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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5/18 22:44:26
Name Dark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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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공리주의의 폐해,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생각




공리주의의 폐해,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생각





공리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신화학적으로 해석해보면

황금 가지나 디오니소스 제전에 나오는 제사 의식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다면

공리주의의 원초적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해석하자면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행복을 갖게되고 이득을 얻는다면

언제든 피를 통해서 전체의 평화와 안녕을 원하는 것" 이



바로 공리주의의 본질입니다.






일반적인 토테미즘에서도 그러한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자신이 '곰'의 부족이라 생각하면서 곰을 절대로 죽이지 않는 부족이 한 날을 정하여 곰을 죽이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자신들이 곰의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공리주의의 원형 중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드롭 프라이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고형 모방 ( high mimesis )가 되겠지요.

신화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여러가지 특성이 사실은 인간의 근저에 깔린 속성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희생 제사를 통하여 그 집단의 안녕을 얻어내는 신화적 제전은 기독교의 십자가의 사건과도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예수가 달린 것 자체를 슬퍼하는 기독교인이지만 동시에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요.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그의 죽음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기뻐하는 믿음이

바로 토테미즘의 원형과 공리주의의 모습, 비슷한 것들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속성이 어쩌면 이렇게 타자의 희생을 통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가 봅니다.

이것들이 이미지화되고 기호화되면 신화가 되고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신화속의 디오니소스 제전이나 십자가 사건을 굳이 역사적,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공리주의의 폐해는 모두가 인정하면서 현실적으로 제시했을때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본성 근저에 욕심과 욕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디오니소스적 제전과 맥을 같이 하는 '공리주의'의 폐해를 다 다루기란 어려울만큼 많습니다.

( 이 부분은 사회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


저는 이 글에서 '공리주의'를 폐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을 해체해야하는 만큼 어렵다라고 비약적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뿌리 깊숙이 숨겨있는 것으로

군중 심리와 더해질때 더욱 악랄해진다는 것도 밝힙니다.


그 이유는 바로 '터부 (taboo)'가 되기 때문입니다.
    


'토템과 타부'를 통해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들은 바로 타부가 되면 건드릴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공리주의는 현대시대에 있어서 '타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건드리는 자가 진실로 세상을 뒤엎을 자이며 세상을 등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자는 당연히 새로운'희생 제물'이 될 것이기에 '공리 주의'는 단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공리주의의 폐해는 너무나 많습니다.


'옳은 것'이라는 미명으로 '다른 것'을 해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지요.

현대의 공리주의야 말로 진정한 신화적 맹목적 종교가 된 것이라고 봅니다.

    


현대의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을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수도 있고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있다고 칩시다.


[ 실제로 대학 수학 능력 시험에서 1교시 언어 영역에서 문제로 제시된 적이 있습니다. ]




어느 한 사람이 여러 명에게 구타를 당하고 폭력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그 상황에 대한 신고 접수를 받고 형을 결론 내리려 합니다.



경찰이 공리주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 용의자들에 대한 처벌을 주장할까요?


아닙니다.

공리주의자가 내새우는 원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입니다.


그러므로 다수에 해당하는 용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구타를 행한 용의자는 무죄가 되고,

구타를 당한 피해자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마는 결과가 초래되는 겁니다.



공리주의는 상대론적, 목적론적, 결과론적인 윤리설 입니다.


그러므로 공리주의는 현실 문제에 적용할때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남게 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공리주의를 넘어서는 전일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면 가능하지요.

그것은 바로 임마누엘 칸트의 선험성에 비추어서 오히려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 Kritik der reinen Vernunft ),

실천 이성 비판 (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

정언 명령 ( “인간성 목적 대우”의 공식 : The Formula of Humanity as End )이 있습니다.




정언 명령의 3가지 원칙 ( 보편적 준칙 )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항상 목적으로 다루고 결코 수단으로 다루지 말라."




1) 거짓말을 하는 행위의 행동 준칙을 보편화하고 모든 사람이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느 누구도 서로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2) 거짓말로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욕구보다

   내 필요와 욕구를 앞세우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3)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행위는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할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나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할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다름'의 가치보다 '옳음'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대적 이해들에 대한 비판을 끊임없이 해가는 것입니다.

설령 엄청나게 느리더라도 이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또는 화이트 헤드의 과정 철학적 대안도 공리주의의 '옳음'의 논리를 '다름'의 논리로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P.S.




오늘은 2013년 5월 18일이다.

오늘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33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키워드는 뜨겁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한동안 차지하고 있던 정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정의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얼마나 소홀했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기간 압축 성장으로 이루어 낸 한국 경제의 자본주의와 산업 사회의 성과 속에

정의라는 키워드는 오직 유용함이 선이라는 절대 명제에 가리워져 그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정의란 무엇인가?

또 정의는 왜 필요한 것인가? 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만큼

물질적,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사회를 향해 나가고 있다.



물론 정의에 대한 열풍이 한 순간의 유행이라고 단정 지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흐름은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대부분의 사회적 이슈들이

본질적으로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른 ‘견해 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와 정의를 규정하는 이념에 따라

우리의 사회와 각자 개인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문제가 아니며,

시장의 개방과 보호, 자원의 분배와 성장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은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다.




정의의 문제는 그 어떤 개인과도 무관하지 않다.



단순한 철학적, 이념적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있는 정의의 근본적인 물음에

반드시 대답해야만 하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장 우리는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리드하고,

또 원래대로라면 존경받아 마땅한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의 문제와 감정들이 팽배하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연합과 소수 상류층과 기득권층들이 사회적 롤 모델이 되지 못한 채, 비난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정의’ Justice 이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절대 명제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게임의 규칙’ 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정해진 규칙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혹시 그 규칙이 누군가 에게만 유리하도록 수시로 바뀌고 있진 않은가?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공동체적인 삶과 미덕이 발현되는 사회를 꿈꾼다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아마도 정의란 무엇인가? 에 관한 고민과 공감대일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눈다면

당장이라도 우리 한국 사회가 조금은 더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P.S. 2


2011년 1월 3일~1월 26일 매주 월~수 밤 11시 10분 ~ 12시 / 토 밤 8시 30분

EBS 교양 프로그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다시 보기를 하시면 아주 잘 나옵니다.


생각의 관점과 문제점을 토론 위주로 이끌어나가면서

몇몇 철학의 발생과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결론을 도출해 나갑니다.


강의중 샌델 교수는 실제로 발생한 조난당한 영국인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항해도중 사고로 배를 잃고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자가 4명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 없이 몇일을 지낸 가운데

한 명을 살해하고 인육을 먹고 나머지 3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또한가지 예로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행복의 총량을 말하는데에

그 척도의 문제를 지적했던걸로 기억합니다.


돈으로 모든가치 척도를 정하는것에 대한 예도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문제점도 역시 제시합니다.

공리주의의 문제점의 대안으로 질적 쾌락을 중시한

후기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의 등장 배경도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판옵티콘이라는 원형 감옥을 제시한

후기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에 대해서도 설명하였습니다.










참 고  문 헌




순수 이성 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 / 임마누엘 칸트 저 | 백종현 역 (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 | 아카넷 | 2006.06.25

( 역자 백종현은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사, 철학 석사,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



실천 이성 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 임마누엘 칸트 저 | 백종현 역 | 아카넷 | 2009.08.15



판단력 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 / 임마누엘 칸트 저 | 백종현 역 | 아카넷 | 2009.05.10




형이상학 서설 Prolegomena zu einer jeden ku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onnen

임마누엘 칸트 저 | 백종현 역 | 아카넷 | 2012.09.10



윤리 형이상학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임마누엘 칸트 저 | 백종현 역 | 아카넷 | 2005.08.20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 / 마이클 샌델 저 | 이창신 역 | 김영사 | 2010.10.20



자유론 On Liberty /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저 | 서병훈 역 | 책세상 | 2005.01.05



공리주의 [ utilitarianism , 功利主義 ] /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저 | 서병훈 역 | 책 세상 | 2007.04.20


( 역사 서병훈은 연세대학교 정치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1989년부터 숭실대학교에서 정치 외교학과 교수로서

  서양 정치 사상, 자유주의, 현대 문명론, 문학과 정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




파놉티콘 : 판옵티콘 / 제레미 벤담 Jeremy Bentham 저 | 홍성욱 역 | 책세상 | 2002.05.30 ( 책세상 문고 우리 시대 63, 정보사회 정보 감옥 )



( 홍성욱은 1984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해에 문을 연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에 진학하여 과학사를 공부했다.

  1986년에 과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과학사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1994년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과학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



( '파놉티콘'은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처음 고안한 원형 감옥으로

   그리스어로 '다 본다' ( Pan : all + Opticon : Seeing 또는 vision ) 라는 의미를 가진다.


파놉티콘의 바깥쪽에는 죄수들이 갇혀 있고, 중앙 감시탑에는 간수가 있다.

간수의 눈길을 파악할 수 없는 죄수들은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끝내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벤담의 이러한 발상에 주목한 미셸 푸코는 [ 감시와 처벌 ] 이라는 저작에서

현대 사회에 스며든 파놉티콘의 원리를 밝혀 내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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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18 23:10
수정 아이콘
칸트의 의무론으로 대표되는 법칙론적 윤리설도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죠. 실천법칙이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논제설정이 아닌가에 대한 부분에서부터, 실천이성이 요구하는 신의 존재문제,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등등. 칸트의 윤리설 역시 칸트가 살았던 시기에 주창되었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지요.

자연주의 윤리설이랄수 있는 공리주의든, 법칙론적 윤리설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는 칸트의 의무론이든 일종의 약점이랄수 있는 부분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상대주의가 현대에 와서는 좀 더 힘을 얻어가는 것이고요. 물론 상대주의도 니힐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저는 존 롤스에서부터 시작된 정의론, 그리고 그를 지적하면서 마이클 샌델이 내놓은 공동체주의 역시 그렇게까지 맹신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살아가면서 이를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유연한 잣대를 가지고 실천하게끔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DarkSide
13/05/18 23:18
수정 아이콘
지적해주신 부분에 동감합니다.

어디까지나 제 의견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공리주의에 대한 해결책의 일부분으로서 상대적인 개념으로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학문을 전부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수학과 과학을 가장 신봉하지만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으로 신봉하는 편이라서 ...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인류,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이 하나도 빠짐 없이 100 % 행복해질 수 있는 세계" 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13/05/18 23:43
수정 아이콘
좀 높은 이상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칸트의 법칙론적 윤리설에 대해서 별달리 공감하는 편은 아닙니다. 애초에 '목적론'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법칙론'이라는 말이 붙었을 정도로, 칸트의 윤리설은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의미로 윤리설을 전개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토대는 '직관'이고요.

모든 사람이 "모든 인류,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이 하나도 빠짐 없이 100 % 행복해질 수 있는 세계" 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직관을 공유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그러한 것을 만들어야한다는 '목적'이 생겨버리면 칸트의 법칙론적 윤리설이 목적론으로 전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J.롤스의 정의론, 그리고 그를 비판하면서 마이클 샌델이 주창한 공동체주의를 좀더 중점적으로 바라보시는 쪽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DarkSide
13/05/18 23:48
수정 아이콘
물론 이상이 너무 높고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상, 즉 목적 & 목표라도 불가능할 정도로 높게 설정해야지
최대한 그 지점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박원순 현 서울 시장의 말로 대체하자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게 내 꿈이 아니었다면 과감히 버리세요.
그리고 오래된 당신의 꿈을 찾으세요. 오래된 그 꿈은 당신의 보석이 되어줄 테니까요.

변하지 않는다고 좌절한다면 세상은 그저 그대로이겠지요.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지적해주신 부분은 감사합니다. 일단 공동체주의적인 부분은 제가 조금 더 공부해보겠습니다.
나다원빈
13/05/18 23:28
수정 아이콘
원초적 공리주의 외에도 공리주의엔 여러 유형이 있다고 들었고
수정된 공리주의 만으로도 본문에 제시된 문제점은 충분히 해결이 가능했던거 같아요.
극단적 공리주의의 폐단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칸트를 드셨는데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수정된 공리주의가 칸트 윤리학의 핵심 내용 을 일부 수용한 느낌이긴 하더군요.
13/05/18 23:35
수정 아이콘
전공자가 아니라서 단언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강의에서 주구장창 지적하는 공리주의의 문제점은 공리주의가 '유용성(utility)'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떄문에, '옮음(right)의 문제', 즉 '정의로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수정 공리주의라고할 수 있는 규칙공리주의나 행위공리주의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계속 이어지고요.
DarkSide
13/05/18 23:42
수정 아이콘
확실히 수정 공리주의가 오리지널 공리주의에 비해서 개량되고 발전된 부분이 있더군요.

하지만 위에서 Depi 님께서 언급하셨듯이
Right 옳음, 정당성의 여부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직은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신동엽
13/05/18 23:39
수정 아이콘
제가 참 메마른 사람이라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합니다.
오랜만에 PGR에서만 볼 수 있는 글이 올라온 것 같아서 기쁘네요.

다만 수능 지문으로 나왔던 저 예는 부적절하지요.
법규라는 것이 사회적 다수의 행복을 위해 제정되고 통제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저 상황에서 공리주의의 극단적인 점을 방증하기 위하여 적용하기는 힘든 예입니다.

만약 사회 구성원이 구타한 자들과 구타당한 자. 경찰관 1명이 전부였다면 공리주의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구타한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공리주의의 관점에 맞지요.

다만 조금 비틀어 보자면 구타당한 자가 이른바 '맞을 짓'을 했다고 해 봅시다.
여러명 중의 한 명에게 부모님 욕을 했다거나 여자친구를 성추행 했다고 칩시다.

그래도 여러 명이 구타한 행위는 공리주의의 관점에 의해서 처벌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상위 부분의 모욕죄나 성추행은 따로 처벌받는 것이 맞다고 보구요.
DarkSide
13/05/18 23:40
수정 아이콘
물론 피해자가 '맞을 짓'을 한 경우라면 당연히 예외라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아무런 짓을 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 전제 조건을 깔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은 제가 언급하지 않은 게 실수 같습니다.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몽키.D.루피
13/05/18 23:40
수정 아이콘
공리주의의 해결로 제시된 건 의무주의가 아니라 덕윤리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주의죠. 글에서도 결론은 덕윤리네요..
DarkSide
13/05/18 23:43
수정 아이콘
사실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 명령도 크게 보면 도덕 윤리의 영역 핵심부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
Captain J.
13/05/18 23:55
수정 아이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는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허점이 많은 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최소의 불행을 지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잘 읽었습니다.
13/05/19 00:35
수정 아이콘
상대성을 신봉하시면 정의 자체를 규정내리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포스트 모너니즘으로 부터 정의의 절대성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나요? 모두 차이의 변주로 해체될 뿐이죠. 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공리주의를 너무 협소하게 본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리주의는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관점으로 사용될 수 있고, 반대로 평등주의를 강하게 옹호하는 관점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령 소득에 대한 효용이 체감한다고 가정하면 빈곤한 사람들의 화폐 1원에 대한 효용은 부자들의 그것에 비해 크므로 누진세제를 통한 복지를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소득이 분배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나아가면 사회주의적 평등이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 시키는 논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경찰관 이야기를 하셨는데 경찰관이 공리주의자라면 맞고 있는 사람의 효용의 감소분과 때리고 있는 여럿의 효용 증가분을 냉철하게 판단해서 행동하겠죠. 어떤 식으로 행동내리겠다고 단정하긴 힘듭니다.


애초에 공리주의가 의미있는 부분은 사람들 간의 효용을 하나로 환원해서 비교할 수 있는 잣대가 존재한다라고 가정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그게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결정을 내리는 위정자들은 언제나 그런 비교를 하고 있고 또한 해야하죠. 재정학에서는 생명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는 작업을 통해서 정책적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걸 반 인륜적이라고 하지만,10조원으로 5명의 죽음을 예방하는 정책과 10억으로 4명을 죽음을 예방하는 정책 사이에서 판단을 하라고 하면 누군가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죠. 어떤 이상주의자는 판단 불가능하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으나 실제 정책 입안자들은 의사결정에 어떤 기준이 되는 잣대가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공리주의를 옹호했지만 저 역시 공리주의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어떤 것이든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 관점이나 학자의 스탠스를 하나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칸트나 루소 같은 꽤 그럴듯 해 보이고 빈틈이 없어 보이는 논리로 무장한 학자들도 사실 빈틈 투성이었구나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구요. 결과적으로 적어도 현재까지는 인문학에서 누가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하는 논쟁은 이미 포스트 모던 이후에 다 해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몽매주의라 조롱하면서 통섭적인 하나의 설명체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죠.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 속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특수성과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각 정의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와 사안의 특수성과 가장 적절하게 조화될수 있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죠. 가령 위에서 말한 극단적인 공리주의 사회더라도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 논리에 만장일치로 합의했으면 별 문제 없겠지요. 물론 극단적인 예이지만요.
DarkSide
13/05/19 00:52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로 애초에 완벽한 인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신봉하는 것 뿐입니다.

물론 헤겔이나 칸트 및 다른 수많은 철학자들도 옳은 논리만 설파한 것이 아니라 빈틈도 많았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임마누엘 칸트의 저 "정언 명령"에 대해서 만큼은 수많은 시간 동안 아무리 생각해봐도 틀렸다는 느낌은 한 번도 들지가 않아서
( 물론 이 부분은 직관의 영역이지만 ) 저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과감히 "옳다" 라고 주장하고 싶은 게 요지였습니다.
13/05/19 01:09
수정 아이콘
칸트의 정언명령은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보편적 도덕원칙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옳다', '그르다'의 판단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리주의가 완벽하지 않듯 정언명령도 완벽할 수 없죠. 사실 '보편성'이라는 것은 말씀하신대로 필멸자의 인간으로서 설정하기엔 너무 어마어마한 개념이니까요.
swordfish
13/05/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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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최대다수 최대행복에서 가장 욕먹는 약자에 대한 다수의 억압은 벤담이 수정함으로서 해결된 문제죠. 약자의 행복 상승폭은 크고 강자의 행복 상승폭은 줄임으로서 말이죠. 한계 체감을 적용함으로 해서 이문제로 공리주의를 공격해 봤자 입니다.

오히려 객관된 계산법을 어찌 만들 것인가? 수량화가 만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기본적인 부분이 욕먹어야 할 철학이죠.
DarkSide
13/05/1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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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아무리 공리주의가 좋은 체제라고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 관점에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계산법이나 수량화에 대한 부분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공리주의가 상당히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이론이라는 부분도 동의하구요.
하지만 완벽한가? 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수정 공리주의로 이전 오리지널보다 더욱 발전되고 나아진 것은 맞는 말이지만 완벽히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 으로 인해서 희생되는 소수 Minority 희생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구요.
swordfish
13/05/1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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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으로는 그부분은 많이 해결 됩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독재로 인한 쾌감으로 인한 행복의 상승폭은 적고 소수의 행복 하락폭은 크기 때문이죠. 이리 되면 +- 부분에서 마이너스가 기존 균형상태보다 급격히 증가합니다. 한마디로 독재를 하지 않는 상태보다 다수의 독재로 인한 상태에서 최대다수 최대 행복을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수정된 공리 주의는 배분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소수의 자유라도 함부로 침해 했을 경우 침해하기 전 보다 사회 행복의 총합이 감소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재대로 된 배분이 가져 오는 빈자의 행복 상승폭은 부자의 행복 하락폭 보다 크기 때문에 오히려 재대로된 배분이 수정된 공리주의 입장에서 지지되는 겁니다.

벤담이나 밀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전체 주의보다는 소수의 자유라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가 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DarkSide
13/05/1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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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공리주의로 소수의 자유가 중시되는 부분을 고려해본다면 많이 해결된다는 주장 자체는 분명히 타당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완벽히 100%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인 것도 사실이라서 애매한 영역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swordfish
13/05/1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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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학의 문제는 100% 행복보다는 계산법의 문제. 이를 사회 성원일반이 수용할 수 없다는 문제. 계량화 할 수 없는 영역의 계산은 어찌할 것인가가 더 큽니다.

한마디로 기계의 컨셉 아이디어는 추상적으로 그럴듯한데 설계도는 못만들었다고 이야기 하는 게 맞죠
DarkSide
13/05/19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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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의 본질을 생각해본다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냐를 묻는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인 것은 맞는 말이니까요. 인정합니다.
jjohny=Kuma
13/05/1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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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에 대해서도 기독교 교리(십자가 관련)에 대해서도, 제가 이해하는 바와는 좀 다르게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 공리주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에서, (제가 이해하기로는) 경찰이 정말 공리주의자라면 경찰이 고려해야 하는 '최대 다수'는 '집단 폭행을 저지른 다수' 쪽이 아니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전체 구성원'입니다. 즉,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는 집단 폭행'이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공리주의자로서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swordfish
13/05/1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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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게 이해합니다. 다수의 폭햄으로 인한 쾌감< 소수의 고통+사회 무질서가 불러울 전체의 불행 이라면
절대 공리 주의는 다수의 폭행을 지지하지 않죠.
DarkSide
13/05/1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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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 윤리 도덕 철학 시간에 배운 공리주의와 조금 다른 해석이라서 약간 당황스럽기는 한데, 이 부분은 조금 더 공부해보겠습니다.
jjohny=Kuma
13/05/1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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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정리된다는 것을 봤을 때 꽤나 명백해 보이는 사안 같습니다.
그 사안에서 집단 폭행범들은 '최대 다수'에 해당할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더 큰 다수(사회 구성원 전체)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해당 사안에서 공리주의의 허점을 찾자면 다른 방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예를 잘못 드신 것 같습니다.)
DarkSide
13/05/1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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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잘못 들었다는 부분은 깨끗이 인정합니다. 이 부분은 제 실수가 맞습니다.
사회 구성원 전체적 관점에서의 공리주의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공부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jjohny=Kuma
13/05/19 01:12
수정 아이콘
덧붙여서, 한 사람의 기독교인(개신교, 천주교 공통의 사안이니)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십자가와 그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에 대한 본문의 언급도 실제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십자가에 예수가 달린 것 자체를 슬퍼하는 기독교인이지만 동시에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요."
->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야 한다는 결론은 (보편적인 기독교 교리를 배운 기독교인이라면) 내릴 수가 없는 결론입니다.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야 할 당위성도 없고, 그래야 할 가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십자가에 매달려 목숨을 내어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이죠.
DarkSide
13/05/1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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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 완벽히 졌습니다. 깔끔하게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라서 이 부분은 신부님께서도 언급하셨는데,
제가 일부러 그 말은 듣기가 싫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저렇게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예시를 든 의도가 있었습니다 ...
jjohny=Kuma
13/05/19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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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이기고 지고를 논하자는 게 아니고, 본문을 보완하시면 더 좋은 글이 될 거라는 차원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물론 스스로 잘 판단하시겠지만, 너무 승패의 관점에서만 대화에 임하지 않으시는 게 DarkSide님 스스로를 위해서 더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말씀드려봅니다.
DarkSide
13/05/1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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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군가를 설파하고 설득하려면
자신의 목숨과 생명을 다 바칠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상 진실되고 진리를 탐구하며 솔직하게 살아가려면
자신의 생명이나 목숨은 바칠 정도의 위험 (Risk) 은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습니다.
jjohny=Kuma
13/05/19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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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본문이나 댓글에서 하시는 말씀들로 감히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DarkSide님께서 내리신 결론에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다른 이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시점이라기보다는
DarkSide님 스스로도 결론을 내리기 위해 탐구하고 고민하시는 중이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시점에는 승패에 최선을 다하는 키배보다는 다양한 접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단선적인 승패 싸움울 통해 도출된 결론은 왜곡된 형태를 띌 가능성이 높습니다.)
DarkSide
13/05/19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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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 쿠마님께서는 항상 제 속마음을 들여다보시는 것 같아서 참 상대하기가 껄끄럽습니다.
어찌도 이렇게 제 속 마음을 간파를 잘 하는 건지 ....

항상 언제나 솔직하고 올바르고 정확한 것에 집착하는 습관이 베어있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jjohny=Kuma
13/05/1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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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씀을 들을 만큼 제가 DarkSide님에 대해 잘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헣헣
다만 항상 너무 비장(;;)해보이시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달까 안쓰럽달까 해서 드린 말씁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DarkSide님의 글에 댓글 다는 사람들이 DarkSide님을 이겨먹으려고 댓글 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먹으시면, DarkSide님만의 해답을 찾는 것과 즐거운 PGR 생활을 만끽하는 것에 훨씬 효과적일거라 생각합니다.

스마일~ :) (올려주시는 글들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13/05/1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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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공리주의 특성으로 인해 공정함에 가까워진 것 같고, 의무론은 이상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론과 달리 권력에 부합해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던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다른 주의보다 윤리적이지 않나 싶어요.
DarkSide
13/05/19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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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현실적으로는 공리주의가 가장 좋은 체제인 것은 부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리주의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저조차도 공리주의의 완성물이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 현대 과학 기술의 산물의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 대표적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세상은 모순되어있다는 말이 너무나도 통렬하게 진실되기 느껴지더군요.

다만 그로 인해서 희생되는 소수의 의견이나 주장은 묻혀져 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더군요 ...
13/05/19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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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보면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회의사 결정 과정에 필요한 공리를 여러개 설정해 놓은 다음에 과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시스템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는데 정리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죠. 필요한 5개의 공리를 모두 만족하면 독재성을 띨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주어진 가정들을 조금씩 완화시켜서 그나마 합리성에 가까운 의사결정에 도달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긴 것이니까요. DarkSide님께서도 본인이 가지고 계신 몇몇 가정들을 완화시키는 것이 어떤가 싶습니다. 애초에 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은 없으니까요.
13/05/1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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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슷개 소리로는 진리탐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예쁜 여자친구가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전 의무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쾌락보다 도덕을 우위로 생각한 칸트는 평생 독신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3/05/19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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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구성하거나 개인이 어떠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든 부분은 가치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하는 부분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해가 우선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 획일적인 답을 내놓을 수가 없죠.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옳다는 것을 이야기 함으로써 다수의 행복을 언급한 부분에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충돌하는 가치를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로 정리하여 손쉽게 해결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죠.
충돌하는 가치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원리를 담보하지 못한채 공리주의가 내재적으로 갖는 한계점을 통해 공리주의를 비판해도 큰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공리주의를 채택했기에 저런 사례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공리주의 덕분에 너무나도 명백한 부정의에 대해 힘의 논리가 아닌 다른 판단기준으로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부분의 폐해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또한 절대로 다수는 옳지 못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논리에 대한 욕심은 존재하기에 시간이 좀 걸리고 경험이 누적되면 느리지만 천천히 더 나은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데 마찬가지로 공리주의 덕분에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서 더 나은 사회원리를 생각해본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는 원인이 공리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화의 부족에서 야기되는 것인데 그것이 공리주의가 바탕이 된 사회를 매개로해서 나타난다는 이유로 그것이 공리주의의 폐해로 보기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DarkSide
13/05/1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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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는 원인이 공리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화의 부족에서 야기되는 것인데
그것이 공리주의가 바탕이 된 사회를 매개로해서 나타난다는 이유로 그것이 공리주의의 폐해로 보기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완벽히 동감합니다. 의외로 현실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화의 부족, 즉 돈 문제더군요.
사실 돈 문제만 해결된다면, 현실에서 해결 못할 문제는 상당 부분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항상 들었으니까요.
소시탱구^^*
13/05/1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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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의에 있어서 칸트 철학은 말 그대로 순수한 철학이기 때문에 현재의 공리주의와 그와 관련된 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 있어서 그대로 가져와서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고 적용시키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미 정치학 및 정치철학의 영역에서의 롤즈의 정의론이나 샌델, 매킨타이어 등의 공동체주의 그리고 공화주의를 통해 공리주의, 대의제, 정의에 대한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더 쉽다고 보이네요. 사실 공정으로서의 정의나 공동체주의의 논의 자체도 80~90년대를 거치면서 논의가 상당부분 거쳐진 상태이고, 정리가 상당부분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우리 제도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차사마
13/05/19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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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만들지는 못하더군요. 대부분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 규정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의무 속에서 개인의 행복을 찾기는 힘듭니다. 그런 의무 규정을 극복할 다양한 분야의 기술력을 향상 시킬 방법론을 연구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13/05/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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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선호공리주의는 말씀하신 문제점 대부분을 피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러프하게 말하자면 의식이 있는 생물체의 선호를 동등하게 고려하고, '최대다수의최대행복'이라는 전통적 공리주의를 넘어서 구성원 각각의 '선호'를 고려하는 공리주의입니다. 때문에 자살 같은 걸 옹호하죠. 상대주의적 관점을 공리주의에 채용했지만, 공리주의라는 명백한 기준점을 보여줍니다. 물론 공리주의이기 때문에 갖는 문제(저는 큰 문제라고 생각 안 하지만)는 여전히 남아있죠.
그런데 본문에서 벤담의 판옵티콘은 왜 인용되어 있는 건가요?
13/05/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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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머리가 좀 좋은 포유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공리주의 이외의 도덕 철학은 전부 환상일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그 이상을 주장하려면 인간도 뭔가 어마어마한 존재라는 대 전제를 깔아줘야할 텐데, 거기서부터는 본인의 바램이나 신앙의 영역이지 남들한테 주장할 수 있는 논리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칸트나 롤즈식 철학은, 얼핏 보기에는 꽤나 연역적인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칸트나 롤즈도 자신들의 윤리/정의관을 수없이 여러번 연역해냈을 테고, 그 결과로 나오는 윤리/정의 시스템이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이 뻔 해 보이는 경우에는 초기 액시엄들을 바꾸는 작업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여러번 거쳐서 마침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듯 하니, 이제는 그 중간 과정은 다 빼고 '이러저러한 초기 조건에서 만들어내는 윤리/정의 시스템이 정답입니다. 이것은 공리주의같은 실용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유추해낸 것입니다' 라고 말했겠지요. 저는 대부분의 의무주의는 실제로는 이런 식의 '숨겨진 결과주의' 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결과를 바라지만, 자신이 그렇게 계산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요. 그래서 '올바르게 의무만을 따르고, 그 결과로 본의아니게 많은 돈을 벌고 축복을 받고 칭찬을 받는 삶' 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 욕심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잘 디자인된 의무주의 도덕관이라고 생각합니다.
DarkSide
13/05/19 14:31
수정 아이콘
댓글에 추천 기능이 있다면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좋은 글입니다 ... 맞는 말씀입니다 ...
13/05/19 14:51
수정 아이콘
말씀이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연역법은 어차피 초기 조건에 결론이 내재되어있는 추론 방식입니다. 칸트가 '상대방을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목적으로 다루라'는 전제를 제시한 것은 그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결론을 함축하고 있는 원리를 선택한 것이 의무주의 정의론의 모순이라는 것인가요? 그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은 이해가 가지만, 결과주의적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 건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수학의 공리가 피타고라스 정리를 연역하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만들어진 나쁜 공리다라는 말처럼 무의미하게 들려요.
13/05/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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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1. 칸트가 자신의 철학에서 정언 명령을 설정하고 그를 통해서 실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 지를 대충 생각해봤다고 치겠습니다.
2. 그랬더니 사회가 정말 끔찍할 것 같다고 치죠.
3. 그럼 과연 칸트가 '사회가 끔찍하던 말던 내 논리에는 헛점이 없었으니 내가 말하는 윤리가 맞다' 라고 말했을까요?

저는 3번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정리를 연역적으로 뽑아내더라도 그게 실제 삼각형의 길이와 맞지 않았다면 아무리 자신의 연역 과정에 자신감이 충만해있었더라도 분명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겠지요. 마찬가지로 칸트로 '원하는 결과가 대충 있는 상태에서, 그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서 trial-error 과정을 거쳤을 거라는 점입니다. 즉 초기 조건 1에서 연역적으로 결과물들을 뽑아보니 그게 만족스럽지가 않았고, 초기 조건 2를 이용해서 뽑아보니 좀 낫고, 반복 반복해서 초기 조건 34 정도에서 수렴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의무주의의 탈만 썼을 뿐, 실제로는 결과주의라는 이야기지요.
13/05/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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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주의 윤리학과 결과주의가 서로 모순이라는 의미인가요?
예컨데 롤즈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추론 원리를 도입하면서 결과로서의 사회를 상정합니다.
이 안의 대표자들은 그들의 원칙으로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원칙을 채택할 것이라는 점을 논증하죠.
즉 대표자들의 이익을 동등 고려했을 때 펼쳐질 '정의로운 사회'에서 우리가 채택혜야할 정의 원칙을 추론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롤즈의 정의론이 '의무주의'의 입장이라면, '결과주의'적 입장이라는 사실과 모순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니면, 롤즈식의 도덕은 의무주의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칸트는 제가 공부해보지 않은 철학자라 모르겠지만, 칸트의 정언 명령이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가져왔다면, 그의 철학이 더이상 의무주의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되나요?
13/05/19 15:31
수정 아이콘
좀 애매한데, 롤즈의 정의론은 의무주의의 탈을 쓴 결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롤즈의 핵심은 결국 '니가 세상에 뭐로 태어날 지 모른다는 전제 하에서 니가 동의할만한 사회 윤리가 바로 니가 실제로 태어나서 지켜야 할 사회 윤리임' 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공산주의가 답입니다. 하지만 그 결론이 롤즈의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래서 '인간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타인이 더 잘먹고 잘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추가합니다. 그래서 수정 자본주의 사회와 대충 들어맞는 결론이 나오도록 만들지요. 저는 저 과정이 절대로 연역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인간이 합리적 인간이지도 않지요. 나에게 1의 해가 돌아오더라도 상대에게 100 의 해가 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저는 롤즈가 한 일은, "공리주의의 느낌 없이 공리주의의 결론을 도출하기" 였다고 생각합니다.
13/05/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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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의무주의'라는 정의가 결과주의건 아니건 공리주의와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롤즈의 원초적 입장 이론을 봅시다. 롤즈가 공산주의 윤리가 맘에 안 들어서 합리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추가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롤즈의 이론이 공리주의와 동일한가요? 롤즈의 연역이 합리적이다 비합리적이다는 논외로 해도 된다고 봅니다. 어차피 '의무주의'는 사회 전체의 '공리'와는 다른 결과를 나타내도 지지되는 이론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공리주의적 입장에 따르자면 사회 전체의 부가 가장 커지는 경제이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롤즈는 '최소극대화'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최소를 극대화하려면 파이를 키워야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부를 희생하더라도 최소의 혜택을 받는 사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여기가 저는 공리주의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롤즈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뚜렷한 견혜를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역이 아니기도 하고, 자신의 결론에 부합하는 경제체제라면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였을테니까요. 다만 정의의 제1원칙으로 자유를 가장 중요시했기에, 국가사회주의에는 반대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순 있겠지요.
13/05/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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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반론을 제기해보자면:

1. 사회 전체의 부를 키우기 위해서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이론은 공리주의를 충실히 따르더라도 간단히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내가 소수가 될 경우 이 사회는 언제든 나를 희생할 수도 있다' 라는 공포가 사회에 퍼질 때의 부정적인 효과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면 되니까요. 고로 최소극대화 이론이 공리주의와 상반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 총을 쏘면 초기 조건에 따라서 과녁으로 날아가지만, 사격수는 과녁을 맞추기 위해서 초기 조건을 설정하지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롤즈가 최소극대화를 편 것이 연역의 결과물 (이라고 본인은 주장했지만) 이 아니라 애초부터 최소극대화의 결론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초기조건을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애초에 초기 조건을 미세하게만 바꿔도 노직의 철학이 나오는 것인지라.
13/05/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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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느라고 답변이 늦었네요.
2번의 반론은 포기하겠습니다. 인정하더라도 비공리적인 의무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번은 의무주의는 공리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라는 의미신 거 같은데, 간단히 그 두가지가 아무리 흡사하다고 해도 행동원칙은 같지 않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공리와 원칙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최소극대화를 예를들면, 한 사람을 고문한다면 나머지 구성원 모두가 행복감을 느낀다고 칩니다. (고전적)공리주의자는 고문을 아마도 지지하겠지만, 롤즈라면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공리야 어쨌건 최소극대화의 원칙에 분명히 어긋나니까요.
고문에 대한 가정은 비현실적이고, 다른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가능성이 크기에 공리주의자 입장에서도 고문에 반대해야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공리주의와 의무주의는 행동은 같더라도 다른 행동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거고, 의무주의자라면 언제든 다른 모순적인 상황에서 의무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 의무라는 게 결과에서 유추한 원리일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끈 이론과 표준모형은 같은 현상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지만, 끈 이론을 믿는 것과 표준모형을 믿는 게 같은 건 아니잖아요.
13/05/19 22:4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잘 정리한 생각을 올린 것이 아닌지라, 답변해주시는 게 더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천천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13/05/19 15:36
수정 아이콘
아, 죄송합니다. 결과주의라는 말을 좀 부적절하게 쓴 것 같습니다.

"칸트나 롤즈의 사상은 의무주의의 탈을 쓴 공리주의"라고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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