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학교 총장이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및 프로그램 장학금 제도를 확충하겠다고 한 말이 최근의 주 이슈이다. 개인적으로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굳이 우등생 상장 외에 장학금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어 총장의 제언에는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공감이 간다. 근데... 재단 유보금이 몇백억대 가까이 되가는 학교에서 그거 풀기 싫어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장학금 정책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니 좀 쪼잔해보인다. 뭐 학생때였다면 분노가 더 컸을텐데 졸업한 지금에 와서야는 아 얘네들 아직도 쪼잔하네. 하는 정도? 아무튼,  그에 관해 커뮤니티에서는 더욱더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가는게 옳다. vs. 성적장학금이 없으면 학생들의 공부 의욕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라는 식의 토론이 있었다. 그러면서 국가장학금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나오던 다음과 같은 레퍼토리가 이번에도 빠짐없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집은 그저 그런 공무원 집안이고 집도 융자받아서 장만한건데 왜 10등급이냐. vs. 서울에 집있고 차있으면 충분히 상위층이고, 너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 생각이 나서 혹시 뭔 소리를 하나 귀를 기울여봤는데.

'집에 빚이 많다. 가난하다 그러면서 도대체 스마트폰은 왜 쓰는지 모르겠어.'

나머지 말도 했던것 같은데 내용이 내게는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저 말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말하는 소리가 작은 것도 아니고 옆에 다들릴 정도였고, 형편 힘든 사람들도 와서 끼니를 때우는 곳에서 참 패기 넘치게 말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후배가 말하고 싶었던건, 별로 생활하면서 힘들지도 않아보이는 것들이 오버하고 앉았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은데, 뭐 그 시선으로 본다면야 침대에 뒹굴어 스마트폰으로 댓글다는 대학생 정도면 충분히 살만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는 그런 상황이 오면 스마트폰도 버리고 돈 아껴 살겠다 라는 이야기일지도.



2.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집에 있던 TV는 줏어온 흑백TV였다. 그것도 세기말, 1999년에. 그 때 애들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이 정말 많았는데 이를테면 팽이라던가 따조나 모터카, 요요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은 죄다 나하고는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놀거리라고는 TV밖에 없었는데, 흑백으로 세일러문에 빠져버린 바람에 본의아니게 누구보다 이른 덕질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중학교때 갑자기 가세가 세워지더니 집도 얻고, 컴퓨터도 사고, 뭐 이런저런거 다하고 좋아지나 했더니만, 고등학교 되자마자 아버지가 바람 피고 도박하면서 집안 재산 싹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빚까지 지는 것도 모자라 알콜 중독으로 틈만 나면 집안 기물을 다 깨부수는, 초등학교 때보다 못한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한시간을 걸어서 통학을 했고, 모의고사 성적이 아무리 잘나와도 대학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학자금 대출이란게 그 때 생겼고. 생활비 및 덕질 비용은 과외로도 충분히 마련이 가능했기 때문에 지금가지 어째저째 오긴했다.

덕질에 심취해 있을 그 당시 인생 만화책을 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미노 치카 작가의 '허니와 클로버'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주인공 타케모토 유타가 낡은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와 정처없이 헤메이다 절간을 수리하는 일행과 만나는 에피소드를 꼽는다. 지금은 기억 안나지만, 그 곳에서 만난 라이벌 격 인물(이름은 지금 기억이 안난다. 스크린 톤 상 빨간 머리인것 같은 기억만)이 칭찬받은 집안일로 이 곳에서 식모살이를 할지 다시 학교로 돌아가 꿈꿨던 길로 돌아갈 것인지 방황하는 주인공의 등을 치면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불행은 자랑하는게 아니야.'

어린나이에 여러명의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는 2D의 그 자식이 불행을 자랑하지 말래서 어디 가서도 그렇게 내 얘기를 하고 다니진 않았던 것 같다. 과외하면서 많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했는데도 나에 관한건 학업 or 덕질 이야기만 했지 가정 사정을 얘기해 본적은 없다. 그러던 중, 과외 학생 중 한 명에게서 똑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대기업 전무와 대학 교수의 아들이었고, 어느 지역 유지의 손자였다던가. 한달 용돈으로는 300만원을 받고, 그것도 부족해서 가끔 엄마한테 50만원만 하던 녀석이었다. 성적은 음... 난 그다지 좋은 과외 선생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빌어먹게도 덕질 취향이 나랑 똑같았다. 같은 물건을 사도 그 당시 나는 밥먹을 돈도 아껴서 구매 할 수 있었다면, 그 녀석은 자기 용돈으로 몇번 슥슥 하면 슥슥 같은 물건이 두개 세개씩 왔다. 그래도 그 물건이 값어치가 꽤 나가던 물건인 줄은 알고 있었는지, 나를 어느정도 경제사정이 되는 놈으로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반 친구 중 한 명이 지원을 받는데, 걔는 친구들이랑 PC방 잘 가고, 편의점에서 잘 사먹고 하는데 도무지 지원을 왜 받는지 모르겠어요.'

- 그 아이 집안 사정은 어떻다는데?'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하고 여동생하고 방 한칸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데.'

- 그정도면 지원 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치만, pc방 갈 시간에 차라리 알바라도 하고 그랬으면 지원같은거 안받아도 되는데. 저라면 그럴거에요.'
'지원금이 들어온다는 날에는 바로바로 갚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한테 돈을 너무 자꾸 빌려요.'
'그렇게 살려고 일부러 자기가 불행하게 산다는 걸 주위사람들에게 강조하고 다니는게 아닐까요.'
'그런 불행은 자랑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한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사를 들었다. 혹시 이 녀석도 나랑 똑같은 만화를 보고 거기서 삘만 받아서 가져와 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함의는 2D의 그 녀석이나 3D의 제자 녀석이나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쩜 이렇게 말이 다르게 들릴까.

얼마 후, 그 친구가 자퇴했다는 소식을 제자 입을 통해 들었다.  


3.

고시원을 보고 진심으로 놀란 정몽준 씨의 표정이 생각나, 집에 와서 다시 검색해보고 낄낄 웃다가, 금새 서글퍼진다.
상류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있고, 그 환상이 우리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면,
하류사회에 대한 이미지 역시 존재하고, 그 환상이 상류층에 의해 소비되고 있음 역시 분명하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 가 후사가들에게 조작된 발언이라고 해도 충분히 나올수는 있는 말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4g 가 아니면 2g'

그래서 요즘들어서는 내 과거이야기 어디서나 거리낌없이 하고 다니는 편이다.

- 고등학교 때, 반찬이 없어서 단무지에 고춧가루 뿌려서 무친걸로만 해서 밥 먹은 적도 많아요.
'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학나오고 졸업해서 취직까지 하셨다니 대단하세요.'
- 아니 제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에요.
'네?'
- 세상에는 이런 저보다도 더 밑에 있는 인간들이 당신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아요.



P.S 준PO 보면서 닉네임 바꾸길 정말 잘했다 생각이 드는군요. 이제 맘놓고 슈퍼히사영신이나 조질수 있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