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다룬 한자는 꿩 적(翟)의 아랫부분인 새 추(隹)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머지 윗부분, 깃 우(羽)에서 파생된 한자를 다루고자 한다. 羽 역시 隹처럼 부수 글자로 수많은 형성자에서 뜻을 담당하고, 隹와는 달리 현대에도 널리 쓰이고 있지만, 隹처럼 형성자의 성부가 되기도 한다.
羽의 시대에 따른 변화는 다음과 같다.
왼쪽부터 羽(깃 우)의 갑골문, 금문,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 소전.
금문에서 전국시대 죽간 문자로 넘어가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갑골문과 금문은 깃털이 난 새의 날개 한쪽 전체의 모양을 본뜬 모습이다. 그러던 것이 전국시대로 들어가면서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는 학설의 변화로, 예전에는 羽는 갑골문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를 겪지 않았던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원래는 羽의 갑골문으로 보던 글자가 빗자루를 뜻하는 彗(살별 혜)의 갑골문으로 해석이 바뀌었다.
살별 혜(彗)의 갑골문(a),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b), 설문해자 고문(c), 설문해자 소전(d), 설문해자의 이체자(e).
彗a만 보면 彗보다는 羽가 더 비슷해 보이지만, a부터 e까지의 변천을 보면 彗a가 羽의 갑골문에서 彗의 갑골문으로 바뀐 이유를 좀 더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彗 자를 설명할 때 하겠다.
이러다 보니 習, 翟 같이 갑골문에서부터 보이는 羽가 들어간 글자들은 실은 羽가 아니라 彗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도 羽에서 소리를 가져온 형성자들은 소리로도 羽의 파생임을 보여주거니와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다.
羽(깃 우, 우화(羽化), 백우선(白羽扇) 등. 어문회 준3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羽+木(나무 목)=栩(상수리나무 허/우): 허허(栩栩), 포허(苞栩) 등. 어문회 특급
羽+玉(구슬 옥)=珝(옥이름 후): 어문회 준특급
羽+言(말씀 언)=詡(자랑할 후): 후후(詡詡), 장후(奬詡) 등. 어문회 특급
羽에서 파생된 한자들.
栩는 본디 떡갈나무를 가리켰는데, 이는 옛날에는 櫟(떡갈나무 력)을 栩라고 불렀다는 말로도 확인된다. 한편 이 나무의 열매, 즉 도토리는 橡(상수리나무 상)을 썼다. 그러다가 한국에서는 栩가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모두 뜻하는 한자로 바뀌었고 본디 도토리를 뜻하던 橡도 栩와 의미 범주가 같아지면서 栩와 橡이 모두 상수리나무를 뜻하게 되었다.
한편 본디 도토리를 가리키는 橡은 樣(모양 양, 도토리 상)으로도 쓸 수 있는데, 이를 상두(象斗)라고도 한다. 상두는 도토리를 받치는 깍정이를 말하는데, 이 깍정이가 희상(犧象)이라는 옛날 제례용 술잔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후한의 학자 정현은 희상이 새 깃털과 코끼리 뼈로 장식이 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栩는 나무 중에서 새 깃털로 장식된 술잔 희상을 닮은 열매가 열리는 떡갈나무를 가리키고, 橡은 코끼리 뼈로 장식된 희상을 닮은 열매인 도토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珝(옥이름 후)와 詡(자랑할 후)는 대개는 사람 이름에 쓴다. 珝를 이름에 쓴 사람으로는 삼국지의 설종의 아들인 설후(薛珝), 선조가 가장 총애한 아들인 신성군 이후(李珝) 등이 있다.
詡를 이름에 쓴 사람으로는 전한의 장후(蔣詡), 후한의 우후(虞詡), 삼국지의 가후(賈詡), 북위의 효명제 원후(元詡) 등이 있다. 그런데 珝은 옥의 이름을 나타내는 한자들이 사람 이름에 많이 쓰이는 것과 달리 詡는 '자랑하다', '속이다'라는 부정적인 뜻이 있음에도 사람 이름에 많이 들어간다. 이는 어찌된 일일까?
주나라 이래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기로 여겼기에 비교적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별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자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나 조자룡 같은 이름이 다 자로, 본명은 제갈량, 조운이다. 이러한 자를 짓는 방법 중 하나가 원래 이름과 관계 있는 한자를 쓰는 것으로, 성이 달라도 이름이 같으면 자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詡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들의 자는 어떨까? 먼저 중국인들이다.
장후 - 자 원경(元卿)
우후 - 자 승경(升卿)
가후 - 자 문화(文和)
다음으로는 한국인들이다.
장후 - 자 원경(元卿) : 중국의 장후와 성명뿐만 아니라 자까지도 다 같다
유지후(柳之詡) - 자 성화(聖和)
조후(趙詡) - 자 경화(景和)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 자에 卿(벼슬 경)이나 和(화할 화)가 들어간다. 詡는 이름으로는 卿이나 和와 연관되는 것이다.
이제 詡의 뜻을 다시 살펴 보면, '자랑하다' 외에도 '화하다', '넓다', '두루' 등의 뜻이 있다. 《예기》에 '덕이 발양해 만물에 넓게 퍼지니'(德發揚, 詡萬物)이란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말로써 어떤 것을 자랑하면 널리 퍼지기 때문에 '크다', '넓다', '두루' 등의 뜻이 파생되었으며, 두루 퍼지면 조화롭기 때문에 '화하다'라는 뜻이 다시 파생되었다. 물론 자랑하는 것은 속이는 것이 될 수 있기에 '속이다'도 파생되긴 했다.
어쨌든 詡는 이름으로써는 '넓다' 또는 '화하다'의 의미로써 쓰였을 것이고, 그래서 이름이 詡인 사람은 자로 和를 골랐다. 경(卿)은 의미로는 詡와의 연관성을 잘 모르겠지만, 중국의 명재상 안영이 신하는 임금과 조화를 이루어야지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했으니 신하인 경(卿)은 임금과 화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詡의 짝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삼국지의 가후는 이름과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이름이 후고 자가 문화이니,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이름의 뜻일 것 같다. 그러나 동탁의 잔당들을 위해 일하고 조조의 맏아들과 아끼는 장수를 죽이고는 조조와 그 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조조에게 중용을 받으면서도 자기 세력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게 살면서 고위직을 역임하다 세상을 떠났다.
아예 작정하고 은거한 사람으로는 전한의 장후가 있지만, 결국 나중에 한을 뒤엎고 신이라는 새 왕조를 세우는 왕망의 전횡에 반발해 관직을 버린 것이라 은거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였다. 그는 경으로써 정권에 부화뇌동할 수 없었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바로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이름은 같을지라도 걷는 길은 달랐다.
羽에서 소리를 가져온 파생자들과 羽의 의미 관계는 다음과 같다.
羽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羽(깃 우)는 새의 날개를 본뜬 한자로, 금문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羽에서 栩(상수리나무 허)·珝(옥이름 후)·詡(자랑할 후)가 파생되었다.
羽는 파생된 글자에 깃이나 깃으로 장식된 물건의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