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은 코멘트화하는게 맞지만, 글이 길어질것 같아서 조심스레 글을 써봅니다.
"LG 트윈스의 임찬규 선수가 승리 세레모니의 일환으로 인터뷰 도중이던 정의윤선수에게 날리려던 물벼락을 KBSN 정인영 아나운서에게 뿌렸다. 그리고 임찬규 선수는 작년에도 동일한 행동을 했던 바가 있다."
팩트 자체로만 놓고 봐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사실이지만, 그 후폭풍은 그보다 더더욱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사과를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논란이 빚어졌으며, 방송국 일부 관계자들의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성이 문제가 있다는 디스성 발언, 그리고 그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야구인들과 선수협의 입장, 방송사의 인터뷰 보이콧과 야구단 비하 발언까지... 물론 처음 사건이 터질때도 상당히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 후폭풍은 더더욱 큰 모양새입니다.
저는 여기서 일단, 조금 생뚱맞을 수는 있겠지만 프로스포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행해지는지에 대해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활동하고, '프로' 스포츠 리그가 열리며, '프로스포츠를 중계하는 방송국'이 존재하는가? 답은 간단합니다. 먹고살기 위함이죠.
'프로 스포츠를 보고자하는 팬'이라는 수요가 있습니다.
오로지 그것을 보고자하는 팬이 있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 리그가 열리고,
프로 스포츠 선수가 활동하며
그를 중계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방송사가 존재하죠.
그런데, 직업인으로써 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개개의 인격체입니다.
여기서 이번 사건의 핵심이 나타난다고 보는데, 프로 스포츠라는 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들간에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프로 스포츠 선수는 방송사의 아나운서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승리의 기쁨에 취해서 세레머니를 했고, 그 결과 열심히 일한 직업인에게 물벼락을 맞게 했습니다. 정인영 아나운서가 그 와중에도 꿋꿋히 인터뷰를 한 것은 정말 칭찬하고 싶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기뻐서 날뛴 나머지 물벼락을 자신한테 날렸다면, 여러분은 일을 계속 하고 싶겠습니까? 더군다나 임찬규 선수는 초범이 아닙니다. 작년에 이어서 똑같은 아나운서에게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이건 꽤나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임찬규 선수의 행동, 그리고 그것을 지시했다는 선배의 행동은 분명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방송국의 몇몇 관계자들 역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야구 선수들의 인성문제를 공공의 영역에서 싸잡아 깎아 내린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오만한 행동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 수준, 학력 등을 들어가면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성을 깎아 내린 행동은 매우 지나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야구선수들보다 더 배웠고, 그러므로 자신들은 '지성인'이니까 야구선수들보다 똑똑하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지성인'은 더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도덕적인 기준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느냐가 그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기준에서 임찬규 선수는 지탄받아 마땅하겠지만, 방송사 관계자들의 발언 역시, 특히 그것이 공공의 영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더더욱 지성인의 발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네요. 나아가 팀 인터뷰를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공지사항을 발표하며,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그 팀의 치부 - 인터뷰 할 일도 별로 없는데... 운운하는 - 를 들추어냈습니다. 글쎄요, 이쯤되면 방송사의 몇몇 사람들의 태도 역시, 타인의 인격을 존중했다고는 차마 말하기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프로 스포츠 구단은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주의를 주고 했다고는 하니, 억울한 부분이 있긴 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찬규 선수나 그 일을 지시했다는 이병규 선수가 LG 트윈스의 선수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의 선수들인데, 그리고 그들이 잘못한 일인데 이를 회피했다는 사실은 구단 자체가 프로로서의 태도가 결여되어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선수의 입장에서건, 방송사측의 입장에서건, 이런 구단의 태도에 대해서 화가 날 만 하고, 또 그들 양쪽 모두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 구단의 행태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사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직업인이기 이전에, 이 판에 얽힌 모든 사람들 역시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얽힌 모든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정작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태도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먼저 저쪽이 잘못했느니, 먼저 사과해야하느니 하는 논란은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좀 더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물벼락을 날리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방송인들에게 오히려 인격을 무시당했다며 화내는 LG 트윈스 선수단도, 아무리 먼저 피해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을 프로야구판 전체의 인성문제로 부각시킨 방송사의 태도도,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야구단 프런트도 모두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원래 논의로 돌아와서, 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죠. 이 일로 인해서 LG 트윈스의 팬은 LG 트윈스의 팬대로, 정인영 아나운서의 팬들은 정인영 아나운서의 팬대로 상처를 받았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서, 정작 프로스포츠 판 자체를 떠 받치는 팬들의 의견은 그저 '여론'의 영역에서 머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갑론을박을 하던 뭘 하던 간에, 정작 프로스포츠 판 자체를 성립시키는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프로야구 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처럼 보입니다. 아니, 언제나 그랬습니다. 특히 한국의 프로스포츠 판에서, 팬들의 목소리는 관철된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들이 자신이 누려야할 컨텐츠에 있어서 손해를 보고, 또 꼴 보기 싫은 행동을 하는것에 있어서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도 개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저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 상에서의 갑론을박 뿐입니다. 반대로 프로 스포츠의 종사자들은 팬들의 목소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하나의 '도구'로만 이용하고 있는 형국이고요. 글쎄요, 이 사태에서 '팬'들의 인격은 이해당사자 누구에게도 존중받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일부 팬들 역시 확실히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더더욱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공인이라는 이름이기에 비판받는 프로선수, 방송국 관계자, 그리고 구단과는 달리, 일부 팬들은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휘두르며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그들을 인터넷상에서 마구 난도질합니다. 혹은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타고 자신의 호불호(혹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람들의 존재가 '팬'으로써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우리의 인격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고싶지 않은 프로들의 행동에 대해서 일침을 가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몇몇 관계자들의 과격한 발언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고, '팬'이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들에게 마땅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적인 권리를 가졌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참 요원해보이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