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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14 19:06
그냥 예수님 엄마
예수님을 낳아줬는데 어느정도 대접은 해줘야 하지 않겠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도 교회 5년 다니고 성당 3년 다니고 지금은 둘다 안가고 무교지만... 개신교에서 따지는건 그냥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네요.
11/03/14 19:16
그냥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는거죠.
마치 사장님께 드릴 보고서를 부장님을 통해서 올리는 것 같은...;(비유가 좀 적절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기도는 성모 마리아가 우리의 기도를 잘전해줬으면 하는 기도에요.
11/03/14 19:23
마리아는 삼위일체 다음의 존재로 떠받들어지고 있죠.
이것이 숭배가 아니라고 가톨릭은 극구 부인하지만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네요. 직접 신에게 기도하면 되는데 마리아에게 기도하는것은 마리아도 그만한 존재라는걸 의미하니까요. 성모송은 대놓고 마리아를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가톨릭은 이것은 숭배가 아닌 공경이라고 극구 부인합니다만, 가톨릭이나 개신교에 관계없는 사람인 제가 볼때에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1/03/14 19:38
언젠가 프즈히님이 올려주신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입니다.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19671&path=100419173244 107p 정도에 나와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네요.
11/03/14 19:44
가톨릭에서 성인(마리아를 포함한)들은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전달자 역할을 합니다. 가톨릭 기도문을 보시면 성모님 이렇게 해주소서 하는 구문은 없습니다. 그냥 전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의 맥락입니다.
아래는 가톨릭 예비 신자 입문서 중 일부 입니다. 마리아와 성인 공경 우리는 성인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빌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성인들을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우리도 그분들처럼 굳은 신앙 속에서 하느님을 언제나 사랑하며 받들도록 도와 주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줄 것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전구’ (轉求) 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신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늘 성모 마리아께 공경을 드리고 끊임없이 사랑을 바쳐 왔습니다. 우리의 마리아 공경은, 물론 하느님께만 드리는‘흠숭’ 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성모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연히 고귀한 품위를 지니시지만 역시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십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마리아 공경은 과장도 부족도 없는 가장 합당한 공경입니다. 그리고 이 아래는 사견입니다. (참고로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왜 가톨릭에서는 매번 신께 직접 기도하지 않고 중간자를 거치기를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는 엄밀한 교리로서의 접근보다는 가톨릭 전통(문화)의 일부로서 접근하는게 본질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성모님을 통해서 기도드리면 혹시 성모님 버프를 받을지도 몰라' 정도가 제가 성당 다니면서 듣고 배운 교리의 느낌이었습니다. 딱히 이게 교리상 원칙이거나 권장사항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서양쪽에서 오래도록 내려온 문화를 포용하기 위한 옵션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성당 다니면서 일반 신자가 기도할때 오오 성모님 하고 성모님부터 찾는 경우는 못본 것 같습니다.
11/03/14 20:02
카톨릭의 중요 교리. 전례 용어해설 - 이기정 편저
카톨릭 출판사 성모마리아 1 5월은 성모 성월, 인자하시고 꺠끗한 우리 어머님의 달이다. 갓 피어난 꽃잎보다 더 맑고 다정하심이 얼마나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셨던지, 성모님은 모자라고, 욕심 많고, 죄 많은 우리를 그래도 사랑하셨고 당신의 인자하신 손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셨고 항상 우리 편이셨다. 이런 성모님에 대해 '루이 마리'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무도 성모님을 찾지 않고서는 성모님을 얻지 못할 것이요, 또 성모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성모님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 성삼께 대한 보다 큰 인식과 큰 영광을 위해서는 성모 마리아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잘 알려지심이 필요하다>고. '루이 마리 드 몽포르' 신부님은 1672년 프랑스의 브리따니주의 작은 마을에 7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나 1700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언제나 강론을 통해 성모께 대한 신심을 가르쳤고, 특히 성모님이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드디어 1947년 6월 20일에 그는 성인품에 올랐다. 그분은 '동정 성모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 과 '성모 마리아의 비밀'을 쓰면서, <만일 나의 이 가련한 피가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쓰는 이 진리를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주는데 얼마간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즐겁게 잉크 대신 나의 피로써 이 글을 쓰곘다.> 고 말씀하셨다. <성모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그 자비와 권능과 은총에 있어 더욱 빛나시지 않으면 안된다. 자비는 길 잃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그분의 권능은 하나님을 거스려 반대하는 원수를 대적하기 위해서, 그리고 은총은 하느님을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대와 종들을 위해.> 라고 말씀하셨다. 구원의 어머니 1. 우린 어려서부터 성모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기도만 헀다 하면 성모님에 대한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만큼 성모님을 정말 우리 어머님으로 모시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성모님을 우리 어머님으로 말할 수 있고 나의 어머니는 위대하신 분이라고 자랑할 수 있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어머님으로 진정 모시고 있는지요? 그런것은 뭐 비유해서 말하는 것이지 내 어머니라고 할 수 있나! 이렇게 생각되진 않는지? 그런데 성모님은 육신을 낳아준 어머니 외에 영원히 죽지 않을 생명을 낳아 주신 또 한분의 어머니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중에 계실 때 성모님과 제자가 비통해 하는 것을 보시고<어머니, 이 사람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 <이분이 당신의 어머니요.>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9:26-27에 나오는 대목) 이 대목은 성모님이 우리 전인류의 어머님이라는 뚜렷한 증거이다. 2.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에와가 죄를 진 이후 우리 인간은 초자연적인(자연을 넘는) 생명을 잃어버렸는데, 이런 생명을 주님의 구속사업과 성세성사를 통해 되찾게 되었고 이는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을 낳으심으로써 가능케 된 것이다. 루가 1장 26절 이하 예수님 탄생의 예고편에 가브리엘 대천 사는 성 마리아 처녀에게 장차 천주님의 어머님이 되실 것을 알렸고 마리아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인류의 조상인 여인 '에와'가 하느님의 뜻을 거스린 불순명으로 하느님의 말씀 대신 악마의 화신인 뱀의 말을 그 태중에 맞아 불순과 죽음을 이 세상에 낳아 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중개로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을 신앙과기쁨으로 맞아 이 말씀 자신을 잉태하여 마침내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낳아 주신 것이다. 에와는 아직 처녀였을때 불순종하여 자신과 전인류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며, 순종하는 처녀 마리아는 자신과 인류를 위해 구원의 원인이 되셨던 것이다. 즉 묶인 것을 풀어 헤치려면 매듭이 동여 매진 것을 거꾸로 되풀어 나가야 되듯이 에와의 불순명은 이렇게 마리아의 순명과 신앙으로 풀어 헤쳤기 때문에 새로운 아담인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탄생한 교회는 산자들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3. 성모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조금도 눈을 돌리시지 않으신다. 우리가 큰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잃었을 때 성모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다시 회복해 주실 은혜를 얻어주신다. 물론 당신이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구원하심과 같이 우리 또한 성모님께 순종함으로써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은총은 성모님을 통해 받는다 1. 최근에 이르러 성모님의 여러 기적, 발현으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님께 특별한 관심과 기대를 기울이게 됐다. 우리의 모든 청원과 속죄의 기도가 성모님을 통해서 주님께 전달되며, 하느님의 모든 은총이 성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은총을 성모 마리아의 '하자없으신 성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청을 성모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파띠마의 히야신따가 루치아에게 한 말은 이런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 하겠다. 2. 교황 베네딕또 15세 성하께서는, 성모 마리아께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 1917년 5월 <모든 은총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맞는 이 시련의 시간에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고통을 받는 성모님의 자녀들이 생생한 시념을 가지고 위대하신 천주의 모친께서 간절히 호소의 기도를 올리기를 바랍니다.> 고 말씀하신지 8일 후에 성모님은 파띠마에서 발현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여러가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이 시련을 올바르게 극복하며 또한 정의롭게 피기 위해선 이사의 말씀을 상기할 때라고 생각한다. 3. 성 알퐁소 리구리께서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공로에 의해 우리에게 은총과 구원을 얻어 주실 수 있는 중재자시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신다. 비록 성모님은 예수님의 공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어 내실 수 없지만, 실재에 있어서는 우리가 청하는 모든 은총은 성모님의 손을 거쳐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어린아이가 아닌 왕으로, 힘세고 권력을 쥔 장수로서 오실 수 있었고, 또한 오심에 성모 마리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나누어 주심에 성모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성모님을 통해서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 주시길 원하신다는 말씀이다. 4.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평화롭지 못하다. 이 세상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성모님을 인류의 어머니로 공경하며 은총의 중재자이신 그분께 평화를 기도할 때에 세계는 진정한 평화를 얻게 될 것이며 작게는 내 안에 내 가정에 평화를 얻게 될 거라 확신한다. 또한 이렇게 될 때, 인자하신 어머님이 우리를 지켜 주심에 큰 위안이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여왕이신 어머님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흔히 세 가지로 구분해서 이해했다. 그 하나는 말씀으로서 성부에게서의 영원한 탄생이었고, 그 둘째는 나자렛의 예수로서 마리아에게서의 시간과 역사 안에서의 탄생이었으며 끝으로 영세한 교우 여러분의 영혼 안에 신앙으로 탄생하시고 성장하시는 인격성 내의 말씀의 탄생이다. 이 세가지 탄생 중 힘 없고 나약하기만 한 어린이로서 지상의 시간 안에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은 당신의 겸손의 가르치심이며 또한 인간인 마리아를 취하셨다는데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여왕이시라는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성모 몽소 승천 교리를 선언하실 때 성모님은 영혼과 육신이 그대로 천국에 계시다고 말씀하셨고 따라서 간접적으로 성모님이 천국에서 여왕으로 계심을 세상에 상기시키셨다. 영화로우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왕중 왕의 어머니시기에 교회가 성모 어머님께 공경을 드리심은 당연하며 여왕이라 영광스러운 칭호로써 마리아께 영광을 드리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성 알퐁소께서는 말씀하셨다. 순명하신 마리아 처녀에 대한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성모 마리아는 주님의 모친이 되실 것에 동의하는 그 순간에 우리의 어머님이 되셨고 우리의 여왕도 되신 것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죽음과 몽소 승천으로 하늘에 올라가셨을때 우리 주님께서는 여왕으로서의 당신의 어머니 머리 위에 관을 씌우셨다. 그러나 관을 받으셨기에 여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여왕이시기 때문에 관을 받으신 것이다. 이처럼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께 봉사함에 있어 일시적 패배나 실망이 있을지 모르나 영원한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성모 마리아 II 1. 아름다운 꽃잎이 활짝 핀 들녘에 서서 작은 꽃가지에 눈을 준다. 다소곳한 연한 모습에서의 그의 고통과 인내를 읽어 본다. 지난 겨울 찬서리가 치고 북풍이 불던 날, 그래서 몸은 마냥 움츠러 들고 고통이 피맺혀 가련한 몸매를 한없이 떨었지만,그래도 입술을 깨물고 얼마나 많은 고통의 날을 참아 왔던고? 또한 희망과 꿈을 펴 보이기 위해 망울이 터지는 아픔을 참으며 이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본 것이가고, 이처럼 아름다움 뒤엔 피눈물 나는 쓰라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2. 성모님을 복되시고 영광스러운, 영광이신 어머님이라 하며 영혼과 육신 모두 천상에 올림을 받으신 어머니라고 하는 점에 틀림이 없지만 한편 한없는 고통이 가슴에 피맺혀 속은 송두리째 고통으로 가득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처녀로서 임신한 부끄러움과 괴로움, 요셉인 남편과 부부아닌 부부생활의 어려움 .갓 태어난 아기을 안고 창칼을 피해 남몰래 외국으로 도망해야 했던 두려움 .사랑 스럽고 대견 스럽기만 했던 아들이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에 아들을 올려놓고 손과발에 목박히는 것을 보셔야만 했던 어머니의 고통 스러움. 당신 가슴에 못박는 이상으로 처절했고 몸부림 치던 아픔을 당했던 어머니. 이제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는 이 세상에 홀로 남아 지난날을 생각하며 눈물짖는 어머니 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디 그것 뿐이랴? 당신 아들인 주님께서 온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처참하게 돌아가셨는데도 인간들은 부정을 일삼고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성모님의 마음은 아프시기만 하고, 하느님께 그저 용서해 주시라고 부탁 드리기에 바쁘시니 이런 어머님이 어디 영광스럽고 복되기만 한가? 오히려 불쌍하고 가련한 어머님이 아니겠는가? 이제 이런 어머님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님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님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어머님께 봉헌을 1. 옛날에는 마귀가 직접 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하고 어리석었지만 오늘의 마귀는 인간의 지식이 고도화도미에 따라 약삭 빠르게 교묘히 숨어 있어 더욱 골탕을 먹이는가 보다. 기계가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함에 마귀도 또한 기계라는 마귀, 문명의 뒤에 숨은 마귀, 돈이란 마귀가 있어, 기계나 문명이나 돈(화폐)등을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터이지만 마귀의 장난으로 오늘의 인간은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마귀도 동정이신 성모님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 우리는 복되신 동정녀의 자식으로 이 원수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당신이 여러 차례의 발현을 통해서 말씀하신 묵주의 기도, 희생,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에 충실히 실천함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따름에 탈선하지 않을 것이며, 그분에게 호소하여 절대 실망하는 법이 없을 것이며, 어머님을 사랑함에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며, 그분의 보호에 두려워함이 없고 그분 품안에 있으면 하늘나라를 얻을 것이다. 그분의 손은 인자하시고 사랑이 크옵시기에 그리스도의 채찍을 멈추게 하시며, 은총을 얻게 하신다고 성 보나벤 뚜라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따름' 이란 우리가 전적으로 어머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을 바치는 데 있는 것이다. 2. 마리아께 큰 존경을 바치는 것이 하느님께 드릴 존경을 감소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루이 리 성인은 "하느님에 대한 사모의 정이 없이 여러분은 결코 마리아를 사모할 수 없다. 여러분이 마리아를 칭송하고 마리아는 당신이 받으신 그 칭송과 존경을 반드시 하느님께 바친다." 이 말은 어머님께서는 하느님과의 관계로만이 생활하시며, 하느님 옆에 계시기에 하느님만을 말씀하시는고로 여러분이 마리아를 부르면 어머님은 꼭 하느님을 부르신다 하는 말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를 위하시는 어머님께 우리 스스로가 완전한 봉헌을 올리기 위해서는, 1) 우리의 몸을 바쳐야 되고, 2)우리의 영혼을 그의 모든 능력 즉 지혜, 자유 의지 등을 마리아께 대한 봉사를 위해 바쳐야 되며. 3)당신께 우리는 세속의 모든 사물을 바치고, 4)우리 내적 및 영신적인 재물은 즉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의 공로, 덕행, 선행 등을 바쳐야 한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쳐 자신을 완전히 없이 하는 봉헌인 것이다. 끝으로 조심할 것은 때때로 우울해지거나 권태로우며 유혹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이를 잘 실천해 나가는데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으며 또한 나도 행복감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 묵주의 기도와 희생 1. 로사리오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1937년 묵주기도에 대한 회칙에, <옛날 무서운 알비젠시스 이단을 몰아내신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위들의 간청에 감명되시어 오늘의 오류들, 특히 공산주의 오류도 없이 하실 것이다. 우리들 모두가 합당한 위탁과 커다란 신앙과 열렬한 경건을 가지고 복되신 어머님께 간청한다면 그분께서는 주 예수님께 기도하며, 현재의 거친 물결들을 잠잠케 하실 것이며 크리스찬의 반대 세력을 기도 속에 빛나는 왕관으로 덮어 버리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만일 여러분이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화, 국가의 평화를 원하신다면, 매일 저녁 모여 주구의 기도를 바치시오. 가정의 로사리오를 바치심은 아름답고 칭찬할만한 습관이라>고 하셨다. 이상 말씀 드림은 교황 성하의 묵주에 대한 신념과 우리에게 사랑의 권고를 하셧음을 마음 속 깊이 받아야 하겠다. 2. 희생 : 우리는 주주 희생이란 말을 쓰고 있다. 희생이란 말 자체는 쓰기 쉽고 말하기도 멋 있는 단어일는지 모르지만 희생이란 뜻은 그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희생을 해야만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찬 생활에서 희생의 새활은 또 하나의 필수 조건인 것이기에 희생 없는 생활은 값이 없는 생활이다. 우리의 대사제이신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모든 이를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상에 피흘려 돌아가신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피의 보속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구할 수 있었고 당신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닌가? 사랑한다는 뜻 속에 이처럼 값진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찬 신앙으로의 값진 생활은 사랑의 생활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것이다. 즉 용서하는 것, 겸손한 것, 친절한 것, 베풀 줄 알며 교만하지 않는 것, 시기하지 않는 것등, 이런 것에 기쁘게 지불함으로써 주님이 희생에 답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희생할 줄 모르는 생활은 아무리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졌다고 큰 소리쳐도 그 십자가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 십자가여서 고달프기만 하고 귀찮기만 한 십자가로 아무 쓸 데가 없다. 생활 속에서 어렵더라도 기쁘게,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즐거움을 줄 때 주님이 계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이 십자가의 희생을 성모님께서는 값지게 사신다는 것이다. 파띠마에서 성모님은, 죄인들을 위해 너희들 자신을 희생하라. 그리고 희생할 때 "오 예수여 이는 당신께 대한 사랑과 죄인들의 회개와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을 거스려 범하는 죄의 보속을 위하여 드립니다."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면 성모님은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 위의 글이 공식적인 가톨릭 교리와 일치하나요? 이렇듯 우리를 위하시는 어머님께 우리 스스로가 완전한 봉헌을 올리기 위해서는, 1) 우리의 몸을 바쳐야 되고, 2)우리의 영혼을 그의 모든 능력 즉 지혜, 자유 의지 등을 마리아께 대한 봉사를 위해 바쳐야 되며. 3)당신께 우리는 세속의 모든 사물을 바치고, 4)우리 내적 및 영신적인 재물은 즉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의 공로, 덕행, 선행 등을 바쳐야 한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쳐 자신을 완전히 없이 하는 봉헌인 것이다. 끝으로 조심할 것은 때때로 우울해지거나 권태로우며 유혹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이를 잘 실천해 나가는데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으며 또한 나도 행복감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 몸을 바친다 이런 표현을 보면 공경이라고 하지만 공경이라기 보단 숭배에 가까운건 아닌지요.
11/03/14 20:34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46716070&qb=66eI66as7JWEIOustOyXvOyLnO2DnCDsirnsspwg6rWQ66asIO2ZleyglSDrhYTrj4Q=&enc=utf8§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U3IfB331xNsscUnhg8ssv--379766&sid=TX3ujJHZfU0AAEYHD0I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교의를 요약하면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평생 동정녀이다. 둘째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에 의하여 거룩하다. 즉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은총에 의하여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교황 비오 9세, 1854년 12월 8일 선포). 셋째,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이 모두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성모 몽소승천, 교황 비오 12세, 1950년 11월 1일 선포). 1. 마리아 = 평생동정녀 교리 =>이 교리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성서에서는 발견되지는 않았다. 2. 마리아는 원죄가 없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았다. (무염시태론)=> 19세기에 교리 확정 3. 마리아는 육신을 가지고 승천하여 육신과 영혼 모두 그리스도와 있다 => 20세기에 교리 확정 링크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전 천주교인의 글을 따온 것 입니다.(개신교 측의 자료는 가톨릭을 까는 입장이라 안살펴보셔도 됩니다.) 위의 교리 확정 연도를 보면 종교 개혁 이전에는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나 몽소승천 교리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평생 동정녀 교리는 어디서 생긴지 모르겠네요. 천주교는 성서와 전승을 거의 같은 권위로 놓아서 그런지 몰라도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시대가 흐를 수록 강화되는 것 같네요.
11/03/14 22:23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하지만 마리아상을 만들고 기도하며 제사를 인정하고 종교다원화에 대해 관대한점 등은 성경대로 따른다고 볼순 없죠 [m]
11/03/15 01:38
천주교인으로써 댓글중에 엄청 거슬리는게 몇개있네요.
소비적인 논란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지목하지는 않고 조용히 하겠지만 순수 답변이 아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 내용을 따르지 않는다니 뭐하느니 우상이라니 그딴 답변들 좀 쓰지마세요. 님 믿는게 옳음 잘 믿어서 성공하시고 남 종교 폄하는 하지마시길. 종교다양성 존중이라는 그런거 문화 상대성 그런거 중학교때 배우지않나요?? 아 글쓴분께는 죄송합니다. 그냥 좀 기분이 상해서 몇자 끄적거려봅니다. [m]
11/03/15 01:46
최소한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거면 나쁘게는 말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아는거면 대답하고 잘 모르면 답변 안하시면 될껄.. 자기 생각 물어본게 아닐텐데요. 휴 죄송합니다. 저 또한 흥분해서 글쓰고있고 이 댓글보면 누가 또 기분 안좋아지시겠네요 ㅠ 근데 타 종교에 관대한게 죄가 될까요. 종교란게 모두 그만의 교리가 있고 논리가 있는데 자기 종교만 옳다고 그러면 뭐 종교전쟁이 그런거겠죠. [m]
11/03/15 01:51
'우리는 완성된 종교가 아닙니다. 천주교는 진리를 향한 완성의 길을 계속 걷고 있을 뿐이지요. 천주교 신자란 천주교가 가장 진리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는 사람들 이고요. 때문에 우리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종교가 진리를 포함하고 있 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2) [m]
11/03/15 09:30
노력하는나 //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신거 같은데,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욕 많이 먹는것도 알고요. 같은곳에서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서로 가는길이 점점 다른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네요. 더 쓰고싶은말도 있지만 윗분들이 잘 설명해주셨고, 다른 부분은 싸움으로도 갈수 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적지 않겠습니다.
11/03/15 10:33
guy209 님// 성경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면 성경 책에 씌여진 여러 상충되는 내용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그냥 케바케?
믿지는 않지만 와이프 따라 매주 개신교에 가보니 성경책 무슨 서 몇장 몇절에 적혀있는 말씀이라고 좋은 말 적어 놓거나 하는데 찾아서 보면 전체적인 내용은 생뚱맞은 내용인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교회가 성경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결국 충돌되는 내용의 경우 목사님 해석, 혹은 그 종파의 해석에 따라 본인의 행동 양식이 결정되어져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건 성경을 따르는건가요? 목사님을 따르는 것인가요? 열심히 믿으시는 분 같아서 한번 여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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