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침공 당시 8대 싯켄(집권) 호조 토키무네는 일본 전토의 무사들을 움직이면서 막부가 일본을 통치한다는 것을 확고히 했습니다. 무사들의 동원부터 영지를 내리는 등의 권한을 모두 가지게 된 것이죠. 막부가 보름달이 됐다 할만하겠군요. 이것 때문에 막부는 차츰 무너지게 됩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정말 무리해서 무사들을 동원했지만 역적 토벌도 아니고 그들에게 줄 상이 없었죠. 역대급 위기를 이겨냈음에도 잃기만 했지 얻은 건 없는 상황. 막부에 대한 불만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당시 무가들의 한계와 일본 사회의 변화 등으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죠. 이 부분은 저 밑에 전국시대 가면 제대로 얘기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몰락한 무사나 신흥 세력들이 일어나 일본을 혼란시키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악당이라 불렀죠.
한편 조정에서도 아직 포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막부가 혼란에 빠졌을 때가 곧 다시 덴노 친정을 노릴 기회였습니다. 거기에 그들도 나름대로 기가 몽골의 침공을 막아내면서 기가 살았습니다. 그들이 한 건 그저 하늘에 빈 것 뿐이었는데 진짜 기적이 일어났거든요. 신풍, 가미카제라는 말로 더 알려진 태풍이었죠. 할 게 없어서 기도만 한 게 이렇게 한 방 역전으로 나왔으니... 조정이고 막부고 이걸 통해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 신국(神國) 사상을 열심히 펼칩니다. 그 첫째는 역시 덴노의 시조인 아마테라스가 됐구요. 이걸로 조정이 진짜고 막부는 가짜다 뭐 이런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막부는 일단 덴노의 권위를 빌린 거니 무시할 순 없고 대신 겐지의 시조신인 하치만(팔번)을 끼워넣는 등으로 나섰죠. 이런 신국 드립이 메이지 이후로 가면 어떤 괴물이 되는지는... 다들 아시겠죠.
마침내 일어선 덴노가 있었으니 바로 고다이고 덴노입니다. 한 번 발각돼서 중신들이 대신 벌받게 됐지만 그러고도 포기하지 않았죠. 근데 이것마저도 배신으로 들키고 폐위돼 오키섬으로 유배당합니다. 일본에서 독도와 가장 가깝다는 그 오키섬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모리요시 친왕과 악당으로 유명한 쿠스노키 마사시게 등이 이에 호응해 거병합니다. 고다이고 역시 섬에서 탈출했구요. 여기에 아시카가 다카우지, 닛타 요시사다 등이 막부를 배신하고 고다이고 측에 붙어 거병하면서 마침내 가마쿠라 막부는 쓰러집니다.
한국에서 이 이야기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이 만화겠죠. (...) 어디까지나 이야기로요
숙원을 이룬 고다이고는 덴노의 친정을 선포하니 이를 그의 연호를 따 "겐무 신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또 되지 않았으니... 일단 그를 따른 무장들의 논공행상에서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았고, 그의 정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거기다 큰 공을 세웠던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생각이 달랐구요. 그는 겐지였고, 가마쿠라처럼 자신의 막부를 만들려 했던 것이죠. 그는 호조씨 잔당의 반란을 틈타 이를 진압하면서 가마쿠라에 눌러앉았고, 모리요시 친왕을 죽이고 닛타 요시사다를 모함합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닛타와 쿠스노키 마사시게 등이 덴노의 편을 들면서 맞서 싸우게 됩니다. 과거의 동지가 현재의 적이 됐으니...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는 겐지라는 명분과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무장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기기도 했다가 져서 큐슈까지 도망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최후의 승자는 그였죠. 고다이고 대신 당시 조코와 손잡고 그 아들을 덴노로 옹립합니다. 1336년, 무로마치 막부의 시작입니다. 가마쿠라(지금의 도쿄 서쪽입니다)에서 교토를 통치하긴 힘들었으니 이제 직접 교토에 막부를 차립니다.
+) 당시 덴노는 지묘인과 다이가쿠지라는 두 계통이 싸우고 있었는데 막부에서는 돌아가면서 하라 했습니다. 고다이고는 후자였고 이후 자기 후손들만 덴노 시키려고 했죠. 다카우지는 그 반대파인 지묘인 계통과 손 잡은 거구요. 허수아비 상황에서도 내가 덴노 먹겠다고 싸우는 게 참 ㅡ .ㅡ)a
쿠스노키 마사시게. 이 시기 정말 맹활약하면서 가마쿠라 막부를 쓰러뜨렸고, 다카우지도 한 때 누르는 등 대활약을 펼치다 결국 밀려서 죽습니다. 요시츠네가 그렇듯 다카우지보다 그가 더 유명합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쇼군을 깎아내린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 이전부터 유명했다 합니다. 무로마치 막부가 워낙에 바람 잘 날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판관편애의 정서도 있겠죠.
하지만 의지의 사나이 고다이고 덴노는 포기하지 않았죠. 항복해놓고는 남쪽으로 달아났고 거기서 자신들이 정통이라 주장합니다. 일본의 남북조 시대의 시작이었죠. 하지만 힘은 막부에 있었으니 1392년, 3대 쇼군 요시미츠 때 결국 북조에 흡수되죠. 서로 번갈아가면서 덴노를 하자는 합의는 개뿔 당연히 북조가 정통이 됐구요. 나중에 뒤집혀 버립니다만. 그동안 고려에서는 왜구가 급증해 큰 위기가 됐습니다. 이 혼란기의 영향으로 추측하죠.
이렇게 덴노의 조정은 막부에 대항을 완전히 포기하고 확실한 허수아비가 돼 버립니다. 자, 이런 패턴을 보면 다음은 무엇일까요?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이 어떻게 허수아비가 될까 하는 것이죠. (...)
자... 아래 내용 가기 전에 잠시 쉬었다 가죠.
한국사에서도 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컸습니다. 삼국시대까지는 그래도 적 땅을 먹어서 상으로 주면 될 일이었지만 고려부턴 힘들어졌죠. 일단 공신들에게 따로 줘야 되고, 관리들에게도 줘야 되는데 세습을 허용하니까 줄 땅이 적어집니다. 때문에 제도를 고치면서 땅의 규모가 줄어들었죠. 그러다 큰 일 한번 치르면 공신이 막 늘어나서 땅은 더욱 줄어들고 말이죠. (아 세조 -_-) 이렇게 대토지를 가진 공신들이 늘어나고 문벌 귀족이 된 게 고려고 이건 해결되지 못 했죠. 그저 무신으로, 권문세족으로 주인이 바뀔 뿐. 신진사대부가 이걸 다 개혁해서 과전법을 뙇! 내놓습니다만 조선도 비슷한 테크를 타구요. 공신들 때문에 (아나 세조 -_-) 줄 땅은 줄어들고 결국 녹봉만 주는 걸로 바뀌지만 이걸론 관리들이 먹고 살기가 어려웠고, 지주들이 다시 늘어나게 되구요. 수조권 이런 얘기까진 안 하겠습니다.
유교에서 청백리를 그리 강조하고 검소를 강조하는 게 이것 때문이구요. 어차피 지배층이 재산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다면 그 욕심 자체를 막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요. 그 시대에선 그게 최선이었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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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얘기를 시작해보죠. 누가 누구랑 싸우고 누구를 갈아치우고 뭐 그런 게 많은데... 그냥 이렇게만 생각합시다. 쇼군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다이묘들이 그 쇼군을 자기들 마음대로 갈아치우는 경지까지 갔다구요.
1467년, 시작은 하타케야마(전산)라는 가문의 당주 계승 문제였습니다. 아들이 없자 동생을 양자로 들였는데, 아들이 태어나버린 것이죠. 당연히 갈등이 일어납니다. 근데 이걸 쇼군이 승인해줘야 되는데 당시 8대 쇼군이던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이랬다 저랬다 해버립니다. 이 문제가 눈덩이가 되어 갈수록 커집니다. 유력 다이묘들이 여기에 끼어든 것이죠. 관령(막부의 넘버 2)였던 호소카와(세천)가부터 역시 실력자인 야마나(산명)가, 시바(사파)가 등이었습니다. 나중엔 서쪽의 오우치(대내)도 서군으로 참전하죠. 이들의 이합집산은 참 복잡하고 설명해도 재미없을 거 같으니 넘기겠습니다. 그냥 호소카와가 동군, 야마나가 서군이라고만 아시면 됩니다.
중요한 건 여기엔 쇼군 계승 문제까지 얽혀있었다는 것이죠. 쇼군가에도 위와 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요시마사는 자식이 없어서 출가한 동생을 환속시켜서 뒤를 잇게 하려 했는데, 당연히 아들이 태어나면 어쩌냐 하고 거부합니다. 그러자 아들 태어나도 니한테 준다고 해 버리죠. 그의 이름이 요시미, 호소카와가 그의 후견인이 됩니다. 그런데 진짜 아들이 태어납니다. 이 아들이 요시히사, 그의 엄마이자 요시마사의 정실인 도미코는 야마나와 손 잡고 아들을 쇼군에 올리려 했구요. 이렇게 다음 쇼군을 둔 대립으로 번진 겁니다. 이 과정에서 요시미는 앞에는 당연히 동군이었다가 다시 출가하게 되자 서군이 되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은 1477년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양 세력의 주동자들이 나이가 들어서 죽어갔고, 각 세력들도 전쟁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죠. 이렇게 되자 덴노의 명령으로 서군이 해체하는 식으로 끝이 납니다. 쇼군 계승도 어느새 성장한 아들 요시히사에게 주어졌구요. 이렇게 평화가 오는가 했습니다만... 오히려 막부의 실권은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전쟁을 이끈 각 다이묘들의 권력도 마찬가지였구요.
당시 쇼군 계승의 상황은 더 재밌어졌는데, 엄마 도미코의 바람도 헛되이 요시히사는 1489년에 죽어버립니다. 또 계승 분쟁이 벌어졌고, 위에 쓴 요시마사의 동생 요시미의 아들 요시키가 쇼군이 되죠. 그러자 호소카와 마사모토가 도미코와 손잡고 요시키를 쫗아버립니다. 1493년 메이오의 정변, 오닌의 난과 함께 무로마치 막부를 실질적으로 끝낸 사건으로 평가받죠. 그런데 또 1508년에 서쪽의 오우치 요시오키가 와서 전 쇼군 요시타네(=요시키)를 다시 옹립하고 호소카와가 옹립한 요시즈미를 쫓아버렸구요.
이 요시오키가 따지고 보면 노부나가의 대선배 쯤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영지가 워낙에 서쪽에 있었고 아마고(니자) 가문이 도전해 오면서 큰 영향을 주지 못 합니다. 호소카와 가는 다시 1521년 다시 반격을 해서 요시타네를 쫓고 요시즈미의 아들 요시하루를 옹립합니다. 쇼군이 유력 다이묘들의 손에 계속 갈아치워진 것이죠.
앞의 남북조시대를 빼고 오닌의 난 후를 빼면 무로마치 막부의 제대로 된 치세는 70년 정도입니다. 이러니 인기가 없죠 ㅡ.ㅡa
자... 골 아프죠? -_-; 이제 좀 상황 설명을 하자면요. 따지고보면 무가 정권이 시작됐을 때부터의 문제였고, 일본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생긴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때부터 말이죠.
조정이 다스릴 때든 쇼군이 다스릴 때든 중앙집권은 약했습니다. 지방은 쇼군에게 임명된 슈고 다이묘들이 다스렸죠. 그 위로 탄다이(탐제), 간레이로 갈수록 더 강한 다이묘들이 다스렸구요. 막부는 이런 강한 다이묘들의 동의 아래 세워진 것이었고, 약해질수록 이들 다이묘들의 발언권이 커집니다. 가마쿠라 막부 때도 주요 다이묘들이 배반하니 망했죠. 그나마 가마쿠라는 호조가가 싯켄을 계속 해 먹을 정도의 권력은 있었습니다. 아시카가가는 그것도 없었죠. 리즈 시절은 3대 요시미츠 때 정도였고, 이후에는 다이묘들의 합의체 정도로 운영됩니다. 그나마 겐지 혈통 같은 더 큰 명분도 없고 비슷한 세력을 가진 다이묘들이 있기에 실세가 되는 정도로 만족한 거구요.
+) 다이묘(大名)은 이름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네 네임드요 ( ..)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면 그렇게 불렀죠. 기준은 그때그때 다른데 보통 수확량을 뜻하는 고쿠다카(石高)로 합니다. 에도 시대 때는 5만석 이상이면 다이묘, 그 이하면 소묘(小名)라 했다는군요.
이들 다이묘들의 상황도 좋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권위가 약해지는데 지방을 다스리는 자의 권위라고 온전할까요. 일단 계기가 된 상속 문제가 있죠. 무로마치 시대에 균분 상속에서 장자 상속으로 가면서 승자독식이 돼 버립니다. 계속 나누면 계속 쪼개질 뿐이니 가문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였겠습니다만, 동생들도 다 먹여살릴 가신이 있었던 게 문제죠. 유교식 장자 계승이 당연시되지 않았을 때니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요. 이렇게 형제끼리 싸우고 부자가 싸우는 난장판이 일본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 장자 계승이 참 문제도 많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그나마 최선이라 할만하죠. 기술이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성장하기 전까진 민주정은 꿈도 못 꾸고, 해봤자 귀족들의 과두정이 될 뿐이고... 군주가 모자랄지도 모르니 신하들의 권한을 높이자 (정도전의 재상총재제 같은) 하니 그것들이 왕을 갈아치우려 하고 ㅡ.ㅡ;
그리고 그들 자신의 문제가 있었죠. 그들은 결국 무사였습니다. 싸울 줄만 알았죠. 공을 세워 땅을 받아도 그걸 잘 키워야 했습니다. 때문에 이들을 보좌하고 가신들이나 슈고다이(수호대守護代)라 불리는, 먼 영지를 대신 통치하는 가신들이 있었죠. 이들이 실권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 거기에 고쿠닌, 고쿠진(국인國人)이라 불리는 호족들도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었습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자들은 하나씩 이들에게 잡아먹힙니다. 이렇게 싸움도 잘하고 내정도 잘하는 자들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전국대명(戰國時代), 센고쿠 다이묘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하극상이 판치던 시대가 바로 일본의 전국시대구요. 물론 살아남아서 슈고 다이묘에서 센고쿠 다이묘로 간 케이스 역시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시대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느냐는 것, 덕분에 혼란기 치고 안정적인 지역도 많았고 농업 상업 등의 발전도 뒤따랐죠.
오닌의 난을 이끈 가문들은 자기들이 쇼군을 등에 업고 더 큰 권력을 얻길 원했겠습니다만 오히려 그 쇼군의 권위만 약해지고 자기들의 권위도 떨어뜨렸으니... 가령 시바(사파) 가문은 가신인 아사쿠라(조창)에게 배반당합니다. 오다가가 모시던 슈고도 시바가였지만 역시 하극상으로 올라섰죠. 하타케야마(전산)가는 영지 중 일부가 아예 농민 반란(잇키라 부릅니다)에 휩쓸려 잃고, 그 지역 백성들이 8년간 자치를 하기까지 합니다. (...) 실권을 휘둘렀던 호소카와 가문도 내분 끝에 미요시(삼호) 나가요시에게 먹혀버립니다. 이제 꼭두각시를 조종할 사람이 바뀌었네요.
+) 굳이 독음을 적은 이유야 아실 분은 아시겠죠. ( '-')a 여기 등장한 가문들이 다 나중 가면 낡은 권위에만 의지한 퇴물취급당하고 망해 가죠.
다음 얘기로 가기 전에 또 조선 쪽 얘기를 해보자면, 조선에서도 지방관으로 무관을 보낸다는 게 큰 걱정이었습니다. 문관과 무관의 실적 차이가 엄청나게 컸거든요. 아무리 글만 봤다 해도 그 글에 백성 다스리는 마음가짐이나 방법이 나와는 있으니, 활만 쏘던 자들과는 확실히 달랐나 봅니다. 그래서 무관들도 글 읽게 하긴 했지만... 이 때문에 육군에서는 평안, 함경도에만 지방관으로 많이 파견하고 다른 지역은 거의 안 보냈다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이게 큰 약점이 되었죠. 지휘관이 다 싸움을 몰랐으니까요. 이게 임란 초 패전의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반면 수군은 왜구에 맞서야 되니 역시 많은 무관들을 지방관으로 보냈습니다. 수군이 초기부터 유리했던 이유 중 하나죠. 원균이는 밸런스 패치용인가
호소카와 가문 쪽이던 요시하루의 아들 요시테루, 미요시가와 화해하면서 정식으로 쇼군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없었고, 틈만 나면 그 영향에서 벗어나 막부를 바로 세우려 했죠. 결국 1565년, 미요시 가문은 그를 죽입니다. 막강한 무예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검호 쇼군'이라고도 불렸던 자지만, 혼자로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도 죽이기 어려워서 다다미로 눌러서 쓰러뜨리고 위에서 마구 찔러댔다 합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 이 때 쇼군을 죽인 주동자이자 결국 모시던 미요시 가문까지 잡아먹고, 절도 불태우고 노부나가 밑에서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킵니다. 근데 마지막에 노부나가가 살려줄테니 아끼는 차 끓이는 솥을 달라고 하자 못 준다면서 자폭하죠. (...) 특이한 인물입니다. 다만 연구결과로는 쇼군을 죽인 건 아니라고 합니다.
나가요시의 양자로 그가 죽은 후 가문을 이끌던 미요시 요시츠구는 다른 쇼군을 옹립하지 않습니다. 미요시 가문의 천하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게 되지가 않았죠. 가문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요시테루의 동생 요시아키가 환속해서 자기가 쇼군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누가 이걸 받아서 교토로 오기라도 하면 명분에서 밀리게 되는 것이죠. 결국 쇼군을 또 세웁니다. 여기에 자기도 미요시 산닌슈(삼인중)이라 불리던 가신들에게 밀려서 자기 편인 히사히데와 함께 [요시아키가 의지하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에 구원을 청하게 됩니다. (...);;;
안 그래도 상경을 계획하고 있던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라는 명분과 함께 상경 최대의 적일 미요시가의 내분에다 자기 편이 생겼다는 소득까지 얻게 되었죠.
자, 이제 겨우 익숙한 이름이 나오는군요. 그럼 이번 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 3편까지 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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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나가 히사히데. 이 때 쇼군을 죽인 주동자이자 결국 모시던 미요시 가문까지 잡아먹고, 절도 불태우고 노부나가 밑에서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킵니다. 근데 마지막에 노부나가가 살려줄테니 아끼는 차 끓이는 솥을 달라고 하자 못 준다면서 자폭하죠. (...) 특이한 인물입니다.]
악인임에도 참 특이한 매력으로 인기 많은 인물이죠. 그런데 그 악인 이미지 중 많은 부분이 창작으로 밝혀지기도 했답니다 (...);; 그래도 참 인상적인 최후죠. 그 때 다도가 발달해서 다기(찻잔) 등의 물품이 나라 하나랑도 안 바꿀 정도라고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그걸 거부하다니 참 특이하죠
초치검의비밀(국내편3권) 배경 내용이 마사시게의 아들 마사토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뒤 덴노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덴노의 조상인 백제인의 조상인 단군의 보물 천부인을 구하러 강화도에 왔다...라는 내용입니다. 거기에서 한국 도인올스타전+일본밀교 세력의 충돌이 벌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