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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2/19 00:16:52
Name 한니발
Subject RE So1 <5> 中
  다시, 또 다시

  이 815에서, 오영종은 최연성을 일격에 그어 내렸다. 세 기에 셔틀에 동반한 드라군 리버는 단번에 기지 안쪽으로 파고들어 골리앗들을 박살냈고, 팩토리를 점거하면서 최연성에게 어떤 반격도 허용치 않았다. 이것은 당대 최고의 코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던 P.O.S.의 박용운 코치에 의해 만들어진 전가의 보도였다.  
  이전에 ‘테란은 개혁한다. 그러나 프로토스는 혁명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So1의 FD를 대적하는 과정에서 신 3대 프로토스가 뽑아든 수많은 카드들의 폭발적 기세를 빗댄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직까지도 전략가의 대명사로 꼽히는 강민과, 말 그대로의 혁명을 일구어낸 김택용과도 들어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테란도 그러한 폭발적 변화를 겪고는 한다. 특히 최연성과 임요환은 그 변화를 여러 번 주도했다. 심지어 현역에서 물러난 후까지도 마치 도공이 명검을 벼리듯 몇 번이고 테란에게 새로운 가지를 선사했다. 최연성이 ‘테란식의 커세어 리버’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발리앗을 개발한 뒤, 그 키워드만을 공군에 있던 임요환에게 알려주자 거기서 임요환이 발리오닉의 프로토타입을 고안해낸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최연성과 임요환은 테란의 가장 위대한 창조자였고, 창조자다.
  오영종이 4강에서 두었던 ‘신의 한수’에 대적하기 위해, 당연히 최연성과 임요환은 머리를 맞대었을 것이다. 거기에 전상욱과 고인규, 서형석 코치 또한 힘을 보탰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이 다시 한 번 디펜스였다.

  오영종은 1시, 임요환은 5시에 위치한 세로 배치. 임요환은 빠르게 정찰하여 오영종의 리버를 확인했다. 오영종은 다시 한 번 로보틱스를 확보했고, 셔틀리버와 드라군을 중심으로 병력을 편제하고 있었다. 임요환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앞마당 쪽에 내려놓았던 팩토리를 다시 본진으로 옮겼고, 골리앗들을 기지 주변에 두르며 드랍쉽을 확보했다.
  임요환의 목적은 확실했다. 셔틀을 요격하고, 골리앗과 드랍쉽을 통한 틈을 주지 않는 역습. 오영종이 골리앗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옵져버를 떨어뜨리며, 오영종이 결국 파고들어올 순간을 기다렸다.
  그에, 오영종은 앞마당 멀티를 가져갔다. 리버는 본진에 웅크렸다. 기지 곳곳에 포토 캐논이 건설되었다. 디펜스에, 디펜스로 맞서 나왔다.
  오영종은 필살기를 쓸 타이밍을 놓쳤고, 임요환은 필살기를 무위로 돌릴 타이밍을 놓쳤다. 최연성 때와는 다르다. 일격필살은 없다. 어그러진 그 순간으로부터 두 사람의 생각이 빠르게 교차하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오영종이 틀어박히자, 임요환은 자신 역시 멀티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세 시 섬멀티를 건설하고 드랍십으로 골리앗과 SCV를 실어 날랐다. 그리고 오영종은 결단했다. 최연성을 대적하는 그는 치밀한 전략가였다. 천하의 최연성을 침묵시킬 무기를 확실하게 준비해와, 정확하게 실행했다. 임요환을 대적하는 그는 과감한 행동가였다. 로열로더를 꿈꾸는 신예였으면서도, 누구보다 - 심지어 ‘그’ 임요환보다도 - 빠르게 결정하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그는 임요환의 멀티를 공략하러 나섰다. 세 기의 셔틀에 담긴 리버와 드라군이 빠르게 세 시를 파괴했다.
  세 시에 배치되어있던 임요환의 골리앗은 네 기. 오영종의 드라군과 리버를 끊어내기에는 부족한 수였다. 임요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임요환은 오영종의 셔틀을 물고 늘어졌다. 세 기의 셔틀 가운데 두 기가 추락했다. 그리고 그것이 임요환이 정말로 노리던 것이었다.
  TRAP 2.
  815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섬일 수도, 반섬일수도, 지상맵 일수도 있다. 단 오영종도 임요환도 이번 게임에서 815를 어디까지나 섬으로서 활용하고 있었다. 셔틀 드랍을 통한 병력 운송, 드라군과 리버라는 대형 유닛들의 활용, 이에 맞서는 골리앗-드랍쉽 체제 등등. 다름 아닌 임요환이다. 그는 프로토스가 섬맵에서 셔틀을 잃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기분 나쁜 장난 같기도 한 그 전술이, 그에게는 이미 자신의 6년 중 가장 기적에 가까웠던 승리를 가져다준 바 있었으니까.
  임요환은 두 기의 셔틀을 격추시킴과 함께 전병력을 드랍쉽에 태워 북상했다. 오영종의 병력은 본진, 앞마당, 그리고 방금 공략당한 자신의 세 시를 포함하여 삼분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병력들을 한데 모으기 위하여 필요한 셔틀은 방금 한 기만을 남겼다. 그렇다면, 자신이 전 병력을 동원하면 적어도 앞마당만은 파괴할 수 있다. 오영종의 앞마당에 투하된 골리앗은 과연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이 또한 오영종은 막아냈다.
  주로 리버에 힘입은 결과였다. 앞마당 구석에 배치되어 있던 오영종의 리버들은 넥서스와 프로브들 사이에 밀집되어 주변을 타격하고 있던 골리앗을 멋지게 요격해냈다. 골리앗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방해받았고, 그 사이 리버의 스플래쉬 데미지가 고스란히 수 기씩의 골리앗을 타격했으며, 주변에서는 일찌감치 지어놓았던 포토캐논이 화력을 보탰다. 이후의 경기는 다시 오영종의 독무대였다.
  김태형 해설의 말은 정확했다. 임요환은 지금 모든 것이 허점이었다. 모든 것이 약점이었다. 변변한 방어병력 하나 없이 무작정 늘어나가기만 하는 테란 멀티는 빠짐없이 리버의 습격을 받았다. 스캐럽 한 방에 수 기, 심지어는 십 수 기에 달하는 SCV가 터져나갔다. 오영종은 대여섯기 분량의 셔틀에 담긴 드라군 리버로 적의 본진을 급습했고, 임요환은 본진 커맨드 센터를 내준 뒤까지 저항했지만 의미가 없었다. 시종일관의 주도 끝에 초대규모의 드라군/리버 드랍이 임요환의 본진을 초토화하면서 경기는 끝이 났다.
  임요환이 몇 번이고 그 발목을 잡아끌려고 해도 오영종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간다. 영광의 길을 밟아나간다. 그 등이 임요환에게 속삭인다.

  - 다시 새로운 가을의 전설까지, 앞으로 한 걸음.










  가을의 전설

  「노래하고 기뻐하라, 모든 서부의 아이들이여.
  너희 왕께서 다시 오시리니
  그리하여 너희 평생토록
   너희 가운데 거하시리니.」
- J.R.R. 톨킨,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송병구와 김택용이라는 양강(兩强) 및 두 사람을 필두로 이끌려나온 6룡 시대 이전까지, 프로토스는 예로부터 당대 최강의 3인을 꼽는 것으로써 그 계보를 이어왔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동수와 임성춘 그리고 송병석을 구(久) 3대로 손꼽았고, 그 뒤를 잇는 것은 낭만기의 정점에 있는 박정석 박용욱 강민의 3대 프로토스였다. 또한 이 So1은 송병구 박지호 오영종이라는 신(新) 3대 프로토스가 일으킨 파란을 타고 이 무대까지 왔다. 이 계보는 육룡 이전 프로토스의 사실상 모든 것이었으며, 프로토스는 이 계보를 따라 대를 이어가며 테란과 저그에게 숱한 역공을 펼쳐왔다.
  ‘가을의 전설’의 주인공은 누구 하나 예외 되지 않고 이 계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도 모를, 스타리그의 이 희한한 의례는 숱한 프로토스의 거성들을 키워냈다.



  첫 번째 주인공인 김동수는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한 프로토스의 스타리그 2회 우승자로서 이름을 남기고 있다. 두 번째 주인공인 박정석, 프로토스에 있어 박정석이라는 이름은 두 번 논할 의미조차 없다. 세 번째 주인공인 박용욱, 3대 프로토스의 한 축이자 제국함대 정점기의 한 축으로서 족적을 남겼다.
  이렇게 가을의 전설은 정점의 프로토스가 갖게 되는 하나의 무용담처럼 이어져왔다. 신기하게도 프로토스는 매년 이 마법의 가을을 이어갔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작년 처음으로 최연성이 그 전설을 유린했음에도, 다시 한 번 지금 가을의 전설은 프로토스에게 다가왔다. 그 가을의 전설이 지금 오영종의 눈앞에 있었다.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의 테란은 언제나 스타크래프트의 세계를 압도했다. 홍진호를 시작으로 테란을 집요하게 괴롭힌 저그는 박성준과 박태민에 이르러 마침내 처음으로 패권을 쥐었다. 프로토스에게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러한 패권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토스에게는 언제나 일격이 약속되어 있었다. 패도를 꿈꾸는 정점(頂點)에게는 앞길을 가로막는 재액과도 같은, 단 한 번씩의 역습이 프로토스에게는 허락되어 있었다. 설령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더라도. 설령 아무리 상대가 극복불가해보이는 강자일지라도. 좌절에 익숙한 노장이든, 막 첫걸음을 내딘 신예든, 선택받은 단 한 명의 프로토스의 손에 모든 것이 쥐어졌다. 기적처럼. 마법처럼.
  프로토스는 결코 신화에는 이르지 못한다. 기적과도 같은 전설은, 뒤이어 그 너머에 닿지 못한 좌절로서 끝맺었다. 많은 프로토스에게 있어 가을의 전설은 그들 커리어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 되었다. 그럼에도 프로토스들은 가을의 전설을 갈망했다. 그들은 그 한 번의 빛남을 위하여 모든 것을 불살랐고, 그 기억을 프로게이머로서 자기 삶에 기둥으로 세워 두 번째의 전설을 위해 분투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을의 전설은 더더욱 강하게 타올라왔다.

  그 가을의 전설이 지금 오영종의 눈앞에 있었다.
  오영종은 알았을까? 이 So1이 스타크래프트 10년사에 길이 남을, 결코 잊어지지 않을 전설의 리그로 남게 될 것이고, 자신이 그 주인공으로서 기억될 것임을.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전설이 오영종에게 가져다 줄 그 많은 것들을.
  이제 몇 시간 후면 오영종은 눈물을 훔치며 박스 밖으로 걸어 나오리라. 조정웅 감독이 달려들어 그를 부둥켜안을 것이다. 그 승리로부터 르카프 오즈가 탄생하고, 화승 오즈가 탄생하고, 오즈에서 박지수와 이제동이 자라난다. 누구도 믿지 않을 한물 간 뻔한 해피엔딩처럼 모든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그 이듬해에 오영종은 다시 한 번 날아오를 것이다. 꺾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영종의 사람들은 돌아올 가을을 기다린다. 이 단 한 번 꿈의 리그가 보여주었던 화사한 로망을 몇 번이고 기억한다. 가을의 전설, 짧은 빛 아래 비치는 꿈이 모두를 매혹시킨다.
  그 가을의 전설이 지금 오영종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을의 전설은 또한, 지금 임요환의 눈앞에 있었다.



  패도를 꿈꾸는 젊은 군주로서, 임요환은 김동수에게 패배하여 좌절했다. 그 이듬해, 이번에는 은빛의 박정석이 그의 앞길을 막아서면서 임요환의 시대를 끝맺었다. 그 이듬해에 기적과도 같은 8월 15일의 승리는 그를 결승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다시 그 이듬해. 자신이 키워낸 제자와 무너진 전설의 무대에서 그는 다시 패배했다.
  그런데도 지금 가을의 전설의 앞에 임요환이 있다. 2001년의 가을로부터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하지만 그래도 그는 싸워왔던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프로토스의 별들이 대를 이어 꿈을 꾸는 동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또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채.
  프로토스의 별들이 세 번 빛났다 스러짐을 반복하는 동안, 그 적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지금도 임요환은 전설의 눈앞에 있었다. 그가 결코 넘지 못할 전설. 결코 얻지 못할 승리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패배한다.
  그는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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