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12/07 22:53:50
Name 알고보면괜찮은
Link #1 http://gomulgame.com/
Subject [일반] 유게 259261번 글을 읽고...
  사실 그 글(정확히는 만화겠죠...)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릴 때 제가 저랬거든요.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10살쯔음 부터 그랬지 않나 싶네요.  죽음이라는 걸 알고, 두려워하고, 그 때문에 잠을 설친 적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잠이 오길 기다리면 어쩜 그렇게도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까요.  그러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스치면 그 때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어둠도, 자는 것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두요.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생각은 자꾸만 더 자세해지고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땅 속에 누워있는 나를 생각하는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기 일쑤였지요.  옆에 동생이 자고 있어서 혼자도 아닌데도 말이죠.
  그런 무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제가 선택한 방법은 빛과 소리였습니다.  작은 수면등을 하나 밤새 켜 놓고, 당시 하던 영어 학습지 테이프를 계속 틀어놓는 거였죠.  숙면을 취하는 건 당연히 힘들었지만 그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무서운 생각을 그나마 덜하게 되어 그나마 일찍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방법으로도 견디기 힘들어 어떻게든 밤을 보낼 궁리를 하다가 집에 있던 부르마블을 꺼내서 혼자 주사위를 굴리며 밤 새 게임을 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불은 꺼놓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동생이 자고 있었고, 불을 켜놓은 채로 있으면 잠 안 잔다고 부모님께 혼 날 게 뻔하니까요.
  
  이렇게 제 잠을 방해하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잠을 편히 잘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산다는 게 너무나 무서워졌거든요.  지금의 저는 머리와 가슴에 돌을 올려놓고 사는 기분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절망과 매일의 불안감때문에요.  
  실은 얼마 전에 1년간 일하던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옮겨졌다라고 표현한 건 거기에 제 의지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 그런 직장이거든요.  거기서 원래 하던 일과 영 다른 일을 하는데 그야말로 숨막혀 죽을 판입니다.  제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요.  비굴한 성격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대하는 걸 좀 힘들어하는 편입니다.  물론 친한 사이면 그런 거 없긴 하지만요.  그런데 이 일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요청하고 묻고 그래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때마다 제 가슴에 바윗돌이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몸이 벌벌 떨리면서 굳고요.  직접 얼굴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는 눈치가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일도 빨리 배울 수 있고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구나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해야겠구나 이 일에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이런 게 파악이 됩니다.  문제는 전 눈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를 말하면 그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다행입니다.  
  이런 제가 저도 한심합니다.  왜 사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박혀버리더군요.  사실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 처음 든 생각도 '죽고 싶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부서가 좀 힘든 곳으로 직장 내에서 이름 난 곳이긴 하거든요.
  문제는 이 박혀버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구체화 되는 겁니다.  어릴 때 자다가 갑자기 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점점 구체화 된 것처럼요.  굳이 자세히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너무나 간절하게 죽을 방법을 속으로 궁리하는 저를 깨닫게 되면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난 죽고싶지 않아' '죽으면 안돼' '어떻게든 버텨야 해'이런 생각도 하긴 합니다.  가족때문에라도 나는 살아야 해.  내가 죽으면 엄마는 버티지 못할 거야.  엄마랑 아빠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텐데...순전히 내가 못난 탓인데...내가 죽으면 동생들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가족 중에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댈텐데...결혼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애써 이를 악뭅니다만 그럼에도 남들에게 폐끼치지 않고 삶을 끝내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는 저를 보면...
  
  분명 유게글을 보고 든 생각을 적은 건데 너무 우울한 얘기만 했네요.  죄송합니다.  이런 글을 보게 해드려서.  
  하지만 전 이런 식으로라도 속을 털어내고 싶었어요.   저를 아는 누군가에게 얘기 했다가 자칫 잘못하면 말이 퍼질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얘기하면 분명 엄청 걱정할 게 뻔하거든요.  특히 부모님은 저보다도 힘들어 하실 거구요.  그렇다고 속에 계속 품어두기도 너무 힘들었어요.  일기장에 적을 수도 있겠지만...그냥 남들에게 속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나를 모르고 나에 대해 수군거리지 못할 사람들에게 말이에요.
  만약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솔로11년차
15/12/07 22:56
수정 아이콘
피지알러들을 위한 링크. https://pgr21.com/pb/pb.php?id=humor&no=259261
하심군
15/12/07 22:5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몇살이든 죽음을 인지 한 순간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부터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좋고 나쁜의미의 철없음이 없어지거든요.
알고보면괜찮은
15/12/07 23:01
수정 아이콘
그렇지만 저는 아직도 제가 어른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나이는 성년을 넘은지 오랜데 말이죠. 여전히 안에는 어린애같은 면이 너무 많아요.
하심군
15/12/07 23:03
수정 아이콘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어린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은 죽는다는 걸 인지하고나서는 못하겠더라고요.
솔로11년차
15/12/07 23:05
수정 아이콘
저는 제 안에 너무나도 많은 어린애같은 모습들 때문에 어른이라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죽을 때까지 이런 모습이 없어질까?라는 고민을 한 후로는 어른임을 인정하게 됐어요.
어른은 스스로 되고자 마음 먹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현준
15/12/07 23:08
수정 아이콘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전 제가 참으로 한심하고 맘에 안드는 구석이 엄청 많지만 살아갈 만 합니다. 인간 다 똑같아요. 다 거기서 거기고 다들 별거 아니에요. 그나마 다행인게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맨날 까먹고 다시 신나게 삽니다.
윌모어
15/12/07 23:20
수정 아이콘
어디서인가 본 적 있는데(아마 신문광고 였었나 그럴겁니다), '살고 싶지 않다' 라는 말 속에는 숨겨진 부분이 있다고 해요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가 정확한 마음이라는 거죠.

정말로 죽음 그 자체를 원하시는 것인지, 죽음을 '방법'으로 여기고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15/12/07 23:51
수정 아이콘
그냥 이 정도의 생각이 딱 좋은 것 같아요..
https://pgr21.com/pb/pb.php?id=humor&no=259180

그리고 너무 외롭다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앞서 살아왔던 선조들도 이후 살아갈 후손들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죽음이란 놈인데..
그 동안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고민 비슷한 생각으로 함께 살아왔고 살아갈겁니다
SuiteMan
15/12/08 17:45
수정 아이콘
살아서 뭐해..만 아니면 됩니다. 지금 걱정하시는거 많잖아요. 괜찮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2433 [일반] 쓰레기 스펙남의 유쾌발랄한 인생사 -2- [9] [fOr]-FuRy5913 15/12/08 5913 8
62432 [일반] 문대표 MBN과의 인터뷰에서 한명숙 재심신청한다고 하네요.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은 더 심해질듯 싶습니다. [83] 도깽이9675 15/12/08 9675 4
62431 [일반] 재미로 쓴 쿡방의 흐름.. [17] 트리거5847 15/12/08 5847 0
62430 [일반] 핀란드의 기본소득 지급 실험 [44] 절름발이이리7717 15/12/07 7717 0
62428 [일반] 로버트 라이시 교수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려야 하는 이유" [34] 삭제됨6437 15/12/07 6437 2
62427 [일반] 미국 정보기관 "현 방식으로는 IS 격퇴 불가" [25] 군디츠마라8489 15/12/07 8489 1
62426 [일반] 유게 259261번 글을 읽고... [9] 알고보면괜찮은4055 15/12/07 4055 1
62425 [일반] 유쾌한(?) 기름값 [23] 토다기7183 15/12/07 7183 0
62424 [일반] 덜컥 심리학과에 지원서 냈던 제 이야기 [29] 윌모어5047 15/12/07 5047 6
62423 [일반] [야구] kt 위즈 장성호 은퇴 [33] 지니팅커벨여행7471 15/12/07 7471 1
62422 [일반] 독일인 친구가 전하는 독일 정치 상황 [28] aurelius9538 15/12/07 9538 3
62420 [일반] 뜬금없이 1등석에 타 봤던 이야기 [36] Rorschach14911 15/12/07 14911 5
62418 [일반] 뭔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해 [86] 수면왕 김수면11842 15/12/07 11842 1
62417 [일반] 부패와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벼랑끝에 선 나라 [87] 밴가드12921 15/12/07 12921 5
62416 [일반]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경계선에 대해) [21] 파란무테9052 15/12/07 9052 11
62415 [일반] EXID, 한 해 3연속 공중파 1위 달성, 역대 6번째 기록 [56] 리콜한방9498 15/12/07 9498 1
62414 [일반] [야구] 박재상. 1+1년 총액 5억 5천만원 잔류. [25] The xian7380 15/12/07 7380 1
62413 [일반] [야구] 원정도박혐의 오승환 곧 소환조사 [16] 이홍기8198 15/12/07 8198 1
62412 [일반]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비약적인 승리.gisa [30] aurelius8448 15/12/07 8448 0
62411 [일반] 시리아 난민들, 캐나다행을 거부하다. [19] 달과별9820 15/12/07 9820 1
62410 [일반] 세븐틴x에일리/지코/러블리즈/인피니트의 MV와 윤하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9] 효연덕후세우실4615 15/12/07 4615 0
62409 [일반] 조선 왕조의 영의정, 조준에 대한 이모저모 [29] 신불해12713 15/12/07 12713 106
62408 [일반] 일본발 랜섬웨어 조심하세요 [51] 인간흑인대머리남캐21132 15/12/06 2113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