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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6/14 19:43:51
Name 유쾌한보살
Subject [일반] 국 이야기.





유월이 시작되고 보리가 누르스럼하게 익어가면,  시댁에선 <꼬랑치 미역국>을 자주 끓여 먹었습니다.
꼬랑치는 이 때가 가장 맛나다고들 하지요.
통통허니 살도 오르고 노르짱~ 하니 기름도 돌았습니다.
비늘 없이 미끌거리는 몸통에 호감 못 주는 외모이긴 해도,
이 시기의 꼬랑치는 오돌거리는 살이 고소한 맛까지 있습니다.

길이 30센티 정도 펄떡거리는 놈을 사다가 ..
너댓 토막내어(관세음보살...) 돌미역에 양념은 멸장 하나로
뽀얀 국물에 기름이 동동 뜨는 미역국을 끓여 내었습니다.


무국 미역국 콩나물국 ....처럼, 재료 두 가지와 양념 하나로

바다를 혀끝으로 느끼게 한다거나,

투명한 시원함이 답답한 가슴 속을 훑고 지나가게 한다거나,

땅 속에서 50여일을 견딘 무맛으로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거나...

뭐 그런.. 맛을 내려면 비법 아닌 비법,
다시 말해 세월이 필요하다는 이치를 요즘에야 알게 되었네요.




결혼 전엔 생선 넣은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지요.
주로 멸치나 건홍합을 넣은 미역국이었습니다.  (연례행사로 소고기)
근데 시댁에선 주로 제철의 활어 생선으로 미역국이나 쑥국 등을 끓이더군요.
그러면 싱싱한 활어는 다아 미역국과 엮일 수 있느냐... 하면,    아닙니다.


설 지나.. 논과 밭에 얼음이 녹고 매화가 피면,   도다리.

보리가 익고 녹음이 푸르러가면, 꼬랑치.

추석 쇠고 서리 내리기 전까지는 감성돔.


뜨끈한 생선미역국 한 그릇에 밥 말아 먹었다고,
근심 걱정까지 털어낼 순 없어도, 든든해서인지 한결 여유로운 마음이 되는 기분이곤 했지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철 활어>란 점인데요.
같은 감성돔이라도 계절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다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봄에 감성돔을 사거나 가을에 도다리를 흥정하는 주부를 보면,
마치 여름에 오리털 점퍼를 입거나 겨울에 반바지 입은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하기사 요즘은 거의 대부분 생선이.... 양식이라, 제철을 따져쌌는 게 오히려 우습지만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국(음식)이 있는 것 같더군요.


막내고모가 시집가기 전에 자주 부쳐주던 파전 (남편)

여름에 도랑치고 나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추어탕.

할머니댁에 가면 큰어머니가 들깨가루 넣어 끓여주시던 토란국.

 미끌거리며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토란의 그 느낌.

장마가 길어지면  자주 먹던 감자수제비.

식구가 두레상에 빙 둘러 앉아 고개를 처벅고 먹던,  그 뜨거운 수제비.

선풍기는 털털거리며 돌아가는데

반찬은 두레상 한 가운데 놓인  열무짠김치 하나.

하굣길에 친구들과 가끔 들르던(가난한 시절이라 자주는 못 가고)  시장통 입구 만보당 찐빵.
달디 단 팥죽을 듬뿍 끼얹은 찐빵...



잊지 못하는 게 음식 맛인지, 그 음식에 얽힌 사연이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맛을 떠올리면  연이어 연상되는 기억이나  추억, 혹은 그 누군가들.
다시는 그 맛을 못 보기에 더욱 소중해지는  그들입니다.



오늘,  간만에 어시장까지 진출하여 길이 30센티 꼬랑치 암놈 두 마리를 사 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꼬랑치 미역국을 끓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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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4 20:25
수정 아이콘
우리 사이트의 큰누님 반갑습니다.
유쾌한보살
19/06/14 20:44
수정 아이콘
고마워요... 어머님이 아니어서...
19/06/14 21:15
수정 아이콘
어... 머님?
유쾌한보살
19/06/14 21:37
수정 아이콘
제가 좀....올드합니...흐흙...
19/06/14 21:48
수정 아이콘
제가 좀 더 젊었어야 하는데...ㅜ
사악군
19/06/14 21:51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들도 젊지 않아서 고마우실 일은 아닙니다..흐흐흐
19/06/14 21:13
수정 아이콘
참 좋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유쾌한보살
19/06/14 21:38
수정 아이콘
우리(응?) 통했습니까..
오리엔탈파닭
19/06/14 21:23
수정 아이콘
감각 중에 시각 이미지가 가장 강하다고들 하지만 제일 오래 무의식에 남아서 기억을 돌려놓는 것은 향기라고 하더라구요.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이 새삼 그리워지네요.
유쾌한보살
19/06/14 21:41
수정 아이콘
그렇습니다. 향기.... 조만간 향기(냄새)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군요.
사악군
19/06/14 21: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꼬랑치가 뭔지 몰라 찾아봤더니 등가시치라고 하고 장치라고 불리는 올챙이처럼 생긴 바다물고기중에 하나군요. 은근히 저렇게 생긴 고기가 많네요..
유쾌한보살
19/06/15 06:51
수정 아이콘
시어머니는 `장갱이` 라고 부르시더군요.
5월 말에서 6월 말 그 즈음까지만 맛있고, 겨울엔 살이 퍼석해서 그냥 줘도 안 먹는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저는 아직도 ` 그 맛 `을 구분하지 못하지 말입니다.
메이진
19/06/15 00:45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글쓴이 맞혔어요..
유쾌한보살
19/06/15 06:54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나쵸치즈
19/06/15 08:4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침으로 뜨끈한 미역국 먹고싶어지네요~
유쾌한보살
19/06/15 13:27
수정 아이콘
미역국에 새알(찹쌀+맵쌀) 여남은 알 넣어서 끓이면, 밥 안 먹어도 국만으로 아침밥이 되더군요.
19/06/15 09:38
수정 아이콘
저도 생선 넣은 미역국 먹어보고 싶네요. 제가 하기는 좀 무서운데 어디 한번 먹어볼 곳 없으려나..
유쾌한보살
19/06/15 13:29
수정 아이콘
처음엔 약간 비린 맛이 있습니다.
봄에만 <도다리 미역국>을 끓여 파는 횟집들이 더러 있더군요.
칼라미티
19/06/15 12:55
수정 아이콘
생선 넣은 미역국 맛이 궁금하네요. 먹어본 적이 없어서...
유쾌한보살
19/06/15 13:33
수정 아이콘
경우에 따라 약간 비린 듯해도 자꾸 먹다보면,
쇠고기나 조개 홍합보다 미역과의 궁합이랄지...조화랄지....생선이 더 맞는 것 같더라고요.
하우두유두
19/06/16 10:15
수정 아이콘
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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