려진 상황에서 별빛이 중력에 의해 휘는 것을 실험적으로 관측하여 사진으로 남기는데 성공하였고, 1920년에는 이전 해의 관측치가 아인슈타인의 이론 예측치와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주류 물리학의 체계로 확립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는 어쩌면 매우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겠다. 아인슈타인 스스로는 자신의 이론이 수학적으로 매우 아름답고 너무나 확고해서 진리일 수 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적절한 시기에 척하고 관측된 에딩턴 경의 휘는 별빛 사진이 없었다면, 그리고 휘는 정도에 대한 관측치와 이론적 예측치가 크게 어긋났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그렇게 금방 주류 물리학 체계가 되지는 못 했을 것이다.
리처드 데이빗 같은 과학철학자들이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처럼 누가 봐도 간명하고 수학적으로 아름답고 정합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정도의 정합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끈이론 같은 순수한 이론적 모형이, 직접적인 실험적 증거 (입증이든 반증이든)가 부재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학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과연 거의 pseudo science 혹은 그저 말장난 정도로 격하될 정도로 좋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직접적 증거 외에 혹시 조금이라도 입증될 확률을 논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 인류의 문명 수준으로는 끈이론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은근슬쩍 체계로 끼어들기'를 장난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로 폄하하는 학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Lost in Math (https://www.amazon.com/Lost-Math-Beauty-Physic…/…/0465094252)라는 책을 쓰고, 물리학계와 과학철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의 물리학자 사빈 호센펠터 (Sabine Hossenfelder) 같은 사람들은, 애초 초끈이론이 TOE를 목적에 두고 만들어진 이론임을 상기시키면서, "만약 처음부터 TOE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중력은 처음부터 약력, 강력, 전자기력과는 태생이 다르고, 따라서 통합될 수조차 없는 힘이라면 어쩔 것인가?" 라고 리처드 데이빗에게 되묻는다. 호센펠터가 지적하듯, 당연히 중력이 나머지 힘들과 따로 노는 힘이라면, graviton이라는, 문제의 발명품을 자랑하는 끈이론은 더 이상 필요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이론일 것이다.
결국 초끈이론, 그리고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다중우주이론 (multiverse) 같이, 아직 표준 물리학 이론으로 확립되지 않은 여러 이론들이 생명을 유지할 길은,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현상을 계속 예측하고 예언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이 현상은 관측될 수 밖에 없다.' 는 '이러한 실험 결과가 관측되었기에 이 이론은 사실에 가깝다'와 거의 동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베이즈주의 프레임웤에서도 정당하지만, 고전적인 포퍼 주의에서도 정당성을 갖는 명제다. 끈이론 특성 상, 인류가 경험적으로 실험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이 근 미래에 있을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그 확률을 처음부터 0로 고정하는 것과, 0보다 크다고 놓는 것 사이에는 철학적으로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인류의 문명 진보가 여기서 그쳐야만 하는 운명이 아니라면, 나는 그래도 후자의 포지션을 견지하고 지지한다. 해 보고 괜히 시간 낭비했네 라고 후회할 일과 해 보지도 않아서 아예 금맥을 건드려 보지도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 둘 중, 전자가 차라리 낫다는 뜻이다.
어쨌든 과학의 진보는 SF소설 같은 과감한 이론의 제안, 그리고 그에 대한 끊임 없는 반박과 실험적 검증, 회의와 의심과 재현을 이론의 정련, 그리고 다시 새로운 세계로의 탐색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 끈이론 같은 이론의 위치는 아무도 내딪지 않는 미지의 행성에 일단 발자국이라도 남겨 두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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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의 경험주의 원칙에 입각하면 그렇습니다. 또한 현재도 대부분의 과학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요. 하루에도 수백개의 이론과 모형들이 제시되지만,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극소수죠. 다만 데이빗이 말하는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이론 같은 이론 체계가 야사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정당한가 에 대한 부분입니다. 애써서 베이즈주의니 확률적 입증이니 하는 개념을 무리하게 끌어 오지만, 결론은 일단 살려두고 보자는 것이죠. 적어도 끈이론이 아직 사이비 과학이나 유사 과학 수준으로 격하될 정도로 형편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더라도, 몇 몇 강력한 예측 정도로 방증될 여지는 언제든지 있으니까요.
기사를 읽고 본문을 읽으니 술술 읽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론 베이지안 확률론의 신봉자인데 베이지안 입증이론은 상당히 흥미롭네요.
인간의 실험할수 있는 영역이 더이상 이론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베이지안 입증이론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입증 확률만이라도 남겨 두는 것은 어쨌든 필요한 일] 이라는데 적극 동의합니다.
어차피 유사과학의 입증 확률은 극히 낮을테고 초끈 이론은 그것보단 훨씬 나을테니까요.
제목 보자마자 초끈 이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맞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초끈 이론이 과학의 범주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았다 하여 논리 자체가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요. 얼토당토않은 사이비 유사과학과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 적어도 수학의 언어로 설명이 가능한 체계니까요. 하지만 뭐랄까...... 교양과학서 정도만 몇 권 읽은 문과생의 입장에서 회의적이긴 해요. 왜냐면 초끈이론은 결국 검증이 안 되고 다만 이론으로만 남아 있을 것 같거든요. 에드워드 위튼이 죽은 후에도 과연 초끈이론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