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5/07 22:52:28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2724197200
Subject [일반] 영화 <그녀> 잡담 - 스포일러까지

저에게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솔직히 답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이 영화도 좋았고, 저 영화도 좋았고. 기본적으로 제가 줏대라는게 참 많이도 부족한 사람이고, 왠만큼 '망가진' 영화가 아니라면 대체로 괜찮게 봤다.로 귀결되는 류의 사람이라서 이런 저런 영화, 혹은 대충 좋아하는 감독 이름 몇몇을 대고는 대충 넘어가는 질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면 아, 이때는 이런 영화가 좋았지, 저런 영화도 괜찮았지 하고 생각이 나고 마는 정도네요.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영화관에서, 를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돈은 꽤... 들지만, 개인적으로 2시간 가까운 시간을 강제로 앉혀서, 어두운 곳에서, 몰입하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관을 선호합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솔직히 말해 요즘 집중력이 계속 요즘의 주가처럼 폭락하기 때문에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앉아서 보는 경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렇지만, 맨 처음 나왔던 질문을 약간만 바꿔서 이야기하면 이 영화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장 감정적으로 인상적인 영화가 무슨 영화였나요?'라고 질문을 바꾸면,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녀>요.'

그나마 비슷하게 공감하고 즐겁게 본 영화라고 할만한 <틱, 틱... 붐!>은 극장에서 보기라도 했지, <그녀>는 15인치 노트북으로 봤는데도 그래요.


<그녀>를 왜 좋아하느냐, 첫 번째로 아이디어를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sf-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고 이 아이디어에 대해서 꽤 진지해요. 그러니까 '실체가 있는 인간'과 '실체가 없는 AI'간의 로맨스에서 가능한 의문점을 던지기도 하고, 그 아이디어를 꽤 진지하게 탐구하고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두 번째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분위기입니다. LA인척 하는 (누가봐도) 상하이에서 촬영한 이 영화 덕분에 저는 상하이를 한번은 가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톤은 굉장히 따뜻하고 뽀송뽀송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로맨스 영화스러워요.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나가는 순간의 영화는 매우 따뜻한 화면을 그려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굉장히 차갑고 적막해지기도 합니다. 이 분위기의 톤을 정말 잘 조절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영화의 이야기에 관한 겁니다. 주인공은 연애 편지를 대필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고 적막하고 차가운 도시 생활에 적응한 차가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만다는 AI로서('써'가 아니라 '서'로 쓰고 싶네요.)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만다는 주인공을 떠나고, 주인공은 전 부인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요.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서.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결국은 어느 애어른, 혹은 어른이의 성장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감정을 대필하던, 그 감정 뒤에서 머무르던 어느 사람이 다른 '객체'를 받아들이고, 결국 한 계단을 더 올라가는 이야기요. 이 영화는 어떤 답을 주거나 혹은 사랑은 어떤 것이다. 라는 류의 교훈을 찾기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영화 상에 등장하는 두 커플은 모두 헤어지고, 한 사람은 소통의 벽을 느끼고 결국 종교에 귀의하게 되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다른 로맨스 영화들과 차별화가 된다고 생각해요. 정확하게는 로맨스의 탈을 쓴, 어른의 성장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제가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가장 차가운 로맨스, 가장 따뜻한 sf'


P.S. 어떤 영화는 누군가의 얼굴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저에게 <그녀>는 딱 그런 류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녀>하면 포스터에도 나오는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네요.

-------------
절대 공부하기 싫어서 쓴 글 아닙니다. 진짜라니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5/07 23:29
수정 아이콘
보면서 어떻게 끝날까 참 궁금했던 영화였죠.
AI도 결국 자기가 원하는 理想을 찾아가는 걸 보고... 그냥 연애물이었구나......
'이터널 션샤인', '500일의 썸머'와 함께 마음의 상처 치유 영화...
aDayInTheLife
22/05/07 23:30
수정 아이콘
저는 좀 결이 다르다고 봐요. 두 영화는 어떻게 사랑을 해야하는지.에 관한 영화라면 그녀는 오히려 이별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덕분에 더 쓸쓸한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무한도전의삶
22/05/08 10:55
수정 아이콘
성장영화입니다.
aDayInTheLife
22/05/08 12:15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6078 [일반] [팝송] 오늘의 음악 "마이클 잭슨(1)" [13] 김치찌개5833 22/07/23 5833 2
96066 [일반] 웹소설 상세리뷰 <폭염의 용제> / 스포주의!! [20] 가브라멜렉6869 22/07/20 6869 1
95949 [일반] 책 후기 -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2] aDayInTheLife4987 22/07/06 4987 2
95896 [일반] 누리호 성공 이후... 항우연 연구직의 푸념 [152] 유정16091 22/06/28 16091 118
95893 [일반]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대형교회편 [44] SAS Tony Parker 8834 22/06/28 8834 3
95886 [일반] [웹소설] 지난 3년간 읽은 모든 웹소설 리뷰 [76] 잠잘까16902 22/06/28 16902 25
95809 [일반] <버즈 라이트이어> - Hype보단 아쉬운.(최대한 노스포) [22] aDayInTheLife5252 22/06/15 5252 0
95789 [일반] 요즘 본 영화 후기 ​ [8] 그때가언제라도6666 22/06/10 6666 0
95747 [일반] 웹소설 후기 - 킬 더 드래곤 - ( 약간의 스포주의! ) [20] 가브라멜렉6504 22/06/04 6504 2
95565 [일반] 영화 <그녀> 잡담 - 스포일러까지 [4] aDayInTheLife4485 22/05/07 4485 0
95527 [일반] 책 후기 - <놀이터는 24시> aDayInTheLife4462 22/05/01 4462 2
95457 [일반] (스크롤 압박 주의) 이효리 헌정사 (부제 : 어쩌다보니 '서울 체크인' 감상평 쓰다가...) [73] 마음속의빛24803 22/04/19 24803 25
95360 [일반] 봉준호가 선택한 소설 [미키 7] [9] 우주전쟁6331 22/04/03 6331 2
95298 [일반] 선우휘 단편집 독후감: 원조 K-갈등, K-폭력, 그리고 K-과거 [17] Farce8940 22/03/22 8940 18
95295 [일반] 꼭 봐야할 만화책 추천 15선(2) [15] 로각좁11082 22/03/21 11082 12
95291 [일반] INTP가 추천하는 만화 3편 [8] 드로우광탈맨7807 22/03/21 7807 2
95273 [일반] 밀알못이 파악한 ' 전차 무용론 ' 의 무용함 . [61] 아스라이12235 22/03/17 12235 22
95173 [일반] 한국 sf??? 철수를 구하시오 소감 [24] 時雨10928 22/03/03 10928 6
95107 [일반] <나이트메어 앨리> - 한 겨울밤의 악몽(약스포) [4] aDayInTheLife5259 22/02/24 5259 2
95085 [일반] "욥기": 이해할 수 없지만 충분히 우리에게 자비로운 우주 [131] Farce13219 22/02/21 13219 53
95080 [일반] [성경이야기]괴짜 지도자 갈렙 [22] BK_Zju10614 22/02/21 10614 33
95075 [일반] 도서리뷰 -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46] 雲庭 꿈꾸는구보9383 22/02/19 9383 23
95073 [일반]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 특별기획 - 배캠이 사랑한 음악 100(3) [11] 김치찌개7312 22/02/19 7312 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