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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23 01:11:47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종북 강요하는 사회 – 내게 빨밍아웃을 허하라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종북 강요하는 사회 – 내게 빨밍아웃을 허하라


"저는 북한 싫어합니다. 북한 체제를 부정하지만.."

언젠가 <썰전>에서 이철희 소장이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와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서두에 위와 같은 식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여지없이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보수 정치세력과 수구 언론을 의식한 이 멘트에서 나는 원인 모를 씁쓸함과 슬픔을 느꼈다. 마치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누군가와 시사 정치 문제를 소재삼아 이야기를 나눌 때, "나도 북한정권 싫어하지만..", "나도 통진당이 맘에 안 들지만.."이라는 식의 멘트를 입버릇처럼 먼저 전제로 꺼내는 현실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겐 왜 나도 모르게 이런 말버릇이 생긴 것일까? 내가 가진 두려움은 간단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한 현실 속, 그러니까 실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종북 프레임에 의한 낙인과 입막음에 대한 두려움. 보수적으로 편향된 커뮤니티, 정치적으로 우경화된 조직 사회일수록 (천안함 사건, 통진당 사태를 비롯한) 대북관련 주요 현안들의 불합리한 부분과 부조리한 측면을 지적하면 안보의식이 부족한, 뭣 모르는 '꼬꼬마 종북 꿈나무'로 취급당하기 쉽다. 그리고 한번 이러한 굴레가 씌워져 버리면 그 이후의 내 모든 정치적 발언은 그 상대방에게 혹은 그 커뮤니티 내에서 '정당한 힘'을 발휘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결국 이런 종북 프레임이라는 전가의 보도에 의해 한번 낙인이 찍히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아무리 국정원 사태에 관해 박근혜 정부를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철도 파업과 관련한 정부의 일방적인 대응을 꼬집어도 상대방에게는 뭣모르는 소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부족한 안보의식을 지적당하며 "감성적 선동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쓴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생각해보면 기실 이것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다시금 만연한 '레드 콤플렉스'의 망령에 휘청거리는 2013년 우리 사회와 이 시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말로 종북을 강요하는 것은 누구인가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와 치열한 각축을 벌이던 라이벌 문재인 후보에게 nll 논란과 함께 새누리당으로부터 덧씌워졌던 것이 바로 종북주의자 논란이며, 국정원 선거 개입과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 미사를 주도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게 수구언론으로부터 씌워진 것 또한 바로 이 종북단체 낙인이다. 이뿐만인가? 각 대학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행렬에 자행된 일베의 테러 방식 또한 종북 색깔 덧씌우기였으며 민주노총과 연계하여 철도 파업을 진행중인 코레일 노조에게 앞으로 씌워질 굴레도 바로 이 종북주의일 것이다. 참으로 쉽고 간편한 논리다. 정권에 위협이 되는,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과 비난의 화살을 잠재우는 전가의 보도가 되어버린 '종북 프레임'. 참으로 간편하다. 참으로 간편하고, 참으로 후지다. 1973년, 83년도 아닌 2013년의 대한민국에 되살아난 레드 콤플렉스의 망령이라니.

만약 위에서 언급한 이 모든 세력이 불순한 종북세력이라면, 이 글을 쓰는 나는 어떠한가?
국정원 사태를 규탄하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릴레이를 응원하며,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나는 종북 세력의 획책과 선동에 휘말린, 철없는 꼬꼬마 빨갱이인가? 이러한 나는 대한민국에서 진정으로 위험한 불순분자이자 종북주의자인가? 정말 그런가?

오히려 이 시대, 이 사회에게 정말로 종북을 강요하는 것은 누구이며,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후져도 이렇게 후질 수가 없다


오늘 일어난, 공권력 투입을 통한 경찰들의 민주노총본부 진입 사태를 씁쓸히 지켜보면서 김어준 총수가 쓴 <나는 그를 남자로 좋아했다>라는 글의 한 대목이 문득 떠올랐다.

[맞다. 니들은 딱 그 정도였지. 그래 니들은 끝까지 그렇게 살다 뒤지겠지.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거리낌 없이 비웃을 수 있게 해줘서. 한참을 웃고서야 내가 지금 그 수준의 인간들이 주인 행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뼛속 깊이 실감났다. 너무 후지다. 너무 후져 내가 이 시대에 속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몰상식과 비상식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문제 제기까지도 종북몰이로 묻어버리는 사회.
국민 통합과 국론 분열 방지라는 미명하에 모든 논의와 소통까지도 원천 봉쇄하는 사회.
천박해도 이렇게 천박할 수가 없으며, 후져도 이렇게 후질 수가 있을까.





내게 빨밍아웃을 허하라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종북주의가 이런 종류의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종북주의자 하겠다.

그들이 진정 추구하는 사회가, 몰상식과 비상식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문제 제기까지도 불순행위로 간주하는 이런 천박한 사회라면,
난 기꺼이 종북주의자의 낙인을 새기고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에 맞서겠다.

더불어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처럼 사회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퍼져나가는 이러한 움직임, 이러한 목소리마저도 그들이 얘기하는 불순세력의 선동, 이른바 '빨밍아웃'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빨밍아웃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빨밍아웃을 허하라.

국가 안보와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과 위선적 가면 속에 숨겨진 그들의 맨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꺼이, 빨밍아웃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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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ncentz
13/12/23 01:15
수정 아이콘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다다닥
13/12/23 01:16
수정 아이콘
28일에는 시위에 동참해야겠어요. 트롤링도 어지간히 해대야 참죠.
감모여재
13/12/23 01:18
수정 아이콘
속이 시원해지는 글이네요. 추천합니다.
王天君
13/12/23 01:19
수정 아이콘
넵!!!! 저도 빨밍아웃 하렵니다. 이런 사회에서 종북이 되지않고서는 비판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요!!
치탄다 에루
13/12/23 01:35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자칭)좌파인 저에겐 빨밍아웃은 사치입니다. 그냥 빨..빨..ㅠㅠ...
13/12/23 01:41
수정 아이콘
일 한 만큼 벌어서 등 따시고 배 부르게 살 수 있으면 공산주의 이상사회 같은 불가능한 이상론을 진지하게 들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이상론에 현혹되는건 부정 부패한 사회 대문에 불만과 절망에 가득찬 사람들 뿐이지요. 좋은 예로 남베트남의 민주주의 정권이 부정과 부패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무려 미국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결국 남베트남을 공산화 시킨건 북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 보다는 남베트남의 부패정권의 힘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북한과 전쟁 및 오랜 기간의 휴전기간이라는 역사 덕분에 심지어 저런 상황이 와도 공산화가 안될겁니다. 장담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중국의 무력에 의한 점령이 아닌 이상) 세계에서 가장 공산화가 될 걱정을 안해도 될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대놓고 해먹을 수 있는거고요. 정말로 공산화 위험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려 대놓고 막하지 못했겠지요.
13/12/23 01:45
수정 아이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내용상으로 저도 북한과 소련에 대한 선 긋기를 햇거든요. 매카시즘 면피용인데요. 이 글을 보니 선 긋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자체가 참... ㅜ ㅜ
13/12/23 01:52
수정 아이콘
전 자칭 우파인데도 왜 빨밍아웃을 하게 만드는지...에휴~~
Arya Stark
13/12/23 01:56
수정 아이콘
뭔가 에로한 느낌이네요 빨밍아웃이라 .....
자다깨고깨다자고
13/12/23 04:36
수정 아이콘
전정권때나 현정권이나 초장에 깽판 잘쳐놓는거보면 참 대단합니다. 어찌그리 똑같은지 쯧쯧..
루크레티아
13/12/23 08:54
수정 아이콘
당장 소위 말하는 친북세력일지라도 김씨 왕조정권 좋아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알랑거리고 평생을 바쳐 충성해도 개처럼 끌려나가 형장에서 죽는데 말이죠. 북한 정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된 도리라면 당연한 일인데 그걸 '나는 사람 맞다' 라고 항상 외치게 만드는 불필요한 요식행위를 해야만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군요.
겟타빔
13/12/23 11:34
수정 아이콘
진심으로 이 정권... 창피합니다...
무선마우스
13/12/23 17:47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지요... 근데 어느 순간 덧씌우기 하는 자들은 실제 종북이 있다고 믿어버린 느낌입니다. 2013년에 종북 프레임이라니... 그것도 국민의 절반이 종북이라니... 헛웃음만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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