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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6 13:09
??? : 이순신은 왜구를 무찔러라!!!
??? : 작은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것은 이치에 맞지않고....... 지금은 여름이라 군사를 동원하면 안되고... 장마철이라....활이... ??? : ???????
24/01/16 10:46
런조 입장 바로 이해되네요
숙청마렵네... 근데 세력이 너무강하고 대체자도 없어서 숙청도 안되고 자급자족해서 군벌급이네요. 장군님도 엑싯방법 생각안나시니까 그냥 북쳐버리신걸지도ㅠㅠ
24/01/16 10:48
사실 전시상황에서, 거의 독립국가에 준할정도로 운영을 잘하니까 왕 입장에서 위협적이긴 했죠..
이순신이 일기나 여러 상황으로 밝혀지는게 충성심 만땅이었다는건데, 보통은 충성심 조금만 낮아도 사고칠 상황이긴 합니다 ;;
24/01/16 10:58
이순신 장군님이 해전이 워낙 알려져서 그렇지, 임진왜란 전 육군 장수로도 일한 적이 있고, 나름 전공도 좀 세웠을 겁니다. 그리고 꼭 그거 아니더라도 진짜 역성혁명이라도 하게 되면 사안이 사안인만큼 조그만 기미가 보여도 긴장 탈 수 있는 상황이긴 하죠. 이순신 장군님 성격상 그렇게는 하지 않았겠지만, 선조 입장에서는 많이 찜찜하긴 했겠죠. 위 댓글 중 하나에 나온 말씀대로 충성심이 조금만 낮았어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긴 했을 겁니다.
24/01/16 11:09
한양 남쪽에 노량진 마포는 괜히 진,포 이름 붙은거 아닙니다. 무거운 짐 싣은 조운선이 오갈 수 있으면 판옥선이 커봐야 홀수선은 얇아서
24/01/16 12:05
조산보하고 녹둔도는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강가와 섬입니다 특히 녹둔도는 바다와 강의 경계 있는 섬입니다
만호라는 직책은 고려시대에는 육군,수군 통털어 만명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지만 조선중기에오면 수군에게 붙여진 직책이죠
24/01/16 11:15
그 당시야 배 타면 수군 걸어 다니면 육군인 수준이라...
이순신 장군이 지상 작전 무지렁이도 아니어서.... 장군님이 휘하 수군들 데리고,,, 아오~ XX 이렇게 된 이상 한양으로 간다... 이러면 런조 입장에서도 주옥되는거죠~
24/01/16 10:51
이순신 장군님이 너무 위대한데 비해서 원균은 역사상 통틀어도 몇 없는 졸장이다 보니 너무 극적이라...
원균이 그냥 보통 정도의 장군이여서 이순신 함대 물려받고 그럭저럭 승패 기록하는 수준이였으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하네요.
24/01/16 12:26
귀향 보내거나 누명 씌워 죽이는 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임진왜란의 센터가 이순신인데 누명 씌워 죽인들 신하들 중 누명인 거 모르는 사람 없을거고,, 그러면 누구도 런조 말 듣지 않게 되죠~ 쟤가 죽을 정도면 난 어떻게 돼??? 나도 언젠가 누명 쓰고 나락가는거야?? 이순신이 살았을 경우 런조의 선택 중 최선은 군부에 최고 명예직 하나 신설 후 거기로 이순신 발령내는 거 정도죠~
24/01/16 12:33
원균의 최고 업적 : 에이~ 이순신 그거 무기빨 배빨이지 뭐 특별한 게 있다고~ 하는 말이 조금도 나올 수 없게끔 철저하게 망해줌.
24/01/16 10:52
선조 : 내가 명나라에 원군요청해서 전쟁 이길꺼임
나님 좀 쩌는듯 백성 : 와.. 이순신 캐리 개쩐다 버스 감사요 선조 : 아니 내가 원군요청해서 이긴거라고! 이거 임금차이임!
24/01/16 10:55
자기가 역대급으로 추한 짓 잔뜩 벌인 상황에서
지방에서 일본군 다 박살 내고 자기 세력을 구축한 미친 전적의 군벌(?)이 있는데...! 소름이 끼치네요 크크
24/01/16 11:07
어디서 주워듣기로는 세금같은것도 제대로 올려보낼수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세금도 받아서 운영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세금받고 병력 모집해서 훈련시키고 전쟁병기(=판옥선)만들고 이러는거죠. 그것도 국토가 전쟁상황이라 상호 확인이나 연락이나 이런게 쉽지않은 상황에서요..
24/01/16 13:33
한신만 죽었으면 한신 잘못이겠구나 하겠지만, 웬만한 장수 다 엮지 않았나요? 번쾌도 죽이란 명령 내리고 소하도 감옥살이 좀 했는데...
24/01/16 11:07
그래봐야 수군이라서 한계가 있는건데 그냥 선조가 정신나간 놈이라 그런거죠.
물론 이순신은 육군출신이긴 하고 (사실 그시대에는 딱히 구분이 없이 왔다갔다했습니다) 생산량 높은 지역이 통째로 장악당하긴 했지만 육군이 아닌 한계는 매우 크기때문에 그렇죠. 대체 전설적 위업을 세운 해군제독을 역적으로 몰아서 죽일뻔한 사례가 선조말고 있기나 한지.
24/01/16 11:13
수군이라도 백병전으로 싸우던 그리스 같은 시대였으면 모르겠는데 조선수군은 엄연히 화포로 때려잡는 집단이었는데
선조의 의심병인거지 이걸 그럴만하네 하면서 쉴드칠필요는 없죠.
24/01/16 11:32
자체적으로 세금걷고 징병하고 병사훈련이 가능하고, 년단위로 싸움이 길어지는데다가 전쟁으로 국토가 절단나서 제대로 확인도 불가능하고, 제어할만한 중앙군도 절단나있고.. 아랫사람인 원균이 이순신이 제대로 안싸운다는 보고서 올리고 그런거보면 의심할만한 상황은 맞죠.
선조가 찌질하고 의심병 있는건 맞는데, 그럴만한 상황인것도 맞습니다.
24/01/16 12:48
어차피 조선육군도 총통쓰지요 수군이라고 백병전을 안할것도 아니고...
뭐 조선에서 물길이 가장 빠른 기동을 보장하는데...당시 통신수단등 생각하면 이순신장군님의 능력을 그런데 쓴다면 정말 갑툭튀로 병력이 꽂힐순 있을거같긴한데요...
24/01/16 13:24
상비군도 제한적이고 유사시 징집된 농민군 위주의 전근대 군대에서 육군이냐 수군이냐는 큰 의미 없을겁니다. 중요한건 정치적/경제적 기반과 그를 바탕으로 동원가능한 인원의 규모죠. 전란 당시 만단위 병력을 단순 차출이 아니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 수준이면 조선정부 입장에서는 위협으로 여기기에 차고 넘칩니다.
24/01/16 11:18
살아있을때야 그럴수 있다고 해도, 사후에도 저런건 찌질한 질투심이죠. 뭐.
선조는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 이순신은 성웅으로 본인은 찌질한 런조로 각인될지 몰랐겠죠?
24/01/16 12:09
그렇긴한데 결국 3명뿐인 선무 1등공신에 이순신이 포함됐고 선조는 전쟁영웅도 하나도 죽이진 않고 오히려 한직이긴 해도 벼슬도 줬거든요. 나름 노력(?)을 하긴 했습니다. 욕을 먹어야할 건 원균을 1등공신에 포함 시켰다는 것정도?
24/01/17 00:54
그 왜란 이후 논공행상이 개판이었죠. 말씀하신대로 한직이고 이순신 장군 휘하 장수들도 거의 빠졌습니다.
그리고 같이 런한 애들 다 공신으로 해서 이순신, 권율 등 선무공신이 18명인데 비해 호성공신이 80명으로 내시들까지 다 챙겼습니다. 정말 선조는 찌질한 새끼였습니다.
24/01/17 01:47
선조가 찌질했다면 상당수의 왕들은 전후 구실잡아 전쟁영웅들 숙청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왕이 선조가 아니라 공민왕이었으면 이순신은 이미 죽어서 어쩔 수 없으니 권율을 잡아 죽이라고 했을 걸요?
24/01/17 10:52
역사는 유명하고 아니고로 판단하는 게 아니죠. 게다가 공민왕이 무슨 듣보잡도 아니고 아는 게 선조와 이순신 정도라면 그냥 말을 아끼는 게 낫습니다.
24/01/17 10:55
댓글 의견에서 무슨 시비를 이렇게 거시나요? 대충 좋게좋게 넘기려고 하는데.
아니 내가 무슨 역사전공도 아니고요. 선조 좀 흉보면 안되나요? 그래요. 저는 말을 아낄테니 님은 예의를 좀 챙기십시요.
24/01/17 11:08
무슨 시비를 걸었다는 건지 모르겠고 저야 선조가 욕 먹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잘 모르고 본인이 선조는 욕하는 건 괜찮지만 자신이 욕먹으면(?) 굉장히 불쾌해하는 게 재밌긴 하네요.
24/01/17 11:17
언제부터 게시판이 전문가만 다니는지 모르겠고, 나는 잘아니 모르는 너는 닥쳐가 대화하려는게 아니죠?
공민왕이 어쩌고 본인이 좀 아는 분야니까. 그리고 이게 재미있다고 비꼬면서 무슨 대화를 하겠어요. 어쨌든 선조 관련 말 아끼라고 했으니 아낄께요. 모르는 사람은 갑니다.
24/01/17 11:31
그냥 다른 왕들과 비교하면 선조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런데 님이 모를 뿐이다라는 게 굉장히 공격적으로 들리셨군요?? 네가 뭔데 감히 내가 모르는 걸 지적하는 거야? 그런 기분이 들어 속상하셨군요. 애기 달래듯 님이 감정까지 신경쓰며 조심히 말했어야 했는데 제가 부족했네요. 앞으로 뭘 알려줄 때는 아기다루듯 조심히 하겠습니다.
24/01/16 11:21
공민왕도 홍건적난 평정 하니까 사령관급 장수들 싹쓸이 죽여 버렸죠
덕분에 왜구 토벌할 장수들이 부족했고 그 틈에 성장한 인물이 이성계죠
24/01/16 11:43
그렇죠. 이방실, 정세운.... 사실 전례를 찾아보면 무수히 많습니다.
뭐 이런 예는 잔다르크 안 구해줬다고 욕먹은 샤를 7세처럼 당시 군주 기준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했는데 공화정이 수립되고 민족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종종 생기는 일 같습니다.
24/01/16 11:22
조선로마설의 관점에서 검토하면 언제든지 방패에 올라타서 민속놀이(+ 그대가 바로 조선을 이 꼴로 만든 자인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죠.
24/01/17 16:01
선조뿐 아니라 조정대신중에는 류성룡빼고 이순신을 만난이가 없습니다.
(류성룡은 이순신 형의 친구) 이덕형도 이순신을 오해하다가 전란이 끝난뒤에 평가를 바꾸었다고 하죠
24/01/16 11:33
아무리 봐도 전사 안하셨으면 그대로 숙청당하셨을거 같긴 합니다
그대로 배끌고 올라가서 인천항 상륙했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단계네요 크크
24/01/16 11:33
수군이라 한계도 있고 선례가 없다지만
그 말은 결국 내가 최초의 선례가 된다라는 뜻도 될 수 있어서... 의심병 말기환자 입장에서 저랬을수도 있긴 하겠구나 싶네요 하지만 장군님은 그저 우국충정의 마음이셨는데ㅠㅠ
24/01/16 11:43
이순신 휘하 장수들 보면 현령급 지방관도 있습니다.
애초에 지방군과 지방행정이 엄격히 분리되던 것도 아니고, 군이 자체적으로 세금 걷어서 자체적으로 소비하던 시절... 임진왜란기에는 공납도 군량미 납부로 대체돼서 사실상 세금 노역 공납이라는 최중요 행정까지 전부 삼도수군통제사가 다 해먹는(실제로는 중앙에 올려보내기도 했지만), 한반도 남부 해안의 독립군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반란 경력이 있는' 장보고보다 더한 권력자가 이순신이죠.
24/01/16 11:48
개인적으로는 선조 의심병의 결정타가, 원균의 보고서가 아니었나 싶긴 합니다.
거의 독립국가에 준하게 돌아가는 군벌이, '왜군과 제대로 안싸우려고 한다'는 상황이 되버리면 의심병에 막타를 찍는거긴 하죠. 원균의 트롤링이 생각 이상으로 더 큰게 아니었나 싶어요.
24/01/16 12:29
전라도 지방을 꽉 잡고 있는 절대 군벌인데
왜군과는 안 싸우려 한다????? 제가 선조라도 백의종군 보냈을 거 같은..........덜덜덜
24/01/16 13:40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태창 켜서 충성심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파직 당시 신하들까지 선조에 동조했던 게 괜히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4/01/16 12:06
그럴만한 상황인건 맞죠. 당장 30년 뒤 인조 때 이괄이 어떤 짓을 했나 생각해보면 왕조시대 때 변방 군벌들은 상당히 신경쓰이는 존재들이 맞습니다.
거기다 이순신은 주변 백성들에게 인망도 좋았겠죠...
24/01/16 12:13
이괄건은 인조가 좀 억울한게 이괄이 한양에 있을 때 사고치는 거 인조가 다 무마해주고 북방에 보낼 때 최대한 지원해주고 이괄 아들 역모 문제로 대신들이 전부 뭐라할 때 유일하게 옹호한 게 인조였거든요. 그런데 역모 정황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아들만 한양으로 송환하라고 했건만 그대로 난을 일으켰으니.. 인조가 너무 순진했고 이괄을 너무 신뢰했죠.
24/01/16 12:16
글쎄요 일단 말씀하신 논점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고요. 더군다나 억울할건 없다고 봅니다. 아들을 송환하는 것 자체가 이괄 입장에선 도저히 그냥 두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아들이 역모 혐의로 송환당하는데 아버지가 무사할리가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까요?
24/01/16 13:05
인조는 광해군 배신이란 말이 좀 안 어울리는 게 인조입장에서 광해군은 철천지 원수입니다. 본인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이 광해군에서 비롯되고 집까지 빼앗기고 거기에 경희궁이 지어졌죠. 정치적인 부분을 빼고 인조 개인으로만 본다면 배신이라기보단 복수에 성공했다는 게 오히려 어울리고 솔직히 반정이후 살려둔 게 신기할 정도죠.
24/01/16 13:18
저는 이런 자료 볼때마다 전라좌수영의 주임원사는 누구였을지 궁금합니다 농사,토목,조선,병영관리,물자보급 등
군수장교나 주임원사가 엄청났을것으로 생각됩니다 크크
24/01/17 16:04
임진년에 운이 좋게도(?)
남해에 청어가 많이 잡혀서 그래서 한산수영의 수군들도 배띄워서 청어를 많이 잡았다고 합니다. 그청어로 식량으로도 쓰고 다른물자와 거래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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