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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9 21:07
정확하게는 능력주의의 대안.. 이라기보단 보완책에 가까운 물음이긴 할 것 같습니다. 분명 잘하는 사람이 보상을 더 받아야한다에 반대하진 않거든요. 다만… 뭐랄까요. 결과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좀 들더라구요. 그러니까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해야할까요.
22/10/09 21:14
그 안전장치가 복지 아닌가요? 특히 우리나라 교육이나 의료쪽은 가난한자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는 괜찮은편이라고 생각해요
22/10/09 21:18
복지라고 보실 수도 있는데 조금은 복지는 더 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서요. 물론 우리나라가 완전 복지까진 아니지만 계속해서 제도 정비를 해왔다고 생각하고 안전 장치가 평균 수준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책에 언급된 미국보다는 불평등이 덜하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누적된 시간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지점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문제가 아직 닥쳐오지 않았다지 생각해볼 지점은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22/10/09 21:28
언급하신 넓은 복지 완전 복지가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대안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임승차 인원이 많아질수록 나라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고요~ 결국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 논쟁과 같다고 봅니다.
22/10/09 21:34
넵 흐흐 복지에 대해서는 저도 조금 더 정의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요. 흐흐
결국 누군가 이끌어가고 복지를 위한 비용을 대긴 해야겠죠. 다시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이 드네요. 의견 교환 감사합니다.
22/10/10 05:05
능력을 다층화 하면 됩니다.
각 층위에서 별도로 경쟁하고 각 층위에서의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 되죠 상위층의가 더 많은 보상을 받겠지만 인접 층위간 격차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한국은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잠재적으로 서울대를 향해 경주를 시작하고 나이가 들면서 낙오자가 다음층위로 떨어지고 또 다음 층위로 떨어지고 그러합니다. 결국 최하위 층위는 모든 층위의 낙오를 경험한뒤에 비로서 도달하는 곳이죠 독일은 초등학교 4한년에 60~70%를 걸러넵니다. 30~40% 만 인문계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나머진 직업학교로 갑니다. 학부모들 난리날꺼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직업학교를 가도 열심히 하면 중산층 혹은 그 이상으로 살 수 있고 어처피 무리해서 인문계 보내도 무시무시한 낙제가 있어서 낙제되면 뒤늦게 직업학교로 다시 돌아가야합니다. 참고로 인문계 학생중 40%정도는 인문계를 졸업하지 못하고 실업계로 돌려 보냅니다.
22/10/09 21:12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을 보면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게 맞다"는 명제는 부정 안 하면서 "능력 없는 사람은 비참한 대우를 받아도 된다"라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서 말해서 별로 유의미한 얘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정작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능력이 없으면 죽어야 함"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는데 거의 의도적인 허수아비 치기랄까.
어떤 사회에서든 필요한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처우는 복지로서 별개의 방향에서 접근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 능력주의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하느라 그냥 핀트 자체가 안 맞는 경우가 더 많아요
22/10/09 21:15
음 말씀하신 부분도 일리가 있는 의견인 것 같습니다. 다만 분명 무한 경쟁을 성취에 따른 보상에 집중하는 능력주의가 조장하는 게 없지 않나라는 생각은 좀 들더라구요.
무한 경쟁이 분명 사다리를 빠르고 크게 쌓아 올리는 건 맞지만 사회적/문화적 번아웃이 올거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정서적 정체라고 해야할까요. 그 부분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는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2/10/09 21:36
사실 능력주의의 진짜 문제는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작합니다. 경쟁이 공정해야 능력주의가 유의미 해지는데 정작 능력주의 비판론자들을 보면 경쟁의 불공평함에 대해서 딱히 문제의식이 없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22/10/09 21:42
결국 경쟁의 공정성. 이라는게 담보하기도, 조성하기 힘든 개념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쉽지 않은 문제네요…
22/10/10 05:11
공정함의 정도가 결국 능력주의의 핵심이죠
근데 완벽한 공정을 이루려면 태어나서 모드 국가 탁아소로 보내져서 똑같은 가정환경과 똑같은 교육기회속에서 엄정한 시험을 통해 능력을 겨뤄야 진정한 기계적 공정이죠 빌게이츠 딸괴 극빈층집 딸이 수능을 같이 본다고 그게 공정일까는 생각해 봐야겠죠?
22/10/10 08:38
부자집 아들과 빈곤층 집 아들이 같이 수능을 보는 건 불공정 하다 그러다면 고지능자와 지적장애자는 공정한 경쟁이 안 된다면 지적장애자에게 할당을 줘서 명문대 자리에 끼워 넣어 줘야 할까요? 모두가 각자 다 다르게 타고나며 일생 동안 바꿀 여지도 없는 재능은 더더욱 불공정한 거 아닐까요?
그 논리로 끌고 가면 결국엔 경쟁이 없어야 한다는 결론밖에 안 나옵니다 정작 그 논리로 도입된 수시나 입학사정관제는 학력의 대물림을 더더욱 공고화 하는 수단밖에 되지 않았죠. 그런 준비를 빈곤층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대학의 돈벌이는 덤이고
22/10/10 09:08
전혀요 경쟁은 필요합니다.
다만 공정한 경쟁이라는건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원 책 제목처럼 그냥 공정하다는 착각일 뿐이죠 그러니 자신이 가진 위치를 [공정한 경쟁을 통한 당당한 트로피] 쯤으로 여기지 말라는 말이죠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건데 요즘 세대를 보면 공정한 경쟁을 거쳐서 얻은 것이니 남보다 우월한 지위를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쯤으로 생각하더군요 그러니 그들에겐 공정에 방점이 찍히는게 아니라 합당한 우월적 지위에 방점이 찍혀 있는 거죠. 국가 교육정책이 뭘하더라도 결국 각각 환경(서포팅)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해지기는 불가능하죠. 그러니 특권처럼 여기는 그 경쟁의 트로피도 좀 내려 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보면 공정은 공정하기 위해서 주장되는게 아니고 자기보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 위에 [공정]하게 군림하기 위해 공정을 부르짓는걸로 보입니다. 자기의 군림이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서 말이죠. 내가 그 경쟁에서 이긴건 내가 좀 더 똑똑해서 이거나 좀 더 노력했거나, 좀 더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거나, 버스 태워져서 왔거나 일뿐이거든요 수능에서 한번 이겼다고 좀 자랑스러워하고 우쭐할 순 있지만 그걸 계급화하는 요즘 행태는 좀 역겹네요.
22/10/10 09:16
상대방을 경쟁에서 이겨서 더 좋은 것을 얻어냈다고 자랑하는 게 왜 계급화라고 생각하시는 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까놓고 말하면 누군가가 자기 이렇게 잘났다고 자랑하니까 그냥 심사가 배배 꼬인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완전히 공정한 경쟁이라는 건 세상에 있을 수 없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보기에 공정할 수 있도록 그 경쟁의 장을 만드는 건 필수적입니다. 뭐 스스로가 성공한 것이 "이것은 나의 공이 아니라 나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 환경 덕이다"라고 겸손해 하는 거야 뭐 좋은 자세이겠다만은 "저놈이 성공한 건 쟤가 잘나서/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쟤 환경이 더 좋았을 뿐이야!"라고 남이 말하는 것도 좀 우스운 일 같습니다만. 아니면 그냥 대놓고 누가 버스 태워주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과는 무관하게 그저 남이 끌어주는 것이 절대적인 상황을 원하시는 건 아닐 거 같고. 그리고 사회 나와보면 명문대 졸업장을 넘어서는 또다른 경쟁이 펼쳐지지 그 대학 졸업장만으로 으스댈 수 없다는 거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어차피 그렇게 우쭐해봐야 그게 진짜 명문대 나왔는지 확인도 못 하고 그렇게 살아봐야 결국 본인만 피 보는 환경이 바로 능력주의적 경쟁일텐데 뭘 그렇게 열을 내시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22/10/10 10:13
핀트가 좀 안맞는거 같은데요
경쟁에 이기고 잘났다고 우쭐되고 자랑해도 되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그리고 좀더 나은 위치로 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데로 사회나가면 경쟁의 트로피 따위는 별 가치가 없죠 그리고 그게 가치없어지는 시점즈음해서 갖은게 트프로피 뿐인 사람들은 그 트로피에 집착합니다.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겁니다. 공정을 주장하는 자창 가장위대한 세대는 무엇을 위해 공정을 주장하는지 말이죠 역사적으로 그나마 가장 공정한 시대에 살면서 가장 불공정한거처럼 찌질거리는 그세대 말입니다. 제가 사회에서 본 그 세대의 공정은 다름아닌 계급화에요 사다리 걷어차기이자 자기 계층에 대한 강렬한 보호본능이죠 그들이 외치는 공정은 자기보다 하위계층이 자기계층으로 넘어오는 것이 불공정하다는거죠 그리고 자기보다 상위계층으로의 편입을 꿈꾸는. 그러니 공정이 아니라 계급화고 그 계급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거라는 착각 그리고 그 계급에 이르지 못한 하위계층은 노오력이 부족했으니 굴종을 받아들이라는 오만이죠
22/10/09 22:01
'능력이 없으면 죽어야함' 은 아니더라도 '니가 비참한 건 니탓임'은 점점 주류가 되어가고 있죠.
심지어는 현재 청년계층을 중심으로 같은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부의 불평등을 시정하자는 주장에 대해 '난 똑같은 패배자지만 적어도 니네들처럼 징징이는 아니야' 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구요 극우적이라면 극우적이고 시대의 흐름이라면 흐름일텐데, 그냥 지극히 개인적으로 전 이 명제가 싫습니다. 저런 생각이 상식인 세상에서 제 아이를 키우기도 싫구요. 그냥 좌파의 개인적인 취향이랄까요.
22/10/09 23:29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능력없으면 죽어야함이라고는 말 안하죠. 대신 "니가 그 처지인 건 니 탓임"이라고 하죠. 딱히 다른 얘기도 아닌데. 능력주의 비판론에 대한 비판을 하는 자들을 보면 그 얘기는 안하더라구요.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다고 하니 논의가 안되요.
22/10/10 00:48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건 돌려 말하면 성공하지 못한 자는 노력하지 않은 것이 되니까요.
22/10/10 08:40
당연히 그 얘기 안 하죠. 이미 능력주의의 범주에서 넘어간 다른 얘기를 능력주의 비판하겠답시고 어거지로 끼워넣은 거니까요. 능력주의 상에서 당연히 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더 대우하는 것이 당연한 거고 거기서 벗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는 능력주의에서 논할 내용이 아닙니다.
이건 복지와 같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여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방지해야 하는 것이지 그걸 능력주의 탓을 하니까 "어쩌라고"라는 말밖에 안 나오죠
22/10/09 21:16
나름 감명깊게 읽은 책이긴 한데,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미 상당히 재기되어왔다는 비판(그러니까 샌델의 저서가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저는 이 책으로 그나마 알게되었지만)도 있다고 알고있고,
결국 아쉬움은 ‘그래서 대안은?’에 대한 답이 아쉬울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책에서 몇 가지 제시가 되긴했지만, 그다지 현실적이라고 와닿지 않는달까 싶은 느낌이었네요. 그리고 책에서 제기하는 금융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pgr 내에서도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는게 일차적으로는 필요할 것 같고, 그 역할은 어느 정도하고 있지 않나 싶은 책입니다
22/10/09 21:19
이상주의적인 해결책은 좀 아쉽긴 했습니다. 금융권과 실물 경제의 문제는 물론 별개로 따지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음… 모르겠어요. 2008년의 금융위기는 말 그대로 금융이 실물 경제를 공격한 사례라고 생각해서 이젠 뭐가 더 큰 쪽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단계가 오고 있지 않나 싶어요.
22/10/09 21:28
능력주의의 정의부터가 조금씩 엇나가고 있다고 보는데
능력주의를 능력이 더 좋을수록 보답받아야 한다라고 정의한다면 현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부정 불가능입니다. 폰으로 게임하고 싶으면 아이폰 가라고 하지요. 이것부터가 아이폰의 성능적인 부분을 고평가하는건데 진짜 능력이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면 저런거 굳이 따지면 안되죠. 그런식으로 눈을 넓혀보면 능력이란게 개입 안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능력주의 비판에서 나오는 승자독식은 사실상 자본주의와 결합한 결과라고 보고 있고 그리고 부족하다는 소리를 할 수 있지만 예의 도태된 사람한테는 이미 복지제도는 작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다리 자체가 불편하다고요? 그럼 공산주의 밖에 없을껄요.
22/10/09 21:33
본질적으로 능력주의가 사다리를 조장하긴 하는 것 같고, 그 방식이 분명 성공을 거둔 지점도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능력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저나 책이나 조금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뭐 문제점이 없진 않겠지만, 능력있는 사람이 이득을 취한다. 는 명제에 적어도 저는 아예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글 솜씨가 딸려서 그런 부분에 조금은 애매하게 쓴거 같네요. 흐흐
22/10/09 21:36
사다리 자체가 불편한 것일수도 있으나 사다리가 사라지면 오히려 계급은 고착화될껄요.
지금도 상류층이 돈으로 스펙만들고 자리 나눠먹기하는 글 보면서 비난 댓글 잘만 달던데 그 사다리가 없어지면 그땐 내 일이 아니라고 체념할려나요? 인간 본성상 그럴 것 같진 않거든요.
22/10/09 21:42
욕구와 욕망은 오래된 인간의 동기 중 하나죠. 크크 사다리가 사라지면 훨씬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22/10/09 21:44
공산주의 사회도 엄연히 실적에 대한 어센티브로 지배되는 능력주의 사회였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재력은 무관하게 재능만 인정 받으면 나라에서 지원 받았으니 어쩌면 같은 시기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한 능력주의 사회였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능력주의에서 문제는 이미 있는 사람들끼리 사다리 걷어차기 하는 것이지 거기서 도태된 사람들이 죄다 죽어나간다는 무슨 자유방임주의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게 아닌데 정작 능력주의 비판론에서 전자로 얘기하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고 후자로만 끌고 가더군요. 근데 이게 핀트가 완전히 틀려먹은 접근 방식이라는 거죠. 후자의 경우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복지 제도가 이미 기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 제도를 어떻게 개량할 것이냐의 의논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22/10/09 21:42
한국처럼 무한경쟁, 그리고 부족한 사회안전망(기준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을 가진 사회에서 한번쯤 지금 세태에 경종을 울려주는 면에선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윗분께서는 능력주의 지지자들이 "능력 없으면 죽어라"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셨는데 제 경험은 좀 다르거든요.
젊은 층에서도 국평오라느니 지잡 고졸 백수라느니 하면서 사회 하류층에 대한 극심한 경멸을 보이는데, 오찬호씨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그러한 약자 멸시에는 강자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신은 그 약자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안도감, 그러나 언젠가 그 약자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나오는 거부반응에 있다고 보거든요. 우월감과 열등감은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능력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계량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결국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체계 자체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은데, 요즘은 이 책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능력과 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폄하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비록 오염되어 사용될지언정 공정이라는 가치 자체가 그른 것은 아니니까요.
22/10/09 21:45
개인적으로 트럼피즘이나 혹은 정치 담론은 최대한 건조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일종의 극단주의와 연결시켜서 쓰는 부분은 조금 맞나 아닌가 논리가 조금 알락말락 하더라구요. 흐흐
공정, 기회의 평등의 가치 자체는 틀리지 않죠. 분명 그게 사회적 동력이 되기도 하고.. 다만 그게 정확하게 수행되고 있느냐는 고민해볼 문제지만요.
22/10/09 21:50
개인적으론 능력주의든 복지든 전 지금이 이도저도 아닌 상태라고 봅니다. 능력주의를 통해 마냥 다 도태시키자니 결국에는 시장규모의 축소로 후진국 혹은 공멸엔딩이고 복지를 극대화하자니 공산주의 엔딩이 나오죠. 그렇다면 안전망에 있어 딱 필요한 부분만 이루어지도록 하고 복지를 구조조정하여 최소생계에 필요한 부분만 기본주택,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되 그 위에는 능력주의를 강화하여 최저임금같은것도 없애고 고용유연화 기계화 다 빡시게 해서 시장경쟁력도 늘리면서 시장규모도 유지시키면 좋을것같지만 이것도 이상주의적인거겠죠. 저는 이 안전망이라는것에 대해 기준을 확립하고 그거에 대한것만 기본지원이 되고 나머지 선별지원, 문화나 일회성 행사나 등등 간접적인 지원들은 감축 혹은 민영화하여 기본주택 및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복지제도의 재편이 있어야 된다고 보는데 현실적으로 이해관계가 굉장히 얽혀있을테니 불가능 하겠죠. 안전망만 확보된다면 능력주의를 극대화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게안되니 능력주의도 어중간한선에서 안전망도 어중간한선에서 그냥저냥 돌아가는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직접 지원을 받는 수급자계층도 어려운 삶을 살기야 하겠지만 어중간한 시스템상 여기 들지못하는 복지사각지대 분들이 아마 꽤 힘들고 자살을 해야되나 생각이 드는 일상을 살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22/10/09 21:55
저는 이상하게 댓글 달아주신 걸 읽으면서 최근에 유게랑 자게에 올라온 AI 글들이 생각나네요. 저는 아직 일을 찾고 있는 입장이라 잘 모르지만, 일이라는 게 진짜로 자아실현이 되는 건가, 일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사람에게 일이라는 걸 분리할 수 있다면, 쉽게 말해서 인간이 진짜 놀고 먹기만 해도 되는 사회가 된다면 인간이 행복해질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최근에 극단주의가 힘을 얻는 흐름을 책 상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완전 경쟁도, 완전 보장도 애매한 문제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게임 '바이오쇼크'에서도 잘 나왔지만, 자유지상주의가 옳진 않고, 그렇다고 사회가 모든 걸 해주는 세상도 소설 '멋진 신세계' 엔딩이 안난다는 보장이 없는 것 같아서.... 참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22/10/09 22:05
피터슨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 사람 영상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지금은 하위 20프로 지능의 사람에겐 어울리는 직업이 없는 시대라면 앞으론 그게 하위 50프로, 80프로, 99프로가 되는 시대가 오면 대체 어쩔 거냐는 말이었습니다.
22/10/09 22:15
인공지능이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흐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서 얼마나 걸릴까요. 그리고 그 동안의 사회적 불안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참 어려운 문제이면서도 생각해보면 그리 멀진 않은 미래같기도 합니다.
22/10/10 11:37
50 80 99가 할 일이 없는 시대를 못오게 하겠죠...
지금 하위20 정도는 복지라는 젖병 물려주고 버려도 되니까 그러는것 같습니다
22/10/10 12:10
전 그거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생산성이 절대적으로 밀리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지금 정치인들이 실업율 때문에 골머리 싸맬 이유가 전혀 없어요.
22/10/10 16:43
전 이런걸 떠올린게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게임은 눈에 보이는 데이터로 내가 이겼다, 졌다, 스펙이 올랐다, 떨어졌다 결과값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이를 서열화하여 능력주의의 극단을 보여주죠. 즉각적인 보상을 바로 받을수 있으며 남들과의 차이도 확실한 데이터로 느낄수 있죠. 하지만 게임은 현실과 다른게 있습니다. 거기서 못해서 뒤떨어진다고 해서 내가 게임이 재미없어서 접으려면 접었지 게임을 강제로 못하게 되는 환경이 되진 않거든요.. 현실사회는 100판안에 브론즈 못벗어나면 재가입 불가 강제 계삭 같은 분위기라면 게임은 내가 재미만 있다면 1000판브론즈를 해도 그냥 할수 있는게 크죠. 또 고티어들은 고티어대로 부심부리며 살고 전용혜택을 받을수도 있지요. 근데 그게 현실에 적용되려면 결국 안전망인데 참 쉽지않은 문제라고 봅니다.. 전 그래서 인공지능이 대체를 한다면 기계의 효율을 활용하여 높은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사회적 안전망 재원마련을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고 봅니다. 어차피 대다수가 놀고먹기만 하는 사회가 되진 않을거라 보고 의외로 단순노동, 각종 안내 및 시설운영 등 일선 서비스들은 보기엔 쉬워보여도 막상 대체가 힘든 분야가 많기에 시간을 쪼개서 파트타임으로 간간히 운동이다 생각하며 할수도 있고 그냥 놀수도 있고 일 자체를 자아실현으로 하는사람들도 있을테고 본인들 자유 선택에 맡길수 있기에 기술적 여건만 된다면 이루어지는게 다수에게 행복할거라 봅니다.
22/10/09 22:13
능력주의가 곧 자연의 법칙이고 진화인거죠. 사실상 지금 도태되어야할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는건 현재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자들이 필요해서 살려두기 때문이나 다름없습니다.
22/10/10 06:31
자연선택이 일어날땐 본인자체의 능력 보다 그 환경이 중요하니깐요. 뭐 그런곳에서 태어난것도 넓은 의미에선 생존능력중 하나라고 봐야죠..? 풍요로운 곳에서 운좋게 태어난 생명들이 번창하고 척박한곳에서 태어나면 힘들겠죠.
22/10/09 22:18
저는 능력주의란게, 인터넷에서 오가는 말처럼 쉽게 구분짓기가 잘 안되더군요.
마찬가지로 운빨인 유전자빨(조금 더 확대해보면 유전자의 조합빨)이 부모의 재력보다 더 정의로운 판단기준인가, 반대로 문제해결에 있어서 개인의 지식, 우수한 유전자보다 부모의 인맥이나 재력이 더 도움되는 경우는 어떨것인가, 공정주의에서 오는 공정함의 폭력(공정한 경쟁에서 이겼으니 나는 너를 무한정으로 팰 자격이 있고, 너는 공정한 경쟁에서 패배했으니 응당 댓가를 받아야한다)은 정당한가, 반대로 무능한 누군가가 능력 밖의 역할을 맡아 나머지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경우는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등등... 아무튼간에 사회 구성원 다수가 '애매하게, 혹은 확실한거 아닌거 같다 싶은 상태로 태어나느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라는데에 많이들 동의하는거 보면, 적어도 지금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관념들은 절대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오히려 누구보다 빨리 불편한 진실을 눈치채고 개체수를 줄이고 있거나...
22/10/09 22:22
참 애매-한 문제다 보니 이상주의적 아이디어만 제시했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특히나 공정함의 폭력에 대해서는 윗 댓글에도 이야기하신 분들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그런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
어찌보면 이미 지나가고 많이 얘기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만, 이제라도 (적어도 저는!) 알게 되서 괜찮은 책 같았습니다. 흐흐;
22/10/09 22:47
능력주의가 완벽한 정책은 절대로 아니지만
능력주의를 대체한답시고 나온 정책들이 능력주의 이상의 폐해를 보이고,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그 정책을 도입한 자들의 사욕을 채우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에(애초에 그럴 의도로 뉴 정책을 도입한거죠) 능력주의가 아직까진 메인이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다 결국 능력주의로 회귀한 결과가 된거죠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아직까지 세계의 메인스트림으로 유지되는 이유랑도 비슷하네요
22/10/09 23:11
책 내용 중 학벌에 대한 얘기에서 나아간 제 생각은 우리나라는 교육분야에서 절대 능력주의,자유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센델이 다룬 인종별 쿼터제 등등은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니 빼더라도 능력주의에 대한 신화는 크면서 능력주의에 대한 착각은 커요. 기업과 노동자의 개인적 [선택]을 존중하고 국가는 빠지라는 입장의 사람들마저도 (수정: 이런 입장의 사람들이 능력주의 신화에 가장 긍정적이죠) [대학의 선택권을 절대 존중하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정시로 90%,100% 맞춰라] 라는 식의 주장을 많이 합니다. (오히려 반대입장 사람들이 대학의 선발자율권 주장을 많이 합니다) 제 생각에 이 모순의 원인은 대학을 선호하는 인재상을 고르고 키우는 교육주체가 아니라 일종의 전직 퀘스트 미션으로 보는 겁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큰 규모의 역사깊은 대학도 정시라는 퀘스트가 아니면 인재를 못 뽑는다는 식의 사고를 만들고요. 그 결과 능력의 복잡함과 평가의 어려움, 사회문화적 배경의 다양함은 고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같은 퀘스트를 내면 좋다라는 결론에 다다르죠. 결국 가장 능력주의, 자유주의적 경제를 따른다는 사람들이 가장 일괄적, 통제적인 방식을 선호하게 되고요.
22/10/09 23:16
음. 생각해볼만한 문제 같네요. 일종의 산업 역군 양성소로서 우리나라는 대학을 하나의 필수적 관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높은 진학율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22/10/10 12:13
과거제와 짬뽕된 21세기 입신양명주의 아닌가 하는 말들도 있더군요.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처럼 사람을 미친듯이 쥐어짜내고 매년 실적 하위 10프로를 강제로 해고하는 식의 능력주의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대신 대입/공채/고시 등의 관문에서 한번 합격만 하면 그 이후로는 탄탄대로를 걷길 바란다는 거죠. 해자를 넘어 성에 당도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한번 해자를 넘고 나면 그때부턴 성 안에서 쫓겨날 걱정따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입니다.
22/10/09 23:28
본문에 언급된 마이클 조던의 예에서 보듯 한 사람의 성공에는 그 사회의 조건과 그 사회가 제공하는 여러 제반사항이 또한 상당부분 공헌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누진세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가 나오지 않나 싶어요.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또한 사회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으니, 사회도 그 성공에 대해 일정한 몫을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랄까요.
센델의 다른 책은 보았지만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본문에서 자연귀족정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 라는 책 생각이 났습니다. 마넹은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는 선거는 탁월한 자를 선출하는 자연귀족정적 성격이 있다는 이해가 일반적이었다고 이야기하고, 근대 민주정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선거가 새롭게 재해석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거든요. 아직 안읽어보셨다면 꽤 재미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의 논의를 결합하면 근대 민주주의와 능력주의가 모두 자연귀족정이 되는 셈이려나요.
22/10/09 23:35
책 추천 감사합니다.
사회가 성공에 대해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문제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댓글 다신 거에 동의하지만 분명 신체 능력이든 지능이든 노력이든 아니면 예술적 능력까지 어느 정도는 통용되는 능력이라는 게 있을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댓글 읽다가 드는 생각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능력의 개화, 성장, 보상에 사회가 적절한 비용을 청구해야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근대 민주정은 솔직히 잘 몰라서.. 나중에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크크
22/10/10 01:43
앗 옙 물론 노력이든 선천적인 것이든 어느 정도 통용되는 능력이라는 것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개인의 성공이 모두 개인의 노력 혹은 능력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사회적 지분도 있다, 즉 '둘 다 있다' 랄까요.
22/10/09 23:33
책 제목때문에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를 부정한 것 처럼 오인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전부터 샌델 교수의 논조는 한결같이 "공공선"입니다. 언급하신 책에서도 능력주의를 타파하자는 결론이 아니라, 능력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약자들에게도 눈을 돌리자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대체 대안이 뭐냐는 식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납득은 됩니다.
능력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건 우리가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이상 바꿀 수도 없고, 바뀌는게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실패한 사람들이 단순히 그들이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태되는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건 위험하죠.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게 이 책의 가치이고,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사회 풍토에 약간의 경종을 울리는 정도라고 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뭐든지 극단적이어서 좋을 건 없죠.
22/10/09 23:37
제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죠. 흐흐
다만 대안이라는게 두루뭉술하게 표현되는 게 아쉽다가도 그럴 수 밖에 없나? 싶은 생각은 들더라구요. 위 댓글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최근 도태된 사람들에 대한 비난? 비판?은 강화되는 것 같아 그건 좀 걱정입니다. 물론 온라인에 비해 오프라인에서 표출되진 않지만.. 폭발을 기다리는 화산 같다고 해야할까요.
22/10/09 23:44
이게 웃긴게 그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태된 사람보고 도태된 이유는 니탓이라는거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은 진짜 원하는게 뭔가 싶더라고요.
그냥 능력주의 비판을 빙자해서 상대방을 까내리는 게 제일 주된 목표가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어쩄든 능력주의도 새로운 사상이 나올떄까진 자본주의 마냥 계속 수정, 보완해나가는게 답인 것 같습니다.
22/10/09 23:50
저도 센델 교수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크크
사실 몇년전, 아니 얼마전까지만해도 약간 능력주의뽕이 차있었는데 요새는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크크크 능력에 따라 조롱과 자학이 주가되는 사회보단 좀 더 여유가 있고 겸손하고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그 능력이란게 상당수가 행운이 작용한것이고 그리고 지금은 제가 성공했어도 또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변수로 어느순간 고꾸라질수도 있으니깐요 도태, 누칼협, 꼬우면~ 등등 이런 날선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모래로 쌓은 성 위에서 자신의 성을 자랑하는것 같아 아찔합니다. 경쟁을 할땐 하더라도 승자도 오만하지 않고 패자도 너무 주눅들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근데 저만해도 pgr 자게에 단 댓글들보면 한창 경쟁만능주의 뽕에 차있을때 단 댓글들이 많아서 좀 머쓱하긴하네요 크크
22/10/09 23:53
뭐 사회에서 필요한걸 능력이라 할 수 있을테니...(뭐 프로그래밍 능력이 중세로 가면 쓸모 없고 기사들 칼질이 현대에 오면 취미이상의 쓸모가 없는거같은...)
필요를 인정받아 그 걸로 성공하여 그거에 대해 대가를 받는게 당연한거라면 그렇다면 사회에서 필요를 인정받지 못해 내쳐진 것이 실패라고 봐야할것이고 이걸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퉁치지는 말아야한다 그런걸로 봐야할려나...
22/10/09 23:56
책의 내용은 그 능력이라는 게 부모의 재산 조건을 비롯해서 다양한 불평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고 그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게 실패감과 열등감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능력주의가 작동한다… 정도로 요약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도태나 능력이 쓰이지 못하는 경우에 개인에게 실패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형태로 작동하는게 문제 같아요. 그 점에 대해서 써야하는데 조금 핀트가 엇나갔나 싶기도 하네요.
22/10/09 23:55
개인적으로 능력주의 비판은 '대안 찾기 귀찮아도 열심히 찾아야지 능력주의 합리적이라고 이걸로 대강 퉁치면 안된다' 라고 해석하긴 합니다.
22/10/09 23:57
능력주의의 대전제를 부정하기는 어렵죠. 저도 능력주의의 대전제에는 공감하는데 그 감시나 사회적 합의는 계속해서 이뤄져야한다는 생각는 들더라구요.
22/10/10 00:54
한 줄 '일침'으로 능력주의에 대한 일방적 주장을 검증된 진리인 양 결론만 던지는 일부 댓글들의 태도는 참 씁쓸하네요. 나름 자신의 경험을 버무린 본문 글이나, 아니면 그 근거가 된 책(텍스트)에 대한 존중은 볼 수조차 없어요.
다른 걸 떠나서 능력주의 원리주의적 주장[만]으로는 동아리조차 제대로 못 굴립니다. 사회 경제 단위로 가면 더 복잡하죠. 초저성장 사회에서 나눠먹을 파이가 없을 때 능력주의 승자독식으로 사회 불안 없이 지탱할 수 있을까요? AI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업계를 쓸어버릴 때, 자본을 쥔 사람들은 돈을 쓸어 담고 쓸모없는 기능에 수 십 년 투자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군말없이 인생의 패배자가 되면 되는 걸까요? 당장 우리들조차 40년 뒤, 60년 뒤 늙고 쇠했을 때 태도가 다를 겁니다. 인생의 불운은 언제 누구에게 망치처럼 내려쳐 질 지 모르죠. 우리는 운이 좋더라도 자식세대는 과연 어떨까요? 그럴 때 능력주의 말고 롤스식 무지의 베일, 최소한의 인간 삶의 보장, 능력이 아닌 노력에 대한 보상.. 이런 내용들이 안 떠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나약함을 알기에 능력주의 이상의 포용적인 시스템을 꿈꾸고, 그 근거는 충분히 마련되어있다고 보는걸요.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인정, 사회 운영의 복잡함, 대화에서 맥락과 성의에 대한 존중.... 이런 고려가 없는 사유들은 현실세계에서 나름의 힘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는 공허함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허한 사유는 공허한 문제해결을 부를 것이구요.
22/10/10 01:13
하하하 저는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능력주의, 아니 정확하게는 성과주의는 조심스레 다뤄야하는 성격의 것임을 댓글을 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숫자와 결과만으로 돌릴 수 있는건 시뮬레이션이지 현실은 아닐테니까요. 물론 성과에 대한 보상 없는, 상승 욕구 없는 상황도 긍정적이진 않겠지만요. 결국 그 중간에서 성과와 노력을 적절히 섞어 보상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공선에 대한 지향이 필요함에 대한 책이 아닐까 싶어요. 좀 오래된 논의라는 점은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효하다는 건 아직까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겠죠.
22/10/10 01:33
다양함이 인류의 강함이긴 한데 저는 도태되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뭐 진화든 뭐든 적자생존의 원칙은 이어지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우리가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게 정말 적절한 생존의 방식이기에 살아남는 건지 혹은 우리의 자의적인 판단일 뿐인지는 고민해봐야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 적자생존의 조건도 과연 공정한 게 맞는지 살펴봐야하고…
그런 식의 물음이 책을 읽으면서, 댓글을 나누면서 든 생각이었어요. 저는.
22/10/10 01:58
가령 저는 인류가 일부일처제와 매우 높은 혼인율을 유지하면서 더 이상 도태로 인한 진화가 멈춘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그렇게 사화안정을 도모하면서 인류가 더욱 진보하고 생존율을 높인 거 아닌가 싶어요.
쓸모없다면서 장애인들을 마구 죽이던 나치는 결국 멸망해서 진화론적으로 실패했듯, 지금 우리가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장기적으론 인류를 진화시키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령 인류에게 도움이 안 되면 어떤가요? 대한민국을 위해서 군대 10년씩 다녀오고 전역하면 숨만 쉬면서 기업을 위해 갈려나가라고 하면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22/10/10 02:23
개인적으로는 음 센델 교수가 능력주의에 대해 말하는 건 가끔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는 게,
센델 교수의 말이 대중한테 먹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이 하버드 대학교 교수라는 거죠. 저서들을 읽을 때마다 읽을 때는 묘하게 빠져들다가도 제가 공감이 안 되서 그런지는 몰라도 묘하게 드는 생각이 있는데, 제시하는 주제의 시작은 정말 좋은데, 좋은 자리 있고 평생 보전된 곳에 있는 속편한 학자의 이론 놀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현실적인 의미로 발전이 가능하냐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괜찮다면 최소 행정학이나 실전적인 학문을 하는 교수랑 협업을 해서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주면 어떨까 싶은..
22/10/10 02:35
흐흐 묘한 부분이긴 하죠. 결국 영향력을 지닌 이유가 그러한 하버드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그 현실적, 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아쉬울 수는 있지만 결국 도덕론에 대한 부분이고 위쪽의 댓글에서 말씀하신것 처럼 ‘공공선’에 대한 물음, 화두를 제시하는 거 만으로도 나름의 효용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책 결정은 훨씬 복잡하고 애매한 문제들이 많기에 반영될 수는 없지만요. 공공선이라는 개념이 철학쪽에 오랫동안 발전된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일종의 인문-철학 쪽 접근이라고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22/10/10 02:48
좀 뭐랄까 진짜 기분 나쁘게 후려치면 당신은 당신이 대접받을 만 하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실질적으로 말하는 약자들에 대한 보호에 대하여 실질적인 접근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는 거죠. 제안을 해주는 건 좋은데 뭐랄까... 이론적으로나마 좀 서포트가 되는 방식의 제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십년 간 이런 담론을 이끌어내준 사람이 한번 더 나아가주면 더 큰 반향과 좋은 울림이 있을 거 같아요. 이론적인 거로만 따지면 어... 이 분하고는 좀 결이 다른 조던 피터슨도 좋은 소리는 많이 듣는데, 뭐랄까 그 때 들으면서 기분 좋고 말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요..
22/10/10 02:54
그래서 좌파(사회주의자)에게는 너무 [리버럴]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문제의식은 있는데 해결에는 미온적이다는 식?
한편 센델 교수 본인은 https://www.youtube.com/watch?v=vjtTUfAi54s 차이나는 인터뷰 방송에서 자기 아들 교육들에 대해 경쟁 대신 배움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게 힘썼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저서에도 그렇고 교육을 많이 언급하는 걸 보면 교육에서의 능력주의 보완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22/10/10 04:01
샌델 교수는 기본적으로 철학자고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는듯 보입니다. 간혹 자신의 범주를 벗어난 논지를 펴다가 흑화(?)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하는 성향이 강하죠. 그 대척점에 리차드 도킨스 같은 학자도 있는거고요.
적어도 어떤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는 엄청 조심스러운 면이 있기는 합니다. 어찌보면 현명하다고 할 수도 있는게, 명성이 대단한 학자다 보니, 자신의 발언의 무게감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전 이런 면이 괜찮게 보입니다. 정치, 경제, 법률 등에 대한 논거는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22/10/10 11:20
자칭 능력주의자들은 능력주의라는 사상의 의미를 사람들의 능력을 육성하고 숨겨져 있던 능력을 찾아내는 것에 쓰지않고 타인의 고난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오로지 개개인의 선택으로 돌리기 위해 능력주의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불관용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거죠.
능력주의라는 룰은, 그 세계관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실은,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원인과 결과, 선과 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재능있고 노력하기에 앞서가며 사회에 기여하는 개인과 무능하고 게으르기에 뒤쳐져서 사회에 기생하는 개인으로 나뉩니다. 모든 사회적 계급과 층위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붙습니다. 그렇기에 자신과 주변의외의 다른 누군가가 어떤 고통을 겪건 간에 그건 다른 세상, 다른 개인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주어지는건 금방 환기되는 관심 뿐이죠. 따라서 이 조건하에서 다른 사람에게 배려적이거나 유화적인 주장들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미 모든 계급과 층위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다른 개인이 사회적으로 뭔가 더 받아가면 내가 손해를 볼 가능성 쪽을 우려하는거죠. 반면 진짜 현실은 뚝 잘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면을 눈앞에 들이밀면서 똑바로 보라고, 이 잔인함을 외면하지 말라고, 바로 이게 현실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의 불편함을 유발합니다. 현실을 고치고 싶으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하고, 도발적으로 내 멱살을 잡기도 하죠. 나를 탓하기도 하고, 나에게 애걸하기도 하고, 나를 비웃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인간의 약한 점과 악한 점과 장한 점과 애잔한 점을 보여줍니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밉기도 한 인간의 레이어를 일일이 벗겨내죠. 인간의 아름다움을 찾기도 하고, 더러움을 찾기도 합니다. 너무나 복잡합니다. 도저히 한두가지의 잣대로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게됩니다. 능력주의, 뭐 좋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치죠. 다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공공선도 같이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배려하에서 역으로 능력주의가 더욱 좋은 사상으로 갈고 다듬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합니다.
22/10/10 13:57
능력주의는 분명 장점도 있고, 지금까지의 방식으로써 제 기능을 해왔다고 생각을 하지만... 넵 말씀하신대로 분명 그 상황에서 비인간적이라고 해야할까요, 혹은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방식이기도 했다는 생각은 좀 들었습니다. 인간은 물론 적절한 경쟁과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제가 지금 듣고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of the Wall이 아닌 셈이지요. 그렇기에 배려, 이해, 공공선이 꼭 필요하고 사람들이 생각해야하는 부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길고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22/10/10 12:19
능력주의의 문제가 불거진건, '능력으로서 계층을 이동할수 있는가' 에 대한 답이 더이상 명쾌하게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기저에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마저 계층별로 차등이 되어있다는거죠. 능력주의 사회에서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건 바로 불공정을 의미하고요. 만약 능력을 잃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회에 설곳이 좁아지겠죠. 그들 역시 기회에서 불공정을 겪는 것입니다. 그 차등과 갭이 얼마가 적당한지 - 현실적으로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기회의 불공정을 어떻게 해결할까에 대한 답은 저도 잘 모르겠숩니다. 으레 권력자들은 기회를 상속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2/10/10 13:58
사람의 욕심이라고 해야할까요. 저희 부모님이나 혹은 그 윗세대가 그랬듯이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고픈, 우리 자식들은 이런 고생 안시키겠다는 다짐이 분명 사회와 개인에게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어디까지 허용가능한 범위인지,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공정하게 유지할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이 드네요.
22/10/10 16:17
한국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이후 출판사들이 온갖 책들 이름 뒤에 '~라는 착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내놓게 만든, 개인적으로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유행을 불러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위에 많은 분들도 지적했지만 샌델의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러니 능력주의를 갈아엎자!'란 레볼루숑스러운 선동이 아니죠. '현재' 능력주의가 작동하는 시스템 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너의 성공은 오로지 너의 능력이 객관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임'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호소에 가깝습니다. 능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규칙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어떤 이유에서든 그 시스템의 규칙이나 너의 출발선이 달랐다면, 너는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능력주의의 수혜자들이 이를 인정했다면 그들은 자신과 다른 계층과 더 많이 소통하고 토론하거나 최소한 인식하는, 샌델이 말하는 공동선을 이루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로 점점 계층간의 이동을 힘들게 만들고 다른 계층과 자신들을 분리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집단의 행동이 많은 부분 능력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크게는 상속세에 대한 저항이 있을 것이고, 작게는 점점 요새화되어가는 (비싼) 신축 아파트 단지들의 트랜드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들의 행동은 능력주의의 본질 - 순수하게 능력만으로 평가한다면 나는 어떻게든 성공할 수 있다 - 과는 전혀 다른, 모순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주의가 나쁜 이유는 능력주의라는 체계가 나쁜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2/10/10 17:09
흐흐. 제가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겠죠.
결국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출발 지점의 격차가 분명 존재함을 인식하는 게 첫 째 단계라는 데 동의합니다. 결국 그걸 인정하고서부터 이야기가 논의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22/10/11 03:31
Meritocracy의 본질은 '능력 있는 사람을 위로 올리자'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능력자이니 이들에게 성공의 과실을 몰아주자'에 가까운 것 아니었나요.
22/10/11 06:16
그 두 가지가 혼재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하지 않았지만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직업적 귀천의식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고, 직업에 대해서 '성공했다'라는 기준이 좀 있는 것 같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지나가기도 하구요.
22/10/11 07:21
그래서 제가 위에서 언급했죠. [정의부터가 조금씩 엇나가고 있다]고
애당초 능력주의, 아니 능력이란 개념 자체가 사람마다 다를테니까요. 센델의 Meritocracy는 공정한 출발 자체가 없고 환경, 운 등의 요소로 능력이 정해질 수 있는데 그걸로 강자의 약자 멸시, 약자의 패배감 등으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니 뭐니 하는건데 근데 진짜 약자 멸시가 Meritocracy의 문제인가요? Meritocracy 인지 [자기만의] 능력주의인지는 모르겠는데 본글 댓글에서만 찾아봐도 [또 다른 나만의] 능력주의 옹호한다고 상대를 배려도 없는 인간이니, 상대를 안보는 인간이라니, 그걸 넘어서서 세대 갈라치기를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센델이 언급하는 Meritocracy 문제는 애당초 [Meritocracy]를 극복해봤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건 잘 보이는군요. 아님 저 사람들이 역으로 Meritocracy에 매몰된 사람이거나요. [센델]의 능력주의 비판만을 해보자면 진짜로 저게 Meritocracy 문제인지를 모르겠단거죠. 아무리 봐도 이 문제 저 문제가 혼합되어 있는걸로 밖에 안 보이는데 예로 능력주의로 인한 부의 세습화 이야기가 있던데 이재용이 능력이 대한민국 1위라서 국내 대기업 1위 삼성 회장하고 있는게 아니죠. 물론 회장할만큼의 노력은 했겠지만 우연히 이건희의 아들이었을뿐이니까요. 근데 이걸 가지고 아무도 이재용이 능력이 좋아서 삼성 회장한단 소리는 안하죠.
22/10/11 07:51
능력주의의 대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긴 합니다. 다만 능력주의의 기저에 깔린 것들이 정말 능력으로 얻어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거고, 그에 대해서는 말씀 하신대로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는 생각은 저도 드네요.
사회적으로 내가 저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위의 댓글타래에서도 나왔듯이 어쩌면 게임에서 보듯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이, 그런 사회가 약해지길, 그런 인식이 더이상 퍼지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겠죠. 해결책은… 모르겠지만요.
22/10/11 22:32
능력주의는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이 같은 담론이 득세하여 국내에서도 사회자유주의에 대한 수요는 점차 확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험적 해체보다는 보완이 훨씬 용이한지라..
영화 기생충을 관람한 외국인들의 반응 중 하나는 초격차로 치닫는 부조리함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 구성원의 인풋 대비 아웃풋 전반이 기하급수적으로 괴리되는 현재가 초래할, 지속 불가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일각의 초국가적 공감대일 겁니다. 그간의 시대정신은 가공할 만큼 개인들을 국가 고시 및 자유 시장이라는 험지로 내몰았으면서, 정작 낙오된 대다수를 두고는 기이할 정도로 박대해 왔지요. 지금도 노년층 가운데는 고 정주영 회장님에 당신을 투사하시는 분들도 은근 뵙게 되고요. 그런 점에서 사회 관성의 옆구리를 강타한 시의적절한 담론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요근래의 누칼협조차 누군가에 대한 칼이긴 하죠...
22/10/11 22:39
누칼협. 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은 아니긴 한데 어느 정도 본인의 무한 책임으로 책임을 교묘하게 돌리는 문장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선택, 개인적 책임의 문제는 어디까지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요즘 그러한 개인의 선택, 기생충을 보면서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내려오는 가족의 비극’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그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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