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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4 12:01:35
Name 질보승천수
Subject [일반] 액트 오브 킬링 - 살인 추억의 재현.
STILLCUT

[살해 방법 재현중] - 이 방법을 쓴 이유는 몽둥이로 때려 죽이니까 피를 닦아내는게 너무 번거로워서, 였다고. 




학살과 살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꽤 봤지만 그중에서도 액트 오브 킬링처럼 쇼킹한 건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인도네시아 군부의 공산주의자 학살을 담당했던 당시의 핵심 인물들을 만나서 당시 상황을 영화로 재현하는 거죠. 

그러니까 당시의 학살을 했던 사람들에게 그 학살을 영화로 재현하자고 한 겁니다. 

우리의 상식이라면 그런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에 거부했을 것이고 그런 학살을 저질렀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할법도 한데..........

이 사람들은 정 반대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영웅담이 영화화 한다는데 들떠서 각지에서 영화를 찍으러 몰려들죠. 

영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학살자들이 모여들어 오랫만에 본 친구들처럼 반갑게 인사하거나,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죽은 아버지 시신의 발이 반으로 잘린 드럼통 밑으로 삐져나왔던 장면을 묘사하면서 호탕하게 웃어재끼거나 영화 촬영 도중 휴식 시간에 모여서 공산주의자 여자들을 강간했던 썰을 풀어 놓으면서 "14살이면 특히 좋지"라는 드립을 날리는 등장인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이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무슨 이세계 SF나 판타지 영화같은 초현실적인 기분까지 듭니다. 

실제로 당시의 학살 주역들이 모여 영화를 촬영한답시고 각종 갱스터, 공포, 판타지, 코미디가 난잡하게 뒤섞인 연출을 하면서 정말로 초현실적인 작가주의 영화를 찍는듯한 분위기가 됨. 

공산주의자 마을(?)을 소탕하는 장면을 촬영할때 현직 정치가로 있는 사람이 확성기를 들고 "너무 과격하면 오늘날의 우리들 이미지가 안 좋아지니까 좀 더 인도적으로 살해했던 것으로 수위를 낮춥시다." 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올땐 "여기 아무도 모르는걸 알고 있는 천재가 있구만" 라는 실소가 나왔죠.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에게 당시의 학살과 살인은 죄나 불가피한 희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기질마냥 무감각한 것도 아닙니다. 당시의 일은 열정과 자유가 넘쳤던 화려한 젊은 시절이죠. 영화를 촬영한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가 했던 일을 영화로 나치나 외국 갱스터가 나온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잔혹하고 과격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며 즐거워합니다. 

마치 '우리가 나치나 외국 마피아보다 더 대단하다. 우리가 더 대단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라는 듯이..........

영화 내내 갱스터는 '자유인' 이라는 의미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한두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지겹게 반복돼서 나중엔 이게 무슨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습된 표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죄책감이라던가 당시 상황을 다시 반추해보는 일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게 있었으면 영화 촬영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죠. 

(관객이 보기에는 의도가 뻔한) 함정 질문에 그게 함정인지 인식은 커녕 함정이어도 신경도 안 쓴다는 투로 해맑게 답하며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감독의 간이 배 밖에 나왔다는 생각과 동시에 신세계를 탐험하는듯한 신선함을 제공합니다. 

학살자로 헤이그 국제 재판에 설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엔 "그땐 그게 옳은 일이었다. 그게 심판받아야 할 일이라면 미국에서 인디언을 학살한 사람은 어째서 심판받지 않은건가?" 라고 받아치는 식이죠. 

여러모로 인간의 일면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열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책으로 역사를 읽으면서 머리로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 것과 두 눈으로 직접 보는건 완전히 다르네요. 

생각해보면.....................아마 오랜 과거에는 더 심했을 거 같네요. 

인권이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잡은건 역사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세상이 뭔가 발전하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일지도 모르죠. 




(이후는 스포일러)


































































등장 인물들 중에서 딱 한명만이(가장 위에 있는 짤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철사를 당기고 계신 분) 촬영하면서 과거를 되짚어가다가 과거에 살해당했던 사람들에게 약간이나마 감정 이입을 하게 됩니다. 

영화 촬영 도중에 살해당한 공산주의자 역할을 한 뒤 나중에 그 장면을 다시 보면서 감독에게.......

"내가 죽인 사람들도 (저 장면을 촬영할 때 자기가 느낀것과 비슷한) 그런 기분을 받았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감독의 답변이 인상적입니다. 

"아뇨, 더 심했을 겁니다. 당신은 이게 영화라는걸 알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이 살해당할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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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5050
15/03/24 13:12
수정 아이콘
헐.. 굉장히 관심이 가는데, 너무 잔인할 것 같아요.
무척 흥미롭네요.
15/03/24 13:14
수정 아이콘
영화 초반부에는 저게 사람들인가 하는 충격으로 영화를 보다가 뒤로가면갈수로 실소가 나오더라구요..
중간에 상황극을 하면서 촬영감독 아버지가 공산당으로 몰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할때는 조금 눈치를 보는것 같더군요..그래도 사람이라는듯이..
보고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영화입니다.
無識論者
15/03/24 13:18
수정 아이콘
예전에 이 얘기 듣고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에 대해 알아봤는데...평화로운 국가인줄 알았더니 장난 아니더군요. 뭔 학살과 분쟁이 그리 많던지.
마스터충달
15/03/24 13:32
수정 아이콘
영화가 이런 경지까지 왔구나 싶은 영화였죠.

저 주인공이 우리나라로 치면 이근안이라 할 수 있는데, 이근안은 종교인이 되었어도 회개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을 회개시켰죠.
신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영화;;;
15/03/24 15:52
수정 아이콘
영화 내에서는 회개한듯 보이는데 밖에서는 그런거 같지는 않더라구요,
이동진평론가랑 김혜리 기자가 라디오에서 이 영화에대해 얘기할때 안와르콩고가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좀 왔다갔다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지개피세요
15/03/24 14:01
수정 아이콘
이 영화 포스터만 봤었을때 색감이 예뻐서 애니메이션인가 했는데 시놉시스읽어보고 제가 생각했던거랑 다른 내용이어서 놀랬죠.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 보고나면 후폭풍이 심해질 것 같아서 쉽사리 못보겠어요 ㅠㅠ
그래도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PoeticWolf
15/03/24 14:20
수정 아이콘
극도로 보고 싶고, 또 극도로 보기 싫은 감정을 양립하게 해주는 영화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
슬플 것도 같고 역겨울 것도 같고... 하지만 알아야 할 것도 같고...
15/03/24 16:52
수정 아이콘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안와르콩고가 피해자들에게 감정이입하고 구역질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부분 보다가 제가 토했습니다. 저녁 먹은거 전부다...
영화가 주는 피로감이나 감정적인 상처가 그때 폭발해서 그런거 같네요.

그리고 영화를 본후 생각한건데... 안와르콩고란 사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것 같진 않았어요. 신념에 따른 행동이고 그로 인해 나도 상처 받았다 정도로 생각하는것 같았어요.

차라리 동료로 나왔던분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더군요. (자기합리화를 엄청하시는분...)
자전거도둑
15/03/24 18:06
수정 아이콘
제가 본 영화중에 가장 공포스럽고 끔찍한 영화였음...
똥눌때의간절함을
15/03/24 20:10
수정 아이콘
두 번 볼 엄두가 안 납니다.. 탄식이 나오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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