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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0/14 22:34:09
Name 지구와달
Subject [일반] 나름 한옥마을 다녀온 이야기
요 며칠.

따뜻한 햇빛과 건조하고 시원한 이 공기가 너무 좋다.

남원 여행에서 올라오는 길에 전주에 잠시 들렀다.

어제 과음을 했으니 콩나물국밥도 먹고
4년전, 급하게 둘러본 경기전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다.

전주교대 캠퍼스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 경기전에 도착하여 꼼꼼히 구경했다.

날씨는 맑다못해 시린 느낌이었고,
햇빛 아래에서는 따뜻하고
나무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해지는 기똥찬 기온에,
한복을 입고 깨질듯한 웃음을 토해내는 여학생들은
같은 여자가봐도 왤케 이쁘십니까.

겉옷을 벗어 들고 더 가벼운 차림으로 기분좋게
경기전을 나와 한옥마을 메인 스트릿을 걸었다.
오우.
임실치즈구이, 구슬 슬러쉬, 새우만두, 초코파이, 모히또, 자몽맥주....다 먹고싶지만 신중해야한다.
맛의 고장에서 허접한 음식으로 배를 채울순없지.
오매.
저건 또 뭐임? 한지전시회? 기웃기웃. 앗. 버스킹도 하네. 기웃기웃.
애들 수학여행왔나부다
저 남학생은 왜 어우동처럼 차려입었으며
또 다른 남학생은 왜 어우동의 허리를 답싹 안고
걷는것인가 크크
목마르네. 물이나 한병 마셔야겠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신나게 걷다가 난 알게되었다.
차 키가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실종되었음을.

털썩.

하아.
괴상하게도...
오늘은...
모든게 완벽하더라니.

자자...
울지말고 생각해보자.
일단 한 시간동안 내가 걸은 길을 다시 걷자.
명동만큼 사람이많지만 혹시 있을수도 있잖아?
경기전에서 떨어뜨렸을지도 몰라. 제발 그랬으면.
안내소마다 다 가보자. 천사같은 사람이 주워서 맡겼을지도 모르지. 아. 근데 오늘은 고딩들이 많아서.
흑. 얘들은 차 키의 소중함을 잘 모르지. 흑.
스마트 키라서 이미 누가 밟아서 깨졌을지도몰라.

하. 만약 못 찾으면
고속 버스타고 200km 떨어진 나의 집에 가서
온 집안을 뒤집으며 어딘가에 있을 스페어 키를 찾고
다시 버스타고 200km 내려와서
주차요금 몇 만원내고
다시 200km 운전해서 올라가지 뭐. 흑흑


두 시간 전에 그렇게 기쁜 맘으로 갔던 경기전에
다시 가서 표 받으시는 분께 아까 찢은 표를
보여드리며 말씀드렸더니 들어가라신다.

경기전을 다시. 걸었다. 땅만 보며.
이놈의 경기전. 내가 다시는 오나봐라.
없다. 관리소에도 없단다. 박물관에도 없단다.

한옥마을 메인 스트릿을 다시 걸었다.
땅바닥에는 문어꼬치도 떨어져있고 아이스크림도
녹아 내리고 있고 버려진 관광지도도 많구나.
청소하기 힘드시겠다.
없다. 내가 찾는 검은 사각형의 그것은 없다.

시계를보니 한 시간이 지났다.
정확히 내가 기분좋게 걸은 그 시간만큼
심란한 마음으로 땅만보고 다시 걸었구나.

자, 이제 집에 가자.
이렇게 복작복작한 곳에서 찾아내는게 이상한거지.
지갑도 차에 놔뒀는데 그나마 삼성페이가 있어
다행이지뭐니.
버스타고 집에 가서 스페어키를 찾아보자

젠장맞을 저 버스킹은 시끄러워죽겠네
잠시 후 역사해설 뭐뭐뭐가 있다는 저 길거리
방송도 짜증나.
아 터미널까지는 어떻게가는거지 검색해봐야겠네


길거리에 주저앉아 집에가는 경로를 폭풍검색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어쩌구하는 방송이 희미하게 들린다
뭐라는거야  한옥마을이라고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라는거야 웃기시네

그러다가 나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된다

나는 늘
직관이라는건. 기억이라는건. 감각인지라는건.
뇌 말고 다른 부분으로도 하고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길거리 엠프에서 큰 소리로 나오는 노랫소리를
비집고
가냘픈 목소리로 '스마트키' 라고 발음하는
딱 한 단어의 방송이 내 귀에 꽂힌 것이다

맹세컨데 내가 그때 하필이면
길거리 스피커아래 있지 않았더라면
2m만 떨어져있었더라면
10초만 더 빨리 검색하고 자리를 떴더라면
키를 찾아 헤맬때의 발걸음이 두세걸음만 빠르거나 늦었다면
나는 지금쯤 고속 버스 안에 있었을 것이다
과장을 조금 하면 우주가 도와주는 기맥힌
타이밍이란게 이런건가.

방송은 딱 한번으로 다시 나오지않았고
나는 '스마트키' 외에는
전혀 듣지못했으므로 옆에있던 안내소 직원분께
방송을 하는 곳이 어디인지 급하게 여쭈었고
방송실까지 진짜로 날아갔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차 키를 주워 맡기신 분.
방송해 주신 분.
대한민국 국민의 세련된 자세에 탄복했습니다.

그리고
우주가 도와주는 타이밍.
앞으로도 도와줘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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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큼중년
16/10/14 22:40
수정 아이콘
전주 토박이라서 괜히 뿌듯한 기분이네요 ^^
지구와달
16/10/14 22:42
수정 아이콘
오늘 일로. 정말로. 전주 애정합니다. 훌륭한 관광도시입니다. 흐흐
-안군-
16/10/14 22:44
수정 아이콘
이분 복권 사셔야 할듯... 크크크...
글이 참 맛깔나네요. 마치... 전주비빔밥처럼?
지구와달
16/10/14 23:46
수정 아이콘
흐흐흐 당분간의 행운을 오늘 다 쓴 기분입니당. 저의 날뛰는 감정선을 맛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의소리
16/10/14 23:29
수정 아이콘
경기전 좋죠.. 한옥마을도 시끌벅적하게 좋았는데, 그거랑 대조되게 조선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경기전도 좋았네요...
전 전주영화제 하던시기에 가서 한옥마을 근처 주차하는데만 1시간이 넘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나저나 스마트키 분실하셨으면 자택으로 돌아가셔서 찾으시는것 보다 그냥 보험사 부르시는게 낫지 않나요?
찾으셔서 다행이지만...만약에 분실하셨으면 자택에 돌아가서 스패어키 찾는것보단 보험사 부르는게 빠를듯한데...
지구와달
16/10/14 23:49
수정 아이콘
스마트키 분실은 보험사가 꽤 복잡하더군요 유료견인을 하고, 현기차가 아니라 복제도 까다롭고 등등. 휴.
경기전 작지만 정말 매력있죠^^
16/10/14 23:39
수정 아이콘
훈훈한 결말입니다 흐흐흐
지구와달
16/10/14 23:50
수정 아이콘
지금도 그 누군가에게 감사하고있어요^^
훈훈해요 정말. 크크크
안채연
16/10/14 23:58
수정 아이콘
한옥마을쪽이 사람 없을때 가보면 산책하기 참 좋은곳이죠.. 불과 몇년전까진 그랬는데 요즘에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작년부터 안가봐서
원래 이야기라는게 기승전결이 계속 같은분위기로 가면 재미없듯이 다시 찾았을때 최고의 기쁨을 느껴보시라고 한시간동안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 한게 아닐런지...크크크
16/10/15 07:46
수정 아이콘
이 글의 주제는 맨 마지막 줄이군요 크크크크
호야만세
16/10/15 14:08
수정 아이콘
저도 길에서 스마트키를 주으면 누군가를 위해 귀찮더라도 꼭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크크크..
16/10/16 11:44
수정 아이콘
지금은 대전에 있지만 토박이에요. 다음에 오실 일 있으면 쪽지 주세요.
안내 도와드릴게요.
살려야한다
16/10/16 13:48
수정 아이콘
순간 삼성페이 바이럴인줄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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