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는 총선이 실시되는데 여기서 야권이 승리를 한다면 이는 오랬동안 남미를 쥐고 있었던 좌파흐름에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사건이 될겁니다. 얼마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12년만에 우파가 대선 승리를 했고, 옆동네 브라질의 중도 좌파 정권은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총체적인 난국에 처해 있으면서 경제정책은 보수쪽으로 U턴을 한 상황이죠. 해외언론들은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습니다.

한 십 몇년 전만 해도 한국의 진보언론들은 차베즈의 베네수엘라를 엄청 띄워줬는데 그 인기가 이런 정도였습니다:

오마이 2006년 12월 7일 "차베즈는 뜨는데 왜 노무현은 추락하나"

이런 차베즈 돌풍에는 그 당시의 반미 감정도 큰 몫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진보언론쪽에서 베네수엘라 띄어주기 보도를 더 이상 하지 않더군요. 지금 베네수엘라가 처한 상황이 매우 처참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추정 GDP 성장률: -10% (시리아를 뺴면 세계최악), 2014년은 -4%, 2016년은 -6% 추정
인플레이션: 159% (세계최악)
공식 환율: 1 달러당 6.3 볼리바르
암시장 환율: 1 달러당 891 볼리바르 (1월에는 200 볼리바르)
범죄율: 세계 2위 (1위는 온두라스)
국제 투명성 기구 순위: 174개국 중 공동 161위

우선 범죄율을 보자면 베네수엘라가 옛날부터 낙제생인 편이기는 헸지만 그래도 남아공이나 콜롬비아와 같이 더 심한 수준의 범죄율을 가지고 있는 또래권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국가들이 2000년대 내내 꾸준한 향상을 보인데 비해 베네수엘라는 고유가로 인해 빈곤율은 내려오면서도 범죄율은 치솟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런 흐름의 배후에는 사법,치안 기구들의 부패와 무능함이 있다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실제로 볼리바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기치아래 사법부의 독립성이 유명무실화(헌법재판소 장악)된것도 치안 약화에 있어서 큰 원인이고 그 덕분인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저지르는 부패가 정부내에 만연합니다. 예를 들면 차베즈가 2012년 미국에 의해 코케인 밀수에 개입되있다고 지목되있는 인물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인사조치가 나올수 있었던 이유가 차베즈는 군대가 자신의 정권에 위협이 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부 인사들이 마약거래에 개입을 해도 법적조치가 없도록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약거래에는 단순히 군부뿐만이 아니라 의회의장, 아라구아주의 주지사같이 집권당의 정치인들도 개입이 되어있습니다. 윗물이 저렇게 흐리다보니 아랫물이 맑을수 없는 법이죠. 일반 군인들과 경찰들도 광범위한 규모로 마약거래에 참여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진짜 막장이라는 소리가 안 나올수가 없는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차베즈는 근로계급을 정권에 밀착시키기 위해 그들로 이루어진 사회주의 민병대들을 설립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총기들을 풀어댔죠. 하지만 경제난 이후 이들은 살인,납치,마약거래 같은 범죄의 길로 손을 뻗혀 갱단과 다를바 없는 존재들로 변질되었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게 될 정도로 커다란 치안문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정권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베네수엘라 정부에게 있어서 이들은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하고 반대파 정치인/언론인들을 암살시키는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계속해서 이들에게 무기를 대주면서 암살지령을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경제 실정 또한 어디가서 두번째라고 하면 서러울 수준인데 베네수엘라의 막장스러운 경제적 현실을 대표하는 가장 어이없는 현상들이 수년쨰 지속되고 있는 화장실 휴지 부족과 거의 5만달러나 되는 아이폰6의 등장입니다. 저런 현상들의 기원은 차베즈가 추진한 산업 국유화, 환율통제와 가격통제 정책들이죠.

차베즈는 생존시 광범위한 규모의 산업들을 국유화했는데 그 이후 관련 산업들의 생산량들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석유는 국유화 이전 대비 20% 저하, 시멘트는 60%, 철강과 알루미늄은 30년 최저.

베네수엘라 정부는 또한 우유,고기,설탕,커피,달걀 같은 40개 정도의 생필품들의 가격을 낮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농부들이 이에 대해 항의를 해도 가격통제는 지속되고 있고 덕분에 생필품들의 70%는 수입해와야 합니다. 해외에서 수입을 해온다고 해도 생필품은 여전히 부족해서 사람들이 마켓앞에 수시간동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게 일상생활입니다.

이런 가격통제의 악영향을 증대시키는게 암시장 환율보다 어처구니 없이 낮게 지정된 공식환율입니다. 수입업자들은 공식환율로 달러를 비교적 정부로부터 싸게 받아 휴지같은 생필품들을 사들여 옵니다. 그러고서는 이걸 가격통제로 인해 수익을 내기 힘든 국내시장에 푸는 데신 도로 해외에 수출을 하죠.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아이폰같이 정부의 환율,가격통제를 받지 않는 제품들을 수입해와서 암시장 환율로 판매를 합니다. 그게 아니면 달러를 받고서는 뇌물을 공무원한테 바쳐서 생필품을 수입해 왔다고 인증을 받고 달러를 직접 암시장에 풀어 차익거래로 엄청난 수익을 내는거죠.

이런 환율정책으로 인해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정치권에 선이 닿아있는 부유층은 가짜 업체들을 세워서 엄청난 부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최대 250억 달러 정도가 저런 방식으로 증발했다고 전직 장관이 주장을 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공급부문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있지만 수요부문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정부재정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현 유가수준에서 그대로 유지할수 없는 복지 프로그램들을 삭감하기는 커녕 중앙은행의 윤전기를 돌려 정부재정 적자를 직접 매꾸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올해만 해도 통화량이 93%나 증가를 했죠. 고유가 시대 떄 베네수엘라가 다른 산유국들과 같이 경기불황대비 펀드를 확충해놨다면 유가가 반등할때까지 좀 버텨볼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노력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팔자가 좋았던 고유가 시대때 차베즈가 한일이라면 나라의 석유를 반 선심성(500억 달러 규모)으로 카리브해의 국가들에게 퍼줬다는 거죠. 쿠바를 보면 2012년까지만 해도 매일 40만 배럴의 석유가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그 지원이 쿠바 경제의 10%는 되는 규모였죠. 하지만 그 이후 찾아온 경제난으로 베네수엘라는 매일 석유공급을 10만 배럴로까지 줄여 버렸고 정권이 교체라도 된다면 그 나머지도 기대를 할수 없는 상황입니다. 올해 미국과 쿠바가 수교를 한데는 이런 경제적 배경이 있죠.

이런 정도로 국가의 기관들을 허물어 놓고 경제를 망쳐 놓았다면 정상적인 민주주의하에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이 당연할텐데, 현 정권이 권력을 그래도 유지한다면 차베즈의 볼리바르 혁명이 얼마나 반민주적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강화시켰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될겁니다 . 그리고 총선을 야권이 이겨도 나라가 회복단계에 들어서리라는 보장도 전혀 없고, 들어선다고 해도 그 회복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암울한 미래가 베네수엘라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싶네요.




*여럿 PGR 회원님들의 지적이 있어서 글의 내용을 좀 더 정확히 반영할수 있겠다 싶은 제목으로 약간의 수정을 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