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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26 13:23:03
Name 도뿔이
Subject [일반] 성추행의 기억
재작년쯤 트위치에서 성추행에 관련된 논란이 한번 있었습니다.
최근 당사자중 한명이 방송복귀를 하고 또 반대편에서 재판 결과를 공개하면서
다시금 살짝 이슈가 되고 있는거 같은데요..

저는 그 당사자들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고중인걸로 알고 있으니
완전히 결론이 난것도 아니지요..

저는 당시에 어느 한쪽을 옹호하던 댓글이 문득 기억에 남아 이글을 적어봅니다.
마침 아래쪽에 비슷한 글이 있어서 귀찮아하던 또는 꺼려하던 마음을 이길수 있네요..

그 댓글의 내용은 이런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들이 인터넷 방송인이라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방송 다시보기가 남아있었는데
피해를 주장하던 여성의 얼굴 표정을 캡쳐해서 한때 유행하던 표정분석을 해보니..
충격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니 거짓말이다. 무고다..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20년전 성추행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남성이고 당시 성인이었습니다.
성인 남성이 성추행을 당할수 있는곳.. 모두가 예상하는 그곳에서의 일입니다.
무슨 언어로 하는거나 남자들사이에 장난으로 하는 그런게 아닌 정확히 성적인 목적을 가진
그런 류의 성추행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위계에 의한 강제추행'쯤 되겠네요..
저는 이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한적이 없고.. 아마도 그 가해자도 잊어버렸을겁니다.
이 사건은 저만이 가진 기억인것이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일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냥 전 묵묵히 군 생활을 했고 전역을 했고 이제 40대가 되었습니다.
그 일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거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거나 그런것도 없습니다.
그럼 그 일은 아무 일도 아닌게 되는 걸까요?

그리고 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더러워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남성에 대한(특히 남자어린이) 성폭력은 여성 상대에 비하면 훨씬 적긴 하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준은 아닌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흉악한 성범죄자중 어릴때 다른 남성에 의해
강간을 당한 케이스가 제법 되죠..

하지만 남성들은 대체로 성폭력 피해는 경험해보기 힘들고 그래서 그런지 미디어 같은데서 만들어낸
성폭력의 전형적인 이미지만을 맹신하는 경우를 제법 봅니다.

우리나라는 제가 어릴때까지만 해도 강간이 친고죄였고 설사 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강간죄가 성립이 안되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요새 보는 범죄를 다루는 유투브에서 여성 프로파일러가 그런 성범죄를 당했을때
대처방법으로 주변을 살펴서 빠른 도움이 가능한 상황이 아닐때는 범인을 자극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이 꽤나 참담해보였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부조리한 일들을 제법 많이 겪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는 일상을 이어나갑니다.
현실에 순응해나가면서요.. 하지만 그 속은 어떨까요?
그리고 내가 우리가 그걸 이겨냈다고 해서 그 부조리한 행동이 아무것도 아닌건 아닙니다.

그냥 문득 떠오른 일들을 적어봤습니다. 이 곳에서 현실의 저를 아는 분은 아무도 없고
여전히 이 일은 제 주변에서는 아마도 제가 죽는 그날까지 아무도 모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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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6 13:27
수정 아이콘
사실 성문제만이 아니라 살면서 불합리한 일을 안 겪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죠. 성장과정에서 그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는 것 자체가 인생에서 크나큰 행운이라 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0/11/26 13:29
수정 아이콘
저도 군대에서 성추행까지는 아니어도 성희롱을 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 기분 더러운 일이죠. 군대가 그래서 더러워요. 온갖 부조리들이 위계에 의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발생합니다.
20/11/26 15:16
수정 아이콘
폭력의 남성 피해성만 보자면,

- 남성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물리적 폭력에 둔감한 사회적 분위기
- 그래서 남성 대상 폭력은 여성에 비해 별 이슈화 되지 않음
-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프레임

대충 남성의 포지션은 이런 식인데, 피해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가 얼마나 어느정도 더 피해를 보든 말든, 제대로 된 사회라면 피해를 입은 개인에게 차별없는 온정적 시선을 줘야 하지만 적어도 남성 '개인'이 피해를 입었을 때의 사회적 대우는 남성성이라는 '집단' 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단히 말해 "남자가 뭐 그 정도야"

더 나아가 요즘은 젠더정치의 양상인데, 폭력의 데이터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죠. 예를들어 홍대누드모델 몰카사건때의 시위처럼.

이런 분위기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정치성으로부터 가장 바깥에 있은 사람들이겠죠.
20/11/26 15:28
수정 아이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환경이나 권력이나 그런 것들이 갖추어지면 참 나쁜 일도 할 수 있는데 사람인가봐요.
이런이런이런
20/11/26 15:32
수정 아이콘
어릴 때 저보고 "니 꼬X 그려왔다" 면서 다른 반 애들한테 보여주던 놈들...천벌 받았을지 궁금하네요...
오쇼 라즈니쉬
20/11/26 17:57
수정 아이콘
도뿔이님의 잘못이 아니지요. 힘든 기억 가지고 살아가시느라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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