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 서머 스플릿이 3주차 경기까지 마무리되었습니다.
의외의 업셋이 많이 등장했고, 팀 간의 간격이 좁은 시즌. 기존의 최상위권 팀들이 삐끗한 대신 중하위권 팀들의 경기력은 올라왔습니다. 유럽의 롤드컵 진출권이 4장이 되면서, 웬만한 중위권 이상의 팀들은 다 롤드컵의 꿈을 꿔 볼만한 동기부여가 강한 시즌이기도 합니다.
현재 1위 팀은 매드 라이언스 (6승 1패). 단순히 성적만 1위인 것이 아니라 경기 내용 면에서도 가장 훌륭한 팀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오로메 - 쉐도우 - 휴머노이드 - 카르찌 - 카이저
스플라이스의 해체/리브랜딩 이후 휴머노이드를 주축으로 신인들을 모아 구성한 팀. 스프링 스플릿에 정규 시즌 4위, 최종 성적 3위라는 훌륭한 성과를 냈고, 특히 다전제에서 G2를 한 차례 잡아내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팀입니다.
우수한 성적을 낸 팀이었지만 결국 G2-프나틱 양강 구도를 깨지는 못했고, 최종 3위를 기록했음에도 팬들과 전문가들은 '만약 오리진과 다전제 붙었으면 매드가 지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는 시각이 꽤 우세했습니다. 잘하는 팀이긴 하지만 3위까지 간 건 아다리가 잘 맞았다.. 이런 느낌.
매드 라이언스를 저평가할 요소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1) 탑의 약점. 오로메의 클래스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이 처지고, 강팀과의 경기 or 다전제에서 그 약점이 파이기 쉽다.
2) 경기력 기복. 신인 위주의 팀이라 분위기를 쉽게 탐.
3) 메타 변화에 취약할 것. 바텀은 인정하지만, 오로메/쉐도우/휴머노이드의 상체는 플레이스타일이 폭넓지 못해 메타에 영향을 많이 받을것.
대충 이 정도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재능있는 신인들이 모인 팀이니 잠재력은 뛰어나다는건 모두가 인정했지만, 올해 당장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위의 이유들때문에 반신반의하는 팬들과 전문가들이 꽤 있었죠.
많은 경기를 치른건 아니지만 서머의 매드 라이온스는 그런 의구심을 많이 씻어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매드의 초반 선전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변수는 팀의 리더 휴머노이드의 스텝업입니다.
휴머노이드는 이미 작년 서머에 LEC 올-프로 세컨드팀까지 수상해본 선수이고, 롤드컵 8강 무대도 밟고 온 선수인만큼 유럽 무대에서 충분히 인정은 받고 있었지만, 지금의 활약은 단순히 '좋은 미드' 정도의 평가를 넘어서 진지하게 캡스의 유체미 자리를 위협할 만한 수준.
오리아나, 신드라, 아지르같은 묵직한 AP 메이지들을 계속해서 꺼내는데, 라인전에서부터 압박이 강하고 교전과 한타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워낙 포스가 무서워 상대 입장에서도 오리/신드라 중 최소 하나는 밴으로 잘라야 하는 상황.
스프링 때도 잘하긴 했지만, 항상 뜬금없는 타이밍에 사이드라인에서 짤려 죽는다는게 밈처럼 자리잡을 정도로 안정성은 떨어지고 경기력에 기복도 있었는데, 서머는 G2와의 개막전을 제외하면 흠잡을데 없습니다.
같은 나이의 경쟁자인 로그의 라센과 비교되지만, 위의 시청자 투표에서 알 수 있듯이 휴머노이드쪽을 지지하는 여론이 더 큰 편. (저게 경기 중의 투표였으니, 경기가 끝난 지금은 격차가 더 날듯..) 3주차까지만 기준으로 놓고 보면 리그 MVP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0년생의 어린 선수라 (쇼메이커와 동갑) 더 발전할 여지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잘하게 될줄은 사실 많은 팬들이 예상하지 못했죠. 그냥 본인 게임만 잘하는게 아니라 게임 내/외적으로 팀의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해 내면서도 실력이 껑충 뛴 선수.
또 다른 변수는 팀의 구멍으로 여겨지던 탑라이너 오로메의 분전. 매드의 선수들이 모두 그렇습니다만, 시즌 초 경기력만 보면 유럽의 TOP 3 탑라이너 대열에 끼워줘도 크게 손색이 없는 활약.
단순히 탱커 챔해서 버틴다, 잠근다의 개념이 아니라 브루저 챔피언들을 꺼내면서도 한타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게 큽니다. 카이저가 워낙 한타에서 빛나는 모습이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지만 오로메가 은근히 캐리한 한타가 꽤 되죠.
팀의 운영이 바텀 중심으로 많이 움직이기도 하고, 여전히 본인의 라인전이 강한게 아니라 상대를 라인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플레이는 좀 부족하지만, 일단 한타 페이즈에 접어들면 탑이 아쉽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 만큼 좋은 활약을 해 주는 중.
스프링 정규시즌~플옵에서는 단순히 피지컬이 떨어지는 문제보다 플레이가 좀 똑똑하지 못해 보이고 의아한 실수도 자주 나오는게 아쉬웠는데, 서머에는 그런 뇌절도 거의 줄어든 모습. 팀원들이 '김군 역할을 한다' 고 추켜세워 줬지만 김군과 비교하기에는 피지컬은 물론이고 뇌지컬부터가 너무 딸린다 이런 느낌이 강했는데, 서머 경기들을 보면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 싶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네요.
현실적으로, 지금의 경기력이 소위 '오버클럭'인지, 아니면 계속 이어질지는 좀 오래 지켜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아래쪽 선수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어 덕을 보는 측면도 분명 있고. 어쨌든 다전제나 국제대회에서는 탑이 약점으로 파일 가능성이 남아있긴 합니다. 그래도 답없어 보였던 스프링때에 비해서는 팀에 숨통을 확 틔워주는 느낌이긴 합니다.
매드의 강점이자 약점은 밴픽. 상대에게 바루스를 풀어주고 카운터치겠다 (주로 세나-오공) 는 전략을 일관되게 꺼내듭니다. G2전에는 세게 얻어맞긴 했지만 그 이후 게임들에서는 어떻게 잘 이겨내고는 있는 중.
일반 팬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싶긴 한데, 카이저가 오공으로 엄청난 숙련도를 보여주면서 교전을 자주 캐리해 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저렇게 조합을 잡고도 바텀 라인전이 잘 버텨주는 상황이라 게임을 보면 바루스 내준 아쉬움이 별로 안 드러납니다.
물론 이건 보기에 따라 당연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라, 매드가 바루스를 잘 받아친건지, 혹은 바루스 풀어준걸 응징하지 못하는 상대 팀이 그냥 못하는건지 이건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쪽 다 어느 정도씩 맞다고 보는게 맞겠죠.
매드의 밴픽을 보다 보면 진짜 이게 맞는건가? 싶지만, 얀코스가 PGL에 출연해 매드 라이언스의 밴픽에 대해 굉장히 고평가하며 코칭스태프를 극찬하기는 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중국/한국의 강팀들을 상대로도 이런 노림수가 먹힐까 이런건 뭐 벌써부터 생각할 문제는 아니고, 어쨌든 유럽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으니 일단은 문제삼을건 없는듯 합니다.
밴픽에서 유연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매드는 메타 변화에 취약할 팀' 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은 많이 깨어진 상태. 리신 원챔 소리도 간혹 듣던 쉐도우가 정반대 성향의 아이번으로도 뛰어난 경기를 펼친 마당이니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드의 최고 강점은 한타력. 이미 "유럽에서 가장 한타 잘 하는 팀" 으로 주저없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잠깐의 부진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유럽 최고로 여전히 인정하는 G2보다도 한타는 더 잘한다, 싸움은 더 잘한다 이런 평가가 자신있게 나오는 것.
많은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지만 특히 눈여겨볼 한타의 핵심은 카이저입니다. LCK에서 베릴이 판테온 서폿으로 리그를 뒤흔들고 있다면 유럽에서는 카이저가 오공을 들고 어지간한 탑라이너들 뺨치는 대활약을 보이는 중. 뒷포지션이나 텔레포트 각 잡는거 보면 이게 올해 LEC 경기 처음 치르는 서포터인지 아니면 5, 6년차 베테랑 탑라이너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
물론 오공만 잡고 잘 한게 아니라 그냥 서머 내내 폼이 좋습니다.
솔랭에서 타 포지션을 많이 플레이하는 선수기도 해서 일반적이지 않은 서폿 챔들에 대한 숙련도도 있는 선수고, 싸움 각을 이쁘게 잘 보고 자신있게 이니시를 열면서도 또 그에 따르는 뇌절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만큼 각을 정확하게 잘 본다는 이야기기도 하겠고, 팀원들이 잘 호응해주는 것도 있겠고.
LEC 출범 이후 당분간 유럽의 서폿 구도는 미키엑스 힐리생의 2강 체제가 굳어져 왔습니다. 작년에 이그나가 있긴 했지만 두 선수보다는 아래의 평가를 받았고. 하지만 지난 스프링 카이저가 혜성같이 TOP 3 서포터의 일원으로 떠올랐고, 힐리생이 서머 스플릿 경기력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당장 시즌 초 경기력만 따지자면 힐리생은 물론이고 미키엑스보다도 나은 유체폿이고요.
퀵샷의 귀여운 설레발.
오랫동안 유럽은 프나틱-G2의 양강이 서로 나눠먹는 구도가 이어져 왔습니다. 사실 이 양강 구도의 본질은, 그 두 팀의 미드라이너를 넘어설 선수가 그간 나오지 못했다는게 결정적입니다.
EU LCS 시대의 개막 이후 유럽의 트로피를 들어본 미드라이너는 딱 다섯 명. 엑스페케, 프로겐, 페비벤, 퍽즈, 캡스. 그나마도 2016년 이후로는 퍽즈와 캡스 두 명만이 유럽의 트로피를 나눠먹고 있는 형편이고 이제는 아예 그 둘이 한 팀이 되었죠.
결국 저 계보에 낄만한 차세대 미드라이너가 나와야 지긋지긋한 양강구도를 깰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암흑군주 G2의 치세가 캡스라는 신성이 등장하고 나서야 깨어졌던 것처럼. 사람들이 2000년생 미드라이너들인 휴머노이드와 라센, 특히 휴머노이드를 주목하는 이유가 그런 고착화된 구도를 깨어줄 수 있는 그릇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
아직 시즌 초라 지금의 성적을 가지고 뭐라 말하기는 설레발이지만, 해설자/관계자는 물론이고 타 팀 선수들까지 입을 모아서 매드 라이언스를 상당히 고평가해주는 상황이라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감이 들기는 합니다.
유럽에서 네 팀이 롤드컵을 가는 시즌이니, 대회가 정상 개최된다면 롤드컵에서도 웬만하면 모습을 볼 수 있을듯 한데, 그때까지 더 좋은 팀으로 발전해서 아시아의 강팀들과 멋진 승부를 펼쳐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