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윤태호의 야후가 떠오른다.

야후.
건물이 붕괴하고, 김현의 아버지는 천천히 깔려 죽어갔다.
이 트라우마는 그가 수경대라는 특수 구조원으로써 투입된 삼풍백화점 현장을 통해 재발한다.
그 후 김현은 테러리스트가 된다.

많은 것을 생략했지만, 간결하게 정리한 야후의 내용은 이러하다.
물론 극심한 트라우마는 한 개인이 미쳐버리기에 충분한 이유였겠지만, 그것이 테러리스트로 이어지는 맥락은 다소 작위적이다.
그러나 그 작위성은 윤태호의 묘사력에서 실제 무게를 획득한다.
김현이 겪은 트라우마는 김현 개인의 것이 아닌, 이 사회와 이 세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윤태호.
사실 윤태호는 이런 식의 작법에 있어 달인이다.
이끼 속 시골 마을의 어둠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집어야 해결 할 수 있을 거라"는 대사로 인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 된다.
당신들은 거기에 있었다는 아예 대놓고 민주화 이후에 대한 우화이다.
그 뿌리겪에 해당하는 야후 또한,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이 무엇이었는지를 김현이라는 알레고리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야후.
어쨌건 야후의 김현은 그런 대한민국에 저항하는 테러리스트가 된다.
하지만 그가 저항할 수 있는 대상의 무게가 분명함에도, 그의 총과 폭탄이 겨눌 대상은 실체가 모호하다.
이를테면 구체적으로 그의 아버지를 죽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신무학의 아버지조차, 종국엔 초라한 개인일 뿐이다.
이 사회는 분명히 잘못되어있고, 건물은 계속 무너져 나가지만, 그 책임자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김현이 벌이는 테러는, 전위예술이나 익살극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그는 절망적인 엔딩을 맞이 한다.

현실.
하지만 더 유감스러운 것은, 현실의 개인들은 김현조차도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현은 분명히 초인이다.
초인이 아닌 현실의 개인들은 아마도 더 세련되게 스스로를 속였거나, 아마도 훨씬 더 무력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무력한 익살극조차 벌일 수 없는 무력함이라니.

다시 윤태호.
윤태호가 허영만의 문하생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비록 배운기간이 길지 않았다고 하나, 허영만과 사제의 구도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이 무엇이었는지가 야후의 내용이기에,
어쩌면 일제에서 5공을 다룬 오! 한강에 대한 제자의 화답이 바로 야후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일 그렇다면,

야후.
의 김현이, 6월 항쟁으로 마무리되는 오! 한강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은 블랙 유머와도 같다.
일제와 분열과 전쟁과 독재의 끝에 맞이한 20세기 대한민국이, 아스팔트에 깔린 시체와 그 트라우마에 미친 테러리스트를 낳았을 뿐이니까.
무엇보다도 피흘리는 김현과 신무학은, 바로 그 한강에 가라앉는다.

단 이 비극의 순간이 2002년 월드컵 개막의 축포 속에 묻히는 것으로 그려졌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2002년의 우리가 그랬듯이 우리는 또 다음번의 축포를 기대할 수 있으며, 비극을 mute 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