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쉬는 날 낮에 웹툰을 봤는데 여주인공 이름이 전 여자친구와 같았던 것이다.
그녀는 내 첫 연인이자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으로 이름은 강다혜였다.
오랜만에 떠오른 그녀 생각에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확인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함께 찍은 사진이 배경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전에는 고양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새 친구가 생긴 걸까? 강아지는...... 우리 집 해피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넜을까.
다혜네 집과 우리 집은 둘 다 강아지를 길렀었다.
둘은 나이가 같고 견종도 코카스파니엘로 같았다.
19살까지 살았던 해피도 벌써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3년이 되어가니 다혜네 강아지 역시 아마도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다혜네 강아지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혼란에 빠졌다. 개를 기른다는 공통점 덕에 우리는 안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고 그녀의 개는 우리를 이어준 오작교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또한 개를 사랑하는 나는 한 번 들은 지인의 개 이름은 절대 까먹지 않는다는 하찮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혜네 개 이름을 까먹다니, 이러다 언젠가는 해피의 이름마저 까먹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까먹은 것을 기억하려 하면 오히려 생각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별안간 떠오르는 것처럼 다른 일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한 번 숨어버린 이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개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쓸수록 이름 대신 다혜와의 오래된 추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나를 웃겼던 일, 내가 그녀를 웃겼던 일, 처음 받았던 손편지와 내가 써준 답장...... 신기하게도 싸웠던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것이 미화일까.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를수록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너무 슬퍼서 마침내 나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밤이 된 지금 나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다혜에게 통화를 걸지 고민하고 있다.
휴대폰 화면에는 그녀의 연락처와 수화기 아이콘이 떠 있다.
기르던 개 이름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다혜에게 전화를 걸 것인가. 그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잘 지내고 있지? 그나저나 기르던 강아지 이름이 뭐야? 물었을 때 얼빠진 표정이 될 그녀 얼굴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만날 땐 MBTI가 유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다혜의 MBTI를 모른다. 스몰 토크 주제 국밥이라는 MBTI부터 물어야 할까?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정직하게 흐르고 있다.
곧 있으면 밤 11시고 지금도 이미 늦었지만 더 늦은 밤에 전화를 걸면 다혜가 나를 '자니?' 메시지를 보내는 전 남자친구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았다. 10초만 더 고민해 보고 생각나지 않으면 통화를 걸어보자.
금동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것은 10초가 지난 뒤 '한 번만 더 10초 세보고...'같은 생각을 할 때였다.
다혜가 길렀던 강아지 이름은 금동이다. 정겨운 이름으로 더 귀여웠던 암컷 강아지였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동시에 놀랐다.
다음에 떠오른 생각이 '다혜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가 아니라 '다혜에게 전화 걸 수 없다' 였기 때문이다. 금동이의 이름도 떠올랐으니 이제 그녀에게는 용건이 없는 것이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봤다. 금동이와 고양이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홀린 듯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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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는 통화를 끊었다. 10년 전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던 것이다.
그는 오랜만의 전화가 어색한지 안부를 묻다 금방 화제를 돌려 MBTI를 묻거나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금동이 이야기를 꺼내는 등 두서없이 근황을 물었다.
그러던 그가 이상하리만큼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은 내가 기르는 고양이 ○○의 이름이었다. ○○를 기른 것은 그와 헤어지고 한참이 지난 후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의 이름을 포함해서 지난 10년간의 이야기를 하려면 통화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밥을 사주면 고양이 이름을 가르쳐 주겠다는 장난스러운 제안으로 그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밥 약속을 제안했을 때 그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만날 그의 얼굴이 사뭇 궁금했다. 하지만 더욱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름 대신 '자기'라는 호칭으로 그를 불러서였을까?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만나기 전까지는 떠올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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