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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4/05/14 12:52:10 |
Name |
헥스밤 |
Subject |
[디아3] 될놈블로 융해코어 |
디아2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부터 디아블로를 하드코어 모드로 플레이했습니다. "단 한번의 생명, 그것이 진정한 롤플레잉이다" 라는 말에 혹했다기보다는 그냥 스탠보단 좀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드코어를 했습니다. 실제로 스탠에 비해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디아2 확장팩이 나온 후에는 확팩 하코도 달리고 중간중간 오리지널 하코도 달렸습니다. 확팩 하코도 나름대로 재밌었지만, 오리지널 하코도 나름의 맛이 있었거든요. 2000년대 중반에는 확팩 하코 완전히 접고 오리지널 하코만 달렸던 기억입니다. '단 한번의 생명'이 주는 쫄깃함은 오리지널이나 확팩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단 한번의 생명'이 전제된 특수한 상황이 주는 재미는 확팩보다 오리지널이 훨씬 컸었거든요.
하드코어가 주는 재미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 '죽음' 자체가 주는 쫄깃함
2. '단 한번의 생명'이 전제된 특수한 상황의 묘미.
1번은 단순합니다. 한번 죽으면 끝나는 게임의 쫄깃함은 여러번 죽어도 되는 게임의 쫄깃함과 차원이 다르지요. 단 한번의 생명과 그 모든 우연성, 생존의 즐거움. 저는 그래서 디아블로는 언제나 하드코어로 플레이하며, 틈틈히 로그라이크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합니다. (로그라이크는 컴퓨터 rpg의 모태가 된 게임이며, 세이브 불가능. 죽으면 게임오버, 물약과 스크롤을 비롯한 모든 아이템을 감정해서 사용해야 함. 맙소사한 난이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음, 맵과 아이템의 우연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롤플레잉 장르입니다). 실제로 디아블로 1의 개발 모티브가 된 것도 로그라이크의 전설 넷핵으로 알고 있고, 하드코어 모드 자체가 디아블로 시리즈의 모티브가 된 로그라이크 게임에 대한 오마쥬죠. 디아블로 하드코어는 일종의 '라이트한 로그라이크'라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던전크롤을 몇 년째 틈나는대로 붙잡고 있는데 마클렙-혼기의 사기 조합으로도 아직 클리어를 못 해봤습니다. 으으. 20층 쯤에서 대악마 소환했는데 방구대장 뿡뿡이가 소환되서 내가 소환한 악마의 독구름에 중독되서 죽어버린게 최고 기록인데, 그때 진심 소리지르면서 모니터 집어던질뻔 했습니다.
2번은 꽤 재미있고 복잡합니다. 특히 확장팩 이후 디아2 오리지널 하드코어가 굉장히 특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아블로2 오리지널 하드코어 래더는, 디아2 오리지날 스탠다드/디아2 확장팩 하드코어와 완전히 다른 플레이 방식을 가진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충성도 있는 소수 유저들의 망겜(확팩이 나왔음에도 오리지널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 엄청난 충성도가 있죠)이었기에 유저들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확팩처럼 무한파밍을 해야 하는 룬워드나 상위전설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화폐가 없었습니다. 옴룬이니 매참이니 퍼젬 한인벤이니 하는 화폐가 의미있는 건 '극도의 파밍'이 전제될 때의 이야기지만, 한번 죽으면 끝나며 결국 좋은 레어아이템 주으면 죽을때까지 그거 들고 하다가 죽으면 모든게 사라지는 게임에서 교환은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디아3 기준으로 초뎀 2200에 주스탯 홈 붙은 중상급 무기같은 건 그냥 나눕니다. 확팩 하드코어에는 물론 화폐 시스템이 돌아갔지만 확팩 노말보다는 저급템 나눔이 활발했지요. '니놈이 그딴 템 차고 있으니 불안해서 같이 게임을 못하겠다' 며 템을 던져주던 츤데레 유저들도 꽤 많았었고.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죽으면 땡이라, 하드코어의 전체적인 아이템 스펙은 일반 게임에 비해 처절하게 낮았습니다. 다들 거지같은 템을 거지같이 입고 미칠듯이 카오스 생추어리를 돌며 오블리비언 나이트의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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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3이 나왔습니다. 야만거름으로 게임에 입문해 나름 상당히 빠르게 불지옥 3막까지 성공하였으나 2막에서 만난 땡벌 삼각지대의 트라우마에 눌려 공성파괴자까지 잡고 바로 하드코어를 달렸습니다. 꽤 재미있었으나, 빌어먹을 경매장 덕분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되팔이도 이해할 수 있고 바저씨 상대로 장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종일 폐지줍느니 경매장 10분 남은거 리프레시해가며 카운트다운 하면서 막판 3초에 경매가 후려치는 게 스펙업에 더 이득인 쓰레기같은 시스템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디아블로는 세팅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템이 나오면 세팅을 바꾸고, 원하는 세팅을 하기 위해 템을 파밍합니다. 이 과정이 즐거우면 재미있는 디아블로인 거고, 이게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겁니다. 하지만 경매장은 모든 것을 망쳤습니다. 스탠은 제대로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스탠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하드코어가 재미있던 건, 스탠에 비해 파밍 자체가 힘들고 템 자체가 없기에 '천천히 템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었다는 정도일까요.
게다가 빌어먹을 하드코어 방랙. 하드코어 게시판에 '핑 적게뜬 방 양도합니다/양도받습니다' 글이 올라오던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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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리고 확장팩이 나왔습니다.
1,2번 문제가 좀 해결될까 했는데, 뭐 일단 경매장 폐쇄와 밸런스 개선 등으로 확실히 오리지널 때보다는 나아지긴 했습니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될놈블로 융해코어, 가 문제이지요.
일단 1번, 죽음 자체가 주는 쫄깃함의 문제에서, 융해가 너무 쎕니다. 그래서 고단을 못 올라갑니다. 하드코어 유저들은 고단 잘 안돌지요. 지금 제 야만이 순디피 60만에 순수강인함 1100, 화피 100%에 정피 50%정도 되는데 믿을만한 파티 아니면 고행3단도 잘 안 돕니다. 보통 2단을 돌지요. 당연히 죽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융해만 아니면요. 도관이다 신난다 일단 손목바꾸고 찌지직 펑 어 야 융해융해융해. 혹은 정예3무리 애드상황에서 융해쫄 광역으로 쓸었는데 다른 무리가 그 시체 위로 소용돌이. 혹은 빙결+융해 콜라보. 벽생성+융해 콜라보. 이런 거에 죽죠.
확장팩 나오고 정복자렙 200찍을때까지 융해 외의 상황에서 아찔함과 쫄깃함을 느껴본 적이 딱 한번 있는거 같습니다. 좁은 지형에서 균열보스로 이주얼이 소환되었는데 이주얼 기술 몇개 겹쳐서 만피에서 피통이 찔끔찔끔 떨어지며 30프로가 될 때까지 계속 얼어붙어 있는 상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 50프로까지는 웃으며 즐겼는데 반피 아래에서도 꽁꽁 얼어있는 캐릭터를 보니 심장이 죄어옵니다. 비전파수기? 안맞으면 됩니다. 몇틱 맞아도 안 아파요. 전기? 피해반사? 고단가면 아프다고 하는데 3단까진 신경도 안 씁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스탠보다 강인함에 치중하기에 저런 반격형 기술들은 뭐 그냥 무시하고 패스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융해입니다. 사실 융해 그까이거 아무것도 아니긴 해요. 가장 피하기 쉬운 기술이니까. 그리고 융해+소용돌이나 융해+벽, 융해+빙결정도 나와 줘야 '아 이 짜릿한 느낌으로 하드코어 하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융해+순간랙이죠. 빙결순간랙? 괜찮아요. 언다고 죽나. 비전순간랙? 그거 몇틱이나 맞는다고. 융해만 아니면 세팅을 좀 바꿔서 4단 트라이를 해보고도 싶습니다만, 저놈의 융해가 너무 아픕니다. 그렇다고 블랙쏜을 쓰자니 스펙이 우장창쿵창하고. 부분저항으로 화염저항을 때려박았음에도, 융해에 랙이면 그냥 싸죠. 특히나 버프창 혹은 파티창에 마우스커서를 올리게 되는 비극적인 실수를 하게 되면 울게 됩니다. 3단 안정적으로 도는데 2단에 2법사이상 있으면 융해 나올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제발 융해랙만은 피해주소서 제발.
융해를 어떤 식으로라도 좀 너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융해라는 단일 스킬과, 랙이라는 천재지변의 결합이 무서워서 고단 트라이를 못하는 건 역시 잘 만든 게임을 재미없게 만드는 주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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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과 관련하여, '한 번의 죽음'이 초래해주는 상황적 즐거움이 있나 하면, 뭐 스탠에 비해 템 파밍이 느려터졌다는 거 말고는 없는 거 같습니다. 특히 극악의 드랍률을 자랑하는 몇 가지 무기들과 직업 세트템을 강박적으로 모아야 한다는 것이 재미를 위한 요소보다는 스트레스 요소로 다가오네요. 대지2피스 레코르3피스 불멸왕 2피스 있는데 내가 가진 레코르 장갑이 또 나왔네 어머나. 뭐, 언젠가는 나오겠지요. 하지만 오리지널 시절에는 '스탠보다 풀리지 않은 템을 비싼 돈주고 겨우 구해서 느리지만 조금씩은 스펙업을 한다' 라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확팩에 와서는 '아 우레 메피 워봉 쿠크리 직업셋템 왜안나와 아 저거 없으면 게임 플레이 자체가 완전히 다르잖아 아 폐급이라도 저게 있어야 하는데 어 근데 2피스 들고 죽었네 아' 라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10년 하드코어 외길인생이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스탠이나 할까 나도 고단 헤딩하면서 템좀 먹어보자'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아이템이 다채로워 진 것, 당연히 대환영입니다. 경매장 폐쇄, 역시 대환영입니다. 특히 스탠다드에서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게임플레이 자체를 굉장히 즐겁게 해 주는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하드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번의 생명'이 전제된 융해코어 모드에서, 유저들은 더 소심한 파밍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파밍'과 관련한 환경만을 손본 것(파밍할 더 많은 아이템, 더 어려운 파밍)은 조금 아쉽습니다. 하드코어의 특수한 환경과 관련된 어떤 파밍밸런스 차원의 조치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 같기도 합니다. 물론 하드코어 유저들'만'의 편의를 봐주는 시스템이 나오는 것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스탠다드보다 불리해야 하드코어 하는 재미가 있죠. 하지만 희대의 op 왕실권위반지와 스탯과 상관없이 게임의 플레이 자체를 바꾸는 상급 아이템+세트 아이템 위주의 현재 파밍 시스템은, 하드코어 유저에게는 별 매력이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놈의 될놈블로. 그래도 전 운좋게 초반에 조단링과 잉여불, 루트신발과 왕권반지를 뽑긴 했습니다만 다른 템은 죽어도 나오질 않네요. 이에 대한 어떤 조정이 있으면 스탠도 스탠대로 더 재미있어 지겠지만 하드코어의 즐거움은 훨씬 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실너프, 셋템너프와 '더 많고 다채로운 전설을 통한 다채로운 세팅' 정도만 가능해져도 스탠도 즐거워질 거고 하드코어는 매우 매우 즐거워지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디아블로 하드코어는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입니다만, 될놈블로 융해코어에는 슬슬 지쳐갑니다. 뭐, 그래도 할 게 없으니 욕하면서 계속 하기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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