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파트는 당시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어린 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꽤나 신기함으로 가득했었다.
계단이 아니라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가던 기분, 사람 얼굴이 화면에 보이는 인터폰, 등등
우리집은 12층에 있었다.
지금이야 초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지방에서 이 정도면 그래도 꽤나 고층에 속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쬐그만 중학생의 걸음으로 그 아파트에서 20분 남짓 되는 거리였다.
몸에 안 맞게 큰 교복에다 제 몸뚱아리 만큼이나 큰 가방을 메고선 늘 같은 길을 걸어가곤 했다.
학교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다 보면은 늘 내 방 베란다에서 엄마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주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서는 나도 같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파트 현관으로 뛰어가곤 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늘 내가 집에 오는 시간엔 꼭 12층 내 방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며 마중을 해주던 엄마
그런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채 1년이 되지도 않았을 때 아파트 계단에서 쓰러졌다.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를 한 채로 누워 있던 낯선 모습의 엄마
그곳은 일반 병실하곤 다르게 면회조차도 자유롭지 못해 그저 멀리서 엄마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샌가 하교길에 내 방 베란다를 올려다 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다.
엄마는 그렇게 병원에 5년이 넘도록 있다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 봄에 돌아가셨다.
상을 치르면서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아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밤새 조문객들의 문상을 받으면서 날을 새우고, 장지에 엄마를 묻고 다시 집으로 왔다.
아무것도 없는 내 방의 베란다를 쳐다보면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그런데 바람인지 뭔지 모를 차가운 무언가가 나의 뺨을 스치듯 어루만지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엄마가 나에게 "엄마가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돼" 라는 말을 하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제서야 상을 치르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구나... 너무나도 슬프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문득 엄마 생각이 나곤 한다.
늘 집에오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 방 베란다에서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던 엄마.
가끔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상상도 해본다.
언젠가 나 죽어서 저승에 가게 되면 "우리 아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라면서
엄마가 반갑게 마중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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