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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1 23:15:13
Name 프뤼륑뤼륑
Subject [일반] 죽음이 무겁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1년 정도 전에 한 여자를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Bdsm적인 페티쉬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과거의 성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때와 유사한 상황을 재현하되, 자신의 몸을 무기로 그 상황의 정서적 지배권을 주도하여 트라우마를 벗어나고자 bdsm적인 행위에 몰입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일본 야동이나 망가 보다보니 꼴려서 그런 관계를 추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그녀는 잘 맞았습니다. 성적인 면에서도 그러했고, 기호나 관심사, 가치관도 잘 맞았습니다. 저는 그녀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제가 아주 약간 더 성숙했습니다. 그녀는 절 잘 따랐고, 그녀와 전 아주 빠르게 서로의 모든 밑천을 까보이며 가까워졌습니다.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첫 연애가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된, 위계에 의한 성착취였던 것도 한 몫 했겠지만, 그보다도 그녀의 가정환경이 더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부모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윤리적 정당성은 아주 중히 여기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모두 현지인급으로 구사하는 어학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대학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습니다. 월급이 200에 약간 못미치나, 주말 근무는 반드시 참석해야하는 직장이었습니다. 그녀의 수익의 절반은 전문직이 되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녀의 언니에게 보내졌습니다.

그녀의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녀는 음울한 음악과 자해, 타인을 향한 선의, 그리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통해 발산하곤 하였습니다.

그녀와 더 잘 알게될수록, 저는 그녀와 섹스를 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그녀의 가능성과 열정을 좀 더 누적이 가능한 방향으로 돌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녀에게 그녀의 정신적 불안정성이 치유될때까지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고, 내년 1월부터 그녀가 일정한 궤도에 이를때까지 그녀에게 자기개발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을 하겠노라 약속했습니다. 그녀는 승낙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연애를 시작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연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거절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다른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그녀는 절 그녀의 구원이라 믿었고, 저도 그녀가 제게서 절대 떠나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그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을 메려다가 제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하였습니다. 잠시 제 집에 있어도 되겠냐며, 세상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하였습니다. 삶에 대해 희망찬 계획이 너무나 많이 생겼고, 그것들을 제게 얘기해주고 싶다고 , 너무 얘기해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라고 하자, 그녀는 내일 아침 비행기를 예약하겠다 대답하였습니다.

다음 날,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않았습니다. 오후 한 시경에 전화하자,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밤 비행기로 바꿧노라 얘기하며 그때 찾아가겠다 하였습니다. 전 알겠다 하며 전화를 끊었죠. 그녀는 절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났고, 그녀는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연락이 닿은 그녀의 지인에게, 그녀가 저와 마지막 통화를 하고 두시간여 후에 자신의 자취방에서 싸늘히 굳은채로 발견되었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말하길, 그녀는 죽기 이틀 전, 그러니까 목요일 밤부터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모두 그녀가 금요일에 자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토요일 오후까지, 불과 발견되기 두시간 전까지 살아있었다는것은 저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오로지 저만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고통에 빠져있습니다.
그녀의 죽음이 약물 오용으로 인한 사고였는지,
그녀의 능동적 선택이었는지.
저는 유일한 그녀의 편이었는지,
아니면 간신히 버티던 그녀의 삶을 무너뜨린 악마였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와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제 글을 보고 저를 평가해주세요.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죄인인가요? 저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었을까요?

몇번이고 생각해봐도 알 수 없습니다. 대답이 없는 죽음이 폭력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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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텔
20/12/21 23:22
수정 아이콘
감히 그 1년의 시간을 이 짧은 글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마음을 잘 추스리시길...
가벼운 몇 줄 글로 위로드리기에 매우 부족하지만 그저 힘내시길 바랍니다.
신류진
20/12/21 23:27
수정 아이콘
하아......... 너무 죄책감 가지지마세요.....
척척석사
20/12/21 23:31
수정 아이콘
선생님 하실 만큼 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책임도 없고 잘못하신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힘내십시오
20/12/21 23: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죽기 직전의 통화내용으로 감히 미루어보건대 그분께서는 아마도 조울증을 앓으셨던 것 같습니다만..

저도 비슷하게 아끼고 좋아하던 친구를 떠나보낸 지 3년정도 되어가는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저는 그렇게 특별하고 유별나게 의존하는 사이까지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종종 '내가 조금씩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해내왔다면, 그래서 그날의 위기를 어떻게든 넘겼다면 여전히 곁에서 웃고 떠들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괴로운데, 글쓴 분이 느낄 죄책감은 훨씬 더 무겁겠죠..

한편으로는 조울증이라는게 원래 그런 병인가보다 싶기도 합니다. 넘치는 에너지로 때론 주변을 즐겁게 하고 때론 주변을 파괴하고 평범한 사람은 짐작하기도 힘든 이유로 세상을 포기하고..
가만히 손을 잡으
20/12/21 23:40
수정 아이콘
하....인생은 내가 생각한 곳으로 계획한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엿같죠?
그럼에도 살아야죠.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바랍니다.
20/12/21 23:50
수정 아이콘
죄송한데 잘 이해가 안가는데 세상이 힘들어서 목을 메려다가 갑자기 희망찬 계획 얘기를 한건가요? 감정선이 잘 이해가 안가네요.
최소한 글쓴이분이 저분에게 마지막에 의지하려던 사람인건 확실하네요.
글쓴이분의 잘못은 아닌거같아요 너무 자책마세요
자유형다람쥐
20/12/22 06:53
수정 아이콘
조울증이죠 감정이 요동치는... 우울증보다 더 위험합니다.
서린언니
20/12/21 23:53
수정 아이콘
둘사이 사연 남이 뭘 알겠습니까만,
그냥 살사람 살아야죠...

우울증이 원래 그래요 앓는 사람도 그렇지만
주변사람을 너무 힘들게 합니다.
Chandler
20/12/21 23:58
수정 아이콘
사람은 아프기도 하고 아프면 죽기도 하죠

일반적인 질병이나 정신질환이나 마찬가지인거 같아요....꼭 누구의 탓 책임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것일 뿐인거 같아요..매우 안타까운 사고일뿐 그게 꼭 글쓴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물론 이런 말조차 당사자에겐 공허하게 들리겠지만요.
20/12/22 00:24
수정 아이콘
그냥 그 분은 급류였고 갈 길 찾아 흘러가신 것 같아요. 중간에 바위를 만나든 물고기를 만나든 큰 상관은 없었을... 너무 휩쓸려 내려가진 마시길
브리니
20/12/22 02:29
수정 아이콘
(책 내용 스포가 있습니다)요새는 조롱의 밈이 되기도 하지만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생각나네요 조금 상황은 다르긴 하지만...마지막 장면의 주인공 모습이 글쓴 분에게 오버랩됩니다. 혹시 안보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게 어떠실런지. 독이될지 약이 될지는 모르지만...대답 없는 죽음이 폭력이라는 구절에서 이 소설이.강하게 생각납니다. 결국 주인공은 그 대답없는 폭력에..몇번 더 쓰다 큰 스포인 듯하여 지웁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안보셨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들어 추천해봅니다.
쵸코버터
20/12/22 05:09
수정 아이콘
가만히 두면 위험한 분이셨던 걸로 보이지만, 우리 또한 갈길이 바쁘기에 어쩔수 없을 때가 많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키르히아이스
20/12/22 05:18
수정 아이콘
고인된 분의 죽음과 작성자님 사이에는 아무 인과가 없습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 마지막에 작성자님 목소리를 들으려했던건
인생의 끝에 가장 좋았던기억을 다시 찾은건 아닐까요.
구원이 되진 못했지만 행복이었던건 맞았을것같아요.
허클베리핀
20/12/22 08:24
수정 아이콘
우울증을 앓은 입장에서 근거없이 추측하기론
삶의 마지막에서 찾게 되는 사람은 내 원한이 아니라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일거라 생각합니다.

회한과 아쉬움에 옳고 그름을 덧붙이지 마세요. 별개로 글쓴분께 위로와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후마니무스
20/12/22 08:58
수정 아이콘
그녀는 약했습니다. 그래서 님에게 의지하고자 했으나,
연애를 하지 못하게 된 데에 대한 원망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교차 한거라 봅니다.

마지막에 님에게 가겠다고 말한건, 님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인거 같습니다.

그러나 약한 그녀는 마음으로 님에게 갔으나 물리적으론 가지 못함으로써 영원히 님의 마음에 머무르는 길을 선택한거 같습니다.

이제 마음 한켠 그녀의 공간을 만들어 남은 사랑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 지실거라 생각합니다.

고인은 님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을거러 생각합니다.
고분자
20/12/22 09:51
수정 아이콘
댓글쓰기가 무겁습니다만 편안한마음 가지시기 바라고 명복을 빕니다.
1절만해야지
20/12/22 10:45
수정 아이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노둣돌
20/12/22 10:53
수정 아이콘
딸내미가 우울증을 고생하고 있어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나름 얻어지는 결론이,
원인은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부족.
그리고 그 호르몬 생산에는 장내 미생물이 관여하고, 그 균종은 Coprococcus 와 Dialister 라는 Lactobacillus.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이 균들의 생존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더군요.

선생님은 나름 최선을 다하셨지만, 여자친구분의 조울증을 되돌릴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20/12/22 11:14
수정 아이콘
자책하고 계시는군요..
그녀가 비행기 타고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서둘러 그녀에게 갔어야만 했는데... `구원`이 되어주어야만 했었는데... 라고요.

누구나 자신 안에 쌓인 무엇인가와, 자신 앞에 놓인 무엇인가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 날 님이 달려가셨다한들, 그녀가 더 이상 못 견딜, 그 무엇인가와 화해하는 데에는 도움되지 못 했을 것입니다.

부디 자책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님은 오히려... 그녀가 그 무엇인가와 치열하게 싸울 때, 잠시나마 희망과 행복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녀 역시 잘 알 것입니다.
예쁘게 자라다오
20/12/22 11:59
수정 아이콘
죄인아니에요.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할지.. 제가 감히 뭐라고해야할지.. 그분은 행복했을겁니다.
20/12/22 12:44
수정 아이콘
조던 피터슨 교수가 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손녀가 자살로 죽은 할머니가 그 아이에게 더욱 큰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한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계속된 자기혐오로 빠져 우울증에 걸린 경우였습니다.

피터슨은 할머니에게 당신의 남편이 그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것에 대하여 원망하나요? 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을 매 순간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분의 지옥같은 삶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신 것이고 프리륑리륑님과의 관계로 인해 그 분의 죽음의 순간에 오히려 위로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의를 표합니다...
20/12/22 16:20
수정 아이콘
안타깝네요. 힘드시겠어요요. 프리륑리륑님이 그 분께 위로가 되었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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