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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3/08 16:53:43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도서소개] 설혜심의 "인삼의 세계사"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이미지 검색결과

설혜심 교수는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지금까지 여러 흥미로운 대중서를 저술한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저술한 [그랜드투어][소비의 세계사]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랜드투어는 18세기 영국귀족들의 유럽여행과 이것이 갖는 사회경제적 및 문화적 의미를 추적한 책으로, 예전에 PGR에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소비의 역사는 유럽의 소비문화(consumerism)이 어떻게 탄생하였고, 이를 위한 무역체계와 마케팅 등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발전했는지, 귀족들의 사치품 마케팅에서 오늘날의 대량소비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추적하는 책입니다. 올해 발간된 신작 [인삼의 세계사]는, 인삼이라는 작물이 어떻게 세계체제에 편입되고 "차"와 "아편"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설혜심 교수는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1차사료와 2차연구를 폭넓게 인용하면서 인삼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아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먼저 설혜심 교수는 인삼이라는 작물이 어떻게 서양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는지 소개합니다. [고려인삼]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관 "로버트 콕스"가 일본 히라도에서 본국에 보낸 편지에 처음 언급됩니다. 그러나 도쿠가와 정권의 쇄국령으로 영국도 다른 서양인들과 함께 축출되면서 인삼에 대한 이야기는 당분간 중단됩니다. 오직 네덜란드만이 일본과 교역을 하였는데, 이들은 인삼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인삼은 곧 다시 유럽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예수회 덕분이었습니다.

17~18세기 예수회는 중국에 방대한 포교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들은 중국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를 유럽에 보냈으며, 중국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묘사했고, 또 본받아야할 대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중국에서 중용되는 약재 또한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이 중에는 "인삼"도 포함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7세기 시암왕국(태국)의 사신들이 루이14세를 알현하였을 때도 그들이 루이14세게 증정한 선물 중에 인삼이 있었습니다. 이에 유럽의 유명한 지식인들도 인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한 학자는 "인삼의 효능"을 주제로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영국에도 인삼을 이용한 임상시험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또 인삼을 이용한 차나 캔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복용하였습니다. 이들은 동양에서 건내온 이 신비로운 약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두려워했고, 또 아주 격렬히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급이 무척 부족하여,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해외로 반출하는 걸 금하는 약재이니, 인삼이 유럽에 도달할 시 가격이 이미 천문학적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인삼이 대중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경쟁도 있었습니다. 카리브해에 카카오농장을 소유하던 어떤 영국상인은 자신의 상품을 마케팅하고자 인삼의 효능을 부정하면서, 인삼은 가짜고 코코아를 마시라고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인삼은 대단한 상품이었습니다. 동아시아 맥락에서도 당시 조선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상품이었습니다. 조선은 옛날부터 중국시장에 인삼을 판매하였고, 그 대신 비단이나 사치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만주족이 명을 멸하고 청나라를 건국하자 갑자기 인삼거래 금지령을 내리게 된 이후로는 조선은 일본시장에서 활로를 찾았습니다. 조선은 일본에 인삼을 판매하고, 일본산 은을 얻었고 다시 일본산 은을 중국에 수출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은 수요자 (중국) 와 세계 2위의 은 공급자 (일본) 은 조선의 인삼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삼은 동아시아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중국 만주지방의 기후와 북아메리카의 기후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프랑스 탐험가들이 원주민들의 도움을 얻어 북아메리카에서도 인삼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원주민이 북미산 인삼을 [사람의 형태를 한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하여 북미 원주민이 동아시아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가설이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인삼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부터 뜻이 사람 같이 생긴 식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프랑스 무역회사와 영국의 무역회사들은 북미산 인삼을 중국에서 팔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한편 인삼은 미국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작물이었습니다. 

신생국가 미국의 최초의 수출상품이 인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독립한 미국은 최초의 대외무역 함선으로 "중국황후호(Empress of China)"라는 배를 건조했고, 이 선박은 북미산 인삼을 가득 싣고 떠났습니다. 미국인들은 중국에 인삼을 판매하고, 대신 도자기와 차를 수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는 1500%의 수익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상인 새뮤얼 쇼(Samuel Shaw)는 당시 미국 외무장관 존 제이(John Jay)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발송했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꼭 차가 필요하고, 차의 소비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반드시 증가할 것입니다.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차 상품을 현금을 지불하고 구하지만 미국은 더 쉬운 조건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인삼)은 산과 숲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데서는 별 쓸모없는 이 생산물이 우리에게 우아한 사치품의 상당 부분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이 미국인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 사례를 두고 볼 때 미국만이 가진 이점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미국의 대중국 교역이 시작되고 지금 진행되는 방식은 유럽인들을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교역 시작 첫해에, 단 한 척의 배로, 현금은 5분의 1도 갖지 못한 미국인들이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조건으로 같은 화물을 입수한 것입니다. 약간의 정화를 포함한 적은 자본밖에 없는 미국인들이 귀한 화물을 가득 채워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미국이 이런 이점을 누리는 것은 바로 인삼 때문입니다. 

미국산 인삼에 대한 중국의 수요와 관련해서 세상에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많습니다. 미국의 인삼은 미국의 금광이나 은광이 인류에 기여하는 것만큼이나 미국 시민들에게 큰 혜택을 줄 것입니다. 미국국기가 이 구역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연간 소비량이 40~50피쿨(1피쿨 63.5 KG) 정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1784년 미국의 첫 선박이 440 피쿨 가량을 들여왔는데, 이는 같은 시즌에 유럽이 들여온 양에는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아마 그들이 들여온 인삼도 대부분 이전에 미국 시민들이 제공한 것일 거라고 판단되지만 말입니다. 올해는 1,800피쿨 이상이 팔렸고, 그 가운데 절반은 미국 선박으로 운숭된 것입니다. 1784년 이래 이처럼 계속 선적이 증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 상품은 아마도 계속  동일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1820년 한 미국 잡지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영국은 중국에 갖다 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 미국은 인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영국이 아편무역에 눈을 뜨게 된 것도, 북미식민지를 상실하고 인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루트를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편이 인삼보다 훨씬 재배하기 쉽고, 수익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탓도 있지만 말입니다. 

한편 19세기 후반 동아시아가 유럽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조선 역시 열강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 또한 역시 인삼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조선의 인삼은 결국 일본의 독점으로 이어졌죠. 

1888년 영국의 맨체스터 가디언은 조선의 인삼에 주목하면서, 이것의 상품성을 논하는 기사를 실었고, 1890년 영국 글래스고 헤럴드는 "오늘날 한국처럼 가난한 나라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의 왕과 정부는 현재 인삼으로 먹고 산다. 이 작은 식물에 한국 행정 전체의 맥락이 달려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1901년 영국 타임스는 "열차, 철도, 인삼 수확량 전체가 일본의 손에 들어갔고, 인삼밭 전체가 미쓰이 상사의 소유가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갈 무렵,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인삼은 "만병통치약"에서 "중국인들의 미신"이 떠받치는 어리석은 작물로 점점 매도되게 됩니다. 그리고 서양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학문분야가 엄밀해지면서 동양의학에 대한 멸시가 자리잡게 되고, 이는 인삼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으로서의 인삼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는지, 인삼의 효능을 부정하면서도 캐나다나 미국 등은 오히려 인삼 재배에 열을 올리고 또 계속 투자했습니다. 

아울러 설혜심 교수는 인삼과 오리엔탈리즘, 인삼과 문화를 논하면서 인삼의 지위가 어떻게 서양에서 하락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학적 근거보다는 문화적 우월감 때문에 영향을 받았는지, 또는 만주의 심마니들의 문화적 유사성 (만주인과 조선인 심마니들) 과 그들의 독특한 미신과 풍습 등을 소개하면서 마크로 히스토리에서 마이크로 히스토리로 이어지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합니다. 

백문이불여일견.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국내 대중서들의 상당수가 참고문헌도 빈약하고, 허접한 경우가 많은데 설혜심 교수는 역시 학자여서 그런지 아주 방대한 자료를 활용합니다. 역시 믿고 보는 설혜심 교수님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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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니
20/03/08 17:06
수정 아이콘
"마크로 히스토리에서 마이크로 히스토리" 이게 무슨말인지 모르겠네요 ...네셔널 자오그라피인가거기서 미국 심마니들이 구역관리하는? 장면을 본 적 있는데 역시 중화기가 나오더니 은근히 안꺼지면 큰일날꺼다 하면서 자기구역에 온 사람들 쫓아내더군요. 아직 돈이 꽤 되나봅니다..거래 라인도 있는거 같고..미신에 가까운거긴 하지만 사실 사치품이란게 인식이 우선 중요하니..고가로 팔리나봅니다
aurelius
20/03/08 17:09
수정 아이콘
세계무역에서 인삼이 가지는 중요성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인삼을 생업으로 삼는 개인과 집단들의 풍습이나 사회를 묘사란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쓰는 게 나을 뻔했네요 :)
닉네임을바꾸다
20/03/08 17:19
수정 아이콘
그것보다는 마크로라 쓰신거때문에 더 그럴걸요...
보통은 매크로라 쓰거든요
우왕이
20/03/08 17:19
수정 아이콘
설혜심 교수의 서양문화유산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었습니다.
여기서 보게 되서 반갑네요
음악세계
20/08/03 10:26
수정 아이콘
덕분에 이제서야 읽어보았는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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